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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 한문소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2010. 7. 6. 19:32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해설】
조선 초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단편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기자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평양을 배경으로 하여 한 남자 상인과 죽어서 선녀가 된 기자(箕子)의 딸 사이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사랑과 고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의 정을 진하게 담은 일종의 애정소설이다. 구조 유형상 ‘명혼소설(冥婚小說)’ 또는 ‘시애소설(屍愛小說)’이라고도 부른다.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함께 어울렸다는 점에서는 명혼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만남이 꿈 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 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관련된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켰다.
【개관】
▶작자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연대 : 세조
▶갈래 : 고전소설, 한문소설, 명혼 소설, 전기소설, 애정 소설, 시애소설
▶성격 : 도교적, 전기적, 낭만적, 비극적, 환상적, 신선사상이 바탕이 됨.
▶제재 : 남녀 간의 사랑
▶요지 : 송도 아생(李生)이 부벽루에서 고조선시대 기씨녀(箕氏女)와 창수(唱酬)함
▶주제 : 수천 년전의 기씨 여인과의 사랑,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
▶출전 : <금오신화(金鰲新話)>
【특징】
한시가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고, 도가적인 취향과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시애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작품은 기자 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평양을 배경으로 하여 부호가의 아들 홍생과 죽어서 선녀가 된 기자의 딸 사이에 이루어진 정신적인 사랑과 고국의 흥망에 대한 회고의 정을 진하게 담은 일종의 애정 소설이다.
【취유부벽정기의 우의성(寓意性)】
기자왕이 위만에서 나라를 빼앗긴 것은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것과 유사하다. 즉 홍생이 기자왕의 딸을 사모한 것은 단종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이 이 작품을 수양 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역사적 사건을 빗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주인공이 선계로 승화한 것을 현실도피로 보고 작자의 현실주의적 사상과의 정신적 갈등을 반영한다고 고는 견해가 있다.
【구성】- 4단 기승전결 구성, 단순 구성
▶기 : 홍생이 평양으로 유람을 갔다가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는 시를 읊음
▶승 : 홍생의 시를 듣고 온 기자왕의 딸로서 수정궁의 상아가 된 선녀와 시를 주고 받음
▶전 : 선녀는 하룻밤을 지낸 후 승천하고, 선녀를 못 잊은 홍생은 상사병에 걸림
▶결 : 홍생은 선녀의 시녀를 꿈에서 만난 후, 세상을 떠남.
【줄거리】
『개성의 상인 홍생(洪生)이 달밤에 술에 취하여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가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는 시를 지어 읊었다. 한 아름다운 처녀가 나타나 홍생의 글재주를 칭찬하면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홍생이 처녀와 시로써 화답하며 즐기다가 신분을 물었다. 처녀는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딸로서 천상계에 올라가 선녀가 되었다. 그런데 달이 밝자 고국 생각이 나서 내려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기씨녀는 홍생의 청을 받고 긴 시 한수를 더 읊었다. 그 내용은 자기들의 사랑의 아름다움과 고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에 기씨녀는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사라지고 홍생은 귀가하여 기씨녀를 그리워하다가 병이 들었다. 어느 날 홍생은 기씨녀의 주선으로 하늘에 올라가게 된다는 내용의 꿈을 꾸고 세상을 떠났다.』
『송도 부호의 아들 홍생(洪生)이 유람을 겸한 장사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부벽정(浮碧亭) 아래에 이르러, 정자 위로 올라가서 난간을 의지하고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시를 지어 낭랑히 읊고는 삼경(三更)이 되어 돌아가려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홍생은 영명사의 중이 찾아오는가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한 미인이 좌우에 시녀를 거느리고 비단 부채를 들고 나타나는데, 그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숙하여 마치 귀족 집안의 처녀 같았다고 하거니와, 홍생이 시녀의 내영(來迎)을 받아 누상으로 올라가서 그 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미인의 신분은 은왕의 후예요, 기자왕의 딸로서, 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로 정절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데, 신선이 된 선조(先祖)가 나타나 불사약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수정궁의 상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홍생이 부벽류에서 그 선녀와 하룻밤을 지내며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부르다가 날이 새자 그 선녀는 승천하고, 홍생은 집에 돌아와 그 선녀를 생각하며 사모하던 끝에 병이 걸렸는데, 그 선녀의 시녀가 나타나, "우리 아가씨가 상제(上帝)께 아뢰어 견우성(牽牛星) 막하(幕下)의 종사(從事)를 삼았으니 올라 오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 난 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분향하고 누웠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빈장(嬪葬)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송도 부호의 아들 홍생이 유람을 겸한 장사를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휘흥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부벽정 아래에 이르러, 정자 위에 올라가서 난간을 의지하고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며 시를 지어 낭랑히 읊고 삼경(三更)이 되어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들려온다.
