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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왕룽은 은전 두 닢을 꺼내어 사백리 길의 차비를 치뤘는데 그것을 받은 차장은 거스름 돈으로 동전 한줌을 쥐어 주었다. 다음 정거장에 기차가 정거하니 여러 가지 장사치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빵 네 개와 딸 아이를 먹일 죽 한 그릇을 샀다. 이 몇 달 동안 그들은 한 번도 이런 맛난 것을 먹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입에 넣고 보니 식욕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해서 간신히 먹였다. 그러나 늙은이만은 이도 없는 잇몸으로 끈기 있게 우물거렸다. "아무래도 사람은 그저 먹어야 해." 늙은이는 옆의 사람들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건넸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여러 사람의 어깨가 서로 마주 부딪쳤다. "오랫동안 먹질 않았더니 내 밥통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아무튼 이 밥통을 움직이게 해야지. 그렇다고 죽을 수야 있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는 늙인이에게 눈길을 모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왕룽은 돈을 아껴 썼다. 남방에 도착하여 움막을 지을 거적이라도 사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살 만큼 남기고 먹을 것을 사 먹기로 했다. 찻간에는 남방에 처음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해마다 남방 도시에 가서 노동을 하고 구걸하여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차란 괴물과 창 밖으로 휙휙 달아나는 풍경에 눈이 익숙해진 왕룽이 비로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을이기 시작했다. 남방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낯선 고장의 이야기를 자랑삼아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우선 거적을 여섯 장 사야 되죠." 하고 한 사나이가 말했다. 입이 낙타 주둥이같이 생긴 험상궂은 사내였다. "거적 한 장에 동전 두 닢씩이에요. 그렇지만 그것도 영리해야 돼요. 시골뜨기 같이 보이면 세 닢을 줘야 하니까요. 그런 것을 잘 알아서 사야 된단 말예요. 나는 잘 알아요. 나는 이래뵈도 그곳 사람들이 얕보지는 못해요. 부자들도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여러 사람들을 한바퀴 휘둘러보았다.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왕룽은 얼른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오?" 하고 재촉해서 물었다. 이 찻간은 나무 궤짝 같았다. 의자도 없는 마룻바닥에서 바람과 먼지가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왕룽은 맨바닥에 앉아서 여심히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고는......" 사나이는 더욱 언성을 높여 가며 말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바닥 밑에서 울리는 진동이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거적으로 움막을 짓고는 거지가 되는 거요. 얼굴에다 진흙이다 검정을 발라 될 수 있는 대로 불쌍하게끔 보이도록 하고 구걸하는 거지요." 왕룽은 아직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도회의 낯 모르는 사람에게 구걸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다. "꼭 구걸을 해야 하나요?" 그는 몇 번이나 재차 물었다. "그럼요." 입이 낙타 주둥이 같은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설명했다. "그렇지만 구걸도 배가 부른 다음에 하는 거요. 남방 도회엔 쌀이 흔해서 아침마다 공설 식당에 가서 동전 한 닢만 주면 쌀 죽을 배불리 먹을 수 있소. 그리고 나서 구걸을 해 가지고 두부나 배추나물 등을 사면 살아갈 수 있죠." 왕룽은 그들에게서 뒤편으로 약간 물러나 돌아앉아서 허리춤에 넣어둔 동전을 세어 보았다. 거적을 여섯 장 사고 온 식구가 쌀 죽 한 끼씩을 사 먹어도 동전 세 닢이 남는 셈이었다. 이만하면 새 살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그러나 그릇을 들고 이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면서 구걸질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었다. 늙은 아버지나 아이들이나 그의 아내 같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는 그래도 성한 사지가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일거리는 없나요?" 