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한산정 | 보물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 古縣洞 鄕約)』에 나오는 탐진안씨 들 - Daum 카페
글: Antare 20 25.10.25 10:38
『태인 고현동 향약(泰仁 古縣洞 鄕約)』은 전라북도 태인현 고현동(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서 향약이 결성된 후 약 400년 동안 시행한 향약 자료집으로, 29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1993년 11월 5일에 보물로 지정되었고,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동각(洞閣)에 보관되어 있다. (과거의 태인현 지역은 오늘날 정읍시로 통합되었다.)
이 문헌들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선조년간(宣祖年間)에 시작하여 1977년까지 약 40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현재의 전북 정읍 지방에서 결성하고, 시행한 향약에 관한 자료이다.
1475년에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이 쓴 古縣洞中鄕飮序, 1510년에 송세림(宋世琳, 1479~?)이 쓴 跋洞中鄕飮序가 있으나 이들은 후일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보기 : 보물 태인고현동향약 (泰仁古縣洞鄕約)
여기에 안씨들이 여럿 나오는데, 탐진안씨 오성군파 안기(安起) 후손들로 보인다.
1권 p.4 안충렬(安忠烈),
p.7 안방언(安邦彦),
p.10 안방호(安邦豪),
p.15 안방걸(安邦傑) : [광주안씨 시조와 같은 이름이다.]
2권과 그 이후에도 안방걸, 안방언, 안방호 외에 안광익(安光益), 안박(安璞, 족보에 邦豪의 아들로 나옴) 등 안씨들이 많이 나옴.
안충렬(安忠烈)의 성명 위에는 ‘屳’이라 부기되어 있는데, 후일 그가 작고했다는 표시로 기입한 것이다.
그런데 안충렬(安忠烈)이란 분은 물재(勿齋) 안의 (安義, 1529~1596) 공으로 보인다. 순흥안씨 대종회 인터넷 족보를 검색해보니 그의 초명이 안충렬(安忠烈)로 나온다. 황윤석이 지은 물재안공행장(勿齋安公行狀)에도 말미에 그의 초명이 안충렬(安忠烈)이라 했다.
* 황윤석(黃胤錫, 1729~1791), 有明朝鮮國故宣敎郞活人署別提勿齋安公行狀, 이재유고(頤齋遺藁) 卷之十七 行狀
향약의 안충렬과 물재 안의 공은 거주 지역과 시대가 일치하므로 다른 사람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순흥안씨 인터넷족보에서 확인해보니 다른 분들도 아래와 같이 나온다.
| 1세 | 2세 | 3세 | 4세 | 5세 | 6세 | 7세 | 8세 | 거주지역 |
| 안기(安起) | 중의(仲毅) | 소(紹) | 천수(千壽) | 익(翼) | 세린(世麟) | 영(穎) | 방준(邦俊) | 과교(科橋) 칠보(七寶) |
| 방언(邦彦) |
| 방호(邦豪) |
| 방걸(邦傑) |
| 방선(邦善) |
| 계의(季毅) | 관(綰) | 양언(良彦) | 의(義) | | | | 옹동(瓮東) |
여기의 탐진안씨들은 원래 김제에 살다 태인의 옹동(瓮東), 칠보(七寶) 지역으로 이주해왔다고 한다. 향약에 나오는 안방걸(安邦傑)이란 분은 인터넷 족보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 탐진안씨 임술보(壬戌譜, 1742년)에 확인해 보니 위와 같이 안방걸(安邦傑)이 나오는데, 인터넷 족보나 오늘날의 탐진안씨 오성군파 족보에는 안방휴(安邦休)로 바뀌어 있다.[傑(杰)을 休로 잘못 읽은 듯] 임술보에 안방걸(安邦傑)의 사위로 이시항(李時恒, 1605~?)이 있는데, 이 사람은 종실이며, 이시항의 사위로 류세원(柳世源), 아들로는 이인경(李仁卿), 이의경(李義卿)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왕실 족보인 선원속보(璿源續譜)에서도 확인이 된다. 근래의 탐진안씨 오성군파 족보에는 안방걸 (安邦傑)과 그 사위 이시항(李時恒)이 안방휴(安邦休)와 그 사위 이시백(李時
)으로 잘 못 기록되어 있는데 임술보(1742)에 근거하여 바로 잡아야 할 것같다. → 이시항, 안방걸로 바로 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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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속보(璿源續譜)에 종실 이시항(李時恒 , 1605~?)의 처부가 탐진(耽津) 안방걸(安邦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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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항(李時恒 , 1605~?)
乙巳七月二十一日生三月六日卒○墓上同堤內里東麓亥坐娶耽津安邦傑女己酉十二月二十九日生十二月二十八日卒○墓瓢巖再娶羅州羅□□女壬戌九月十六日生七月十三日卒○墓內才村西麓巳坐
이시항의 아들로 이인경(李仁卿), 이의경(李義卿), 이지경(李智卿), 사위 류혜원(柳惠源)이 있다.