홍생은 영명사의 중이 찾아오는가 생각했으나, 뜻밖에도 한 미인이 좌우에서 시녀를 거느리고 비단 부채를 들고 나타나는데, 그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정숙하여 마치 귀족 집안의 처녀 같았다고나 하거니와, 홍생이 시녀의 내영(來迎)을 받아 누상(樓上)으로 올라가서 그 미인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미인의 신분은 은왕의 후예요, 기자왕의 딸로서, 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로 정절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데, 신선이 된 선조가 나타나 불사약을 주어 그 약을 먹고 수정궁의 상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홍생이 부벽루에서 그 선녀와 하룻밤을 지내며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부르다가 날이 새자 그 선녀는 승천하고, 홍생은 집에 돌아와 그 선녀를 생각하며 사모하던 끝에 병에 걸렸는데, 그 선녀의 시녀가 나타나, "우리 아가씨가 상제께 아뢰어 견우성 막하의 종사를 삼았으니 올라오라."고 일러 주는 꿈을 꾸고 난 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분향하고 누웠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빈장(嬪葬)한 지 몇 달이 지나도 안색(顔色)이 변하지 않았다.』
【감상】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5편 중 한 단편으로 같은 금오신화 내의 작품인 '만복사저포기'가 불교적이요, '이생규장전'이 유교적이라면, 이 작품은 도교적으로, 도교의 중심 사상은 신선사상인데, 이와 같은 신선담을 표현한 것은 작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선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평양(平壤)의 부벽루(浮碧樓)에서 선녀와 더불어 논 이야기로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작자는 이 작품 속에서 기자(箕子)를 들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의 처사를 은연중 비난하였고,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어울렸다는 점에서 명혼(冥婚)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정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시애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평양을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토속적인 성격 및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제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작자의 작품인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및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과 동일하다. 정신적인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구별된다.
<취유부벽정기>는 불의와 폭력에 의하여 정당한 삶과 역사가 좌절되는 아픔을 표현한 작품이어서 짙은 우수가 서려 있다. 귀가한 주인공이 기씨녀를 그리워하다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어 작품이 비극적 성격을 지니나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함으로써 그러한 성격이 다소는 약화되어 있다.
<취유부벽정기>의 해석과 평가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엇갈려 있다.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역사적 사건의 우의(寓意)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선녀와의 연애 및 선계로의 승화를 현실도피로 보고 그것은 작자의 현실주의적 사상과 모순되는 것이기에 작품은 결국 작자의 정신적 갈등을 반영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모순에 찬 세계를 개조해서 세계와 화합하려는 자아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세계의 대결을 통하여 소설적 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취유부벽정기>를 도가적(道家的) 문화의식의 투영으로 해석하여 작품에 나타난 갈등을 동이족(東夷族)의 문화적 우월감과 함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극렬한 반존화적(反尊華的) 민족저항의 분한(憤恨)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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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다. 은(殷)을 이기고 주(周)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방문하였을 때, 기자가 홍범(洪範) 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으므로 무왕은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으나 신하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곳의 명승 고적으로는 금수산(錦繡山), 봉황대(鳳凰臺), 능라도(綾羅島), 기린굴(麒麟窟), 조천석(朝天石), 추남허(楸南墟) 등이 있는데, 영명사(永明寺)의 부벽정(浮碧亭)도 그 중의 하나였다.
