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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출사표
강은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어도 말없이 흐른다.
한수(寒水)!
섬서(陝西)에서 발원하여 강남(江南)으로 빠지는 장강(長江)의 지
있다.
시인재사(詩人才士)들이 이곳에서 한 수의 시(詩)를 낚으러 풍류를
즐겼다.
특히 황혼의 한수는 고향을 찾아가는 철새 떼와 어우러져 보는 이
를 아릿한 감동으로 몰아 넣는다.
삐이걱― 삐걱!
일엽편주.
한 척의 조각배가 한수를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조각배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서궁장청과 철관백!
철관백은 무심한 시선을 강심에 던지고 있었고 서궁장청은 뱃전에
걸터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바로 십자태성찰이 조사한 극비 자료, 천금등혈옥(天禁騰血獄)의
기록 사항이었다.
천금등혈옥도(天禁騰血獄圖)!
천금등혈옥(天禁騰血獄) 내부의 상세한 지형을 나타내는 지형도
(地形圖)이다.
아울러 천금등혈옥(天禁騰血獄) 내부의 모든 기관(機關)과 매복,
그리고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일종의 감옥도(監獄
圖)였다.
문득 서궁장청의 귓전으로 철관백의 나직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
다.
"천금등혈옥이 위치한 곳은 귀주성(貴洲城) 흑미독습주(黑彌毒濕
洲)! 새털도 가라앉는 늪의 강속에 자리한 죽음의 삼각주(三角洲)이
네. 결코 통로를 모르고는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지옥의 유배
지이지."
"으음……."
"천금등혈옥이 자리한 흑미독습주의 크기는 백만대군(百萬大軍)을
일시에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늪 속의 섬(島)으로 그야말로 완
전히 외부와 차단된 악마의 대지라 할 수 있네."
서궁장청은 눈으로는 계속 천금등혈옥의 기록 사항들을 살피는 한
편 철관백의 말 또한 귀담아 듣고 있었다.
"또한 자네가 보는 것처럼… 천금등혈옥은 일천 개도 넘는 거미줄
같은 미로와 칠천이백 종의 각기 다른 죽음의 관문(關門)이 도사리고
있네. 때문에 단 한 발자국도 마음놓고 내딛을 수 없는 곳이지."
"그렇군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지리적 특수 여건 때문에 그곳
에는 간수(看守)가 필요 없고 또 현재도 없다는 사실이네."
"간수가 없는 감옥?"
서궁장청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허면 그 천인공노할 죄수들은 누가 통제하고 있습니까?"
"통제는 자연적으로 되게 되어 있네."
"자연적이라면……?"
"천금등혈옥은 온통 금광(金鑛)과 흑철광(黑鐵鑛), 그리고 유황광
(硫黃鑛)으로 뒤덮여 있어 어떠한 생물체나 식물조차도 자랄 수 없는
죽음의 땅이네. 식수와 식량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모조리 굶어 죽게
끔 되어 있지."
"허어… 그런 곳이 존재했다니!"
"식량과 식수! 죄수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황실이 요구하는
금과 흑철, 그리고 유황을 캐낼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지."
서궁장청은 수긍이 간다는 듯 잠잠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천금등혈옥의 죄수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죽는 순간까
지 혹독한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네. 종일토록 계속 일해도 식량과 식
수는 항시 최소한의 분량만이 지급될 뿐이니까."
"식량과 식수! 결국 그것이 어떤 간수보다 훌륭한 통제자 역할을
하는 셈이군요."
"그렇다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강하고 악한 놈일
수록 살기가 편하다는 사실이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금등혈옥은 무법지대! 또 식량과 식수는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차지하는 것. 강한 자들은 일하지 않고 질탕하게 먹고 마실 수 있지
어죽어야 하네."
서궁장청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지옥보다 더욱 악랄한 악법(惡法)이 판치는 무법지대
일세. 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악할수록 대우를 받는 곳이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악할수록 대우를 받는 곳이 천금등혈옥이다!
"또한 지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무서운 곳이기도 하지. 상대를 죽이
지 못하면 자신이 죽게 되니 자연히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를 죽이려 하는 것은 자명한 일! 하루 종일 단 한시도 빼놓지 않
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하니 이 세상에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
을 것이네."
다.
'천금등혈옥! 죽음보다 더욱 잔혹한 유배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군!'
문득 그의 시선이 천금등혈옥도를 향했다.
'이미 이 안의 내용을 모조리 기억한 이상 남겨 둘 필요가 없겠지!'
쫘― 악!