하고 왕룽은 돌아앉아 그 남자에게 물었다. "뭐? 일거리요?" 하고 그 사내는 왕룽을 멸시하듯 말하고는 찻간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그야 당신이 하고 싶다면 인력거라도 끌 수 있지요. 번지르르한 부자 사람들을 태워 가지고 한참 달리면 땀이 나고, 또 손님을 기다리노라면 그 땀이 얼어서 얼음 옷을 입은 것같이 돼요. 나 같으면 차라리 비럭질을 하겠소."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못마땅한 듯이 중얼거렸기 때문에 왕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을 들어 둔 것이 왕룽에겐 도움이 되었다. 기차가 도착하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남방 땅애 내린 왕룽은 이미 모든 계획이 서 있었다. 정거장을 나서니 웅장한 집들을 둘러싼 석벽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왕룽은 아버지와 두 아들을 석벽 밑에 앉혀 놓고 아내더러 지키라고 하고는 거적을 사러 나섰다. 그러나 어디서 파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방 사람들의 말씨가 어찌나 빠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거듭 물으니 그들은 짜증을 내었다. 남방 사람들은 성미가 급했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서 묻기로 했다. 마침내 그는 시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찾아내었다. 왕룽은 거적 값을 잘 아는 사람처럼 동전을 척 내주곤 거적 여섯 장을 사서 걸머졌다. 가족을 남겨 둔 곳으로 돌아오니 그들은 그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늙은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이상한 듯이 구경을 하다가 아들이 돌아오자 입을 열었다. "너도 알았겠지만 남방 사람들은 모두 살이 토실토실 쪄 있구나. 살결이 희고 기름기가 번지르르한 것이, 매일같이 돼지고기로 포식을 하나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왕룽의 가족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거리를 분주하게 오갈 뿐이었다. 거지 곁에 발을 멈추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따금 나귀 떼가 그 작은 발로 자갈을 밟으며 자박자박 지나갔다. 나귀들은 벽돌이나 곡식 포대들을 등에 얹고 있었다. 그런 나귀들마다 맨 뒤의 한 필에는 마부가 타고 큰 채찍을 내두르며 소리를 쳤다. 휙휙하고 채찍을 내두르는 소리가 났다. 마부들은 왕룽의 곁을 지날 때마다 거만스럽고도 모욕을 주는 느낌이었다.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는 왕룽 가족에게 초라한 작업복을 입은 마부들은 어떤 귀공자나 신사 못지않게 거드름을 피우며 지나갔다. 그들은 왕룽이나 그 식구들의 차림새로 멀리서 온 시골뜨기란 것을 짐작하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익살스럽게 왕룽 가족의 머리 위로 말 채찍을 휘둘러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마부들은 그 일이 재미있는 듯이 낄낄 웃었다. 왕룽은 이런 일을 두서너 번 당하자 그만 화가 나서 움막 장소를 다른 데로 옮기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기대 서 있던 기다란 잿빛 석벽을 따라 거지 움막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담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잿빛 돌로 쌓인 높은 담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밑에 마치 개 등에 붙은 벼룩처럼 움막들이 붙어 있었다. 왕룽은 다른 움막을 자세히 살펴보곤 그대로 본뜨려 했으나 좀처럼 그대로 되지 않았다. 거적은 갈대를 베어서 만든 것이라 다루기가 무척 거북살스러웠다.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아서 맥없이 서 있으려니까 오란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내가 하죠. 어릴 때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오란은 아이를 땅에 내려놓고 거적을 이리저리 다루더니 동그란 움막을 지었다. 한복판은 앉아도 머리가 닿지 않을 만하고 땅바닥에 드리워진 거적 끝은 벽돌을 주워다가 날리지 않게 눌러 놓았다. 움막이 완성되자 오란은 안으로 들어가서 남은 거적을 바닥에 깔았다. 이 안에 들어 앉아 있으면 비바람은 넉넉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앉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니 멀리 수백 리 떨어져 있는 고향일이 꿈만 같았다. 