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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폐인이 된 상관안 1 얼마나 지났을까? 상관안은 종성에 주화입마에 들어 휘청이던 중 여제의 일 장에 격타당해 정신을 잃었다가 한순간 몸이 타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 "으으……!" 괴로움에 찬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떠보니, 화려한 지붕이 눈에 들었다. 여제에게서 열 방울의 음양혈로를 하사받았던 방안이라는 것이 기억되었다. '어찌 된 것일까?' 상관안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힘을 쓸 수 없어 그대로 드러누워 있으며 운기행공해 보았 다. 이상하게도 단전에서 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구결대로 진기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한 올의 진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전이 텅 비어 있고, 기경팔맥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삼천 일 전, 마후상인에게 붙잡혀 천지죽림을 떠나기 이전의 상태와 아주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상관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괴롭구나. 여제께서 나를 믿었는데… 심마(心魔)에 들어 주화입마에 들고 말았으니…….' 상관안은 자신을 해친 사람이 여제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눈물을 주루루 흘리다가 문이 열 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며 승복 차림의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천 일 전, 마후상인에게 붙잡혀 있던 상관안을 구해 낭산 안으로 들여보낸 복마신니였다. "나무관세음보살……!" 복마신니는 미끄러지는 듯 유연한 신법으로 방안으로 들어와 상관안 바로 곁에 우뚝 섰다. "……." 상관안은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복마신니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이 너무나도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이 표정은 마귀의 표정이지, 인간의 표정이 아니다.' 상관안이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너무도 사악한 음성이 들려 왔다. "사제(師弟)! 기운을 내게!" 복마신니는 득의만면한 가운데 눈에서 광망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봉서 한 장을 꺼내 상관안의 눈 위에 와락 떨쳐 보였다. 여제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너를 천녀교(天女敎) 제이(第二) 소교주(小敎主)로 봉(封)한다! 천녀제(天女帝).> 그것이 쓰여 있는 글의 전부였다. '천녀교라고?' 상관안이 얼떨떨해 할 때, 복마신니가 사악한 웃음과 함께 봉서를 걷어치웠다. "호호… 사부께서 떠나시기 전, 한 마디 당부하셨네. 자네가 삼천 일 전 한 세 가지 약속 모 두를 지킨 것을 치하하신다며 이제부터 벙어리 금제(禁制)를 푼다는 것이 사부의 말이시네." 복마신니가 여제를 사부로 칭하는 것이 놀라웠거니와, 여제라는 이름 앞에 천(天)자 하나가 붙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천녀제(天女帝). 그 이름은 상관안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이런 전설이 있지 않는가? 천녀(天女)가 혈풍(血風)을 일으켰다. 천녀의 무리가 세상을 조롱하며 세상을 피에 잠기게 했다. 만에 하나, 중원무성이 아니 계셨다면 천하는 천녀교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천하제일고수 중원무성이 천녀교주 천녀제를 패배시킨 후, 강호에 나타난 노래가 그것이었 다. 천녀제는 사도제일인이었고, 무림제일마(武林第一魔)였다. 천룡신협 상관위의 사부 천룡상인(天龍上人)도 천녀제와 겨르다가 죽었고, 천지대협의 사부 천지옹(天地翁)도 천녀제와 겨르다가 죽지 않았던가? 중원무성이 항마대천신공(降魔大天神功)의 비급을 얻는 기연을 만나지 않았다면, 강호는 천 녀교의 손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 천녀제는 중원무성과 싸우다가 죽은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여제가 천녀제였단 말인가? 그녀는 죽었다는데…….' 상관안의 정신이 혼미해질 대로 혼미해져 있을 때, 복마신니의 말소리가 다시 고막을 때렸 다. "본교(本敎) 천녀교(天女敎)는 삼십 년 전 중원무성에게 패해 봉문(封門)해야 했었네. 천녀제 는 그 금제를 깨는 길은 단 하나, 중원무성의 항마대천신공을 능가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아 시고… 강호를 떠도시며 절기를 찾는 데 전념하셨네. 