천금등혈옥도는 곧 갈기갈기 찢어져 강물에 떠내려갔다. 이어 서
궁장청은 철관백이 천금등혈옥도와 함께 준 한 권의 서책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금등혈옥 수인신원총람(囚人身元總覽)!
천금등혈옥에 갇힌 수인들의 신원과 내력을 빠짐없이 기록한 귀중
한 책자였다.
아울러 그곳에는 십자태성찰이 천금등혈옥에 관하여 극비리에 조
사한 방대한 정보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때 철관백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천금등혈옥의 역사는 천년 전으로 거슬러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
時代)에 이르네. 그 난세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영웅을 꼽으라면 단
연코 신릉군(神凌君)일 것이네."
신릉군(神凌君)!
위(魏)의 왕자(王子)로 태어나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패자거웅(覇
者巨雄) 중 가장 뛰어난 무위(武威)와 품격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는
입지전적인 영웅이다.
임협(任俠)!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친구를 사귀며, 불의를 상대로 한 싸움
에 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는 인의와 우정을 왕명(王命)보다 중히 여
기는 임협의 본보기가 바로 신릉군(神凌君)이었다.
더구나 그는 중원 역사상 가장 여러 방면에 달통한 십전무신(十全
武神)이었고 여기에 송옥과 반안을 뺨칠 정도의 품격과 용모, 호방한
성격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역사상의 인물들 중 가장 완벽하고 뛰어난 사나이
의 표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무위(武威)는 진(秦)의 백만대군을 단신으로 나서서 막아낸
것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
았다.
그의 죽음은 천하인의 통분과 애도를 자아냈고 오늘날까지도 역사
상 가장 불가사의한 의문의 죽음으로 전해진다.
"신릉군(神凌君)이 죽자 비로소 어린 진시황(秦始皇)을 앞세운 상
국 여불위는 천하통일의 대업을 성취하였지."
서궁장청의 눈빛이 한층 호기심을 가졌다.
비운의 역사가 철관백의 입을 통해 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여불위와 시황을 밤마다 공포에 시달리게 하는 방
랑자 집단이 있었으니.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 일명 냉혈
(冷血)의 동맹(同盟)이라 불리는 무서운 집단이 바로 그들이네."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
일명 냉혈의 동맹 또는 뱀들의 동맹이라 불린다.
각기 한 분야에서 최강자임을 자처하는 구십구 인(九十九人)으로
이루어진 사상최강의 낭인집단(浪人集團).
"뱀들의 동맹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의 지주는 바로 신
릉군(神凌君)! 그들은 신릉군이 죽자 완전히 악마의 군단으로 변하여
진(秦)을 쑥밭으로 만들고 말았지."
"설마 그렇게까지……?"
철관백은 고개를 흔들었다.
"드러난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의 힘은 실로 상상을 초
월하는 전륜겁백할 것이었네. 비록 구십구 인에 지나지 않으나 그들
일인(一人)의 힘은 능히 십만정병(十萬精兵)을 유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네."
"흐음……!"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 가히 무적의 살인군단이라 할
수 있겠구나.'
"그러한 때 한 가지 소문이 퍼졌다네. 죽은 신릉군의 위패(位牌)와
모든 유품이 천금등혈옥에 있다는 소문이었네."
"신릉군의 유품이 천금등혈옥에…?"
"그러나 그 소문은 여불위가 만들어낸 음모였네. 유랑구구종횡천
(流浪九九縱橫天)의 낭인들을 일시에 천금등혈옥에 가두려는 의도에
서 꾸며진 음모였던 것이네."
"으음……."
"그러나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의 낭인들은 그것이 음모
인 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천금등혈옥에 모일 수밖에 없었네. 그만
큼 신릉군이라는 존재는 그들의 전부였고 또 자신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지."
"으음……."
"하지만 천금등혈옥은 실로 하늘마저도 가둘 수 있는 악마의 감옥!
결국 여불위의 음모는 성공되었네."
"으음……."
"끝내 유랑구구종횡천(流浪九九縱橫天)의 낭인들은 천금등혈옥에
뼈를 묻고 그 후 천금등혈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무서운 죽음
의 감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네."
철관백의 입을 통해 밝혀진 천금등혈옥의 역사!
그것은 말 그대로 피(血)와 저주(詛呪), 그리고 처절한 음모(陰謀)
와 한(恨)으로 점철된 어둠의 역사였다.
그때였다.
무엇을 본 것일까?
천금등혈옥의 수인신원총람을 살피던 서궁장청의 눈이 강렬한 이
채를 발했다.
사건일지(事件日誌)!
바로 십자태성찰의 한 나포철인(拿捕鐵人)이 남긴 사건일지를 발
견한 때문이었다.
◀ 2권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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