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제1, 「왕력」제1
1. 신라 제15 기림이질금
정묘년에 국호를 정하여 신라라 하니 덕업을 나날이 새롭게 하고 사방의 백성을 망라 한다는 뜻이다.
2. 가락 제1 수로왕
임인 삼월에 알에서 나서 이달에 즉위하여 158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금알 속에서 났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니 <개왕력>에 실렸다.
권제1, 「기이」제1
1. 고조선
아래로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2. 고조선
너희들이 그것을 먹고 햇빛을 백일 동안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을 것이다.
3. 말갈발해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이다. 그 추장 조영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진단이라고 불렀다. 선천 연간에 처음으로 말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직 발해라고만 칭하였다. 세자가 왕위를 이으니, 명황이 전책을 내려 왕호를 승습하게 했는데, 사사로이 연호를 고치고 드디어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가 되었다.
4. 말갈발해
고려의 옛 장수 조영은 성이 대씨인데, 남은 군사를 모아서 태백산의 남쪽에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하였다.
5. 북부여
전한 선제 신작 3년 임술년 4월 8일에 천제가 흘승골성으로 내려오니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탔다.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고 하였다.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 칭했는데,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하고 해를 씨로 삼았다. 왕이 훗날 상제의 명령으로 도읍을 동부여로 옮기자,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받아 일어나 졸본주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라고 하니, 곧 고구려의 시초이다.
6. 동부여
북부여왕 해부루의 재상인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 일러 말하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하려 하니 너희는 다른 데로 피하거라. 동해의 바닷가에 이름이 가섭원이라고 하는 땅이 있는데, 토지가 기름져서 왕의 도읍을 세우기에 마땅하다고 하였다. 아란불이 왕을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고 하였다.
7. 동부여
부루가 늙어도 아들이 없었다. 하루는 산천에 제사를 지내며 뒤를 이을 자식을 구하는데,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서로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보게 하니, 금색의 개구리 모양을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아드님을 내려주신 것인가 보다.”라고 하고는 거두어 길렀다. 이름을 금와라고 하고, 성장하자 태자로 삼았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받아 왕이 되었다.
8. 고구려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부여 땅으로 피해 갔는데,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태백산의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물어보니, 말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로서 이름은 유화입니다. 동생들과 함께 놀러 나왔다가 마침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말하면서, 저를 웅심산 아래 압록강가에 있는 방으로 꾀어 사통하고는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중매도 없이 남을 따라갔다고 꾸짖으시고는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금와가 이상히 여겨 방 안에 깊숙이 가두었는데, 햇빛이 들어와 그녀를 비추었다. 몸을 이끌어 피해도 해그림자가 또 쫓아와 비추거늘, 그로 인하여 아이를 가져서 크기가 다섯 되가량 되는 알 하나를 낳았다.
9. 고구려
왕이 그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더니 모두 먹지 않았고, 또 길에 버렸더니 소와 말이 피해 갔으며, 들에 버렸더니 새와 짐승이 와서 덮어 주었다. 왕이 알을 쪼개려 해도 깨뜨릴 수가 없어,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어미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왔는데, 뼈대와 겉모습이 훌륭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성장함이 특출나서,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을 쏘면 백 번을 다 맞혔다. 나라 풍속에 활을 잘 쏘는 자를 일컬어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그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10. 고구려
주몽은 오이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길을 떠나서 엄호수에 이르렀다. 강물에 이르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손자이다. 오늘 도망을 가고 있는데 추격하는 자들이 막 닥치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서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주몽 일행이 건너자 다리는 해체되어 그들을 추격하던 기병들은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11. 우사절유택
제49대 헌강대왕 때에는 성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고, 집 모서리가 접하고 담장이 이어졌으며, 노래와 풍악이 길에 가득 차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12. 신라시조 혁거세왕
전한 시절 원년 임자년 3월 초하루에 육부의 시조들이 각자 자제들을 이끌고 알천의 강가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자하게 되어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으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두지 않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때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가에 마치 번개의 빛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내리고, 흰색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찾아가 살펴보니 자줏빛 알이 있었다. 말이 사람을 보고서 길게 울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쪼개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놀라고 괴이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날짐승과 들짐승이 따라와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해졌다. 이로 인하여 혁거세왕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위호를 거슬한이라고 하였다.