사부께서 천하를 방랑하기 십구 년, 한 가지 행운이 있었네. 사부께 음양무상경이 내려진 것이네." "으으……!"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네. 하나, 사부의 나이 연로하시어 그것을 익힐 수 없다는 곤란함이 있었네. 사부께서는 그것을 한탄하시다가 기재 하나와 기녀 하나를 구해 음양무상신공을 수 련케 한다는 복안을 만드셨다네." 순간, 상관안의 눈빛이 불빛을 토해 냈다. "그… 그것이 사실이오?" 상관안의 입술이 벌어지며 아주 오랜만에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거친 말소리였다.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에 말하는 법을 잊어먹을 정도가 된 상관안의 흥분된 말소리이니 그럴 것이다. "호호… 어찌 거짓을 말하겠느냐? 사부님께서는 삼십 년 전, 천녀교를 떠나셨다가 십 년 전 네가 낭산으로 오기 얼마 전 천녀교로 돌아오셨다. 모든 계획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그럼 음양무상신공을 내… 내게 전수하려 한 것이 아니라, 천녀제는 스스로 얻으려 했던 것이었소?" 상관안이 이를 갈며 말하자. "이를 말이야!" 복마신니가 비정히 말하며 얼굴 표면에 손을 댔다. 슥-! 그녀의 손끝이 가볍게 흔들리는가 하더니 매미 날개같이 얇은 인피면구 한 장이 떨어져 내 렸다. 그리고 요염하기는 하나 사악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것이 복마신니의 본얼굴이었다. "어리석은 놈! 천하 어디에 복마신니란 인물이 있는지 물어 봐라!" 전과 달라진 독기 어린 말소리였다. 상관안의 얼굴에 떠오른 노기가 그녀를 성나게 했을 것이다. "복마신니란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천녀교주의 기명전인(記名傳人)이자 천녀교 총 순찰(總巡察)인 미혼관음(迷魂觀音)이다. 사부님의 명에 따라 천하의 기재를 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지!" "뭐… 뭐라고?" 상관안이 이를 갈자. "호호… 네 몸을 살려 주고 호의호식시키려 했거늘, 네놈이 결국 네 묘(墓)를 파는구나. 네 놈이 비밀을 알고 싶어하니… 비밀을 속시원히 말해 주고, 네놈의 혼백을 저승으로 보내 주 겠다. 거기 가서 내 손에 죽은 천지대협이 있나 없나를 알아보거라!" "네… 네가… 네가 마후상인과 한패란 말이냐?" 상관안의 입이 마굴(魔窟)같이 크게 벌어지며 더운 김이 뿜어 나왔다. 상관안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2 어두운 동굴 속. 빛이라고는 아예 없는 암흑의 공간이다. 상관안은 자신이 지척지간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공간 안에 있음을 느끼며 잃었던 정신 을 되찾았다. "아, 여기가 어디일까? 여기가 저승인가? 아니면 아직 이승인가?" 상관안은 탄식해 하다가 코끝을 찡그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심한 악취 때문이었다. "지독한 냄새군. 시체 썩는 냄새라도 이같이 지독하지 못할 것이다." 상관안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허사였다. 사지에 맥이 풀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거니와 허기와 피로가 극심해 그대로 드러누워 있 고 싶을 뿐이었다. 한참 가만히 누워 있자니 원한을 이기지 못하는 눈물이 흘러나와 안면을 적셨다. "분하구나. 그들이 어떠한 속셈으로 내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고 철저히 이용 당했으니……." 상관안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중(手中)에 단검(短劍)이 쥐어져 있다면 입 안에 물어 넣고 앞으로 고꾸라져 죽고 싶을 정도로 분했다. 자신이 천하제일의 기재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들은 나의 재주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나를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다. 천녀제는 나를 전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꼭두각시 정도로 이용해 먹었을 뿐 이다.' 배반감이 몸을 떨게 했다. 천녀제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음양무상신공을 이룩하기 위해 상관안을 이용했 던 것이다. 이불지도 이용당했을까? 그녀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철저히 속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이곳이 천녀교의 소굴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삼천여 일을 보냈으니, 천녀제가 나를 이용해 먹고 이렇게 버리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충성하려 했으니…….'