이렇게 먼 길을 걸어서 왔더라면 몇 주일은 걸렸을 것이고 또 도중에 누군가가 죽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굶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볼 수 없는 도회의 광경에 그들의 마음은 안정되었다. "자 공설 식당을 찾아가자." 하는 왕룽의 말에 모두 신이 나는 듯이 기운차게 일어나 움막을 나섰다. 아이들은 이제 곧 먹게 된다는 기쁨에 젓가락으로 그릇을 두들기면서 우쭐거렸다. 이 높고 긴 돌담에 움막이 많은 이유를 그들도 알아차렸다. 그것은 공설 식당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 긴 돌담 북쪽 끝을 지나서 조금만 가면 다른 큰 길이 나왔다. 그 길에는 많은 빈민들이 사발, 바가지 따위들의 빈 그릇을 들고 웅성거렸다, 모두 공설 식당으로 몰려가는 빈민들이었다. 왕룽 일행도 그 행렬에 들어서서 밀려가니 거적으로 얽은 큰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 집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집 속엔 왕룽이 처음 보는 굉장히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작은 연못처럼 큰 솥이었다. 그런 솥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커다란 나무 뚜껑을 열어젖히니 흰 죽이 부글부글 끓고 구수한 냄새와 구름 같은 김이 솟아올랐다. 이 구수한 쌀죽 냄새는 그들이 살아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고함을 치고 여자들은 아이들이 밟힐까 봐 악을 쓰고 어린애들은 큰 소리로 울어 댔다. 큰 나무 뚜껑을 열던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죽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차례대로 들어오시오."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배고픈 사람들에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들은 먹을 것을 받을 때까지 짐승같이 사나웠다. 그 속에 휩쓸린 왕룽은 아버지와 아이들을 놓치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만도 힘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 가마솥 앞까지 밀려왔다. 왕룽은 커다란 그릇을 불쑥 내밀고 죽을 받곤 동전 한 닢을 내어 주었으나 그동안 죽을 흘리지 않으려고 몸을 가누기도 지극히 힘이 들었다. 그들을 거리로 빠져 나와 길가에 선 채로 먹었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조금 남았다. "남은 것은 집에 갖다 두었다가 저녁에 먹자." 하고 왕룽은 그릇에 조금 남은 것을 보고 말했다. 그러나 푸르고 붉은 제복을 입은 경비원인 듯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건 안돼. 뱃속에 넣은 것 이외에는 가져갈 수 없어." "뭐라구요? 내가 돈 주고 산 건데 먹고 가건 가져가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그 사람은 설명했다. "이곳의 규칙을 모르는 모양이군. 동전 한 닢에 그렇게 많이 주는 곳이 어디 있어! 이 죽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나누어 주는 건데...... 이 죽을 사 가지구 가서 돼지를 먹인단 말이야. 그래서 절대로 가져가진 못해.' 왕룽은 이 말을 듣자 어안이벙벙했다. "아니, 그런 놈이 다 있어요?" 그리고 또 계속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렇게 나누어 주는 거요?" "이건 이 도시의 부자 양반들이 하는 건데, 그분들은 이렇게 해서 죽은 뒤에 극락에 가려는 이도 있고 또 세상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받기 위해서 하는 이도 있지." "아무튼 훌륭한 일이오. 그 중엔 부처님 같이 어진 맘으로 도와주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사나이는 왕룽 따위는 더 상대하기가 귀찮다는 듯이 돌아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들이 빨리 돌아가고자 왕룽의 옷깃을 잡아당겼기 때문에 모두 이끌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올 여름 이후론 처음으로 온 가족이 배불리 먹었다. 배가 부르니 온몸이 노곤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가족들은 움막에 들어가 눕기가 무섭게 이튿날 아침까지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에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으로 공설 식당에서 끼니를 이었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결심한 왕룽은 아내의 의견을 묻기 위해 오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황폐한 들판에서 오란을 바라볼 때처럼 절망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이 도시에는 굶주리는 사람은 더이상 없는 것이다. 