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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시리즈]11강. 신자유주의와 신경제-신동기
https://www.youtube.com/watch?v=nwijg0rLFhg
중국서 ‘미국 성조기 시위’…“민주·자유 국가 돼야” / KBS 2023.06.05.
https://www.youtube.com/watch?v=gsPx8mtbfCk
*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영어·영문 매체들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Liberal candidate Moon Jae-in’이라 불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정부를 ‘Liberal President’, ‘Liberal Leader’, ‘Liberal Administration’, ‘Liberal Government’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후속 조치로 역사 교과서의 검정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개정안을 2018년 6월 발표했다. 개정안의 검정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에는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었던 것을, 다시 ‘민주주의’로 환원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보수 언론을 포함해 보수 진영에서 일제히 반발이 터져나왔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Liberal’ 정부다. 대통령도 ‘Liberal President’, ‘Liberal Leader’, 정부도 ‘Liberal Administration’, ‘Liberal Government’다. 그런데 왜 대통령과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앞의 ‘자유’(Liberty)를 빼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대통령과 정부를 왜 영어로 ‘Liberal’ 대통령, ‘Liberal’ 정부라고 부르는 것일까? 거기에 또, 보수 진영은 왜 민주주의 앞에 반드시 ‘자유’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냥 ‘민주주의’ 자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주주의’는 부정한다는 것일까?
‘Liberal’의 사전적 의미는 ‘진보적인’, ‘자유로운’, ‘자유주의의’, ‘개방적인’, ‘관대한’이다. ‘진보적인’ 의미와 함께 ‘자유주의의’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Liberal President’와 ‘Liberal Government’에서의 ‘Liberal’은 ‘진보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역사 교과서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영어로 표현하면 ‘Liberal Democracy’의 ‘Liberal’은 ‘자유주의의’ 의미이다. 같은 ‘Liberal’이지만 의미는 ‘진보적인’과 ‘자유주의의’로, 두 개념은 오늘날 정치에서 서로 대립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환경에서 ‘진보주의(Progressivism)’하면 대체로 국가 역할의 확대, 즉 경제 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 축소’를 주장하는 입장이고, ‘보수주의(Conservatism)’하면 경제 활동에 있어 개인의 ‘자유 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로 ‘Liberal’하면, 이 말만 가지고는 그것이 ‘진보주의’를 의미하는지 혹은 보수주의의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나의 용어가 상반되는 정치적 성향의 양쪽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고, 또 반대쪽으로도 오해할 수 있는 이런 모호한 상황이 왜 발생하게 된 것일까? 영국의 정당 역사는 1685년 제임스 2세의 왕위승계를 둘러싼 의회의 대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국 국교도가 아닌 가톨릭 신자이자 독재 성향이 강한 제임스 2세(재위 1685-88)의 왕위승계 가부를 둘러싼 두 정치 그룹의 대결에서였다. 주로 귀족, 목사, 지주들로 구성된, 제임스2세의 승계를 찬성하는 왕당파인 토리당(Tory)과, 반대하는 측인 주로 돈 많은 상인들과 청교도들로 구성된 자유파인 휘그당(Whig)의 대결이었다. 대결은 토리당의 승리로 끝난다. 제임스2세는 왕위에 올라 법(심사율: Test act)을 무시하고 독재를 실시하다 3년 만에 시민에 손에 의해 쫓겨난다.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 의 출발인, 1688년 시민의 힘으로 피 흘리지 않고 왕을 바꾼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다. 왕위는 제임스 2세의 딸과 사위인 메리 2세(재위1689-1694)와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 공동왕에게로 넘어가고, 윌리엄 3세 사후에는 메리 2세의 동생인 앤 여왕(재위 1702-1714)에게로 넘어간다.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는 왕위계승률(Act of Settlement)에 따라 독일 하노버가의 조지 1세(재위1714-27)에게로 넘어간다. 독일 출신으로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조지 1세는 정치를 내각에 맡긴다. 의원내각제(Parliamentary cabinet system)의 출발이다. ‘왕은 군림할 뿐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s reign but not govern)’는 영국 특유의 정치 원칙이 이때부터 축적된다.
경제보다 주로 정치적·종교적 측면에서 입장 차이를 보였던 전근대적 정당인 토리당과 휘그당은 19c 들어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이 보급되면서 당명 변경과 함께 근대적 정당으로 변신한다. 지주계급과 귀족의 이해를 대표하는 토리당은 1830년대에 보통명사인 ‘보수(Conservative)’를 아예 당 이름으로 삼아 ‘보수당(Conservative Party)’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휘그당은 토리당 내 자유주의파를 받아들이고 신흥 상공업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당의 성격에 맞게 1859년 당명을 ‘자유당(Liberal Party)’으로 정한다. ‘보수당(Conservative Party)’과 ‘자유당(Liberal Party)’의 본격적인 보수주의(Conservatism), 진보주의(Progressivism) 양당 체제의 출발이다.
보수당과 자유당은 민주주의의 진전 및 환경 변화와 함께 개혁 경쟁에 나선다. 민주주의는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기존 25만명에서 성인 남성의 1/5로 확대), 1867년 2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성인 남성 1/3로 확대), 1884년 3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재산·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21세 이상 세대주로 확대), 1918년 국민대표법 도입(참정권 21세 이상 남성과 30세 이상 여성으로 확대) 그리고 1928년 남녀평등선거제 도입(참정권 21세 이상 모든 남녀로 확대)과 같은 과정을 거쳐 실현된다. 무산자와 저학력자 그리고 여성들로 참정권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정치 환경도 크게 바뀐다. 19c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고 20c 후반 들어서는 노동자 중산층이 등장한다. 참정권 확대와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보수당, 자유당 양당의 개혁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리고 그 개혁 경쟁에서의 최후 승리는 보수당에게 돌아간다. 보수당은 단속적인 내부 갈등은 있었지만 1846년 곡물법 논쟁 이후 자유무역과 불간섭주의의 입장을 취하기 시작하고, 상대가 자유당이 아닌 노동당이 되면서부터는 확실하게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 옹호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보수주의답게 산업혁명 이전의 온정주의와 공동체주의에서 노동자 계급을 위한 복지의 정신을 찾아낸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1942년의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는 바로 이런 보수당의 개혁적 태도로부터 나온 대표적 결과물이다.
반면, 자유당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복지증진 등에도 힘을 쓰나 19c 초 신 주류인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 가치를 처음부터 선점했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 아일랜드 자치령화 시도에 나서는 등 국민을 위한 민생개혁에 보수당보다 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20c 초, 진보주의의 대표 자리는 결국 노동당(Labor Party)에게로 넘어간다. 처음부터, 19c 들어 새로 등장한 계급인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당은 1906년 자유당과 제휴해 첫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 그리고 1922년 이후 보수당과의 개혁 경쟁에서 패배한 자유당이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면서 노동당은 진보주의의 대표 주자로 보수당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영국의 근대 정당 역사 100년이 지나지 않아 보수주의·진보주의 대립 구도가 보수당 대 자유당에서 보수당 대 노동당으로 교체된 것이다.