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천하제일기재로 일개 사마외도 무리에 속았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앞날을 생각하니 애간장이 끓어올랐다. 자신의 목숨이야 이미 버린 목숨이라 하겠으나, 무수한 강호인들의 안위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천녀교에 대한 원한의 불길이 일어났다. "그들은 처음부터 나를 속였다. 마후상인이 나를 죽이지 않은 까닭은, 내가 기재인 탓이지 다른 탓이 아니다. 나는 복마신니가 마후상인의 윗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연 극에 속아 넘어갔으니… 아, 그러고 보면 무성곡이 무너졌다는 말도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지난 삼천 일 간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 냈던 것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 누구를 위한 고생이었던가? 천녀제의 흑심(黑心)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ㅌ을 이겨 나갔단 말인가? 심장이 터질 듯 괴로울 때, 쇠와 돌이 맞부딪치는 역겨운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 위로 한 줄기 강렬한 빛살이 흘러들었다. "으으……!" 상관안은 누군가 문을 열었고, 화광(火光)이 흘러들어 눈을 따갑게 함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 렸다. "흐흐… 아직 살아 있군." 음침한 말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언젠가 한 번 들은 기억이 있는 말소리였다. 상관안이 누워 있는 곳은 백골(白骨)과 흙탕으로 가득 찬 천하에서 가장 더러운 지하 감옥 이었다. 감옥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흑의를 걸친 백발노인이었다. 그의 용모는 상관안으로서는 처 음 대하는 것이었다. 하나, 흑의노인의 악독한 말소리는 상관안이 두 번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잊을 수 없는 것 이었다. "마… 마후상인(魔吼上人)이군!" 상관안이 치를 떨자. "흐흐… 과연 영리한 놈이군. 노부의 목소리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 득의해 고개를 끄덕이는 흑의노인은 아주 오래 전 천지죽림을 찾아왔던 마후상인이었다. 그는 나무 쟁반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 위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멀건 죽 한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노부는 천녀교의 호법(護法)이라는 지위로 너를 찾아왔다. 네놈을 굶겨 죽이라는 것이 총순 찰의 명이나, 과거 너와 안면을 익혔고 현재에는 노부의 아내가 되어 있는 홍살(紅煞)이의 부탁이 있어 네놈의 주린 배를 채울 음식을 갖고 온 것이다. 그러니 죽은 후라도 원귀가 되 어 노부를 찾을 생각은 버려라!" "마… 마후상인! 과… 과연 그녀의 말대로란 말이냐?" "흐흐… 복마신니란 사람은 없다. 미혼관음이란 분이 계실 뿐이다. 그분은… 천지죽림을 친 장본인이시다." 마후상인이 나무 쟁반을 흙바닥에 내려놓자. "그… 그럼 천지대협 이 대숙을 죽인 장본인은 누구냐?" 상관안의 눈에서 살광이 흘러나왔다. "흐흐… 천지대협은 고수였다. 놈은 노부와 장력을 비교할 수 있는 놈이었다. 노부는 놈의 천지환영신법(天地幻影身法) 아래 퇴로를 터 주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총순찰이 지키고 계셨 으니, 어찌 놈이 도망갈 수 있겠느냐? 놈은 총순찰의 일 장에 한 팔을 잃고 딸을 업은 채 불바다 속으로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시체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죽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이다." "그… 그럼 혈홍문을 멸망시킨 것도 너희들의 솜씨냐?" "그렇다. 혈홍문의 멸망은 십수 년 간 천녀교를 떠나셨던 교주께서 교로 돌아오신 직후 내 린 명령이셨다." "무… 무성곡의 멸망은?" "그것은 너를 속이기 위해 꾸며 낸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실이 되었다. 교주께서 음양 무상공력으로 무성곡의 주인 중원무성을 격파했다는 것이 바로 조금 전 비합전서구로 전해 졌다. 모두 네 공이다." "크으으……!" 상관안의 눈알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네놈은 원래 백도인데, 천녀교를 위해 혼백을 바치게 된 것이다. 네놈은 천녀교가 존속되는 한 천녀교의 은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 긴다니… 네놈의 일생을 따진다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 상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대역죄인이다. 