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장 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하는데 그 법을 성취하는 전제가 바로 짐을 서로 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정법은 아무리 그 법이 정교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서에 있어서의 실정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바울을 통해서 알아 본다.
로마서 7장 7절에서 사도는, "그러면 율법이 곧 죄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읍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들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율법불가론을 설파한다.
논의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법은 사회정의를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산이 있다. 그것은 과연 그리스도의 법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독교 사회정의 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 법을 성취하는가?
'하나님의 율법'(참고 레 19:10,13,15, 23:22; 신 24:14-15 등)은 우리의 사회정의를 실현시키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법이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앞서서, 신학적 판단이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에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신학적 판단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법은 사회정의 실현의 안내자일 뿐,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는 데는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고백을 피할 수 없다.
실정법이 현실사회를 통제하는 궁극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치와 반가치의 극복으로서의 신학은 가치와 현실과의 대립이며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하여 순간마다 새롭게 출발되어 사회정의의 구심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본 논의의 주제어가 되는 그리스도의 법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법은 다른 법과 무엇이 다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참조: 이덕휴목사의 만나교회/기도원 | 그리스도의 법 - 이덕휴목사의 신학연구 논문 - Daum 카페
먼저, 그리스도의 법은 크리스챤이 그의 삶의 정황에 맞는 어떤 규율을 정해주는 하나의 법전(Code)이다.
예를 들어 재산권 분쟁이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눅 12:14)라고 예수는 말했다.
그리스도의 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산상수훈에서 조차 우리는 행위에 관한, 잘 정리된 어떤 규율의 법전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행동할 때 어떤 정신으로 행해야 할 것을 현저하게 예시하여 주는 내용을 보여 줄 뿐이다.
그리스도의 법은 결의론자(casuistic, 궤변자)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도덕적 규칙의 법전으로 환언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관한 규칙과 같은 법전에서 예수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위험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의 법은 오히려 사소한 규칙을 넘어 위대한 이상과 근본적인 원리를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삶에 대한 하나의 전망이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법은 다른 법과 같이 인간의 행위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다룬다.
마태 복음 5장 후반부와 하나님 나라의 법이라고 말하는 산상수훈에서 이 사실은 명백해진다.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온 것이다. 즉 단순히 외형적인 행동으로 명령된 것이 그리스도의 법에서는 내적인 태도의 일이다. 간음의 행위가 아니라 음탕한 생각에 대해서 예수는 주위를 환기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하는 것은 실상 몹시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외적 행동을 바꾸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법은 크리스챤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영역에서 다른 법과 다르다. 우리는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우리의 도덕적 책임을 같은 나라 사람에게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이 의무의 범위를 온 세상 끝까지 넓히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듯이 우리가 원수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우리의 참다운 이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법은 단 하나의 근본적인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롬 13:10)이라는 사도의 가르침이다. 이 말은 바로 실정법은 그리스도의 법에 의하여 완성된다는 논리를 제공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크리스챤들은 그리스도의 법에 대하여 여러 다른 태도를 보여 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법으로써 "행동을 직접 제약할 수 있다"고 하여 필요하다면, 사법적 수단이나 징계의 수단에 의하여 강제로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유대인 랍비들은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필요한 규율의 간단 명료한 수단을 이런 실천에서 만들어 내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결의론의 위험성과는 상관없이 기독교 신자에게 그리스도의 법을 강제로 실행할 아무런 제약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가지고 아무에게도 그것을 강행시킬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아무도 개인의 결단의 자유를 말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형적 징계 수단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강제로 실행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대한 반대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지켜온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극단은 그리스도의 법은 실천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법을 일상생활의 세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할 실천적 지침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일종의 하늘의 패턴이므로 인간은 이것에 의해서 자기의 죄를 보게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의 정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나 이덕휴목사의 법신학사상의 진수이며 내가 신학과 신앙을 전제하는 모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은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침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상은 이덕휴목사의 학위논문, "사도바울의 율법과 복음"(2000.1)의 결론부를 가미하였슴
- 2004.3.1 이덕휴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