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기의 다섯 번째 독회 토론은 에드거 앨런 포의 유일한 장편 소설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로 진행했습니다. 먼저 밝히고 시작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공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40분 늦게 참여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 있던 논의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후기는 단순 수학적으론 이번 독회의 2/3 어치 밖에 담지 못했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또, 몇몇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분명 휘발됐을텐데, 빠진 부분이 있고, 거슬리며, 수정할 의사가 있다면 댓글로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 번째론 책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당시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죠. 핌이 갑판 아래서 짐 사이에 낀 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당대의 흑인노예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거나, 긍정적인 흑인인물인 더크 피터스의 사례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의 의도를 진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반면, 여전히 사악한 흑인의 전형으로 흑인 요리사를 제시한다거나 아프리카 원주민을 연상케 하는 야만인들의 모습, 그리고 더크 피터스 조차
'유쾌하며 생각이 짧고 가벼운 동료 / 사악하고 인간이 할 수 없을 법한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악당'
이라는, 현재까지도 미국 사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매체 상 흑인의 두 전형적인 이미지 속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만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지난 독회에서도 살인마 오랑우탄과 관련해 인종 문제를 다룬 바가 있는데, 여러 정황 상 포가 어느 쪽에 무게 추를 더 올려두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을 법해 보입니다.
사실 핵심적인 이야기는 방어적 서사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방어적 서사란 (거칠게 말해) 사회나 문명 등이 상정하는 완전성 속에 억압되어 있는 불완전성의 가능성, 즉, 불완전성을 억압하여 (불)완전성으로 만들기 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보통 <인간의 조상 데우칼리온과 퓌르라>라는 「변신 이야기」 속 한 단편을 예시로 들기에 이용해 서술하겠습니다. 돌을 등 뒤로 던져 인간을 탄생시키는 출토인 설화를 말하는 이 이야기에서, 사내가 던지는 돌에선 남성이, 여인이 던지는 돌에선 여성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당대에 우월한 위치를 가지던 남성이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서사로 해석됩니다.
이와 연관지어서 이항대립 구조의 해체를 이야기했고 더 나아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가벼운 수준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철학, 문학, 음악 등의 역사적 흐름을 두고 이야기 한 점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사실 이번 독회에서 저희가 함께 다룬 포스트 모더니즘은 굉장히 얕은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서 다른 전문가 분의 강의가 필요한 때일 것 같긴 합니다. 다음 독회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가 방어하고 있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저희는 당시 과도기적 미국 사회 내의 다인종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방어적 서사가 해당 소설이라 여겼습니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백인 남성 포의 시선에서 유색인종들은 분명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이야기로서 표출하게 되는데, 책 속의 야만인과 관련한 서사가 그 절정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백인들이 탄 제인가이 호가 지적 호기심과 탐욕에 이끌려 야만인들의 섬에 들어와 '정당'하게 그들의 물건을 어떤 대가도 치루지 않고 가져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다루며, 반대로 백인들을 기습한 야만인들을 무자비한 악당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이런 이야기로써 외부와 내부를 구분짓는 울타리를 견고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는 작품 전반의 내용이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 어떠하며 그것이 책의 소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작중 인물인 리처드 파커가 나중에 식량으로 쓰이는데 현실 속 비슷한 상황에서 '리처드 파커'란 이름을 가진 사내가 마찬가지로 먹혔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해 포가 예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번 독회도 지난번처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포와 관련된 독회는 단 한 차례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이번에 독회에 참여해주신 분들도, 이 글을 호기심에 읽고 계신 분들도 거기서 볼 수 있길 바라고 있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의 소감을 나열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수현님
이번 독회에서는 저희가 기획했던 취지에 맞게 자유로운 토론을 진행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한 고개 끄덕임을 할 정도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며,, 어딘가에 이 내용을 적지 않고는 흘려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방어 기제에 관련해서 한 개인의 특성이 아닌 문명의 단위로 바라보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집단만 사라지면 우린 더 좋은 사회가 될거야 같은 이야기들은 사실 허구를 기반으로 만든 울타리에 불과한 것이죠. 이에 대해 이러한 좁은 시야가 오히려 더 사회를 분열하게 만드는 관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개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철학에 무지한 저로서는 마음껏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또 어쩌다보니 명예회원만 참여하였는데요. 그래서 정규 토론과는 다른 익숙함과 친근함이 묻어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에도 또 참여하겠습니다 !
성수현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쓰여 질 당시 연재 식으로 진행되었던 터라 매 챕터마다 무지막지한 큰 사건들(시련)이 주어집니다. 그리하여도 막장이라기보단 통일감 있게 이 모든 구성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존재합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시대 비판, 인간 심리, 미지의 영역에 대한 탐색 등을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 중에서 위기를 극복해나가며 생존을 영위하는 과정에만 집중했기에 작은 편린 정도만 이해할 뿐이었지만, 이번 독회를 통해서는 이외의 관점 및 관련된 지식들을 공유 받으며 이 소설에 대한 사유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흑인의 스테레오 타입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흑인 원주민이 아닌 핌의 행위를 통해 암시되면서 일종의 비판, 풍자로서 읽힐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뿐만 아닌 핌이 자기모순을 합리화하는 장면을 조명하며 ‘자기 방어’라는 심리적인 측면, 더 나아가서는 방어기제에 대해 새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한 소년의 모험담이자 생존기만이 아닌 다른 차원의 논의까지 가능한 작품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아무쪼록 종합적으로 본다면 저에게는 소설의 흥미진진함만큼 대단하고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애드거 앨런 포의 다음 독회를 기대하며 마쳐보겠습니다.
정기준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도, 하루키가 주제가 아닌 독회도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추리/모험 소설이라는 장르 소설의 특성 상 독회가 성립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양한 주제의 화두를 제시해준 현준님 덕분에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2시간이라는 다소 짧은 시간 사이에도 ‘백인 구원자’ 서사에서부터 마르크스와 들뢰즈, 방어기제와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까지, 다양한 주제를 두고 모두가 각자 나름의 식견과 느낀 바를 공유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이번 독회가 소규모로 진행된 덕분인지 토론 전 잡담 나누는 시간과 뒷풀이 역시 친근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져 너무 좋았습니다. 모두 다음 독회에서도 뵐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음번 독회에도 참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