중원무성께서 음양무상신공 아래 돌아가셨다면… 나는 죽어서도 저승 으로 들 수 없는 죄인이 된 것이다.' 상관안은 귀가 멍멍하고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낙담하게 되었다. "쯧쯧……!" 마후상인이 그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네놈이 비밀에 대해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놈은 비 밀을 알고 분노했기에 이런 꼴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자승자박이다. 여기서 굶어죽게 된 것은 모두 네놈의 어리석은 탓이다. 순순히 행동했다면, 소교주의 자격으로 일생을 영화 속 에서 보냈을 텐데… 알지 않아야 할 비밀을 굳이 알았기에 이렇게 된 것이다." "흐흑……!" 상관안은 대답 대신 눈물을 떨궜다. 마후상인은 상관안이 오열하며 축 늘어지는 것을 보며 아무 말하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 "흐흐흑……!" 상관안은 문이 닫히고 다시 어둠이 시작되는 것도 알지 못하고 울며 시간을 보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천하제일의 기재로 태어났다는 것이 원통했고, 천녀교의 사악한 수단이 원망 스러웠다. 얼마가 지났을까? 상관안은 울다가 정신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끌려 정신을 되 찾게 되었다. "이 공자, 이 공자!" 아주 가는 말소리였다. 언젠가 한 번 들은 기억이 있는 말소리였다. '누구의 말소리일까?' 상관안이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볼 때, 다시 고막 속으로 파고드는 여인의 말소리가 있었다. "저는 청살(靑煞)입니다. 저를 기억하고 계시지요?" "청… 청살이라고?" 상관안은 자신의 목욕 시중을 들어 주었던 두 명의 시비 하나가 청살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 었음을 기억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불지 아가씨의 명으로 왔습니다. 불지 아가씨는 이 공자가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하고 계십 니다. 불지 아가씨는 지금 상실한 무공을 되찾기 위해 폐관 수련에 들고 계십니다. 그분은 폐관에 들기 전, 제게 이 공자의 시중을 당부했습니다. 그분은 총순찰과 호법 어른이 이 공 자를 굶겨 죽이려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계십니다." 전음입밀의 수법이었다. 철문 밖에 서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상관안은 천녀교의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고 못 들은 체했다. 청살이 조심조심 전음을 보냈다. "저는 이 공자께서 이런 어려움 속에 계신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뇌옥을 지키는 고수들을 매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일각(一刻) 동안 텅텅 빌 것입니다." "으음……!" "그 동안 뇌옥을 탈출하십시오. 모처로 가서 기다리고 계신다면, 제가 아가씨께 연락해 이 공자를 구하라 하겠습니다." "정… 정말이냐?" 상관안이 눈을 부릅뜨자. "정말입니다." "왜… 왜 시키지 않은 짓을 하려 하느냐?" "그… 그것은 마후상인 호법께서 홍살이에 이어 저의 몸을 노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그분이 이 공자를 죽이려 하는 것은, 교주께서 시키지 않은 일입니다. 저… 저는 이 공자를 구해… 그분이 교주의 명을 어겼다는 것을 폭로하고 싶습니다." 말소리와 함께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철문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열려지며 청의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과거 벌거벗은 몸으로 상관안의 등을 밀어 주었던 청살이 초췌한 표정이 되어 상관안 곁으 로 다가섰다.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이 공자를 모시고 갈 것이니, 이제부터 아무 소리 마시고 제게 몸을 의지하십시오." 청살은 다짜고짜 상관안의 축 늘어진 몸을 들쳐업고 철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휘휙-! 선풍(旋風)이 이는 듯했다. 청살의 무공은 강호 어디에 내놔도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천녀교에는 고수들이 구름같이 많았고, 청살은 그중에서도 고수급이었다. 청살은 좁고 어두운 암도(暗道)를 바람같이 스치고 지나쳐 거대한 철책 앞으로 다가갔다. 근처는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철책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이십 리는 가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총순찰의 지위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이십니다. 