영명사는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구제궁(九梯宮)이었다. 이 절은 성 밖 동북쪽 20리쯤 되는 곳에 있는데, 굽이굽이 흘러가는 긴 강을 옆으로 하고 앞으로는 평원을 바라보매 아득하기 가이없으니, 참으로 승경(勝境)이었다. 날이 저물어 그림 그린 상선(商船)들이 대동문(大同門) 밖에 있는 유기(柳磯)에 닿으면 사람들은 으레 강물을 따라 올라와 이곳을 구경한 후에 돌아가곤 하였다.
부벽정 남쪽에는 돌로 된 사닥다리가 있는데, 왼쪽은 청운제(靑雲梯), 오른쪽은 백운제(白雲梯)라 한다. 돌에다 글자를 새기고 화주(華柱)를 세워 구경꾼들의 흥미를 끌었다. 정축년(丁丑年)에 개성에, 사는 부호가의 아들 홍생(洪生)이 있었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비록 나이는 어리나 글을 잘하였다. 홍생은 팔월 한가위날을 맞아 면사(綿絲)를 사려고 친구들과 함께 평양장에 포백(布帛)을 싣고 와서 강가에 배를 대었다. 성중(城中)에서 구경나온 기생들이 홍생을 보고 모두 눈짓을 하였다.
때마침 성중에 사는 홍생의 친구 이생(李生)이 잔치를 벌여 홍생을 환영하였다. 술이 취한 뒤 배로 돌아갔으나 밤은 서늘하고 졸음도 오지 않았다. 문득 옛날 당(唐)나라의 시인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를 연상하며 맑은 흥취를 진정하지 못하여 작은 배를 불러 달빛을 가득 싣고 노를 저으면서 강물을 따라 올라가 곧 부벽정 밑에 이르렀다. 홍생은 뱃줄을 갈에 매어두고는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가 난간에 비겨 시를 낭랑히 읊었다.
때마침 달빛은 환하고 물결은 흰 비단 같아 청학과 기러기의 울음 소리를 듣자 마치 하늘 위 옥황님이 계신 곳인 듯싶었다. 한편 옛서울을 돌아보니 내 낀 외로운 성에 물결만 철썩거릴 뿐이었다. 그는 고국(故國)의 흥망을 탄식하며 여섯 수의 시를 잇달아 읊었다.
부벽정 높은 곳에 홀로 올라 읊으니
구슬픈 강물 소리는 애끊는 듯하여라.
고국이 어디런고 영웅은 간 곳 없고
황성(荒城)은 지금까지 봉황의 얼굴이라.
모래에 달빛 희니 기러기는 아득하구나.
숲속엔 내 걷히어 반딧불이 날고있네.
인사(人事)는 변천하여 풍경조차 쓸쓸하다.
한산사(寒山寺) 깊은 곳에 종소리만 들려오네.
님 계신 구중 궁궐 가을 풀만 쓸쓸한데
갈수록 아득해라 높은 바위 구름길은
청루(靑樓)는 어디 있나 변화는커녕 자취도 없고
담 너머 희미한 달 찬 까마귀 우지진다.
풍류는 간데 없어 진토만 남았도다.
적막한 외로운 성에 가시가 덮여 있네.
어즈버 물결 소리 의구히 울어 옐 제
주야로 쉬지 않고 깊은 바다 향하누나.
쪽(藍)처럼 푸르도다 대동강 굽이굽이
슬프다 천고 흥망 한한들 어이하리.
금정(金井)에 물 마르고 담쟁이만 드리웠네.
석단(石壇)엔 이끼 낀 채 능수버들 늘어졌네.
타향의 좋은 풍월 한없이 시만 읊고
정든 고국 생각에 술이 건들 취하누나.
달빛이 밝은 탓인가 졸음조차 아니 오고
계수 그늘 밤 깊은데 매운 향내 풍겨 온다.
오늘이 한가위라 저 달빛은 곱구나.
외로운 옛 성터를 바라볼수록 슬프도다.
기자묘(箕子廟) 뜰 앞에는 늙은 숲이 우거지고
단군사(檀君祠) 벽 위에도 담쟁이가 얽히었네.