13. 제4 탈해왕
어디든지 인연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나라를 세우고 가문을 이루거라.
14. 제4 탈해왕
하루는 토해가 동악에 올랐다가 돌아가는 길에 백의를 시켜 마실 물을 찾아보게 하였다. 백의가 물을 길어 오다가 도중에 자기가 먼저 마셔보고 올리려 하였는데, 뿔잔이 입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그를 꾸짖자, 백의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앞으로는 가깝거나 멀거나 감히 먼저 맛보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니, 그제야 뿔잔이 입에서 떨어졌다.
15. 연오랑 세오녀
제8대 아달라왕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정유년에 동해의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닷가에 나가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연오랑을 태우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는, “이분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하고 왕으로 세웠다.
16. 미추왕 죽엽군
제14대 유례왕 시기에 이서국 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 왔다. 우리가 크게 병사를 동원하여 방어하였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저항할 수가 없었는데, 홀연히 이상한 병사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모두 댓잎을 귀에 꽂고서 우리 병사들과 힘을 합쳐 적을 공격해 격파하였다. 적군이 물러간 후에는 그들이 돌아간 곳을 알 수 없었는데, 단지 대나무의 잎들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선왕의 음즐이 애써서 도와주었음을 알고서, 이로 인하여 왕의 무덤을 죽현릉이라고 불렀다.
17. 미추왕 죽엽군
오직 나와 공이 이 나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찌하라는 말인가? 공은 예전과 같이 다시 노력해 주시오.
18. 나물왕 김제상
임금의 근심은 신하에게 수치가 되고, 임금의 수치에 신하는 목숨을 버린다고 합니다. 만일 쉽고 어려움을 따진 후에 행동한다면 이는 충성스럽지 않다고 할 것이며, 죽고 사는 것을 재본 후에 행동한다면 이는 용기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신이 비록 못나고 어리석으나 명을 받들어 실행하겠습니다.
19. 나물왕 김제상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차라리 계림의 채찍과 회초리를 감수하더라도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으리라.
20. 나물왕 김제상
옛날 한나라의 신하인 주가가 형양에 있다가 초나라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항우가 주가에게 일러 말하기를, ‘네가 나의 신하가 되면 만록을 받는 제후로 봉하겠다.’라고 하니, 주가는 꾸짖으며 굴복하지 않고 초왕 항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제상의 충렬은 주가에게 부끄러울 게 없다.
21. 나물왕 김제상
처음 제상이 출발하여 떠날 때 그 부인이 소식을 듣고 쫓아갔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망덕사 문 남쪽의 모랫벌에 이르러 드러누워 길게 울부짖었다. 그런 까닭에 그 모랫벌의 이름을 장사라고 하였다. 또 친척 두 사람이 부인의 겨드랑이를 부축하여 돌아오려고 했으나, 부인이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일어나지 않으니, 그 땅의 이름을 벌지지라고 하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었다. 그래서 치술신모가 되었는데, 지금도 사당이 남아 있다.
22. 지철로왕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척 5촌이나 되어 마땅한 배필을 찾기가 어려웠다. 사자를 여기저기로 보내 배필이 될 만한 자를 구하였다. 사자가 모량부의 동로수 아래에 이르러 개 두 마리가 똥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덩어리가 북만큼 커서 개들이 양 끝을 물고 다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떤 소녀가 알려주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 여기서 빨래를 하다가 숲속에 숨어서 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집을 찾아 살펴보니,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었다. 이 사실을 갖추어 왕께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궁중으로 맞아들여 황후에 봉하였다. 신하들이 모두 하례하였다.
23. 지철로왕
아슬라주의 동쪽 바다 가운데에 순풍으로 이틀 정도 거리에 울릉도가 있는데, 섬의 둘레가 26,730보였다. 그 섬의 오랑캐들이 물이 깊은 것을 믿고서 오만방자하게도 신속하지 않았다. 왕이 이찬 박이종으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게 하니, 이종은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 위에 싣고서 그들에게 위협하며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겠다.”라고 하였다. 섬 오랑캐들이 두려워 항복하니, 이종에게 상을 내려 주백으로 삼았다.