보수당의 개혁 노력은 노동당 등장 후에도 지속된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대패한 뒤, 보수당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노동자 계급을 위한 노동당의 복지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 그러다 공공부문의 비효율, 방만한 복지, 파업 열병으로 영국이 병들기 시작하자,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과감한 영국병(British disease) 치유 개혁에 들어간다. 대처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책의 등장이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대폭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정권을 담당한다.
자유당의 개혁경쟁 패배 역사를 반면교사로 학습한 노동당도 그대로 있지는 않는다. 1994년 노동당 당수로 취임한 신예 토니 블레어는 당 강령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조항과 같은 내용을 폐지하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하면서 대처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 노동자 계급의 중산층화와 같은 사회 변화를 재빠르게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은 1997년 총선에서 압승으로 정권을 되찾는다. ‘대처의 아들’ 또는 ‘블레처리즘’으로 비난받을 정도의 과감한 개혁이었다. 개혁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당 역시 가만있지 않는다. 토니 블레어와 같은 꼴, 반대 정당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나서, 좌파 정책의 차용과 함께 지지층 확대에 나선다. 그리고 2010년, 13년 만에 노동당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가져온다.
‘Liberal’이 ‘진보’와 ‘자유’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영국 정당의 역사 때문이다. 1922년까지 영국 정치의 양대 정당이 바로 보수당과 자유당이었고, 보수당은 보수주의 또는 우익, 자유당은 진보주의 또는 좌익이었다. 따라서 자유당(Liberal party)의 ‘Liberal’은 19c 중반부터 20c 초반까지의 영국 정치사에 존재했던 ‘자유당’이라는 고유 명사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그 자유당의 정치적 입장인 ‘진보주의’ 또는 ‘좌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진보적 대통령인 문재인은 오늘날 보수주의인 ‘자유주의’의 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Liberal Leader’, ‘Liberal President’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때는 ‘자유주의적 지도자’, ‘자유주의적 대통령’이 아닌, ‘진보적 지도자’, ‘진보적인 대통령’의 의미다. 표현과 인식에서 혼란이 발생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이런 ‘사실’이 아닌 ‘논리’에 있다.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보통명사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회주의(Socialism),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혼합경제(Mixed economy), 군주정(Mona rchy), 귀족정(Aristocracy), 민주정(Democracy)와 같은 말들은 고유명사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의 차이는 명백하다. 보통명사는 같은 종류의 여러 것들을 함께 나타내는 것으로 그 내용이 바뀔 수 있고, 고유명사는 다른 것들과 구분해 특정한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 아니 바뀌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지만 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내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 병 안에 맥주를 담으면 병 ‘맥주’가 되고, 캔 안에 소주를 담으면 캔 ‘소주’가 된다. 맥주가 캔에 담길 수도 있고, 소주가 병에 담길 수도 있다. 그때는 캔 ‘맥주’, 병 ‘소주’가 된다.
보수주의라는 용기에 ‘귀족정’이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귀족정’ 보수주의가 되고, 진보주의라는 용기에 ‘자유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자유주의’의 진보주의가 된다. 그리고 보수주의라는 용기에 ‘자유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이때 그것은 ‘자유주의’의 보수주의가 되고, 진보주의라는 용기에 ‘사회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사회주의’의 진보주의가 된다. 똑같은 자유주의가 시대 상황에 따라 진보주의일 수도 있고 보수주의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귀족정’, ‘자유주의’, ‘사회주의’이지 용기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병이나 캔이 아닌 맥주나 소주인 것과 마찬가지다.
양당 체제에서 한쪽이 스스로를 보수라 부르면 상대는 진보로 규정된다. 영국의 자유당이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유당이 진보인 것은 19c 전반에 한해서 그렇다. 신 주류로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당으로서 기존의 왕정·귀족정에 대항하는 기간 동안 진보 세력이었다. 왕정·귀족정에 대한 향수 세력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시대 환경에 완전히 밀려나고,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는 19c 후반에는 그렇지 않다. 이젠 부르주아 기득권 세력으로,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로부터 당이 표방하고 있는 ‘자유’, ‘자유주의’ 라는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20c 초 영국 유권자들의 양당체제 선호 환경에서 새로운 진보주의인 노동당이 등장했을 때 자유당은 하나뿐인 보수주의의 대표 자리를 놓고 보수당과 다투게 되고 개혁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사라진다. 그러면서 19c의 유물을 남긴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보수주의의 핵심가치가 된 지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진보’라는 상반된 의미로 통하기도 하는 ‘Liberal’이라는 유물을.
물론 ‘Liberal’이 ‘진보’가 된 원인은 자유당이 아닌 보수당에 있다. 보수당이 당초 ‘귀족당’ 이나 ‘왕당파’와 같이 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고유명사로 당명을 정했으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귀족당’으로 이름 지었으면 초기에 ‘귀족당’과 ‘자유당’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표주자로 경쟁을 했을 터이고, 왕정·귀족정의 봉건적 잔재가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는 단계에서는 계속 보수로 남겠다면 순수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영국당’이나 ‘자유자본주의당’과 같은 고유명사로 개명했으면 될 터였다. ‘이름만 같을 뿐 불과 100년 만에 당 지도부의 출신 배경은 물론이고 사상 및 정책 측면에서도 크게 변모했다’는 영국 보수당에 대한 평가는, 바로 이 ‘보수’라는 보통명사가 ‘보수당’에서와 같이 고유명사로 쓰임으로서 발생한 혼란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명正名, 즉 이름이 그 사물의 속성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야 할 터인데, ‘귀족정’을 추구할 때나, 대척점에 있었던 ‘자유주의’를 추구할 때나 똑같이 ‘보수당’이니 이름이 이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 피해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1c ‘보수주의’의 핵심가치인 ‘Liberal’을 ‘진보주의’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로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보통명사는 보통명사로 고유명사는 고유명사로 사용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고등학생 역사 교과서에서의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이명박 정부 이전의 ‘민주주의’로 다시 환원하려고 한다. 보수 진영은 극렬 반대다.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왜 ‘자유’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보수주의는 ‘민주주의’ 자체는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프랑스 혁명하면 흔히 민주주의의 출발, 영국 정치하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이 민주주의 출발이고, 영국의 역사가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인 것은 맞다. 그러나 둘 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출발은 완성 아닌 시작일 뿐이고 발전은 결과 아닌 과정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 주도 세력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으로 무장된 부르주아들이었다.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그들이 선택한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 아래서 재산 또는 교육수준에 따라 투표권을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막는 안전장치를 갖춘 자유주의적 제도’였다. 사실상의 유산자 귀족정이었다. 자유주의자인 그들에게 민주주의니 공화국이니 하는 것들은 위험한 것이었다.
「프랑스 인권선언」 역시 따지고 보면 귀족들의 특권적 신분제를 반대하는 것이지, 노동계급과 함께 민주주의적 혹은 평등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혁명의 자유와 평등은 자유주의자인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자유·평등이지, 프랑스인 모두를 위한 자유·평등이 아니었다.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은 제1공화정(1792-1804) 중 1년여 잠시 존속했던 자코뱅 정권(1793.6.2.-1794.7.27)과의 비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노동자 정권인 자코뱅 정권은 공화정 실시와 함께 보통선거, 반란권, 노동/생계유지의 권리 등을 헌법에 명시한 데 반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제헌국민의회(1789.7.9-1791.10.1)는 공동지의 인클로저와 농업기업가 장려, 노동조합의 금지, 유산자 한정 선거권 부여와 같은 내용을 정책으로 택했다.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과정도 마찬가지다. 1215년의 대헌장(Magna Carta), 1628년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89년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 및 이후 정치발전 과정이 모두 의회주의적 민주주의 완성을 향한 발전인 것은 맞지만, 그 과정은 영국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18c 무렵까지는 왕권으로부터 성직자와 귀족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19c 중반부터 20c 초반까지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 수호를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 영국 모두 왕정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이젠 ‘출생에 의한 귀족주의 대신 화폐에 의한 귀족주의’를 추구했던 셈이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부르주아 귀족주의를.