영웅은 자취 없어 어디로 돌아갔느뇨.
초목만 의희(依稀)한데 몇 해나 되었더냐.
옛날이 더욱 그립구나 둥근 달만 의구하도다.
맑은 빛이 흘러흘러 객의 옷에 비치네.
동산에 달 뜨거라 잠든 오작 왜 나느냐.
깊은 밤 찬 이슬은 나의 옷에 함초롬
문물은 천년이라 옛모습은 간데 없고
산천을 변천하여 허물어진 성뿐이라.
하늘에 오르셨는가 님은 아니 돌아오고
인간에 끼친 얘기 무엇으로 증거하리.
누런 수레 기린 타고 가신 자취 아득하다.
풀 우거진 옛길 위에 홀로 가는 저 선사(禪師)야.
찬 이슬 내렸으니 온갖 초목 다 지겠다.
청운교냐 백운교냐 우뚝우뚝 솟았구나.
수나라 사졸들은 여울에서 구슬피 우는구나.
가을 매미 울음 소리 동명왕의 넋이런가.
옛길에 내 끼고 수레 소리 간데 없네.
푸른 솔 우거진 곳 늦은 종만 처량하다.
높이 올라 읊으련만 뉘라서 화답하리.
바람 맑고 달빛 흴 때 흥만 겨워하노라.
홍생은 시를 다 읊고 난 뒤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한 구절을 읊을 때마다 슬픈 뜻을 걷잡지 못하여, 비록 퉁소와 노래의 유창한 화답은 없다 하더라도, 구슬픈 운율은 넉넉히 깊은 물에 잠긴 용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에 실린 과부를 울릴 만하였다.
어느덧 밤이 깊어 돌아오려 할 때에 서쪽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홍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절에 있는 중이 찾아오는 것이겠지?'
그러고는 앉아서 기다리니 뜻밖에도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을 두 아이가 좌우에서 모시고 따르는데, 한 아이는 옥 파리채를 들었고 다른 아이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의 위의(威儀)는 정제하고 그 몸가짐이 귀족집 처녀 같았다.
홍생은 뜰 아래로 내려가 담 틈에 비껴 서서 그녀의 태도를 엿보았다. 그 여인은 남헌(南軒)에 기대 서서 달빛을 바라보며 곱게 시를 읊는데, 그 풍류와 기상이 매우 얌전했다. 시녀가 비단 방석을 펴니 여인은 다시금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방금 시 읊는 소리가 났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버렸소? 나는 요물이 아닙니다. 다만 좋은 저녁을 맞이하여 구름 없는 하늘에 달이 둥실 솟고 은하수 맑은 가에 백옥루(白玉樓) 차디찬데 계수 그림자 비낀 이때 한잔 마신 후에 읊어서 그윽한 회포를 풀어 이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홍생은 한편으론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여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이내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여인은 곧 시녀를 시켜 그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아씨 명령을 받들어 모시러 왔나이다."
홍생은 시녀를 따라서 그녀의 앞에 가 예를 드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여인은 별로 공손한 태도도 보이지 않고 시녀를 시켜서 낮은 병풍으로 앞을 가려 단지 얼굴 반쪽만 서로 보일 정도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까 그대가 읊은 시는 무엇을 의미한 것입니까? 의아하게 생각지 말고 나에게 다시 들려주세요."
홍생은 그 시를 빠짐없이 다시 들려주었다. 여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와는 시를 논할 만하구려."
곧 시녀를 시켜서 술을 주는데, 차려놓은 모든 음식이 인간의 것과 같지 않아 먹으려 해도 딱딱하고 술맛 역시 쓰기만 하여 마실 수가 없었다. 여인은 한번 빙긋이 웃으면서 시녀에게 명하였다.
"그대는 속세에 살던 선빈데 어찌 백옥례(白玉醴)와 홍규포(紅 脯)를 알겠습니까. 얘야, 빨리 신호사(神護寺)에 가서 절밥을 조금만 빌려오너라."