24. 도화녀 비형랑
여자가 지켜야 하는 일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지아비가 있는데 남에게 시집가는 것은 비록 만승의 위세라고 하더라도 끝내 얻지 못할 것입니다.
25. 도화녀 비형랑
성스러운 황제의 혼이 낳으신 아들 비형랑이 살고 계시는 집이다.
날고뛰는 귀신의 무리야, 이곳에는 함부로 머무르려 하지 말아라.
26. 천사옥대
고려왕이 장차 신라 정벌을 도모하면서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서 범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무엇을 일컫는 것인가?”라고 하자, 신하가 답하기를 “황룡사의 장육존상이 첫째요, 그 절의 구층탑이 둘째이며, 진평왕의 천사옥대가 셋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라를 정벌하려던 계획을 그만두었다.
27. 천사옥대
구름 밖 하늘이 내려준 옥대를 두르니
벽옹의 곤룡포가 우아하게 잘 어울리네.
우리 임금 이로부터 옥체 더욱 무거워지리니
내일 아침에는 쇠로 섬돌 만들어야 할까 보네.
28. 선덕왕지기삼사
처음에 당 태종이 붉은색과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 모란꽃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왔다. 왕이 꽃 그림을 보고 말하기를,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며, 뜰에 씨를 심으라고 명하였다. 꽃이 피고 질 때를 기다려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29. 김유신
우리는 나림과 혈례, 골화 등 세 곳의 호국신이노라. 지금 적국의 사람이 낭을 꾀어서 데리고 가는데도 낭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길을 계속 나아가고 있기에, 우리가 낭을 눌러앉게 하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30. 김유신
김씨 종가의 재매부인이 죽자 청연의 윗쪽 골짜기에 장사를 지냈다. 이로 인하여 그 골짜기의 이름을 재매곡이라 하였다. 매년 봄철에는 그 종가의 남자와 여자들이 골짜기의 남쪽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열었는데, 이때가 되면 온갖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송화가 골짜기 숲에 가득하였다. 골짜기 입구에 건물을 지어 암자를 만들고, 송화에서 이름을 따서 송화방이라 하였다.
31. 김유신
제54대 경명왕 때에 이르러 공을 추봉하여 흥무대왕이라 하였다. 능은 서산 모지사 북쪽, 동으로 향해 뻗은 봉우리에 있다.
32. 태종춘추공
문희의 언니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데 그 오줌이 서울을 가득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 누이와 꿈 이야기를 나누니, 문희가 그 말을 듣고서 “내가 이 꿈을 살께요.”라고 하였다. 언니가 “어떤 물건을 줄 테냐?”라고 하자, 문희가 “비단치마를 주면 될까요?”라고 하니 언니가 “좋다.”라고 하였다. 누이가 치마폭을 펴서 꿈을 받으니, 언니가 말하기를 “어젯밤 꿈을 너한테 준다.”라고 하였다. 누이는 비단 치마로써 꿈값을 치렀다.
33. 태종춘추공
왕은 유신과 함께 신기한 계책을 내고 서로 힘을 모아 삼한을 통일하여 사직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런 까닭에 묘호를 태종이라고 하였다.
34. 태종춘추공
왕은 하루 식사에 쌀 서 말과 수꿩 아홉 마리를 먹었는데, 경신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는 점심은 그만두고 단지 아침과 저녁 식사만 하였다. 그렇지만 헤아려 보면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 성안의 시장 가격은 베 한 필에 벼가 30석 혹은 50석이었으니, 백성들은 ‘성군의 시대’라고들 하였다.
35. 태종춘추공
보름달이란 가득 찬 것이니 차면 기우는 법이고, 초승달과 같은 것은 아직 차지를 않았으니 차지 않은 것은 점점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36. 태종춘추공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로 강물에 닿아 있다. 서로 전하여 이르기를, 의자왕과 여러 후궁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서 서로에게 일러 말하기를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라며 서로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강에 몸을 던져 죽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타사암’이라고 한다.
37. 태종춘추공
신라는 비록 작은 나라이나 성신 김유신을 얻어 삼국을 통일하였으므로 태종이라고 추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