‘자유주의(Liberalism)’는 19c 부르주아 계급의 중심 사상이었다. 자유주의의 ‘자유’는 원래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개념이 아니었다. 프랑스혁명 전까지는 단순히 노예상태의 반대를 나타내는 법률용어일 뿐이었다. 그런 용어가 혁명을 계기로 ‘성聖스러운(Saint)’에 버금갈 절대개념의 정치 용어로 바뀌었다.
‘자유’는 국가 환경에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자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자유’다. ‘정치적 자유’의 구체적인 형태는 ‘참정권’이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는 정치적 ‘평등’과 짝을 이뤄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참정권’은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자연상태 아닌 ‘국가 환경’에서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차별 없이 그 사회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갖게 되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따라서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인권선언」의 핵심인 ‘자유’와 ‘평등’의 ‘현실태’, 그것이 바로 ‘참정권’이다.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사회라면 정치적 자유는 그것으로 완벽하다. 최소한 ‘정치적 자유’에 있어 인간은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다. ‘물질의 본질이 무게라면 정신의 본질은 자유’라는 헤겔의 통찰에 부합한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처럼 단순하지 않다. 첫째, 그 ‘자유’가 하나가 아니고, 둘째, ‘정치적 자유’처럼 ‘평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세 번째로, 형제 ‘자유’인 ‘정치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첫째, ‘경제적 자유’는 ‘경제 활동의 자유’와 ‘경제 향유의 자유’ 둘로 나누어진다. ‘경제 활동의 자유’는 시장에서의 거래 및 조건선택에 있어서의 자유다. ‘경제 향유의 자유’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서 갖게 되는 만족이다. 인간은 ‘경제 활동의 자유’에서도 행복을 느끼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 향유의 자유’에서 행복을 느끼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 목적도 사실 ‘경제 향유’에 있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는 궁극적으로 ‘경제 향유의 자유’가 되지 않으면 말로만 ‘자유’이지 현실에 있어서는 구속일 뿐이다. 더구나 ‘경제 향유의 자유’가 생존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와 함께 ‘정치적 자유’도 모두 포기하고 차라리 ‘노예 상태’를 더 선호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자유’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정권을 가짐으로써 ‘정치적 평등’과 간단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 활동의 자유’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등에 의해 ‘평등’하지 못하고, ‘경제 향유의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평등’하지 않다. 미국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 그리고 우리나라 헌법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자유’와 ‘평등’ 두 가치가 ‘경제 활동’에서는 일부, ‘경제 향유’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매우 의미 없는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만다.
셋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자유가 ‘경제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주어질 때, 그 사회의 다수는 결국 ‘경제적으로’ ‘자유’롭지도 않게 되고 ‘평등’해지지도 않게 된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경제 활동의 자유’가 주어질 때, 물려받은 유산, 개인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운 등에 의해 다수가 ‘경제 향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경제 향유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자유’가 형식적 자유라면 ‘경제 향유의 자유’는 실질적 자유다. ‘경제 향유의 자유’가 없는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은 사실 현실에서 별 의미가 없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사상인 ‘자유주의(Liberalism)’는 로크(1632-1704)로부터 시작해 A. 스미스(1723-90)를 거쳐 J. S. 밀(1806-1873)에 의해 정리된다. 중세 사회원리에 대한 대항 원리인 ‘자유주의(Liberalism)’는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 새롭게 부상한 신흥 자본가 부르주아 계급의 중심 사상이 된다. 혈통에 의한 신분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추구하는 자본가 계급인 만큼 자유주의는 그들의 새로운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자유주의는 사상인 만큼 자기 논리에 따라 전진한다. 전진 방향은 크게 둘이다. 바로 ‘정치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인 ‘자본주의’ 둘이다.
‘민주주의’는 기존의 신분제와 특권을 부정하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권리를 갖는 정치체제다. ‘자본주의’, 즉 ‘순수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거래자유와 개인소유 재산의 신성불가침을 보장하는 경제체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는 강화하고 ‘민주주의’는 가급적 억제한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되지만, 민주주의의 현실태인 1인 1표 참정권은 그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르주아 계급의 신앙인 ‘자유주의’ 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정치적 자유’는 배제한 ‘경제적 자유’만으로다. ‘문서로 보장된 혹은 정당하게 얻어진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업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보통선거제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부르주아들에게 악몽일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귀족과 자신들과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지, 노동자 계급과 자신들과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1인 1표의 보통선거제, 즉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그들과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소유 재산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방향은 정해졌다. ‘자유주의’의 절반은 부정하고 절반은 강화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는 부정하고, ‘경제적 자유주의’인 ‘자본주의’는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갖는 왕정과 소수가 권한을 갖는 귀족정에 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권한을 갖는 민주정이 한 국가 국민 전체의 행복 극대화를 위한 정답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소유재산, 교육, 연령, 성별 등 갖가지 핑계로 최대한으로 참정권 실현을 억제한다. 그 결과 남녀평등 보통선거제는 1893년 뉴질랜드를 필두로 1920년 미국, 1928년 영국, 1946년 프랑스 순서로, 부르주아 혁명으로부터 150년 가까이 걸려서야 실현된다. ‘민주주의의 신조와 제도들은 결코 이것들을 배태하고 발전시켰던 상인계급의 특수한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경제적 활동에 대한 정치적 제약을 파괴하는 것이 상인계급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국가의 권위를 약화시켰고 또 이 권위가 자신들의 요구에 훨씬 쉽게 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립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친연관계다. 국가 환경에서의 ‘자유주의’의 실현이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모체가 ‘자유주의’다. 다만, ‘자유주의’에게는 자식이 하나만 있지 않다. ‘민주주의’ 말고 ‘순수 자본주의’라는 자식 하나가 더 있다. 모체인 ‘자유주의’가 두 자식에 똑같이 애정을 두지 않고 ‘순수자본주의’만 편애하고, 심지어 ‘순수 자본주의’를 자신인 ‘자유주의’의 동일시하게 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잠시 대립한다. 대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경제적 자유’가 갖는 3가지 문제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에 ‘경제 활동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경제 향유의 자유’라는 것이 있고, ‘정치적 자유’ 처럼 ‘경제적 평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정치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만 대립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즉 참정권이 정상대로 작동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 관련 규칙을 바꿔 나가면서 결국 대립은 해소되게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중시하므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의 주된 내용은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는 사실 자유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때로 이들이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산권이 위협받을 때이다. 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계기 자체가 유산자 계급이 자신의 재산권을 법적·정치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이나미의 지적처럼, ‘자유주의’의 ‘역사적 의미’는 결국 ‘순수자본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민주주의’를 ‘순수자본주의’에 가두려는 의도 또는 ‘순수자본주의’ 이외의 가치를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색상의 스포츠카도 선택할 수 있다. 단, 검정색이 아니면 안된다’처럼, ‘민주주의이니 모든 결정은 주인인 국민이 자유롭게 한다. 단, 순수자본주의 테두리 내에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유롭게 한다’와 ‘단, 순수 자본주의 테두리 내에서다’가 서로 부딪친다. 모순이다. ‘민주주의’는 국가 구성에 있어 제1원리다. ‘민주주의’, 즉 ‘민주정(Democracy)’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왕정(Monarchy)’, ‘귀족정(Aristocracy)’밖에 없다. 둘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신분제 사회다. 그것들이 아니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선택지는 ‘민주주의’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보고, 또 아프리카 등 정치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에 수식이 붙으면 그것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은폐된 의도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이고 때로는 민주주의의 적이기까지 하다.
