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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여름 솜다리 인터뷰
「독거소녀 삐삐」, 최정란 시인과의 대화
곽광덕 : 팬데믹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하고 이제야 뵙습니다. 먼저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전주에서 온 황현주, 남양주에서 온 이대봉 문우도 함께 했습니다.
최정란 :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이렇게 방문해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곽광덕 : 먼저 다섯 번째 시집 「독거소녀 삐삐」를 발간하신 소감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최정란 : 그냥 난감하지요. 아, 또 한 권을 내놓는구나. 참 대책 없구나. 원고 넘기고 한숨 먼저 쉬었지요. 대책 없이 아이 하나 더 낳는 느낌이랄까요. 이 험한 세상에, 자조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산후우울증 비슷한 간후우울증이 살짝 찾아오기도 했어요. 출산과 출간, 자음 한 끗 차이.
곽광덕 : 시집 「독거소녀 삐삐」를 묶으며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최정란 : 두 개의 축을 설정해본다면, 하나의 축은 거칠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시간성, 생명성, 일상성이 그것입니다.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언어가 나머지 하나의 축이겠지요.재현과 생산을 염두에 두되 지나치게 공허한 말들은 자제하고요.
태어난 것은 필연적으로 죽어야 되는 문제, 생명의 유한성, Mor-tality 의 문제가 늘 건드려요. 생명은 모두 시간의 작용이지요. 시간은 생명을 낳는 탄생과 생명을 거두어가는 죽음으로 한 개체의 서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지요. 그 과정 속에서 늙고 병드는 부분을 포함한 생로병사의 구조가 모두 시간의 작용이지요. 어떤 시가 되든 생로병사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으면 측은지심과 슬픔이 담겨요.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온 것들은 모두 떠나야 하니까요. 생명성의 문제는 저의 시작 초기부터 여러 갈래로 쓰여지는데, 이번 시집에는 탄생의 문제에 관한 갈래가 조금 도드라집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목소리가 손을 흔들면」의 시적 화자는 태아이지요. 태아의 목소리가 시를 끌고 가요. 태어나기도 전에 상상하는 탄생과 삶의 과정을 뱃속 아기, 태아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봤어요. 만삭의 엄마 뱃속 태아는 가족이 소풍을 갈 때도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지요. 태어나야 하는 아이의 고민이라든가 세계를 잘 모르는 아이의 탄생 이야기인 거예요.
죽음에 관한 시편은 정말 많잖아요. 그것이 인간 일생중대사이기 때문이겠지요. 탄생에 관한 시편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요. 그것이 모든 인간사의 출발점인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생로병사 가운데 '탄생'에 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시편들에 마음이 가요.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시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 하지요. 생명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지요. '해피 버스birth 데이 투 유'를 지구의 날에 맞추어서 「해피 어스earth 데이 투 유라고 비틀어 봤어요. 탄생을 지구로 슬쩍 바꿔 끼워 넣은 거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탄생에 대하여 흔쾌히 기뻐하거나 기꺼이 축하하지 못해요.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현실적 사회적 이유가 있겠지요. 탄생에 대하여 기꺼이 축하할 수 없는 이유들을 짚어보면 결국은 사회와 교육, 언론으로 이유를 돌려야 할 텐데요. 그 부분은 시의 바깥에서 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해요. 태어나고 싶은 세계, 살고 싶은 세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서정시 안에 일상의 서사를 담을 때가 있어요. 영웅적 서사가 아니라 소시민의 서사를 담는 거죠. 「달려라 하니」를 예로 들면 '하니'라는 캐릭터는 달려야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이라고 해야겠죠. 맞벌이를 해야 하는 젊은 여성이죠. 차 몰고 열심히 쫓아다녀야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의 서사, 이 시대의 서사이지요.