시장에는 고기도 있고 채소도 있다. 생선 시장엔 살아 있는 고기가 물에 담겨 있지 않은가! 아무튼 굶어 죽진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돈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오란은 이런 도시 생활에 익숙한 듯이 자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나와 아이들은 구걸을 할 수 있어요. 아버님도 할 수 있어요. 내겐 주지 않더라도 저런 백발 노인에겐 마음이 움직일 거예요." 말을 마치자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난 다음인지라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오가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자아, 이리들 오너라. 둘 다 밥그릇으로 이렇게 드는 거야." 오란은 빈 그릇을 손에 들고 앞으로 나서면서 처량한 음성으로 흉내내 보였다. "서방님, 마님, 적선합시오. 이 배고픈 어린 것들에게 적선합시오." 아이들은 기가 막히는 듯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왕룽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디서 저런 시늉을 배웠을까? 아내의 지난날은 자기도 모르는 처참한 시절이 있었던가! 왕룽은 가슴이 쓰리도록 아팠다. 오란은 왕룽의 말없는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렇게 살아 본 일이 있어요. 이런 흉년에 내가 남의 종으로 팔려가던 그때 말예요." 이때 누워 있던 늙은이도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늙은이에게도 빈 밥그릇을 들려 주었다. 네 식구는 거리로 나서서 구걸을 시작했다. 오란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길 가는 사람에게 밥그릇을 내밀었다. 그는 딸 아이의 머리를 늘어지게 안았다.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잠든 아이의 머리가 흔들렸다. 오란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아이를 보이면서 슬픈 음성으로 구걸을 하는 것이었다. "거룩하신 마님! 이 애가 굶어 죽어 갑니다. 제발 적선합쇼." 실상 아이의 머리가 굶어 죽어 가는 모양으로 축 늘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에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몇 개의 동전을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구걸하는 것이 곧 장난처럼 생각된 모양이었다. 큰 놈은 부끄러워서 애걸하다가 웃기까지 했다. 이것을 오란은 움막으로 불러들여 뺨을 호되게 때리며 윽박질렀다. "너희들이 굶어 죽겠다고 하면서 웃는단 말이냐." 오란은 손이 아프도록 아이들을 때렸다. 아이들 눈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란은 우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쫓으며 말했다. "그 우는 꼴을 하고 구걸을 해야 돼. 또 웃기만 해 봐라. 아주 혼낼 테니......" 왕룽은 거리로 나가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간신히 인력거를 세놓는 집을 찾았다. 하루치 세로 은전 반 냥을 저녁에 치르기로 약속하고 인력거 한 대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다 낡은 바퀴가 달린 인력거를 끌고 거리로 나서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쟁기를 멘 소처럼 인력거 채를 잡았다. 그는 손이 매우 어색했으므로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인력거꾼들은 사람을 태워 가지고 잘도 달렸다. 그도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는 가게가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달리는 연습을 해 보았다. 힘이 들었다. 구걸질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집 현관에서 노인이 나와서 그를 불렀다. 안경을 썼는데 차림으로 봐서 학자 같았다. 처음에 왕룽은 인력거를 끄는 것이 처음이라서 달릴 수가 없다고 변명했으나, 노인은 귀가 먹어서 듣지를 못했다. 그는 태연히 다가서며 앞채를 내리게 하고 그냥 올라 앉았다. 왕룽은 손님이 귀머거린 줄 알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차림이 훌륭한 나이 많은 학자인지라 그이 말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점잖게 앉아 말했다. "향교로 가세." 노인은 태연하고 침착했다. 