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8장14-17절『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투 데우)을 받았다(데뎈타이)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아페스테일란)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라보신)를 기도하니(프로슈케)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톤 로곤 투 데우(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다. 데뎈타이(δέδεκται)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시제로서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페스테일란(ἀπέστειλαν)은 아오리스트 세제를 사용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믿음을 완전히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영접기도와 비슷한 개념이다. 말로 주를 영접한 것과 주님을 정말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이다. 말로 영접기도 했다고 해서 주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를 영접하는 것이다. 거듭난 자가 되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지 않은 자는 거듭난 자가 아니며, 주를 영접한 자가 아닌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그 말씀(호 로고스)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 두 사도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곳의 새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안수했으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동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곳 신자들에게도 성령께서 임하셨다. 성령께서는 빌립을 또 다른 이방전도에 사용하셨다. 열두 사도 못지않게 훌륭한 일꾼이었던 스데반이 너무나 일찍 순교한 사실은 교회의 큰 손실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마술쟁이 시몬은 돈을 받고 마술을 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라고 칭송까지 했다. 사도행전 8장 9-11절『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그런데, 시몬이 빌립을 만나서 그가 하는 놀라운 표적을 보게된 것이다.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쫒아내는 능력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빌립이 주는 세례를 받게된다. 시몬은 세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표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도 이런 표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빌립을 열심히 따라 다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베드로가 주는 성령세례를 보게된 것이다. 마술쟁이 시몬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과 놀라운 표적과 능력을 보게 된 것이다. 시몬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돈으로 이런 능력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라보신(λάβωσιν)은 성령을 영접한다는 의미다. 프로슈케는 심령 속에서 임재하는 지성소에 나아가는 기도다. 빌립 집사가 표적을 행하고, 그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성령세례가 없고, 호 로고스의 임재가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가서 거듭남과 호 로고스에 대해서 설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한 것이다. 빌립집사와 베드로, 요한의 차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빌립은 은사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말씀을 받아드리는 신도에게 호 로고스의 임재가 역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마술쟁이 시몬은 세례에 대해서 관심없고, 은사에만 관심을 가졌다. 시몬은 성령 받는 것도 은사를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 돈으로 살려고 한 것이다. 사도행전 8장18-20절『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오늘날도 유사한 모습이 등장한다. 성령을 받게하고, 병 치유와 귀신을 쫒아내는 축사를 하는 모임이 등장한다. 그들은 결국 회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헌금을 내게 한다. 그들은 행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므로 그 헌금으로 사용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초대 교회 당시 성령세례를 주고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쫒아내는 집회를 하고 헌금을 하게했다는 말이 없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이런 표적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돈과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베드로는 돈으로 성령의 능력을 사려고 한 마술쟁이 시몬에게 사도행전 8장 21-23절에서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엔 토 로고)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엔 토 로고( ἐν τῷ λόγῳ)은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이라는 의미다. 시몬의 은사에 대한 바른 마음을 갖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은사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값없이 얻는 것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한 것이다. 엔 토 로곤은 도가 아니라,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의미다. 도는 다른 종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시몬은 베드로의 말에 두려움으로 말한다. 사도행전 8장 24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베드로가 강하게 비난하자 마술쟁이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은사에 대해서 시몬처럼 오해하고 있는 자들이다. 은사를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여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은사는 성령세례 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호 로고스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개념을 가진 자들이 그런 은사를 마치 큰 권능을 부여받은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은사는 하나님이 그 성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그 성도는 은사의 통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