우리들의 정체성과 역사, 문명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것을 형성하는 것이 언어이지요. 시는 언어 예술이니까 우리 문명을 가능하게 하는 질료가 재료인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시를 쓴다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시 바깥의 분들은 동의하시기 어렵겠지만, 하하. 말속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요. 말이 운명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은 늘 조심해야 해요. 운명이 되니까요.
철자와 발음의 기표를 우위에 두고 말의 맛, 소리의 색과 향기를 고민합니다. 「지그시 」 「드디어 아마도」 같은 시편들은 아예 기표중심이지요. 패러디와 모순, 역설을 주된 언어 전략으로 썼어요.
곽광덕: 존재론을 대입해 구체성 있게 시를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집에 다양한 소녀들이 등장하는데요? 독자들은 이 소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최정란 : 한 사람의 내면에 수많은 소녀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직업을 물어보면 '전직 소녀'라고 말해요. (웃음). 어느 나이가 되어도 어느 순간에는 소녀 같은 어떤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때가 있지요. 저에게는 내면의 길들을 계속 따라다니는 소녀도 있고, 얼룩으로 남아있는 소녀도 있어요. 그런 부분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나면 그때부터 정말 할머니도 아닌 그 무엇이 되겠지요.
시집의 소녀들과 연결된 각 제재들은 무거워요. 소풍과 소녀들의 고통과 죽음과 늙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세월호 아이들 이야기 특히 눈의 결정을 뜨개질하는 소녀들에 대해 조금 말하고 싶어요.
「소녀들이 소풍을 가요」의 모티브는 어린 시절의 소녀들의 기억이어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소풍을 가는 소녀들이 있어요. 이유 없이 애를 밴 소녀도 있어요. 특히 엄마 제사상을 직접 차리고, 날마다 아버지 밥을 해드리고 자기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오는 소녀가 기억에 오래 남아있어요. 그때 저는 엄마가 해주는 밥상에서 반찬 투정하는 응석받이였거든요. 돗자리에 둘둘 말린 소녀에 관한 묘사의 경우,이백 년 전쯤으로 돌아가요. 혼외임신이 멍석말이 당하는 상황인 거지요. 한 명은 침대 한 명은 의자, 이것은 여고시절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인데요. 신혼 첫날밤 한 사람은 침대에,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었대요. 그리고 석 달 후 이혼. 그 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이 먼 데까지 자전거 하이킹 소풍을 갔어요 그 분은 나중에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는데요. 「소녀들이 소풍을 가요」에 그 이미지들이 섞인 거지요. 소녀가 무사히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되는 일이 기적 같아요.
소풍은 소녀들의 작은 축제인데, 그 축제의 이면에는 그로테스크한 카니발이 들어 있어요.
「십자뜨기」는 생존수영법의 이름입니다. 여름 해변학교 강습의 한 종류입니다. 물 위에 가만히 떠서 구조를 기다리는, 난파선에 탔던 소녀들이 있어요.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어요.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소녀들이지요. 생명 앞에서 그 이외의 것들은 아무 것도 안 중요하지요. 결국 구조대는 오지 않지만, 「눈의 결정을 뜨개질하는 소녀들」에는 한 번도 늙어본 적 없는 소녀들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일찍 죽은 소녀인 거죠. 늙어 보기도 전에 죽은 소녀들이 하늘나라에 가 있다고 상상해봤어요. 그 소녀들 은 뭐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낼까. 천국에서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거기서 뭔가 한다면, 하얀 눈의 결정체를 뜨개질할 것이다. 이렇게 상상했어요.
자연상태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상상하면 먼저 첫눈이 떠올라요, 현미경으로 본 눈의 다양한 육각형 결정체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따라오지요. 하얗고 까실 까실한 면사, 구정 뜨개실 도일리 처럼요. 청년자살의 애도가 더해집니다. 늙어 보기 전에 죽은 소녀가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 순간에 삶을 끝내지나 않을까 무서웠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으니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곽광덕 : 「만화소녀시대」도 흥미롭습니다만, '어딘가로 데려가 달라'고 편지를 쓰는.
