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a - This Syriac or Chaldee word is found three times in the New Testament (Mark 14:36; Rom. 8:15; Gal. 4:6), and in each case is followed by its Greek equivalent, which is translated "father." It is a term expressing warm affection and filial confidence. It has no perfect equivalent in our language. It has passed into European languages as an ecclesiastical term, "abbot."
아바 - 이 시리아어 또는 칼데어 단어는 신약성경(마 14:36; 롬 8:15; 갈 4:6)에서 세 번 발견되며, 각각의 경우 그리스어의 동치인 "아버지"로 번역됩니다. 따뜻한 정과 효심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언어에는 완벽한 동치(같은 값으로서 평형이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용어인 "아봇"으로 유럽 언어로 전해졌습니다
- 말씀 해설 (막14:35-38)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제자들을 데리시고 감람 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이르셨을 때, 여덟 명의 제자들로 하여금 동산 입구에 앉아서 그 곳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세 제자,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들 세 명은 제자들 중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신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영원히 하나이신데,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모든 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한꺼번에 다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신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시고 동산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들을 동산 한 곳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시는 동안, 그들도 깨어서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눅22:41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서 돌 던질 만큼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30m 정도 더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눅22:41 말씀처럼, 처음에는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마26:39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아예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습니다.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에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짤막합니다. 그러나 다음 절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이 때 예수님이 한 시간 정도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빠”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우리말의 “아빠”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좀더 친숙하고, 좀더 가깝게 부르는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주기도문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기에 앞 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하나님께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와 같이 이어집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사51:17 말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때의 잔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 이 기도를 앞 절에 있는 말씀으로 나타내면, “이 때가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가 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습니까? 왜 예수님은 “이 잔”이 자신에게서 옮겨지기를 기도하셨습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는 결코 예수님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이 이러한 기도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죄가 되셔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몽땅 다 받으셔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리켜서 앞 절은 “이 때”라고 표현을 했고, 여기서는 “이 잔”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기도는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비록 “이 때”가 형언하기 힘들 만큼 어렵고, 또한 “이 잔”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다 맡기셨습니다.
요4:34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또한 요6:38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와 같은 결단의 기도를 드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보셨습니다.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기 위해서 세 제자에게로 돌아오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에게 돌아오셨을 때, 예수님은 그들이 자는 것을 보셨습니다. 왜 그들이 잠들었습니까?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4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잠든 이유를 이와 같이 밝힙니다.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 날 저녁 그들은 유월절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먼 거리를 걸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깊은 밤중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눅22:45 말씀과 같이, 그들은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습니다. 그들의 동료였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셔서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이며,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어주신 새 이름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영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를 그의 옛 이름인 시몬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깨어 있어야 기도하며, 또한 기도해야만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도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시험에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있어 기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부드럽게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깨우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측은히 여기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은 육신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는 약한 육신을 이기고 마음의 원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롬7:24에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곧이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롬7:25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