시녀가 얼른 절밥을 얻어왔으나 간장이 없는지라 또 시녀를 시켜 주암(酒巖)에 가서 간장을 얻어오게 하였더니, 얼마 안 되어서 잉어적을 가지고 왔다. 홍생이 그 음식을 먹는 동안 그 여인은 홍생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계전(桂箋)에 써서 시녀를 시켜 홍생에게 건넸다.
부벽정 오늘 저녁 달빛은 더욱 밝구나.
한없는 맑은 얘기 느낌이 어떻더냐.
의희한 나뭇빛은 푸른 일산(日傘)처럼 퍼져 있고
고요히 이는 강물은 흰 비단을 둘렀는 듯
광음(光陰)은 흘러흘러 비조(飛鳥)같이 빠르거늘
세사(世事)는 속절없어 놀란 물결 무상해
이날 밤 깊은 정회(情懷) 뉘라서 알쏘냐.
깊은 숲 풍경(風磬) 소리 한 소리 또 한 소리.
옛성을 바라보니 대동강이 여기로구나.
푸른 물결 맑은 모래 울어 예는 저 기러기
기린은 오지 않고 고운 님을 여읜 뒤에
퉁소 소리 끊어지고 높은 무덤뿐이로다.
갠 메에 비 오려나 내 시(詩)는 이미 이루었네.
외로운 절은 고요하나니 술 한잔에 건들 취해
술 속에 빠진 동타(銅駝) 가련할손 차마 보랴.
몇 천 년 묵은 자취 뜬구름이 되었구나.
풀 밑에서 슬피 우니 쓰르라미 소리로다.
오르니 높은 정자 생각조차 아득할 때
그친 비 남은 구름 옛일이 슬프도다.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에 세월을 느끼네.
가을이라 밀물 소리 더욱더욱 비장하구나.
물에 잠긴 저 다락엔 달빛마저 처량하이.
알게나! 이곳은 옛날의 번화지라.
거친 성 늙은 나무 남의 애를 끊는구나.
금수산(錦繡山) 앞이러냐 강산도 가려 하구나.
단풍은 붉은 채로 옛성을 비춰주고
가을밤 방추(紡錘) 소리 유달리 요란하구나.
배 저어라 한 곡조에 어정(漁艇)은 돌아오네.
바위에 비긴 고목 담쟁이는 얽혀 있고
숲속에 누운 빗돌 이끼 가득 끼었구나.
말없이 난간에 비겨 옛일을 생각하니
달빛과 파도 소리 슬픔을 자아내네.
성긴 별은 몇 개냐 푸른 하늘 속삭인다.
은하수 맑고 옅고 달빛은 밝을세라.
아느냐! 번화로운 옛일은 이제야 헛것이라.
저승을 기필(期必)하랴 이승에서 만나보세.
술 한잔 가득 부어 취해본들 어떠하리.
풍진(風塵)의 삼척검(三尺劍)을 마음에다 둘쏘냐.
만고의 영웅들도 진토 되었으니
세상에 끼친 것은 헛이름뿐이로다.
이 밤이 어찌 됐나 밤은 이미 깊었구나.
담장 위에 걸린 달은 오늘 저녁 둥글건만
진토를 떠나가다 님은 어찌하려느뇨.
한없는 즐거움을 나와 함께 누리리라.
강 위의 구슬 다락 사람들은 흩어지고
뜰 앞엔 예쁜 나무 이슬 처음 듬뿍할 때
묻노라 어느 때에 서로 거듭 만나려나.
봉래산 복숭아 익고 푸른 바다 마른다네.
홍생은 그 시를 읽고 매우 기뻐, 그녀가 빨리 돌아갈까봐 좋은 이야기로 만류하려고 이렇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성씨와 보계(譜系)를 듣고자 하옵니다."