최정란 : 「만화소녀시대」는 사춘기 소녀를 그리지요. 그때는 어떤 대상도 없이 편지를 썼던 것 같아요. 저녁에 편지를 부치고 다음 날에는 저녁에 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체통 앞에서 다시 집배원을 기다리기도 했어요. 저녁에 썼던 감정들은 아침에 보면 부끄럽기도 하잖아요. 늘 가출, 멋 부려 말하면, 다른 곳으로의 탈주를 꿈꾸었지요. 결국 아무 곳으로도 달아나지 못했지만, 실패한 도주의 서사는 곳곳에 숨어 있어요. 「헝거문」 역시 같은 궤도를 달리는 달을 무한궤도에 갇힌 수인으로 그린 것 같아요. 자신의 공간 바깥을 동경하거나 욕망하는 일은 흔한 모티프이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지요.
곽광덕 : 「독거소녀 삐삐」 제목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이 제목을 선정한 방법이랄까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최정란 : 문장으로 된 긴 제목을 쓰는 추세지요. 그렇지만 제목이 긴 경우, 뭐더라 제목이? 이런 경우가 많아요. 한번 들으면 기억되기 바랬어요. 독거에 노인 아닌 소녀가 붙으니 조금 낯설어지지요. 소외의 이미지에 드라마화된 동화 주인공 삐삐의 이미지를 덧입히고요.
곽광덕 : 「독거소녀 삐삐」에 '노세 노세'라는 묘사가 있어요 슬픈 이야기를 경쾌하게 처리하신 것 같은데, 화법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는지요?
최정란 : 무거운 것을 무겁게 쓰기는 쉽지만 무거운 것을 가볍게 쓰기는 쉽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반어와 모순을 통한 역설, 패러디가 깔려 있어요. 결국은 노인을 소녀라고 얘기한 것도 반어예요. 스웨덴 동화 「삐삐 롱스타킹」에 나오는 말괄량이 삐삐의 이미지를 제목으로 불러왔어요. 씩씩하잖아요. 뼈뼈가 나이가 들었다고 가정하면, 혼자 경쾌하게 늙어가는 노인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어요. 한국적인 상황에서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잖아요. 그런데 논다는 말은 슬프지 않아요. 그래서 더 슬프지요.
「독거소녀 삐삐」는 표면적으로 보면 여성의 서사이고, 노인의 서사이고, 가난의 서사이고, 고독의 서사이지요. 말괄량이 삐삐 롱스타킹의 슬픈 반전이지요. 그러나 여성만의 서사도 아니고, 혼자 있는 사람만의 서사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만의 서사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의 서사라고 생각해요. 함께 있어도 인간은 모두 고독하지요. 결국 모든 사람은 다 독거인 셈입니다. 독거의 고독이 예술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요. 마침내 시간은 영원히 혼자 인 채 떠나게 만들지요. 살아있는 동안 혼자 있어도 함께 있기 위한 역설의 전략이 시가 아닐까요. 함께 있으면서도 자기 색을 잃어버리지 않고, 혼자 너끈히 감당하고, 혼자 있어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거는 어려워요. 독립이라는 말과 고독이라는 말 둘 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독거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늘어나지요. 이 시는 소녀의 어떤 부분을 뒤집어서 역설적으로, 반어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계속 반복되는 '논다'가 어디서 온 것 같아요?
곽광덕 : '산다'를 논다고 하신 것 아닐까요?
최정란 : 발음이나 철자 즉 기표 위주로 생각을 해봤어요. 노인의 '노'발음이 기표 차원에서 라임이 되게요. 노인을 한자말의 기의 차원으로 해석하면 늙은 사람이잖아요. 우리말의 기표 중심으로 노는 사람'이라 하면 좋겠더라구요. 늙음과 놀이를 동시에 표현하는 거지요.