‘경제 활동의 자유’, 즉 ‘순수자본주의’로서의 ‘자유’는 교과서가 아닌 정당의 강령에 표기되는 것이 맞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강령으로. 마찬가지로 ‘경제 향유의 평등’을 의미하는 ‘사회주의’의 ‘사회’ 역시 교과서가 아닌 정당의 강령에 표기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정의당과 유럽 정치 선진국들의 진보주의 정당들이 ‘사회민주주의’라고 자신들의 강령을 표방하는 것처럼. 국민 전체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도 아니고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그대로여야 한다.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만에 하나라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의도라면 그것은 틀렸다.
‘순수자본주의의 자유로 민주주의를 제한해 놓지 않아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 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잘못된 의문이다. 첫째로, 상당히 ‘강한 사회주의’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태라면, 그 사회는 사실 투표에 의한 해결 방식 이외에는 폭력적 혁명밖에 없다. 혁명 아닌 투표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에 대해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구체적 형태인 투표의 기능 중 하나가 다름 아닌 혁명방지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사회 문제 해결이 투표로 가능하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폭력적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한 사회가 투표로 ‘강한 사회주의’로 가는 것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최악 상태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한 경우이다. 당연히, 자본주의의 단점이 그 정도로 심각한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도 미리미리 선거를 통해 방지해 나간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순수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섞여진 혼합경제(Mixed Economy) 체제다. 21c 어느 사회나 개인과 시장에만 경제를 맡기지 않고 국가가 개입을 한다. 다양한 복지제도, 의무교육, 의료보험과 같은 것들이 모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즉 사회주의적 요소들이다. 정도 차이일 뿐 모든 사회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경제체제가 섞여 있다.
1990년 전후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했다고 말하지만, 그때로부터 이미 50여년 전인 1930년대 대공황 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트로이의 목마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텃새처럼 자리 잡았다. 케인즈주의를 통해서. 물론 이 사회주의의 트로이 목마는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보수 일부 세력이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조건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킬 뿐이지 그들조차 이미 실업수당, 의료보험, 국민연금, 청년취업활동수당과 같은 사회주의 환경에 매우 익숙하다. 개인들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중소기업부터 글로벌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자랑스러운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후예인 기업 오너들 마찬가지다. 수출지원 정책금융, 기간산업건설 정책금융, 중소기업육성 정책금융, 농업개발 정책금융, 특수산업보호육성 정책금융, 구조조정 지원금융,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부의 시장 개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부의 시장 지원이 일상적이다.
정부가 기업을 간섭하려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기업 활동을 간섭하느냐’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기업 상황이 악화되거나 글로벌 경쟁에 나설 때면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 것이냐. 빨리 지원에 나서지 않고’하고 정부의 기업 지원(시장 개입)을 권리인 양 요구한다. 기업이 개인 이상으로 ‘사회주의화’ 되어 있다. ‘자유주의’가 드러내는 덕목이 ‘선택과 책임의 균형’인데, 우리나라의 ‘자유주의’는 19c 자유주의와 달리 ‘선택의 권리’에만 강하고 ‘책임의 의무’는 물론 ‘준법’에도 매우 약하다. 자기 편의적 자본주의, 자기 선택적 사회주의는 균형과는 대척점에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상위 욕구인 자기실현과 궁합이 맞다. 사회적 풍요를 낳는 것이 개인의 이기심이고, 개인의 삶의 의미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자기실현이다. 사회주의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특히 그렇다. ‘강자의 자유는 방치되어야 확보되고, 약자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확보되는 것’(이나미,한국의 보수와 수구,2011,지성사,79면)인데, 순수자본주의에서는 ‘보호’ 없는 ‘방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자유’의 장점을 궁극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의 ‘박애’를 보완한 것이 혼합경제다. ‘공동체 자유주의’, ‘질서 자유주의’와 같이 자유주의 앞에 수식이 붙는 이른바 ‘수정 자유주의’, 자유에 진보가 더해진 ‘진보적 자유주의’와 같은 주장들은 결국 혼합경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요소의 배합비율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혼합경제의 다양한 농도들이다.
‘강한 사회주의’로의 전환 방지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용어에 대한 집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본 생계 해결, 사회변동성(계층 이동 사다리) 상존, 인간의 욕심과 게으름에 대한 이성적 성찰, 도덕·지혜와 같은 가치에 대한 사회적 존중 등이 이뤄질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더 잘 어울리는 자본주의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미국독립선언문」, 「프랑스 인권선언」 그리고 미국의 헌법과 프랑스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Democracy)’에 이미 정치적 ‘자유(Liberal)’가 포함되어 있고, 경제적 ‘자유’는 투표 형태의 민주주의로 정해져야 할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자유민주적’이라는 말은 있다. ‘자유민주적’의 ‘자유’가 ‘정치적 자유’라면 사실 그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동어반복이다. 그 이유는 앞의 설명과 같다.
‘자유’가 ‘경제적 자유’로서의 ‘순수자본주의’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그다음 말인 ‘민주’와 갈등을 일으키고, 헌법 제119조②항의 ‘경제의 민주화’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먼저, ‘민주’와의 갈등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국민의 결정권을 앞서 또는 스스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의 민주화’와의 엇박자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헌법 제119조②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의 민주화’ 내용을 헌법에 포함하고 있으면서, ‘민주’의 민주주의 원칙과의 모순을 발생시키면서까지 헌법 전문에 ‘순수자본주의’를 일부러 강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논리대로라면, ‘자유민주적’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자유’도 아닌 그냥 일반적 의미의 자유다. 헌법 전문에서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의 중요성을 미리 한번 강조하기 위한 일반적 의미.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는 구분해 써야 한다. 이름을 짓는 사람이나 그 이름과 개념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오피니언 리더들은 현실에서 ‘자유’를 말할 때 그것이 ‘정치적 자유’인지 ‘경제적 자유’인지 또는 보편적 의미의 자유인지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고, 자행되는 폭력이 광범위하다. 19c 유럽에서의 자유주의가 그렇고 21c 대한민국에서의 자유 논쟁이 그렇다.
