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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은 이렇게 하라./ 고린도전서 11장 17-34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영국에 큰 부흥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동안 평균 4일에 한 번씩 성찬을 받았습니다. 1782년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성찬을 받았습니다. 우리교회는 매달 첫째 주일 예배 시간에 성찬식을 합니다. 제 마음은 더 자주하고 싶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번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찬식을 성만찬 혹은 주의 만찬이라고도 하는데 오늘은 편의상 성찬식으로 통일하겠습니다.
로마 가톨릭에는 7성례가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혼인도 성례라 하고, 임종 직전에 베푸는 성례가 있고, 그리고 견신례라 하는 입교의식도 성례라 하고, 참회하는 의식도 성례라 부르고, 사제서품도 성례라 합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지시하신 것만을 성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는 세례의식입니다. 마 28:19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심고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입니다. 또 하나는 성찬식입니다. 눅 22:19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성찬식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불신자가 신앙에 입문하는 예식이라면 성찬식은 믿는 자의 믿음을 도우며 은혜를 더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식의 유래는 창 14장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창 14:18입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람의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 왕을 비롯한 연합군에게 잡혀갔는데 아브라함이 구출하였습니다. 아브람은 롯을 구출해 오다가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났습니다.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만날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풀어주실 성찬식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락방에 제자들을 불러놓으시고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를 행하여 주님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식은 이후에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 계속해서 지켜오는 예식입니다.
성찬과 관련된 간증입니다. 미국에 사는 패트 노벡이라는 목사님은 한 병원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찾아와서 한 환자를 보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환자는 60대의 존이라는 사람인데,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쇠약해지며 2주 동안이나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존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마음속에 성령께서 강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묻고 성찬을 받게 하라” 목사님이 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인 성찬을 받겠습니까?”,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한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만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감사함으로 성찬을 받아들이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당신에게 들어오셔서 당신이 살아날 것입니다.” 결국 존은 죄를 회개하고 목사님을 통해서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갑자기 그리스도의 영광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마음에 고통과 육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을 중심으로 성찬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랑으로 하라(17-22, 33-34절).
성찬식과 관련된 비극적인 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몇 년 전 부활절 다음 주일에 미국 메인 주 뉴 스웨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예배 후에 약 50명의 참석자가 커피 테이블로 가서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커피가 유독 썼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 몇몇 교인들이 심한 복통을 일으켰고, 그날 저녁 16명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음날 한 명이 죽었습니다.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은 커피 메이커에 다량의 비소가 넣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중직자 한 명이 권총으로 자살했고, 그의 노트에는 자신이 커피에 비소를 넣었다는 글이 남겨져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성찬 테이블에 관한 교인들 간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성찬 테이블을 벽에 붙여놓고 떡과 포도주를 벽을 보면서 들었습니다. 그 모습에 불만을 느꼈던 한 사람이 새로운 성찬 테이블을 기증해서 떡과 포도주를 회중을 보면서 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장로들은 오래 된 성찬 테이블을 그대로 두고 이제까지 하던 대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는 결국 이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잘못된 성찬식과 관련된 극단적인 예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분파가 있었으며, 분파별로 모여서 성찬식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파는 주로 생활수준에 의해서 나누어진 것 같습니다. 본문 22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무슨 내용입니까?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성찬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든지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성찬식을 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성찬식에서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아서 사랑의 예식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부요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듯이 가난한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요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분파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말씀 이전에 상식에서도 어긋납니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봤습니까? 손이 발하고 싸웁니까? 눈이 입하고 싸웁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지체는 항상 하나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가 되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지체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몸 된 교회에 속한 지체끼리 분파가 갈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미워하는 상대가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열리는 것입니다. 마 5:23,24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준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형제와 불목한 것이 생각나면 그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형제를 찾아가서 화해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거나 성찬식을 하기 전에 먼저 불목하고 있는 형제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성찬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회복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회복은 전반적인 회복이어야 합니다. 성찬식도 회복 되어야 합니다. 성찬식의 회복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교우들끼리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2.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라(23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후에 시내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십계명을 말씀하셨고, 그 이후에 제사의 방법, 종의 규례, 사형의 죄, 손해배상법, 성 도덕법, 사회 정의 복지의 법 등을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산에 오르지 못하고 평지에 있었고 장로와 제사장들은 산 위에 까지 올라왔고, 그리고 모세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 후에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12지파를 상징하는 돌기둥을 세우고 청년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번제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표시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짐승의 피 절반을 하나님의 단 위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제단에 뿌리고 남은 짐승의 피를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출 24:8입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 언약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약속을 체결했던 것입니다. 이 언약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서약한 것입니다. 이 언약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리스도인들과 맺은 새 언약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고 하나님은 남은 자들과 새 언약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렘 31:33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약속하신 새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셨습니다. 눅 22:19,20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새 언약의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찬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 언약의 당사자가 되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했던 맹세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과 능력과 인격으로 산다면 우리는 언약의 파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겔 36:27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속에 부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주님과의 언약을 유지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새 언약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새 언약이 유지되게 하십니다. 이것을 신앙으로 받아 드리고 고백하는 것이 성찬의 의미입니다.