노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쓸쓸하고 처연하고 가슴이 아파요. 죽음을 기다리는 일도 노는 일이지요. 노인이 하는 일이 결코 노는 일이 아닌데, 노는 일이라고 쓰게 되니 역설이 되지요.
곽광덕: 그렇군요. '논다'는 의미의 바탕에 숨긴 늙음이 아프고 슬프게 느껴져, 전체적인 배경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 같아요.
곽광덕 : 베이비부머 전 후 세대가 보면 패러디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달려라 하니』, 『말괄량이 삐삐」를 모르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최정란 :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패러디의 원 텍스트가 워낙유명하니 알 것 같아요. 「달려라 하니」에는 지금은 안 계신 엄마의 목소리가 나와요. 어릴 때 만화 소녀였어요. 만화 보면서 밥 먹었어요.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어라. 만화책 좀 내려놓아라, 걸어가면서 책을 읽었어요. 불을 켠 채로 책을 보다 말고 잤어요. 제발 불 끄고 제 시간에 자라.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에 편히 앉지 못하고 배차 시간 맞춰 서두르느라 서서 밥 먹은 기억이 있어요. 머슴밥 먹지마라. 살로 안 간다. 엄마 목소리는 환청처럼 듣게 됩니다. 어느 날 안 들릴까봐 조바심하게 되지요. 그러면 엄마를 아주 잊어버리게 될까봐.
저런, 또 머슴밥이구나
먹는 일보다 바쁜 게 뭐가 있다고
이제는 없는 엄마 목소리가 쯧쯧, 혀를 찬다
죽은 지 오래된 엄마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먹는 일보다 바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앞으로 얼마나 더 달리며 먹어야 하는지
- 「달려라 하니」 부분
곽광덕: 시인의 말에 '칼로 자른 듯이 분명하지만 속속들이 부드러운 미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문장을 넣어 서문을 쓰신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최정란 : 시인의 말에 일상성에 대한 제 지평이 요약되어 있어요. 제가 두부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써서 가지고 있는데요. 그중의 하나를 거기다가 일부만 끊어서 앉혔어요. 보통 시인의 말은 그 시집을 묶게 된 시간적, 공간적 배경, 바탕이 되는 생각을 쓰게 되지요.
코로나 19 팬데믹 동안 시집 원고를 정리했어요. 그 사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어요.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인 동시에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전쟁이 발발하면 평화가 깨지고 일상이 불가능해지지요. 동시에 역병의 반대말 역시 일상이지요. 그렇다면 평화와 일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객관적 상관물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가족이 모이는 것, 함께 밥을 먹는 것, 평화로운 것, 부드러운 것, 식물성이라는 것 등등을 보여주기에 '두부'가 적격이었어요.
'시인의 말'은 한 입 베물어 먹은 사각 두부 형태로 보이지요. 책이 나오고 난 뒤에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도 역병도 사람을 옥죄고 가두는 감옥이구나. 출옥하는 사람들이 한 입 베물어 먹은 두부는 해방의 객관적 상관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곽광덕:지금까지 시집을 다섯 권을 내셨는데요 시를 쓰게 하는 촉발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정란 : 막막함이나 어쩔 수 없음 같은 것 아닐까 해요. 「막막광대」시리즈에 나타나 있듯, 울음조차 실패하는 눈물광대 같은 그런 순간 아닐까 해요. 멈춤의 순간이 시가 싹트는 순간 같아요. 「거절학개론」에서 보듯, 거절당한 것, 놓친 것, 실패한 것,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 모자라는 것 같은 느낌이 선명해질 때, 아래로 내려간다는 느낌이 끝이 안날 때, 무력감이 사무치는 느낌일 때가 있어요. 서럽고 막막하지요. 곧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지는 순간이 뒤따라오는 데요. 이때가 굉장히 위험해요. 그럴 때는 뭐라도 써야 해요. 모든 '하는 것'이 하나로 연결돼요. 달리기를 하다. 사람들을 만나다, 춤을 추다, 노래를 하다. 돈을 벌다. 공부를 하다. 기본적으로 식욕과 성욕으로 연결되어 있는 욕망의 문제, 삶의 욕망이 없으면 죽음의 욕망에 의해서 눌리게 되는 거죠. 사실 별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그게 문제지요. 시를 쓰는 것이 없는 욕망의 대체물이 되는 것 같아요. 첫 시집에는 살아 있는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부분들, 생명의 에너지의 고갈 같은 것들이 나를 건드렸어요. 쓰라고 쓰라고. 그래서 첫시집 「여우장갑」에는 야한 시편들이 몇 편 있어요.