이시항(李時恒, 1605~?)은 이경석(李景奭, 1595~1671)과는 8촌간이다. 완성군 이귀정 (莞城君 李貴丁)이 두 사람 모두의 고조부임
정종(定宗) / 덕천군파
덕천군 이후생 (德泉君 李厚生, 1397~1465) - 신종군 이효백 (新宗君 李孝伯) - 완성군 이귀정 (莞城君 李貴丁, 1454~1527) - 부안령 이계종 (富安令 李繼終) - 이희우(李希祐) - 이정길(李廷吉) - 이시항(李時恒)
완성군 이귀정 (莞城君 李貴丁) - 함풍군(咸豊君) 이계수(李繼壽, 1477~1558) - 이수광(李秀光, 1507 ~ ?) - 이유간(李惟侃, 1550 ~ ?) - 이경석(李景奭, 1595~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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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安起) / 안지(安止) 묘소 : 전북 김제시 용지면 예촌리 산4-22
[선비, 길을 열다] 파열 그리고 미망(未忘)의 빛,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선비 : 호남학 산책 (한국학호남진흥원) 2020-02-04
안의(1529∼1596)는 태산과 안의를 태인으로 합할 때 관아를 증축하였던 안기(安起)의 고손으로 『용비어천가』를 지은 안지(安止)가 종고조가 된다. 본관은 탐진, 선대는 김제에 살았는데 부친이 태인 옹동으로 이사를 왔다. 평소 ‘망언ㆍ거짓ㆍ분노ㆍ주색에 빠지지 말고 남의 집에 간섭하지 않고 친족을 홀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팔물(八勿)’을 신조로 살며 물재(勿齋)로 자호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4권 /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
【궁실】 객관 정곤의 기에, “태인현은 곧 옛날의 태산과 인의 두 고을인데, 우리 조정에서 두 고을의 이름을 아울러서 태인이라 하였다. 읍내는 옛날 태산의 동쪽 구석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인의의 백성들이 왕래하는데 병통으로 여겼다. 병신년(1416년) 가을 8월에 현감 황경돈(黃敬敦)이 두 고을의 중간 지점인 거산역 옛 객관을 현의 객관으로 삼았으나, 너무 좁고 누추하였다. 무술년(1418년) 겨울에 오치선(吳致善)이 이어 와서 드디어 옛 객관의 서쪽에 지세를 살피고, 기해년(1419년) 가을에 비로소 후청(後廳)ㆍ동서침(東西寢)ㆍ남청(南廳)ㆍ동서행랑(東西行廊)을 세우니, 모두 몇 칸이다. 신축년(1421년) 여름에 안기(安起)가 오공(吳公)의 뜻을 이어받아 좌우랑(左右廊)ㆍ좌우마구[左右廐]ㆍ대문ㆍ고옥(庫屋)ㆍ향교ㆍ성전(聖殿)을 더 세우니, 모두 몇 칸이다.” 하였다.
【宮室】 客館。鄭坤記:“泰仁縣卽古之太山、仁義兩縣也。我朝倂兩縣,號曰泰仁。治古泰山偏在東隅,故仁義之民往來病焉。歲丙申秋八月,縣監黃君敬敦乃就兩邑中居山驛古館,爲縣客館,然甚隘陋。戊戌冬,吳君致善繼至,遂相地於古館之西,己亥秋始建後廳、東西寢、南廳、東西廊,共幾間。辛丑夏,安君起繼吳公之志,增建左右廊、左右廏、大門、庫屋、鄕校、聖殿,共幾間。云云。”
황경돈(黃敬敦)은 황희(黃喜, 1363~1452)의 조카이고, 오치선(吳致善)은 황희의 생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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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와 태인 지도
정읍시와 태인 지도. 칠보면 시산리가 옛 태인 고현동(泰仁 古縣洞)이고, 옹동면이 물재(勿齋) 안의(安義, 安忠烈)의 거주지이다.
정읍이야기 - 읍면동 마을유래 및 연혁
옹동면(瓮東面)
본래 태인군 옹지면(瓮池面)과 동촌면(東村面)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이 두면을 병합하여 옹지와 동촌의 약칭인 옹동면이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하였다.
칠보면(七寶面)
본래 태인군 고현내면(古縣內面)과 남촌일변면(南村一邊面)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에, 두 면을 병합하여 이 지역에 있는 칠보산(七寶山)이름을 따서 칠보면이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하였다.
과교동(科橋洞) : 1998년 상평동(上坪洞)과 통합하여 상교동(上橋洞)이 되었다.
과교동(科橋洞)은 본래 정읍현(縣) 남일면(南一面), 서이면(西二面)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정읍군(郡) 정읍면(井邑面) 삼산리(三山里), 과교리(科橋里), 진산리(辰山里)로 분리(分里)되었는데, 1981년 7월 1일 시(市) 승격으로 과교동(科橋洞)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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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향약(향안)들
1801년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 고현내면(古縣內面) 고현향약안(古縣鄕約案)
전라도 태인현 고현내면은 현재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지역이다.
1628년 작성된 현풍현(玄風縣)의 향안(鄕案)
향안 입록자 5명을 제외하고 그 성명 위에는 ‘屳’이라 부기되어 있는데 훗날 어느 시점에 향안 입록자를 상고하는 과정에서 관련자가 사망한 자를 부기한 것이다.
屳 : 漢典
첫댓글 세종실록과 세조실록에도 안기 공의 기록이 몇 건 검색되네요. 시대적으로 보아 문정공 안지(1384-1464)의 형님에 대한 기록이 맞을 듯 합니다.
세조 1년(1455) 12월 27일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된 것이 마지막 기록이니 당시까지 생존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ga_10112027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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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년에 만 75세. 안지의 형님이신 안기도 장수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