* 출처: 신동기 著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2019, M31 刊) p114-137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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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시리즈]11강. 신자유주의와 신경제-신동기
https://www.youtube.com/watch?v=nwijg0rLFhg
*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영어·영문 매체들은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Liberal candidate Moon Jae-in’이라 불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정부를 ‘Liberal President’, ‘Liberal Leader’, ‘Liberal Administration’, ‘Liberal Government’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후속 조치로 역사 교과서의 검정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개정안을 2018년 6월 발표했다. 개정안의 검정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에는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기존 역사 교과서에서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었던 것을, 다시 ‘민주주의’로 환원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보수 언론을 포함해 보수 진영에서 일제히 반발이 터져나왔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Liberal’ 정부다. 대통령도 ‘Liberal President’, ‘Liberal Leader’, 정부도 ‘Liberal Administration’, ‘Liberal Government’다. 그런데 왜 대통령과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앞의 ‘자유’(Liberty)를 빼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대통령과 정부를 왜 영어로 ‘Liberal’ 대통령, ‘Liberal’ 정부라고 부르는 것일까? 거기에 또, 보수 진영은 왜 민주주의 앞에 반드시 ‘자유’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냥 ‘민주주의’ 자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주주의’는 부정한다는 것일까?
‘Liberal’의 사전적 의미는 ‘진보적인’, ‘자유로운’, ‘자유주의의’, ‘개방적인’, ‘관대한’이다. ‘진보적인’ 의미와 함께 ‘자유주의의’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Liberal President’와 ‘Liberal Government’에서의 ‘Liberal’은 ‘진보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역사 교과서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영어로 표현하면 ‘Liberal Democracy’의 ‘Liberal’은 ‘자유주의의’ 의미이다. 같은 ‘Liberal’이지만 의미는 ‘진보적인’과 ‘자유주의의’로, 두 개념은 오늘날 정치에서 서로 대립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환경에서 ‘진보주의(Progressivism)’하면 대체로 국가 역할의 확대, 즉 경제 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 축소’를 주장하는 입장이고, ‘보수주의(Conservatism)’하면 경제 활동에 있어 개인의 ‘자유 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로 ‘Liberal’하면, 이 말만 가지고는 그것이 ‘진보주의’를 의미하는지 혹은 보수주의의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나의 용어가 상반되는 정치적 성향의 양쪽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고, 또 반대쪽으로도 오해할 수 있는 이런 모호한 상황이 왜 발생하게 된 것일까? 영국의 정당 역사는 1685년 제임스 2세의 왕위승계를 둘러싼 의회의 대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국 국교도가 아닌 가톨릭 신자이자 독재 성향이 강한 제임스 2세(재위 1685-88)의 왕위승계 가부를 둘러싼 두 정치 그룹의 대결에서였다. 주로 귀족, 목사, 지주들로 구성된, 제임스2세의 승계를 찬성하는 왕당파인 토리당(Tory)과, 반대하는 측인 주로 돈 많은 상인들과 청교도들로 구성된 자유파인 휘그당(Whig)의 대결이었다. 대결은 토리당의 승리로 끝난다. 제임스2세는 왕위에 올라 법(심사율: Test act)을 무시하고 독재를 실시하다 3년 만에 시민에 손에 의해 쫓겨난다. 입헌군주제(Constitutional monarchy) 의 출발인, 1688년 시민의 힘으로 피 흘리지 않고 왕을 바꾼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다. 왕위는 제임스 2세의 딸과 사위인 메리 2세(재위1689-1694)와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 공동왕에게로 넘어가고, 윌리엄 3세 사후에는 메리 2세의 동생인 앤 여왕(재위 1702-1714)에게로 넘어간다.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는 왕위계승률(Act of Settlement)에 따라 독일 하노버가의 조지 1세(재위1714-27)에게로 넘어간다. 독일 출신으로 영어가 자유롭지 못한 조지 1세는 정치를 내각에 맡긴다. 의원내각제(Parliamentary cabinet system)의 출발이다. ‘왕은 군림할 뿐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s reign but not govern)’는 영국 특유의 정치 원칙이 이때부터 축적된다.
경제보다 주로 정치적·종교적 측면에서 입장 차이를 보였던 전근대적 정당인 토리당과 휘그당은 19c 들어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이 보급되면서 당명 변경과 함께 근대적 정당으로 변신한다. 지주계급과 귀족의 이해를 대표하는 토리당은 1830년대에 보통명사인 ‘보수(Conservative)’를 아예 당 이름으로 삼아 ‘보수당(Conservative Party)’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휘그당은 토리당 내 자유주의파를 받아들이고 신흥 상공업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당의 성격에 맞게 1859년 당명을 ‘자유당(Liberal Party)’으로 정한다. ‘보수당(Conservative Party)’과 ‘자유당(Liberal Party)’의 본격적인 보수주의(Conservatism), 진보주의(Progressivism) 양당 체제의 출발이다.
보수당과 자유당은 민주주의의 진전 및 환경 변화와 함께 개혁 경쟁에 나선다. 민주주의는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기존 25만명에서 성인 남성의 1/5로 확대), 1867년 2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성인 남성 1/3로 확대), 1884년 3차 선거법 개정(참정권 재산·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21세 이상 세대주로 확대), 1918년 국민대표법 도입(참정권 21세 이상 남성과 30세 이상 여성으로 확대) 그리고 1928년 남녀평등선거제 도입(참정권 21세 이상 모든 남녀로 확대)과 같은 과정을 거쳐 실현된다. 무산자와 저학력자 그리고 여성들로 참정권이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정치 환경도 크게 바뀐다. 19c 노동자 계급이 성장하고 20c 후반 들어서는 노동자 중산층이 등장한다. 참정권 확대와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보수당, 자유당 양당의 개혁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리고 그 개혁 경쟁에서의 최후 승리는 보수당에게 돌아간다. 보수당은 단속적인 내부 갈등은 있었지만 1846년 곡물법 논쟁 이후 자유무역과 불간섭주의의 입장을 취하기 시작하고, 상대가 자유당이 아닌 노동당이 되면서부터는 확실하게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 옹호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보수주의답게 산업혁명 이전의 온정주의와 공동체주의에서 노동자 계급을 위한 복지의 정신을 찾아낸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1942년의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는 바로 이런 보수당의 개혁적 태도로부터 나온 대표적 결과물이다.
반면, 자유당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복지증진 등에도 힘을 쓰나 19c 초 신 주류인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 가치를 처음부터 선점했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 아일랜드 자치령화 시도에 나서는 등 국민을 위한 민생개혁에 보수당보다 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20c 초, 진보주의의 대표 자리는 결국 노동당(Labor Party)에게로 넘어간다. 처음부터, 19c 들어 새로 등장한 계급인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당은 1906년 자유당과 제휴해 첫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 그리고 1922년 이후 보수당과의 개혁 경쟁에서 패배한 자유당이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면서 노동당은 진보주의의 대표 주자로 보수당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영국의 근대 정당 역사 100년이 지나지 않아 보수주의·진보주의 대립 구도가 보수당 대 자유당에서 보수당 대 노동당으로 교체된 것이다.
보수당의 개혁 노력은 노동당 등장 후에도 지속된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대패한 뒤, 보수당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노동자 계급을 위한 노동당의 복지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 그러다 공공부문의 비효율, 방만한 복지, 파업 열병으로 영국이 병들기 시작하자, 1970년대 중반부터는 과감한 영국병(British disease) 치유 개혁에 들어간다. 대처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정책의 등장이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대폭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정권을 담당한다.