저는 건강한 생명의 시편이라고 생각하지요.
곽광덕:그럼, 두 번째 시집 『입술거울」에서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신 건가요?
최정란 : 두 번째 시집에는 어쩌다보니 시적화자들에 일상 속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요. 그게 정체성이라면 정체성일지도 모르겠어요. 시 쓰기 전에는 제가 꽤 착하고 멋지고 고상한 줄 알았는데 (웃음), 알고 보니 고상한 게 아니라 괴상하고요. 콤플렉스 많고 허세쩌는 찌질한 속물, 실체가 없는 허깨비, 몸이 없는 그림자더라구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불청객이기도 하고요. 실컷 당하고도 할 말 못하고 집에 돌아와 우는 등신, 시를 쓰면서 자꾸만 나를 알게 되네요.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닌 허상을 나인 줄 알고 살 뻔 했더라고요. 그러면서 '출발역에서 멀어질수록 도착역에서 멀어지는 노선'(「그림자 기차」)에 타고 있는 삶의 모순이 아주 조금 보이더라구요.
'일생으로, 대답할 질문을 밀고 가는 일이 삶이고 시를 쓰는 일 아닐까 해요. 내가 보이니 남도 보여요. 돗자리 깔고 산 밑에 가서 앉으면 어떨까 해요. (웃음)
흰 기적소리를 비우며, 울컥울컥
젖은 빛을 게워내는 세상 끝 들판으로
고래가 기차를 끌고 간다
나는 어쩌다가 이 기차에 오른 것일까
몸이 따뜻하여 울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을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가깝다
출발역에서 멀어질수록
도착역에서 더 멀어지는 노선인 줄
미리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느러미로 울음의 기록을 헤치며
고래가 빛을 밀고 간다
가볍게 더 가볍게.
일생으로 대답할 질문을 밀고 간다
- 「그림자 기차」 전문
곽광덕 : 「바나나 속이기」는 시산맥 작품상을 수상하신 시입니다. 개인적으로 상상력과 리듬이 좋아 제 밴드 내부 '기억에 남는 시'에 저장하고 자주 꺼내 읽던 시입니다.
망치 들고 무의식적인 상황에 애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사슴뿔선인장」에서는 '우리는 서로를 찌르고 놀아요' 이런 묘사는 어떻게 발생하고 문장을 얻게 되었는지 말 씀해 주세요.
최정란 : 세 번째 시집인 }사슴목발 애인」에서는 리듬 연습을 시도해보았어요. 디테일을 살리자면 압축이 울고, 압축을 살리자면 디테일이 울지요. 디테일을 살리려고 하니까 압축하기가 힘이 드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리듬을 연습하다 보니까 길어도 길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바나나 속이기」는 관계의 은유, 사랑과 미움의 은유입니다. 사람들은 이따금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요. 못을 박든, 가시로 찌르든. 그런데 상처 주는 말은 보통 남에게는 못해요. 엄마, 남편, 아내에게 하잖아요. 그럴 마음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게 되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받고 할 일도 안 생기는 거예요. 누 군가 되게 미운 사람이 생기면 '아!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친구가 많지 않은 저는 혼잣말을 할 때가 많고, 정 심심하면 사물과 중얼중얼 대화해요.