바울의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사도들에게서 받은 교훈이 있고 주께로부터 직접 받은 교훈이 있습니다. 사도들에게서 받은 교훈도 성경으로서의 권위에는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바울에게 준 교훈은 사도들이 만들어낸 교훈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 중에 성찬식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23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바울이 성찬식에 대해서 말하면서 주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찬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성찬식을 하는 것은 교회의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성찬식을 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의 원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원리는 모든 일에 적용해야 합니다. 갈 1:10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기뻐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사람들의 요구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대상 10:13입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에서 사울이 죽은 이유를 아주 심플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불순종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명령하십니다. 성경으로, 설교로, 성령의 감동으로, 양심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당사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순종입니다. 사울에게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과 전쟁을 하는데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좋은 것들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무엘 선지자는 삼상 15:2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순종의 원리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찬식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라(24-25절)
노르웨이 어느 시골마을 교회 종탑에는 어린 양의 조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왜 어린양의 조각을 세웠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돈이 부족해서 건축회사에 맡기지 못하고 교인들이 직접 지었습니다. 건축이 마무리 되어 갈 즈음, 한 교인이 교회 종탑을 세우다가 그만 실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 그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그 아래에로 지나던 양떼 위에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양 한 마리가 죽고 그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기념하여 교회 종탑에 어린 양의 조각을 세웠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십자가를 달아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식은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루터의 [교회의 바벨론 감금]이라는 논문에 보면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성찬과 관련된 세 가지 과오를 말합니다. 첫째, 성찬식을 거행할 때 사제들은 떡과 포도주를 다 먹지만 평신도들에게는 떡만 주고 포도주는 주지 않는 당시의 성찬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둘째, 성찬예식을 거행할 때 집례자가 기도하고 나면 성찬상 위에 있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습니다. 셋째, 성찬예식을 매번 행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다고 믿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가 범하는 성찬식과 관련된 과오 중에 두 번째 과오를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화채설을 부정합니다. 저는 기념설과 영적 임재설을 믿습니다. 떡이 주님의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주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이나 목을 추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떡을 떼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고 죄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갈기갈기 찢기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시기 위하여 남김없이 흘려주신 그리스도의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좀 더 발전하면 이 예식은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믿음으로 성찬식을 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십니다.
4.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마음으로 하라(26절).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스페인의 필립 2세의 잔혹함에 반기를 들고 저항했습니다. 그러자 필립 왕은 분노하여 반란자들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필립 2세는 반란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습니다. 필립 왕의 진압군들은 시민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집집마다 찾아 다녔습니다. 몇 사람이 진압군을 피하다가 모퉁이에 있는 한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그 집에 숨어 있는데 진압군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도 얼마 후면 죽을 처지였습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한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저밖에 있는 양을 잡아다가 그 피를 이 마당에 뿌립시다.” 그들은 얼른 양을 잡아다가 양의 피를 마당에 뿌리고 다시 숨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진압군들이 그 집에 오더니 양의 피를 보고는 “여기는 우리 동료들이 이미 다녀갔군.”이라고 하면서 그냥 지나가더랍니다. 이 집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양의 희생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식에는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복음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떡과 잔의 의미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죽으심의 목적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면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구원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의 의미를 알고 주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연하고 마땅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랑 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고 마땅한 일을 하고 자랑하는 것은 맹구나 하는 일입니다.
5. 합당하게 하라(27-32절).
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주의 떡과 잔은 합당하게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땅에 놓고 짓밟는 행위는 단순히 하나의 천 조각을 짓밟는 행위가 아닙니다. 태극기가 상징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세로 참예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CD 한 장을 주었습니다. 내용을 대충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 CD에서는 노화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노화의 원인은 산성노폐물입니다. 그래서 젊음을 유지하려면 산성을 중화시켜야 합니다. 산성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알카리가 들어있는 야채를 먹어야 하는데 우리 몸에 있는 산성을 중화시키려면 엄청난 양의 야채를 먹어야 합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알카리수를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카리수를 먹으면 산성노폐물이 중화되고 배설되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당뇨병은 췌장에 산성노폐물이 쌓여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골다공증은 산성이 뼈에서 칼슘을 빼가서 생기는 병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산성수를 계속 마시기 때문에 현대병에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성수를 마시는 것 때문에 이렇게 몸이 병들게 되는데, 본문에서는 성찬식을 잘못하면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9절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식을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에는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았고 영적으로 자는 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찬식을 합당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까?
①믿음 없이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 없이 행한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합니다(롬14:23).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하지 말든지 회개하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떡은 주님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의미하며 종합적으로 말하면 주님은 십자가라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찬식을 행할 때 주님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②분쟁가운데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성찬이란 거룩한 식사이며 성찬식은 인간이 만든 작품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셔서 시작된 거룩한 예식입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성찬식을 주셨는데, 서로 분쟁 중에 있다면 합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쟁 중에 있는 사람은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③죄 가운데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훌륭한 강해 설교자로 알려진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이렇게 광고를 하셨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세례 교인 이상의 성도들은 모두 성찬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저기 두 자매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음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합니다.” 왜 이렇게 냉정한 광고를 하셨을까요? 첫 번째 자매는 남편과 별거하고 아직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면서 계속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수차례 경고하였지만 그 자매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자매는 혼인도 하기 전에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8절에 보면 자신을 살피고 그 후에야 떡을 먹고 잔을 마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거룩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에 죄악이 들어가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합당하지 못하게 먹고 마시면 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린도 교회 안에 약한 자, 병든 자, 그리고 영적으로 잠자는 자가 적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만 했습니까?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세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함부로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의 몸과 잔을 합당치 않게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을 대하면서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합당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면 회개하고 믿음을 구하십시오. 분쟁 가운데 있다면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 되십시오. 죄 가운데 있다면 자백하시고 돌이키십시오.
여러분이 참여하는 성찬식 위에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 하셔서 새로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찬식은 이렇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성찬식과 관련된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찬식은 이렇게 하십시오.
1. 사랑으로 하라.
2.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하라.
3.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라.
4.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마음으로 하라.
5. 합당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