자유당의 개혁경쟁 패배 역사를 반면교사로 학습한 노동당도 그대로 있지는 않는다. 1994년 노동당 당수로 취임한 신예 토니 블레어는 당 강령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 조항과 같은 내용을 폐지하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하면서 대처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 노동자 계급의 중산층화와 같은 사회 변화를 재빠르게 간파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은 1997년 총선에서 압승으로 정권을 되찾는다. ‘대처의 아들’ 또는 ‘블레처리즘’으로 비난받을 정도의 과감한 개혁이었다. 개혁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당 역시 가만있지 않는다. 토니 블레어와 같은 꼴, 반대 정당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나서, 좌파 정책의 차용과 함께 지지층 확대에 나선다. 그리고 2010년, 13년 만에 노동당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가져온다.
‘Liberal’이 ‘진보’와 ‘자유’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영국 정당의 역사 때문이다. 1922년까지 영국 정치의 양대 정당이 바로 보수당과 자유당이었고, 보수당은 보수주의 또는 우익, 자유당은 진보주의 또는 좌익이었다. 따라서 자유당(Liberal party)의 ‘Liberal’은 19c 중반부터 20c 초반까지의 영국 정치사에 존재했던 ‘자유당’이라는 고유 명사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그 자유당의 정치적 입장인 ‘진보주의’ 또는 ‘좌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진보적 대통령인 문재인은 오늘날 보수주의인 ‘자유주의’의 입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Liberal Leader’, ‘Liberal President’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때는 ‘자유주의적 지도자’, ‘자유주의적 대통령’이 아닌, ‘진보적 지도자’, ‘진보적인 대통령’의 의미다. 표현과 인식에서 혼란이 발생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이런 ‘사실’이 아닌 ‘논리’에 있다.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보통명사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회주의(Socialism), 전체주의(Totalitarianism), 혼합경제(Mixed economy), 군주정(Mona rchy), 귀족정(Aristocracy), 민주정(Democracy)와 같은 말들은 고유명사다.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의 차이는 명백하다. 보통명사는 같은 종류의 여러 것들을 함께 나타내는 것으로 그 내용이 바뀔 수 있고, 고유명사는 다른 것들과 구분해 특정한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 아니 바뀌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지만 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내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 병 안에 맥주를 담으면 병 ‘맥주’가 되고, 캔 안에 소주를 담으면 캔 ‘소주’가 된다. 맥주가 캔에 담길 수도 있고, 소주가 병에 담길 수도 있다. 그때는 캔 ‘맥주’, 병 ‘소주’가 된다.
보수주의라는 용기에 ‘귀족정’이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귀족정’ 보수주의가 되고, 진보주의라는 용기에 ‘자유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자유주의’의 진보주의가 된다. 그리고 보수주의라는 용기에 ‘자유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이때 그것은 ‘자유주의’의 보수주의가 되고, 진보주의라는 용기에 ‘사회주의’라는 내용물이 담기면 그것은 ‘사회주의’의 진보주의가 된다. 똑같은 자유주의가 시대 상황에 따라 진보주의일 수도 있고 보수주의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귀족정’, ‘자유주의’, ‘사회주의’이지 용기인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아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병이나 캔이 아닌 맥주나 소주인 것과 마찬가지다.
양당 체제에서 한쪽이 스스로를 보수라 부르면 상대는 진보로 규정된다. 영국의 자유당이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유당이 진보인 것은 19c 전반에 한해서 그렇다. 신 주류로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대표하는 당으로서 기존의 왕정·귀족정에 대항하는 기간 동안 진보 세력이었다. 왕정·귀족정에 대한 향수 세력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시대 환경에 완전히 밀려나고, 노동자 계급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는 19c 후반에는 그렇지 않다. 이젠 부르주아 기득권 세력으로,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로부터 당이 표방하고 있는 ‘자유’, ‘자유주의’ 라는 가치를 보존하고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20c 초 영국 유권자들의 양당체제 선호 환경에서 새로운 진보주의인 노동당이 등장했을 때 자유당은 하나뿐인 보수주의의 대표 자리를 놓고 보수당과 다투게 되고 개혁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사라진다. 그러면서 19c의 유물을 남긴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보수주의의 핵심가치가 된 지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진보’라는 상반된 의미로 통하기도 하는 ‘Liberal’이라는 유물을.
물론 ‘Liberal’이 ‘진보’가 된 원인은 자유당이 아닌 보수당에 있다. 보수당이 당초 ‘귀족당’ 이나 ‘왕당파’와 같이 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고유명사로 당명을 정했으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귀족당’으로 이름 지었으면 초기에 ‘귀족당’과 ‘자유당’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표주자로 경쟁을 했을 터이고, 왕정·귀족정의 봉건적 잔재가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는 단계에서는 계속 보수로 남겠다면 순수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영국당’이나 ‘자유자본주의당’과 같은 고유명사로 개명했으면 될 터였다. ‘이름만 같을 뿐 불과 100년 만에 당 지도부의 출신 배경은 물론이고 사상 및 정책 측면에서도 크게 변모했다’는 영국 보수당에 대한 평가는, 바로 이 ‘보수’라는 보통명사가 ‘보수당’에서와 같이 고유명사로 쓰임으로서 발생한 혼란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명正名, 즉 이름이 그 사물의 속성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야 할 터인데, ‘귀족정’을 추구할 때나, 대척점에 있었던 ‘자유주의’를 추구할 때나 똑같이 ‘보수당’이니 이름이 이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 피해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1c ‘보수주의’의 핵심가치인 ‘Liberal’을 ‘진보주의’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로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보통명사는 보통명사로 고유명사는 고유명사로 사용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고등학생 역사 교과서에서의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이명박 정부 이전의 ‘민주주의’로 다시 환원하려고 한다. 보수 진영은 극렬 반대다.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왜 ‘자유’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보수주의는 ‘민주주의’ 자체는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프랑스 혁명하면 흔히 민주주의의 출발, 영국 정치하면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이 민주주의 출발이고, 영국의 역사가 의회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인 것은 맞다. 그러나 둘 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출발은 완성 아닌 시작일 뿐이고 발전은 결과 아닌 과정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 주도 세력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으로 무장된 부르주아들이었다.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그들이 선택한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 아래서 재산 또는 교육수준에 따라 투표권을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막는 안전장치를 갖춘 자유주의적 제도’였다. 사실상의 유산자 귀족정이었다. 자유주의자인 그들에게 민주주의니 공화국이니 하는 것들은 위험한 것이었다.
「프랑스 인권선언」 역시 따지고 보면 귀족들의 특권적 신분제를 반대하는 것이지, 노동계급과 함께 민주주의적 혹은 평등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혁명의 자유와 평등은 자유주의자인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자유·평등이지, 프랑스인 모두를 위한 자유·평등이 아니었다.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은 제1공화정(1792-1804) 중 1년여 잠시 존속했던 자코뱅 정권(1793.6.2.-1794.7.27)과의 비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노동자 정권인 자코뱅 정권은 공화정 실시와 함께 보통선거, 반란권, 노동/생계유지의 권리 등을 헌법에 명시한 데 반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제헌국민의회(1789.7.9-1791.10.1)는 공동지의 인클로저와 농업기업가 장려, 노동조합의 금지, 유산자 한정 선거권 부여와 같은 내용을 정책으로 택했다.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과정도 마찬가지다. 1215년의 대헌장(Magna Carta), 1628년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89년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 및 이후 정치발전 과정이 모두 의회주의적 민주주의 완성을 향한 발전인 것은 맞지만, 그 과정은 영국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18c 무렵까지는 왕권으로부터 성직자와 귀족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19c 중반부터 20c 초반까지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 수호를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 영국 모두 왕정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이젠 ‘출생에 의한 귀족주의 대신 화폐에 의한 귀족주의’를 추구했던 셈이다.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부르주아 귀족주의를.