노끈이나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오래 간단다
그 말 믿지는 않지만
바나나 한 송아리를 묶어두기 위해서
나무를 찾다가
바나나 한 송아리를 박아두기 위해서
못을 찾다가
바나나 한 송아리를 매달아두기 위해서
망치를 찾다가
망치를 든 채 전화를 받는다
망치를 든 채 안부를 묻고
망치를 든 채 수다를 떨다가
왜 손에 망치를 들고 있을까, 잊는다
왜 못 하나가 거기 있을까 잊는다
대화에 열중하느라
무심코 가장 날카로운 말로 애인의 가슴깊이
대못을 박는다
손에 망치와 못이 있으므로
어딘가에는 박아야 하므로
날카로운 말은 빨리 허기를 부르고
배가 고픈 나는 바나나를 먹는다.
내 몸 위로 미끄러져 오는 바나나
내가 밟고 넘어지는 바나나
이윽고, 바나나 껍질처럼 휘어진
미끄러운 밤이 온다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한 바나나
썩어가기 시작해서 향기로운 바나나
검버섯이 피기 시작하는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오 바나나
날카로운 말은 꼭 애인의 가슴에 박아 넣는다
철철 흘리는 피를 보고야 만다
짐짓 속아주는 척 하는 사람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백하고 맹세하고
그리고 또 상처를 준다
몰래 기어들어가고 싶은 그림 속
무성한 파초잎 향기로운 이국의 마을에서
비로소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만
또 다시 망치 자루를 드는 나날이여
- 「바나나 속이기」 부분
「사슴뿔선인장」은 제가 붙인 선인장 이름인데요. 사슴뿔같이 생겼어요. 자주 그 옆에 가서 앉다 보니까 가시에 여러 번 찔렸어요. 찔리면서 선인장과 정이 들었어요.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콕콕 찔렀을까 돌아보게 되었고요. 서로 가시를 찌르는 관계는 아프지요. 그 과 정에서 나름대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사실 가시로 찌르지 않는 관계는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요. 사이 자체가 안 만들어지는 거예요. 역시 관계의 은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를 찌르며 놀아요
말없이 잘도 놀아요
오늘 당신은 나를 찌르며 놀고 나는 찔린 가시를
뽑으며 놀아요.
뽑으려 하면 할수록 가시가 더 깊이 들어가요
그래도 가시를 뽑아요
놀이의 규칙을 지켜요
내 귀는 가시의 묘지, 나날이 가시무덤이 늘어나요
놀이에 지치면
서로의 가시를 쓰다듬어요
가시가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려요
눈을 동그랗게 뜬 가시의 꼬리가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요
가시만 한 상냥한 꼬리가 있을까요
가시의 안부가 도착해요
가시 안테나가 더듬더듬 붉은 신호를 읽어요
가시가 가시를 내밀어 가시를 읽어요
가시가 없는 말은 무심하고
가시가 없는 관계는 깊이를 몰라
세계의 표면을 겉돌아요
가시는 많은 말의 세계에 살지만
깊고 얕은 가시의 세계에서 말은 서로를 숨겨요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를 모르게 되요
말을 하면 혀가 꼬이고 안과 밖이 꼬이고 세계가 꼬여요
말은 오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가시가 오만과 오류의 신호를 읽어요
가시만한 친절한 더듬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찌르고 스미고 피를 나누는 사이.
혀를 내밀어 서로의 가시를 맛보지요
우리는 걷는 식물과 뿌리 내린 동물,
당신의 모순을 사랑해요
당신도 나의 모순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 나는
기어이 한 방울 피 맛을 보고
그 사이 화분은 뿔이 한 뼘 더 자랐어요
- 「사슴뿔선인장」 전문
곽광덕 : 상처를 받아들이면 꽃이 핀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하기 전, 시를 쓰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다고 인터뷰하셨던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요?
