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ישְׂרָאֵ֑ל yiś-rā-'êl; שְׁмַ֖ע Šə-ma' 이스라엘아 들어라
- 날자: 2024.02.25 주일 낮 예배
- 말씀: 신 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
지니라』
- 제목: 들으라(쉐마), 이스라엘아/ 사29:18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요절: 신명기 6:3-4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지키라 그리하면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형통하고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 아 들으 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라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상호 참조
마태복음 22:37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시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시고
-. 총론: 자녀를 가르치라
순종의 마음: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생활해야 함
신명기 6장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이 자기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상호 헌신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번영할 때나 역경을 겪을 때나 우리의 임무는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고, 전달하여 그분의 진리와 사랑이 모든 시대에 울려 퍼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1-3절: 순종하라는 명령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장수하고 번성하며 비옥한 땅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9절: 쉐마와 그 의미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시니”라는 유명한 선언이 주어졌습니다.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한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집에서나 길에서 이 말씀을 말하며 손과 이마에 표를 삼고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은 부모에게 교사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들으라!-쉐마"로 시작되는 오늘의 본문은 신명기의 대법전을 요약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대헌장입니다.
이스라엘은 교육적 사명을 하나님에게 허락 받았습니다.
7절 "부지런히 가르치며" . "강론할 것이며"
가르치고 강론하는 이 일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합니다. 7절 "네 자녀에게"라고 했으니 교육 사명의 일차적인 수임자는 부모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책임지고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조국 이스라엘이 원하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부모를 "호림" 말씀은 "토라"라고 하는데 호림과 토라는 "야라"에서 유래. 그래서 "부모"와 "교육"이라는 말은 그 어원이 같습니다. 부모는 "가르치는 자" "교훈하는 자'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 자"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었고 이스라엘의 부모는 자녀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사명을 띕니다. 그래서 부모란 말은 토라를 가르친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철학자 헤겔은 국가의 기초는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가족은 가정의 구성원이이요 가정은 집이요 터전입니다. 집에서 먼저 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게되며 집에서 예배행위를 배우게 되는 곳이 이스라엘 가정생활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서 글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게되며 토라, 성경을 배우고 회당을 알게됩니다. 그 일을 부모들이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훌륭한 부모는 훌륭한 교사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받았습니다. 자기 자녀들은 자신들이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에는 전도가 없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이며 사명입니다. 먹고 입히고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을 부모의 1차적인 목표로 생각하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자식들은 부모 이전에 먼저 스승으로 대합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는 은혜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해주신 부모님으로 항상 존경을 표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부모님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스승이셨던 나의 아버지는…" 만약에 "나의 아버지는..." 말했다가는 유대사회에서는 버릇없는 사람으로 업신당합니다.
"나의 스승이셨던…"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치가들의 당리당략,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청소년들의 비행, 전국민의 사치행각…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정, 가정교육이 무너져 있습니다.
내 자녀는 누가 키워주는 것입니까? 내가 키워야 합니다. 바른 국가관을 키워주고 시민의식을 심어주고 조국애와 어른 공경을 누가? 부모들이 책임지고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들의 역할은 제켜두고 교사들만 나무란다면 이 나라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2차대전을 영국의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신문사에서 그를 위대한 수상으로 만들어 낸 스승들로 특집을 꾸몄습니다. 그 특집을 보고 처칠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 스승 중에 빠진 사람이 있다"
"누구냐?"
"우리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큰 스승입니다. 우리들이 기독교교육의 큰 스승이 되어야 아이들은 믿음 안에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가정이 주일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교회로 보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교육이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납니다.
2. 부모보다 교사들을 더 존경합니다.
이스라엘은 회당(작은 학교)을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해 나갑니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 가 있던지 열 가정만 모이면 회당학교를 만듭니다. 회당학교의 교사는 가장 똑똑하고 진실한 사람, 유능한 사람을 택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날은 그랬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밝고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교사 직분은 별로 존경받지 못하는 직분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에게 교사라는 직분이 얼마나 좋은 신랑감인가? 했더니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교사는 고리타분한 월급쟁이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교육은 낙후될 수밖에 없고 스승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사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합니다. 교사들 앞에서는 누구든 깍듯합니다.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스승이 물에 빠져 떠내려갈 때에도 스승을 먼저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예루살렘에는 랍비 양성학교가 있습니다. `예시바'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의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정도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씁니다. 이들은 절대로 모자를 벗지 않습니다. 이유는 내 머리에 모자가 있듯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상의 표현입니다. 아울러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랍비로서의 권위, 자존심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사들에 대한 존경심을 버렸습니다. 대통령이 법도 질서도 없다보니,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정교육을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난 인본주의적인 타성에 사로잡힌 배금 제일주의, 우월주의, 이기주의의 가정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도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서울의 모 초등 교사가 수난을 겪고 스스로 목숨까지 져버린 사건이 지난 해에 일어난 것은 비단 한국적 문제만은 아닙니다.