‘자유주의(Liberalism)’는 19c 부르주아 계급의 중심 사상이었다. 자유주의의 ‘자유’는 원래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개념이 아니었다. 프랑스혁명 전까지는 단순히 노예상태의 반대를 나타내는 법률용어일 뿐이었다. 그런 용어가 혁명을 계기로 ‘성聖스러운(Saint)’에 버금갈 절대개념의 정치 용어로 바뀌었다.
‘자유’는 국가 환경에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자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자유’다. ‘정치적 자유’의 구체적인 형태는 ‘참정권’이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는 정치적 ‘평등’과 짝을 이뤄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참정권’은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자연상태 아닌 ‘국가 환경’에서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차별 없이 그 사회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갖게 되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따라서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인권선언」의 핵심인 ‘자유’와 ‘평등’의 ‘현실태’, 그것이 바로 ‘참정권’이다.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사회라면 정치적 자유는 그것으로 완벽하다. 최소한 ‘정치적 자유’에 있어 인간은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다. ‘물질의 본질이 무게라면 정신의 본질은 자유’라는 헤겔의 통찰에 부합한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처럼 단순하지 않다. 첫째, 그 ‘자유’가 하나가 아니고, 둘째, ‘정치적 자유’처럼 ‘평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세 번째로, 형제 ‘자유’인 ‘정치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첫째, ‘경제적 자유’는 ‘경제 활동의 자유’와 ‘경제 향유의 자유’ 둘로 나누어진다. ‘경제 활동의 자유’는 시장에서의 거래 및 조건선택에 있어서의 자유다. ‘경제 향유의 자유’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서 갖게 되는 만족이다. 인간은 ‘경제 활동의 자유’에서도 행복을 느끼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 향유의 자유’에서 행복을 느끼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 목적도 사실 ‘경제 향유’에 있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는 궁극적으로 ‘경제 향유의 자유’가 되지 않으면 말로만 ‘자유’이지 현실에 있어서는 구속일 뿐이다. 더구나 ‘경제 향유의 자유’가 생존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와 함께 ‘정치적 자유’도 모두 포기하고 차라리 ‘노예 상태’를 더 선호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자유’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정권을 가짐으로써 ‘정치적 평등’과 간단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 활동의 자유’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등에 의해 ‘평등’하지 못하고, ‘경제 향유의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평등’하지 않다. 미국독립선언, 프랑스 인권선언 그리고 우리나라 헌법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자유’와 ‘평등’ 두 가치가 ‘경제 활동’에서는 일부, ‘경제 향유’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매우 의미 없는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만다.
셋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자유가 ‘경제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주어질 때, 그 사회의 다수는 결국 ‘경제적으로’ ‘자유’롭지도 않게 되고 ‘평등’해지지도 않게 된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경제 활동의 자유’가 주어질 때, 물려받은 유산, 개인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운 등에 의해 다수가 ‘경제 향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경제 향유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자유’가 형식적 자유라면 ‘경제 향유의 자유’는 실질적 자유다. ‘경제 향유의 자유’가 없는 ‘정치적 자유’, ‘정치적 평등’은 사실 현실에서 별 의미가 없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사상인 ‘자유주의(Liberalism)’는 로크(1632-1704)로부터 시작해 A. 스미스(1723-90)를 거쳐 J. S. 밀(1806-1873)에 의해 정리된다. 중세 사회원리에 대한 대항 원리인 ‘자유주의(Liberalism)’는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 새롭게 부상한 신흥 자본가 부르주아 계급의 중심 사상이 된다. 혈통에 의한 신분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추구하는 자본가 계급인 만큼 자유주의는 그들의 새로운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자유주의는 사상인 만큼 자기 논리에 따라 전진한다. 전진 방향은 크게 둘이다. 바로 ‘정치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인 ‘자본주의’ 둘이다.
‘민주주의’는 기존의 신분제와 특권을 부정하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권리를 갖는 정치체제다. ‘자본주의’, 즉 ‘순수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거래자유와 개인소유 재산의 신성불가침을 보장하는 경제체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본주의’는 강화하고 ‘민주주의’는 가급적 억제한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되지만, 민주주의의 현실태인 1인 1표 참정권은 그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르주아 계급의 신앙인 ‘자유주의’ 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정치적 자유’는 배제한 ‘경제적 자유’만으로다. ‘문서로 보장된 혹은 정당하게 얻어진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업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보통선거제에 의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부르주아들에게 악몽일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귀족과 자신들과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지, 노동자 계급과 자신들과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1인 1표의 보통선거제, 즉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것은 그들과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소유 재산에 대한 신성불가침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방향은 정해졌다. ‘자유주의’의 절반은 부정하고 절반은 강화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는 부정하고, ‘경제적 자유주의’인 ‘자본주의’는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갖는 왕정과 소수가 권한을 갖는 귀족정에 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권한을 갖는 민주정이 한 국가 국민 전체의 행복 극대화를 위한 정답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소유재산, 교육, 연령, 성별 등 갖가지 핑계로 최대한으로 참정권 실현을 억제한다. 그 결과 남녀평등 보통선거제는 1893년 뉴질랜드를 필두로 1920년 미국, 1928년 영국, 1946년 프랑스 순서로, 부르주아 혁명으로부터 150년 가까이 걸려서야 실현된다. ‘민주주의의 신조와 제도들은 결코 이것들을 배태하고 발전시켰던 상인계급의 특수한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경제적 활동에 대한 정치적 제약을 파괴하는 것이 상인계급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국가의 권위를 약화시켰고 또 이 권위가 자신들의 요구에 훨씬 쉽게 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립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친연관계다. 국가 환경에서의 ‘자유주의’의 실현이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모체가 ‘자유주의’다. 다만, ‘자유주의’에게는 자식이 하나만 있지 않다. ‘민주주의’ 말고 ‘순수 자본주의’라는 자식 하나가 더 있다. 모체인 ‘자유주의’가 두 자식에 똑같이 애정을 두지 않고 ‘순수자본주의’만 편애하고, 심지어 ‘순수 자본주의’를 자신인 ‘자유주의’의 동일시하게 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잠시 대립한다. 대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경제적 자유’가 갖는 3가지 문제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에 ‘경제 활동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경제 향유의 자유’라는 것이 있고, ‘정치적 자유’ 처럼 ‘경제적 평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정치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만 대립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즉 참정권이 정상대로 작동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 관련 규칙을 바꿔 나가면서 결국 대립은 해소되게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중시하므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의 주된 내용은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는 사실 자유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때로 이들이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의 재산권이 위협받을 때이다. 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계기 자체가 유산자 계급이 자신의 재산권을 법적·정치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이나미의 지적처럼, ‘자유주의’의 ‘역사적 의미’는 결국 ‘순수자본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민주주의’를 ‘순수자본주의’에 가두려는 의도 또는 ‘순수자본주의’ 이외의 가치를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색상의 스포츠카도 선택할 수 있다. 단, 검정색이 아니면 안된다’처럼, ‘민주주의이니 모든 결정은 주인인 국민이 자유롭게 한다. 단, 순수자본주의 테두리 내에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유롭게 한다’와 ‘단, 순수 자본주의 테두리 내에서다’가 서로 부딪친다. 모순이다. ‘민주주의’는 국가 구성에 있어 제1원리다. ‘민주주의’, 즉 ‘민주정(Democracy)’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왕정(Monarchy)’, ‘귀족정(Aristocracy)’밖에 없다. 둘은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신분제 사회다. 그것들이 아니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선택지는 ‘민주주의’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보고, 또 아프리카 등 정치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에 수식이 붙으면 그것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은폐된 의도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제약이고 때로는 민주주의의 적이기까지 하다.