최정란 : 제가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자주 아팠어요. 아프지 않을 때 엄마는 신명이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어요. 시조를 많이 암송하셔서 우리 남매들은 자연스럽게 많이 익혔어요. 엄마 사주팔자에 머리맡에 약탕기가 놓여 있다고 했어요. 모범생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엄마가 아프니까 어쩔 수 없이 모범생으로 살게 되었어요. 아픈 엄마를 더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웠던 거지요. 「1995년, 그 후」라는 시가 있어요.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근육들이 마비되더니 마지막에는 석션 없이는 스스로 호흡이 힘든 지경까지 근육이 마비되더군요. 건강만으로도 제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많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은 헛된 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시를 쓰기로 했지요.
곽광덕 : 시집 부록 「프롤로고스」에 '시인이라고 자연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시는 죽음을 견딜만한 어떤 것으로 바꾸지요', '시안으로 들어가면 순수한 기적이 되지요'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처럼 설명이 필요한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최정란 : 짧은 산문을 세 편 부록으로 붙여 보았어요. 메타산문이라고 할까요. 대학교 4학년 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나타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어요. 그 논문으로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주최 영남지역 대학생 대상 인문분야 논문 공모에 응모했는데 우수상을 받았어요. 우리의 젊은 날이나 아름다움은 금방 스러지지요. 영원히 아름다운 젊음은 없지요. 그러나 시 안에 기록된 청춘이나 꽃, 아름다움은 영원히 산다는 구절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8번」에 있어요. 태어나고 죽는 것은 모두 다 시간의 문제잖아요. 시간이 태어나게 하고, 시간이 죽게 하고, 시간이 퇴직하게 하고, 시간이 사랑하게 하고, 시간이 이별하게 하고, 시간이 병들게 하지요. 그래서 시간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어야 할 운명을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역설로 뒤집었는데, 이 말을 가슴에 새기기로 했어요. 아무리 우울해도,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할 운 명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어요.
시 안에서는 그 어떤 실패도 실패가 아니지요 몰락과 죽음조차 실패가 아니지요 존재의 양식이자 구조일 뿐, 시인이라고 자연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시는 죽음을 견딜만한 어떤 것으로 바꾸지요 시의 외부에서는 시의 죽음을 견딜만한 어떤 것으로 바꾸지요 시의 내부에 들어온 것은 한결같고 무한하지요 시의 내부에 들어온 것은 한결같고 무한하지요 변질되기 쉬운 사랑도 찰나의 기쁨도 가장 깊고 가장 맑은 슬픔도 심지어 죽음도 시 안으로 들어가면 순수한 기적이 되지요 시의 내부가 된 만물은 영원히 죽어 영원히 살지요 깨어 울면서라도 쓰지 않을 수 없어요 다시 시작해요 침묵의 배후에 펴다 나르는 울음이라는 농담
- 「프롤로고스」 전문
곽광덕 : 이제 강의하시는 솜다리문학 실전반에 대해 몇 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강의가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없을 것 같은데 열정적으로 진행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정란 : 저에게 계속해서 학생이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 제가 여러분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제가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는 도반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여러분이 달려갈 때 함께 달리서 속도 조절을 해주는 페이스메이커이고, 때로는 이정표라는 생각을 해요. 산길 갈 때 시의 방향인 지 아닌 지 알려주지요. 때로는 골프장 캐디 역할을 한다고도 생각해요. 방향을 읽어주고, 라이를 읽어주고, 해저드를 읽어주고, 거리를 읽어주고, 동시에 나도 같이 달리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모든 선수는 고독하잖아요. 혼자 깨어 있어도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업에 바쁘고 피곤할 텐데,늦은 밤 시간을 함께 나누는 솜다리 식구들, 감사하고 애틋해요.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한 비대면 시 모임을 이렇게 꾸준히 하게 되다니 놀라워요. 여행 중에 낯선 지역을 지나갈 때 문득 그곳에 사는 솜다리 도반이 떠올라요. 그러면 놀랍게도 그곳이 내가 잘 아는 곳 같은 생각이 들어요.
