*친절한 시내버스와 아들*
_文響,이정임_
외출하고 돌아오는도중 신호를 기다리는데
미끈한 곡선미의 버스들이
미스코리아처럼 줄줄이 뽐내며 행진을 한다
아마 어느 학교의 수학여행 행렬이리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일률적으로 반듯한 직사각 모양이던 버스의 외관이
시대에 따라 볼륨감 있고 쭉쭉 뻗은 팔등신 미녀를 연상케 하는 모양을 바라보다
문득, 10년 전
한글을 갓 배워 어디서나 한글만 보면 또박또박 외우던 아들이
어느날 나들이 중
느닷없이
"엄마! 우리도 친절한 시내버스 한번 타보면 안 돼요?"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버스면 버스지 친절한 시내버스는 또 뭔데?' 하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지나는 버스 전면 상단에
"친절한 시내버스"란 문구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당시엔 진주 시내버스 전면 상단엔
전부 "친절한 시내버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까지 별 관심 없이 스치던 버스에 적힌 글을 아들이 발견한 것이다.
보통 다섯 살 때쯤이면 계집아이들은 소꿉놀이나 인형에 관심을 두고
사내아이들은 장난감 총이나 자동차에 관심 있는 시기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라 한창 자동차에 관심이 집중 된 때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새로운 자동차를 골라잡는다
그때 어림잡아 모은 각종 장난감 자동차 모델만 해도 무려 100대가 넘었으니.
지나치는 자동차 중에 모르는 차가 있으면
"엄마! 저, 자동차 이름이 뭐예요?" 하고 꼭 물어보던 아들
"친절한 시내버스"란 문구가 눈에 띄자
버스를 타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을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랑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작아서 겨우 다섯 사람 밖에 못 타는데
친절한 시내버스는 덩치가 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타고 내리는 것이
신기하게도 보였으리라,
저렇게 큰 차를 한번 타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리라.
대중교통으로 가족나들이를 한 기억이 아들에겐 없었을테니...
"그래! 우리도 다음에 친절한 시내버스 한번 타보자"
대답해 놓고서도 한참 동안 실소가 새어나왔다
'친절한 시내버스라......'
며칠 후 결국, 부부동반 모임에 이웃 언니 부부와
우리 식구 셋이 친절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진주는 소도시라 보통 택시는 기본 요금,
멀다고 해봐야 5천 원 이었으니, 어른 네 사람이면
택시비가 훨씬 저렴 함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아들이 원하는 친절한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날 모임 화제의 일부를 차지하기도 했던 "친절한 시내버스"
정말 친절했을까는 둘째치고 그 문구가 아직도,
아니, 평생 나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 아들 다섯 살때 기억이 함께 공존하므로!.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보니 그때마다 관심사가 달라진다
아들도 자동차-> 딱지-> 비디오-> 만화-> 팽이->로 초등 3학년 까지 진행되더니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게임에 빠져들어 아직까지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 길다 싶긴 하지만
언젠가는 지금 게임에 열중하는것 처럼
어느날 느닷없이
공부에 집중하게 될 날도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아들의 집중력이 남 다르다는 걸 알기에,
자기애와 이타심과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는걸 알기에,
오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애가 타지만
우리 부부는 "친절한 시내버스" 처럼 기다려 주기로 했다.
(움막문학) 2011/11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