‘경제 활동의 자유’, 즉 ‘순수자본주의’로서의 ‘자유’는 교과서가 아닌 정당의 강령에 표기되는 것이 맞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강령으로. 마찬가지로 ‘경제 향유의 평등’을 의미하는 ‘사회주의’의 ‘사회’ 역시 교과서가 아닌 정당의 강령에 표기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정의당과 유럽 정치 선진국들의 진보주의 정당들이 ‘사회민주주의’라고 자신들의 강령을 표방하는 것처럼. 국민 전체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도 아니고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민주주의’ 그대로여야 한다.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만에 하나라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의도라면 그것은 틀렸다.
‘순수자본주의의 자유로 민주주의를 제한해 놓지 않아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 가버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잘못된 의문이다. 첫째로, 상당히 ‘강한 사회주의’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태라면, 그 사회는 사실 투표에 의한 해결 방식 이외에는 폭력적 혁명밖에 없다. 혁명 아닌 투표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에 대해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구체적 형태인 투표의 기능 중 하나가 다름 아닌 혁명방지 수단으로서의 기능이다. 사회 문제 해결이 투표로 가능하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폭력적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한 사회가 투표로 ‘강한 사회주의’로 가는 것을 결정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최악 상태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선택한 경우이다. 당연히, 자본주의의 단점이 그 정도로 심각한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도 미리미리 선거를 통해 방지해 나간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순수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섞여진 혼합경제(Mixed Economy) 체제다. 21c 어느 사회나 개인과 시장에만 경제를 맡기지 않고 국가가 개입을 한다. 다양한 복지제도, 의무교육, 의료보험과 같은 것들이 모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즉 사회주의적 요소들이다. 정도 차이일 뿐 모든 사회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경제체제가 섞여 있다.
1990년 전후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패배했다고 말하지만, 그때로부터 이미 50여년 전인 1930년대 대공황 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트로이의 목마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텃새처럼 자리 잡았다. 케인즈주의를 통해서. 물론 이 사회주의의 트로이 목마는 자본주의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보수 일부 세력이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조건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킬 뿐이지 그들조차 이미 실업수당, 의료보험, 국민연금, 청년취업활동수당과 같은 사회주의 환경에 매우 익숙하다. 개인들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중소기업부터 글로벌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자랑스러운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후예인 기업 오너들 마찬가지다. 수출지원 정책금융, 기간산업건설 정책금융, 중소기업육성 정책금융, 농업개발 정책금융, 특수산업보호육성 정책금융, 구조조정 지원금융,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부의 시장 개입,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부의 시장 지원이 일상적이다.
정부가 기업을 간섭하려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기업 활동을 간섭하느냐’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기업 상황이 악화되거나 글로벌 경쟁에 나설 때면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 것이냐. 빨리 지원에 나서지 않고’하고 정부의 기업 지원(시장 개입)을 권리인 양 요구한다. 기업이 개인 이상으로 ‘사회주의화’ 되어 있다. ‘자유주의’가 드러내는 덕목이 ‘선택과 책임의 균형’인데, 우리나라의 ‘자유주의’는 19c 자유주의와 달리 ‘선택의 권리’에만 강하고 ‘책임의 의무’는 물론 ‘준법’에도 매우 약하다. 자기 편의적 자본주의, 자기 선택적 사회주의는 균형과는 대척점에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상위 욕구인 자기실현과 궁합이 맞다. 사회적 풍요를 낳는 것이 개인의 이기심이고, 개인의 삶의 의미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자기실현이다. 사회주의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특히 그렇다. ‘강자의 자유는 방치되어야 확보되고, 약자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확보되는 것’(이나미,한국의 보수와 수구,2011,지성사,79면)인데, 순수자본주의에서는 ‘보호’ 없는 ‘방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자유’의 장점을 궁극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의 ‘박애’를 보완한 것이 혼합경제다. ‘공동체 자유주의’, ‘질서 자유주의’와 같이 자유주의 앞에 수식이 붙는 이른바 ‘수정 자유주의’, 자유에 진보가 더해진 ‘진보적 자유주의’와 같은 주장들은 결국 혼합경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요소의 배합비율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혼합경제의 다양한 농도들이다.
‘강한 사회주의’로의 전환 방지는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용어에 대한 집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본 생계 해결, 사회변동성(계층 이동 사다리) 상존, 인간의 욕심과 게으름에 대한 이성적 성찰, 도덕·지혜와 같은 가치에 대한 사회적 존중 등이 이뤄질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더 잘 어울리는 자본주의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미국독립선언문」, 「프랑스 인권선언」 그리고 미국의 헌법과 프랑스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Democracy)’에 이미 정치적 ‘자유(Liberal)’가 포함되어 있고, 경제적 ‘자유’는 투표 형태의 민주주의로 정해져야 할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자유민주적’이라는 말은 있다. ‘자유민주적’의 ‘자유’가 ‘정치적 자유’라면 사실 그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동어반복이다. 그 이유는 앞의 설명과 같다.
‘자유’가 ‘경제적 자유’로서의 ‘순수자본주의’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그다음 말인 ‘민주’와 갈등을 일으키고, 헌법 제119조②항의 ‘경제의 민주화’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먼저, ‘민주’와의 갈등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국민의 결정권을 앞서 또는 스스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의 민주화’와의 엇박자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헌법 제119조②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의 민주화’ 내용을 헌법에 포함하고 있으면서, ‘민주’의 민주주의 원칙과의 모순을 발생시키면서까지 헌법 전문에 ‘순수자본주의’를 일부러 강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논리대로라면, ‘자유민주적’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자유’도 아닌 그냥 일반적 의미의 자유다. 헌법 전문에서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의 중요성을 미리 한번 강조하기 위한 일반적 의미.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는 구분해 써야 한다. 이름을 짓는 사람이나 그 이름과 개념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오피니언 리더들은 현실에서 ‘자유’를 말할 때 그것이 ‘정치적 자유’인지 ‘경제적 자유’인지 또는 보편적 의미의 자유인지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고, 자행되는 폭력이 광범위하다. 19c 유럽에서의 자유주의가 그렇고 21c 대한민국에서의 자유 논쟁이 그렇다.
* 출처: 신동기 著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2019, M31 刊) p11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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