곽광덕 : 평론집을 실전반 수업 교재로 활용하고 계시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제 시에 입문하는 초심자들과 시의 깊이를 알기 어려운 저 같은 문청들에게 평론집 한 권을 온전히 읽어내면, 시에 접근하는 것이나 폭이 넓어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진행하는데 수강생들 반응이나 좋은 점은 무엇인지 말 씀해주세요?
최정란 : 『문학평론의 길잡이」와 「몸 - 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를 이번 학기 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학평론의 기본 이론들과 다양한 시적인 주제들. 창작 방법과 관련된 것들인데요. 교재를 요약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한 단락씩 읽어요. 더불어 문장을 공부하는 거지요. 문학평론 이론을 공부하다보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져요. 다양한 장르의 비평에 적용 되는 기본 용어들을 알게 되고, 사회전체를 보는 나름의 지평과 패러다임을 가지게 되지요. 문학비평 이론은 예술비평 이론이이면서 사회비평 이론이거든요. 기본용어들을 익히고 시와 관련된 산문들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주마간산이겠지만, 참고문헌의 꼬리를 잡으면 더 깊은 독서의 길잡이가 되겠지요. 무엇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가 어떤 방향으로 쓰이고 있으며 어떻게 읽히겠다는 것이 보여요.
곽광덕 : 앞으로 실전반 수업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최정란 : 다음 기에는 다양한 테마 글쓰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달리기 이론 백번 알아도 달리지 않으면 기량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수영 이론 박사라도 물에 몸을 넣고 팔다리를 열심히 놀리지 않으면 수영이 늘지 않습니다. 쓰기는 쓰기로 배웁니다. 다양한 글감을 중심으로 쓰기에 더 많은 동기 유발되는 교재가 선택 될 것입니다.
곽광덕 : 끝으로 독자들과 솜다리문학회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정란 : 언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이 삶의 도구라면, 시는 삶의 목적입니다. 문학은 피드백이 느린 장르입니다. 특히 시는 더 그렇지요. 성과나 변화가 잘 안보이더라도 계속 쓰시기 바랍니다. 자라는 것이 바로 바로는 안 보이는 것 같아도, 시도 인생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를 쓰면서 비로소 돌아보게 됩니다. 말을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생은 어차피 어찌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운다고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기고 질 필요가 없도록, 정신과 영혼의 가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그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면,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이던 그 어찌할 수 없는 것 들이 우리의 영혼을 가난하게 하거나 비굴하게 만들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별 것 아닌 것들에게 그동안 휘둘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쓰다 보면 알게 됩니다. 자신을 알게 되고 삶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하찮은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게 됩니다. 계속해서 쓰십시오.
곽광덕 : 시집을 발간하시고 바쁘신 와중인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최정란 : 고맙습니다. 계속 써 보겠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후기, 주석 혹은 추신
최정란 시인 만남 후기를 주석처럼 남기고 싶었다. 편지처럼 추신이라고 해도 좋다. 최정란 시인을 만나자고 하니까 전주에서 일하는 황현주,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이대봉 벗들이 한달음에 왔다. 우린 문우이지만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는 사이다. 문학을 통해 만난 벗은 무언가 늘 아련함이 있다. 부산 두실역 근처 이디야 카페에서 만난 황현주 문우가 힘들고 어려운 녹음과 기록을 자청했다. 최정란 시인은 솜다리문학 실전반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시집이 출간되어 반갑기도 하고, 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있어 모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월간지나 계간지에서 다룰 법한 거창한 주제를 뒤로 하고, 시집에 대해, 혹은 문청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질 문을 하려고 노력했다. 경청 위주의 대화였지만 오히려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다만 급작스럽게 인터뷰가 성사되어 장미꽃 한 다발 준비하지 못해 헤어질 때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강의하시는 이유를 여쭈었을 때 계속해서 학생이게 해 주기 때문이지요'란 대답은, 가라사대처럼 내 머릿속에 빨간 장미꽃이 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