그분은 이 공자님이 살아 계실 경우, 장차 소교주가 총순찰님을 해하실까 겁을 내 어 이 공자님을 굶겨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청살이 철책 틈을 빠져 나가며 하는 말이었다. "두… 두 사람 사이 알력이 있느냐?" 상관안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하나 이 공자께서 살아나실 경우 소교주의 정(情)이 이 공자님께 갈 것이 니, 총순찰님의 입장에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 그런가?"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공자님과 소교주님 모두 총순 찰 손에 천녀교로 오게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뿐입니다. 두 분이 어떤 신세라는 것도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휘휙-! 청살은 말을 하는 사이 바람같이 달려 뇌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뇌옥의 입구는 상관안이 처음 보는 깊은 골짜기 안의 깎아지른 벼랑 가운데쯤의 동혈(洞穴) 이었다. 그 아래, 거대한 건축물이 많이 서 있었다. 그곳이 바로 천녀교가 재건을 노리고 세운 천녀교의 비밀 소굴이었고, 그 어딘가 상관안의 소년시절을 뺏아 간 여러 군데 비밀스러운 장소가 있는 것이다. 청살은 동혈 밖으로 뛰어나오는 직후 비연투림(飛燕投林) 일(一) 식(式)으로 몸을 틀며 날아 올랐다. "찻-!" 청살은 단숨에 오 장을 비스듬히 날아올랐다가 다시 잠룡승천(潛龍昇天) 일 식으로 수법을 변화시켜 절벽면으로 접근해 가며 손을 내밀었다. 슥-! 그녀의 손아귀 안으로 걸려드는 물체 하나가 있었다. 굵은 동아줄 하나가 그것이었다. 청살이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고, 그것을 걸기 위해 보초들 에게 황금 천 냥을 뇌물로 주어야 했었다. 청살은 원숭이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정교한 신법을 시전해 몸을 가볍게 날린 결과,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난 벼랑 위로 이르렀다. "갈수록 어렵습니다. 이곳은 용담호혈입니다. 제가 소교주의 하녀로 실권을 갖고 있기는 하 나, 통과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청살은 그늘을 택해 몸을 날려 갔다. 삼경(三更), 달도 떠오르지 않는 그믐밤의 삼경인지라 주위의 어둡기는 자신의 손가락도 알 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꾸욱- 꾹-! 간간이 들려 오는 부엉이 소리가 깊은 산골의 정적을 더해 주었다. 청살은 근처의 지리에 아주 익숙한 듯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몸을 날려 숲과 계곡을 가로질 렀다. 상관안으로서는 아주 오랜만에 대하는 바깥 풍경이었다. 어느 새 봄이었다. 꽃향기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청살은 상관안을 구하기 위해 온갖 배려를 다한 후였는지라 수많은 매복의 눈을 피해 오 리 넘게 갈 수 있었다. 거대한 도끼로 찍어 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협곡(俠谷) 하나가 보였다. 그 위, 아주 폭이 좁은 구름다리 하나가 걸려 있었다. "저기를 넘어가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보초들을 이미 매수해 두었으니, 안심하십 시오!" 청살은 상관안에게 말하며 구름다리의 초입 새로 접근해 갔다. 밤이었는지라 그림자도 남지 않았다. 그녀의 발이 구름다리의 끝을 밟는 순간이었다. 휘휙-! 두 마디 아주 경미한 파공성과 함께 두 사람의 앞뒤를 가로막는 이 인의 불청객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검은 장포에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고, 하나는 금색 장포를 걸치고 금관 을 쓰고 있었다. 한 사람은 마후상인이고, 한 사람은 금의선인이라 자칭했던 사람이었다. 마후상인이 구름다리 앞쪽을 가로막았고, 금의선인이 구름다리 뒤쪽을 가로막으며 비웃음을 던졌다. "청살! 어디를 급히 가느냐?" 마후상인이 웃으며 소매를 흔들자, 피비린내가 풍겼다. 파팍-! 그의 소매 속에서부터 크고 작은 손가락 마디 이십여 개가 떨어져 나와 구름다리 위를 벌겋 게 물들였다. "으으……!" 청살이 기겁을 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흐흐…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네년에게 뇌물을 받아 먹고 길을 터준 배반자들의 손가락 마디이다. 네년은 네년의 일거수일투족이 노부의 감시 아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단 말 이냐?" "호… 호법! 길을 비켜 주십시오!" 청살이 아랫도리를 떨며 우는 소리로 말했다. "흥!" 