교육현장이 회복되어야 나라가 살아납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힘은 교육에 있습니다. 잘 가르쳐야, 바르게 가르치는 스승이 있어야 21세기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스승은 가장 존경받아야 하고 높이 우러러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다시는 교권이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말씀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고대의 어떤 왕이 나라 안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찾아내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되었습니다. 재력가, 의술을 갖춘 사람, 법률가, 또 다른 후보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후보가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백발의 할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눈은 지혜와 이해심과 사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곳에 잘못 온 것 아닌가?"
왕의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까지 모든 훌륭한 사람들의 이력을 보고 들으셨습니다. 이 여성이 그들 모두를 가르친 학교의 교사입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왕은 일어나서 자신의 왕관을 그녀에게 씌워주었습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처럼 귀한 일이 어디 있는가? 우리 늘빛교회는 교사들을 알아주는, 항상 고마움을 갖는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성공하고 출세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육입니다.
4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하나님만이 유일한 절대 신(神)이시며 그 하나님을 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유대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경의 모든 말씀은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온 천지간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우리 모든 사람들의 구원자요 살아계신 아버지로 믿는 사람 모두의 절대자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라는 이야기는 당시 말씀을 주셨던 당사자이지만, 오늘날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임은 물론입니다. 할렐루야~~~~~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셨다는 선민의식,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자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바로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또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 있는 관계 유지가 우리들의 교육목표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8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메어 기호를 삼으며…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
이스라엘은 문설주에 성경구절을 담은 작은 상자(메주자)를 부착합니다. 다시 유대인의 교육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의 말씀의 주제가 유난히 유대인의 교육 모습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 모든 믿는 자의 교육으로 함께 공유하는 것이 목표-Goal 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대학의 모든 교실마다 메주자가 붙어있습니다. 히브리대학은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유명대학입니다. 히브리대학의 도서관은 엄청난 장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해 낸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 대학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공경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학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세계에서 가장 복지시설이 잘 된 국가,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를 만들어 냈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바로 서면 나라는 바로 섭니다. 우리나라는 배운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웠습니다. 그 배움을 자기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국가 위난의 시기에 국가와 민족을 지켜오신 분은 민초들이었습니다. 동학이 그렇고 삼별초가 그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3.1운동과 독립전쟁도 민초의 몫이었고 6.25와 5.18 등 구국의 제1선에서 몸바친 분들이 모두 민초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8절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이것을 테플린이라고 합니다. 작은 상자입니다.유대인들은 집집마다 이 상자를 부착합니다. 유대인의 좋은 집은 호화주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상자가 잘 부착되어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들은 집을 나서면서 테플린에 입을 댑니다. 자기 이마의 성경에 손을 댑니다. 하루 종일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입술로든 손으로든 발길로든 부끄러움이 없는 처신을 하겠다는 서약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바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교육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육, 하나님을 인정하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좋은 사회,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성공 위주, 출세 위주의 교육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망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육만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신본주의란 무얼까? 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보다는
아예 하나님 중심의 '생활'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마땅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카톨릭이든 유대교이든 신본주의의 핵심 성경구절을 찾을 때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
나오는 '쉐마 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아)를 우선 삼는다.
(신 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성경 66권 중에 이처럼 말씀을 써 붙이고 손목에 매고 문에도 기록하는 이런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이곳 뿐이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이 구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이 성경의 본문이야 말고, 유대인들이 영원토록 지켜야 하는 최고 말씀으로 안다.
예수께서도 율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위 본문을 즉각
인용하셨다.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또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또 우리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수없이 하셨다(막4:9). 계시록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가 2장과 3장에 계속 나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잊지 않고 철저히 기억하는 것이다.
범사를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아예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메주자(mezuzah)와 테플린(teffilin)이 특정한 사물로서, 또 특정한 용어를 만들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테플린(teffilin). 역시 신명기 6장의 말씀(간혹 출애굽기 13:9, 16. 신명기 11:18~20을 쓰기도 하지만, 핵심구절은 신명기 6장이다) 을 기록한 양피지를 넣은 작은 가죽 상자를 검은 끈으로 묶는다. 그리고 이마 혹은 손에 매고 사용한다. 이마와 손에 매고 안식일과 절기를 제외한 하루 세 번 기도 시간에 사용할 정도다. 주로 왼팔에 맨다. 왼손잡이는 오른팔에.
- 마치는 말씀
이사야 선지자님의 말씀을 끝으로 오늘의 말씀을 모두 마치고자 합니다.
* 사 29:18,19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
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 여기 있는 말씀은, 역시 신약 시대에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될것과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여기 기록된 말씀은, 그 구원이 모두 다 인간 자신에게서 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는 것을 보여준다.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은 누구나 다 귀머거리 같이 진리를 깨닫지 못할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여 주셔서 깨닫는다는 뜻이요,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볼것이"라고 하였으니 역시 같은 뜻이다. 그리고 "겸손한 자"나 "빈핍한 자"(아무런 義도 소유하지 못하여 마음이 가난한 자-마 5:3)가 다만 여호와 자신을 선물로 받아 기뻐한다는 말씀도 순전히 그들이 공로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참예한다는 뜻입니다. 믿는 믿음과 들을 귀 있는 자는 구원을 받아 천국이 저들의 것이라는 말씀을 심령에 새기고 은혜받은 우리 만나백성임을 이 시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