"예, 이 몸은 옛날 은왕(殷王)의 후예요 기씨(箕氏)의 딸입니다. 나의 선조 기자(箕子)님께서는 처음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예법과 정치를 한결같이 성탕(成湯)님의 유훈을 따라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문화가 빛났는데 갑자기 국가와 민족이 비운에 빠져, 나의 선고(先考) 준왕(準王)께서는 필부의 손에 패하여 드디어 국가를 잃으시고, 위만(衛滿)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도적하니 나 같은 약질은 이때를 당하여 스스로 절개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죽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룩한 선인이 나타나셔서 나를 어루만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본디 이 나라의 시조(始祖)로서 부귀를 누린 뒤에 바닷섬에 들어가 선인이 된 지 벌써 수천 년이 되었느니라. 그대는 나와 함께 상계(上界)에 올라가 즐겁게 노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시기에 곧 응낙하였더니, 그분은 나를 데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 별당을 지어 나를 접대하고, 또 나에게 삼신산의 불사약을 주셨습니다. 이 약을 먹고 나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져서, 공중에 높이 떠서 우주를 굽어보며 세계의 명승지를 빠짐없이 유람하였는데, 어느 날 가을 하늘이 맑고 유난히 밝은지라 별안간 멀리 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달나라에 올라 광한청허지전(廣寒淸虛之殿)을 구경한 후 수정궁(水晶宮) 안으로 가 항아(姮娥)를 방문하였더니, 항아는 내 절개가 곧고 글월에 능통하므로 꾀어 이르기를 '인간 세상에도 명승지가 없지 않으나 모두 풍진이 소란하니, 어찌 청천에 한 번 솟아 흰 난조를 타고 맑은 향내를 계수에 뿜으며 옥경(玉京)에 설렁이고 은하에 목욕하는 것과 같겠느냐?' 하고는 즉시 나를 향안(香案)의 시녀로 하여금 양쪽에서 모시게 하니 그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갑자기 고국 생각이 간절하여 하계의 인생을 내려다보니, 산천은 의구하나 인물은 간 데 없고 명월은 내를 덮고 백로는 티끌을 씻은지라, 옥경을 하직하고 슬며시 내려와 조상님 무덤을 배알한 후 부벽정에 올라 시름을 달래려 하였는데 마침 당신을 만나 한없이 기쁘기도 하고 또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노둔(駑鈍)한 붓을 들어 아름다운 시에 화답했으니, 시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대충 말한 것입니다."
여인은 비참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홍생은 머리를 숙여 절하며 말했다.
"하토(下土)의 어리석은 이 백성이 초목과 함께 썩음이 마땅하온데, 어찌 갸륵하신 선녀님과 시를 창수하리라고 꿈엔들 기약하였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모든 것을 청산하지 못한 저는 주시는 주식도 먹지 못하고, 다만 글자를 대략 알았을 정도이므로 내려주신 시를 읊어 보았사오니, 다시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로 제목을 삼아 한 편 사십운(韻)을 지어 저에게 가르쳐주심이 어떻겠나이까?"
여인은 곧 응낙하여 붓을 풀어 한 번 쓰는데 마치 구름과 내가 서로 찬란히 얽힌 듯하였다.
부벽정 달 밝은 밤 높은 하늘 옥로(玉露) 내려
오동에 맑은 빛이, 은하수도 잠겼어라.
희디흰 삼천리요 아리따운 열두루(樓)에
구름도 한 점 없고 두 눈에는 맑은 바람
흐르는 물 뜨는 배에 다정스레 따르는구나.
선창(船窓)도 엿보면서 갈꽃 물가 비쳐주네.
예상곡(霓裳曲)을 들으려나 옥도끼로 깎았던가.
금조개로 집을 짓고 탑 그림자 비꼈도다.
지미(知微)와 구경하거나 공원(公遠)과도 놀아보세.
달빛 차니 까치는 놀라 날고 오(吳)의 소는 헐떡인다.
은은한 곳 푸른 메요 둥글둥글 바다 위를
님과 함께 거닐리라 주렴 고리 높이 걸곤
오강(吳剛)은 계수 깎고 이백(李白)이 술잔 멈춰
찬란한 비단 병풍 수놓은 채 휘장 치고
보배 거울 처음 걸고 얼음 바퀴 구를 때
금물결은 쓸쓸하고 은하수는 떨어지네.
금두꺼비 베려나 옥토끼를 사냥할 때
먼 하늘에 비 처음 개고 좁은 길에는 내 녹았네.
숲에 솟은 헌함(軒檻) 아래 깊은 못물 굽어보고
머나먼 길 아득 잃고 고향 친구 만났도다.
