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돌파, 임파테이션, 변화, 영의 이동 같은 말들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이루어진다. 이런 말들이 큰 변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영적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잠시 그들의 세상을 누릴 수는 있지만,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서 사람들에게 먹이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도 충족시켜 주고 싶어 하신다. 성령님의 사역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에는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 모두는 사역자이다. 우리는 천국의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 심리적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돈을 주는 것만으로는 영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를 찾으시고, 영원한 가족을 원하신다.
아내와 나는 우리의 사역을 주님께 맡겼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영원한 영향력이 있으리라 약속해 주신다면 이 일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때, 사람들은 천국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 안에서 행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변화다.
천국의 실재를 이 세계로 끌어오는 것은 영적 돌파 및 생각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이 와서 주님을 대적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한 것은 질투 때문이다. 주님이 행하신 일을 그들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적 돌파는 주님이 우리에게 미소 지으며 말씀하실 때 일어난다. 그것은 영속적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영향을 미친다. 잠시 기분 좋게 만든 후 곧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리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의 임파테이션,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의도와 뜻이다. 그 말씀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결실을 맺는 것이다.
거듭나는 경험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 안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고후 5:17 참고),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된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과 마음(생각)을 관리해야 한다.
육신을 단련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이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삶 가운데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천천히 하나씩 일어난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 앞에서 그분을 탓할 수가 없다.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 땅에서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과 인도하심, 구원이 있다.
마귀가 문제라면, 쫓아내면 된다. 마귀가 침을 뱉거나 비웃어도, 어차피 그는 떠나갈 것이기에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마귀는 거짓말쟁이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다 거짓이다. 마귀는 내 마음을 흔들거나 깊은 인상을 남긴 적이 없다.
(케빈 제다이 『천국으로부터 받아 누리기』 김정훈 옮김. 서울: 도서출판 순전한 나드, 2020. pp. 14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