마후상인이 그녀의 말을 일소에 붙이며 손을 들어 상관안 쪽을 지적했다. "네가 업고 있는 저놈을 죽여야 한다. 저놈이 살아날 경우, 장차 노부의 목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호… 호법! 그렇지 않습니다." 청살이 고개를 내저었다. "흐흐… 일개 하녀가 무엇을 알겠느냐? 네년은 노부가 왜 저놈을 죽이려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저놈은 노부와 총순찰이 감춰야 할 비밀을 알고 있는 놈이다. 그래서 죽이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소교주보다 아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놈이 입 을 함부로 놀릴 경우, 우리들은 죽게 된다. 그래서 후환을 없애려 하는 것이다!" 마후상인이 손을 쳐들었다. 내공을 끌어올린 듯 장심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청살이 비록 고수이나 마후상인에 비할 바 아니다. 청살 같은 고수 열 명이 있다 해도 마후 상인을 당해 낼 수 없다. 그가 손을 내뻗으려는 순간, 청살이 무슨 생각을 한 듯 입술을 질끈 깨어 물었다. "잠깐!" 청살이 왼손으로 상관안의 몸을 고정시키며 오른손을 품안에 넣었다가 금패 하나를 꺼내 들 었다. <제이천녀령부(第二天女令符)> 금패 위에 이런 글이 양각되어 있었다. 천녀교는 신패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낸다. 영패로 명한다면 하급자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으으, 소교주가 그것을 주었군." "제길!" 두 마두가 움찔할 때, 청살이 금패를 거머쥐며 마후상인의 머리 위를 훌쩍 타 넘어갔다. "모두 소교주가 바라시는 일이니, 나를 그냥 놔 두십시오." 청살은 이제 살았구나 여기며 미친 듯 달리다가 구름다리 중간 부위에 이르러 다시 몸을 세 웠다. "쯧쯧……!" 언제 나타났는지 구름다리 중간 부분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회의승려 하나가 있었 다. 바로 미혼관음이었다. "총… 총순찰님!" 청살이 우는 표정을 할 때, 미혼관음이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합장했던 손을 가볍게 풀었다. 그녀의 두 손이 적색(赤色)으로 물든 채 청살 쪽으로 향해졌다. "제… 제발!" 청살이 우는 표정이 될 때, 벽력 같은 강기가 폭사되었다. 우르르르릉-! 강맹한 경력이 쏟아져 나와 청살의 부풀어오른 젖가슴 가운데 핏빛 장인(掌印) 두 개를 만 들었다. 꽝-! "케에에엑……!" 청살의 입술 사이가 벌어지고 내장이 박살난 핏물이 토해지는 가운데 그녀의 몸뚱이가 상관 안의 몸뚱이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악!" "으윽!" 청살의 비명 소리와 상관안의 신음 소리가 한데 뒤섞이며 깊은 벼랑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매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두 사람이 먹물보다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안심이다.' 미혼관음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도 잠깐, 그녀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사부님이 어이해 점점 더 기이한 행동을 하시는 것일까? 원래 기명제자인 나를 두고 이불 지라는 젖비린내 나는 계집을 전인으로 취하시지 않나? 저놈을 살려 두려 하지 않나?' 그녀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사부님의 행동에는 전과 다른 데가 많다. 과거에는 아주 비정한 가운데 모진 면이 계셨고 내게 자상하셨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분은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린 혈홍문주의 딸을 전인으로 택하셨다. 그런 일은 언젠가 풍운(風雲)을 일으킬 일이 아닌가? 사부님이 하시는 일이라 말할 수도 없고… 안타깝기만 하구나.' 미혼관음은 속으로 외치다가 두 사람 있는 쪽을 향해 말했다. "좋은 소식 하나가 있소!" "무엇입니까?" "허허… 어떤 소식인지요?" 두 사람이 허리를 숙이자. "중원무성이 교주님께 천(千) 초(招) 만에 패해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강호 백도고 수들이 속속 봉문(封門)에 들었고, 마도(魔道) 세력들이 본교에 항서(降書)를 내기 시작했다 는 것이오." 미혼관음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삼십 년 한이 한꺼번에 풀리는군요!" "중원무성이 쓰러진 이상, 이제 우리의 적은 없습니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만들며 검은 하늘을 뒤흔들었다. 누군가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야귀(夜鬼)가 회합을 갖는 줄 오해하고 그 자리서 까무러치 고 말았으리라.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