좋은 시를 주고받아 이름난 술 가득 부으니
아껴보세 이 광음을 취하도록 또 한 잔
화로 속의 까만 숯불 게 끓이는 쟁개비라.
용봉탕을 맛보려나 항아리에 가득 찼네.
외로운 솔의 학은 울고 네 벽에는 귀뚜라미
호상(胡牀)의 말 끝나면 먼 물가에 노닐리라.
황성(荒城)은 의희하고 우는 잎은 소소할 때
붉은 단풍 누런 갈은 쓸쓸하기 그지없네.
선경(仙境)엔 천지 넓고 진토에는 세월 빨라
벼 익은 옛 궁터요 고목 우거진 들의 고사(古祠)라.
남은 자취 빗돌뿐인가 흥망은 백구(白驅)에게 물어보리.
맑은 빛이 몇 번 찼는고 인생이란 하루살이
고운 님은 어디 가고 궁궐조차 절이 됐노.
깊은 숲속 가린 휘장 반딧불만 번득인다.
옛적 일도 슬프건만 오늘 근심 어이하리.
목멱산(木覓山)은 단군터요 기자 여기 오셨던가.
굴 속에 무엇 있나 기린 자국 완연하이.
들판에서 주운 물건 숙신(肅愼)의 화살이라.
선녀는 용을 타고 문사 또한 붓을 멈춰
난초라 매운 향내 푸른 공중에 풍기누나.
곡조를 마친 뒤에 하직이란 웬 말이냐.
바람은 고요한데 놋소리만 처량하구나.
여인은 다 쓰고 나서 붓을 던져버리고는 공중에 높이 솟아 간 곳이 없고, 다만 시녀를 시켜서 홍생에게 말을 전하였을 뿐이다.
"옥황님의 명령이 엄하셔서 나는 곧 흰 난조를 타고 돌아갑니다. 다만 청아한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하여 몹시 섭섭합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홍생이 앉은 자리를 걷어가고 그 시를 날려버렸다. 대체로 이런 일을 인간 속세에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홍생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지라 난간에 홀로 기대 서서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한 말들을 기록하고, 또 좋은 인연을 얻어서 흉중에 쌓인 이야기를 다 못했음을 한탄하며 시 한 수를 읊었다.
비갯더니 구름이야 하염없이 한 꿈이라.
가신 님은 언제나 퉁소 불며 돌아올꼬
대동강 푸른 물결 무정하다 마소서.
님 여읜 저곳으로 슬피 울며 나는구나.
다 읊고 나자 산사에서 종이 울리고 물가 마을에서 닭이 노래를 부르는데 달은 서천에 걸려 있고 샛별만 반짝이며, 뜰 아래의 쥐와 상 밑의 벌레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홍생은 초연히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온몸이 수굿하여 다시금 유(留)할 수 없으므로 서둘러 돌아와 배에 올라타고 옛 물가에 닿았다. 그가 돌아온 것을 안 친구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물었다.
"도대체 어젯밤엔 어디서 자고 오는가?"
홍생은 속여서 말했다.
"사실은 어제 낚싯대를 메고는 달빛을 따라 장경문(長慶門) 밖 조천석까지 가서 고기를 낚으려 하였으나, 밤이 서늘하여 물결이 찬 탓으로 붕어 한 마리도 낚지를 못했네그려!"
친구들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후 홍생은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으나, 정신이 멍하고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는 오랜 기간 병사에 누워 있었으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속에 소복한 여인이 나타나 홍생에게 말했다.
"우리 아가씨께서는 당신의 재주를 몹시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幕下)의 종사(從事) 벼슬을 명령하셨사오니 하루 속히 부임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홍생이 깜짝 놀라 깨어 깨끗하게 목욕을 한 뒤에 향을 태우며 자리를 정리하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나게 되니, 바로 9월 보름이었다. 그의 시신을 빈소에 안치한 지 여러 날이 되어도 얼굴빛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세상에서는 다음과 같이 추측할 뿐이었다.
"홍생은 아마 신선을 만나서 시신이 선화(仙化)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