그 점잖은 태도는 왕룽에게 더 이상 입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인력거꾼처럼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그는 향교가 어느 편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달리면서 몇 번이나 길을 물었다. 길이 어떻게나 복잡한지 광주리를 이고 물건 팔러 다니는 장사치, 장거리에 가는 여인네, 말을 몰고 가는 마부들 그리고 왕룽과 같이 인력거 끄는 사람들이 수없이 오갔다. 그는 그들와 부딪칠까 봐 조심스러워 마음놓고 달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솜씨가 없어 차체도 덜커덩거려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었다. 그는 무거운 짐은 질 수 있게 단련되었으나 이렇게 차를 끌기는 힘이 들었다. 향교가 보일 즈음에는 벌써 양팔이 빠질 듯이 아프고 손에 물집이 생겼다. 괭이를 잡던 손자리는 인력거채를 잡는 손자리와는 달랐던 것이다. 향교 문앞에서 인력거를 멈추니, 천천히 인력거에서 내린 노인은 풍속에서 작은 은전 한닢을 꺼내 주며 말했다. "난 이보다 더 준 일이 없으니 아무 말 말고 받아." 노인은 몸을 돌려 향교 안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왕룽은 이런 은전을 본 일이 없었다. 동전으로 셈하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옆의 쌀집에 가서 동전으로 바꾸니 스물여섯 닢이었다. 이 남방 도시에선 얼마나 돈벌기가 쉬운 것이냐고 그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그때 가까이 있던 다른 인력거꾼이 돈 세는 것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겨우 스물여섯 푼이오? 그 손님을 어디서 태웠기에?" 왕룽의 대답을 들을 그 인력거꾼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참 인색한 늙은이로군! 반 값도 안 주었어. 처음에 얼마 받기로 하고 태웠소?" "정하지 않았소. 그저 부르기에 태웠죠." 그 사나이는 가엾은 듯이 왕룽을 쳐다보면서 옆의 사람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이런 바보 좀 봐. 돼지 꼬리가 그냥 달린 시골뜨기야!" 그는 한바탕 웃곤 다시 지껄여 댔다. "부른답시고 값도 정하지 않고 태우는 바보가 어디 있어. 이 바보야, 정하지 않고 태울수 있는 건 서양 사람들 뿐이야. 놈들은 성질이 급하지만 그래도 돈을 깎진 않아 돈을 물 쓰듯이 쓰니까." 듣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소리를 내어 큰 소리로 웃었다. 왕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런 도회지에선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가 죽었다. 그는 아무 말도 않고 인력거를 끌고 나섰다. "그렇지만 이 돈만 있어도 내일 하루쯤은 아이들 밥거리는 될테니까." 그는 속으로 어깨를 으쓱했으나 문득 인력거 세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녁이면 줘야 할 텐데 이것으로는 절반도 안 되었다. 그는 아침 나절에 또 한 사람을 태웠다. 이번엔 값을 정하고 태웠다. 오후에는 두 사람을 태웠으나 저녁때 차세를 치르고 나니 그의 손에는 동전 한 닢밖에 남지 않았다. 고향에서 가을 추수를 하는 것보다 고되게 일하고 동전 한 닢밖에 얻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느 가족이 기다리는 움막으로 돌아가며 고향 생각을 했다. 하루 동안 고향에 땅이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그는 오늘 이렇게 신기롭게 쓰라린 경험을 하고 보니 멀기는 하지만 그의 고향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란은 그날 하루에 엽전 마흔 닢을 벌었다. 동전으로 셈하면 다섯 닢도 못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큰 놈이 쇠전 여덟 닢, 작은 놈이 열세 닢을 벌었다. 전부 합하면 내일 아침 죽 값은 넉넉했다. 그것을 한데 합치려고 하니 작은 놈이 악을 쓰며 울었다. 잘 때도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죽 값을 치를 때에는 비로소 자기 몫으로 내놓았다. 늙은이는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온종일 하라는 대로 길바닥에 앉아 있었으나 애걸하지는 않았다. 그는 졸기만 하다가는 눈을 떴을 때엔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조차 싫증이 나면 또 졸았다. 늙은이라고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는 빈 자기 밥그릇을 내어 놓으며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난 밭을 갈고 씨앗도 뿌리고 추수도 힘껏 했다. 그리고 아들도 키우고 손자도 있지." 그는 아들이 있고 손자도 있으니 그들이 당연히 먹여 줄 것이라고 어린 아이처럼 믿고 있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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