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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300년경 | 바둑의 기원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을 가르쳤다.'(博物誌) |
BC200년경 | (중국)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판 1952년 중국 망도(望都)에서 17줄 돌바둑판 발굴 |
BC108년경 | 바둑의 한국 전래 한사군(漢四郡)전래설 추정 |
서기 475년 | 국내 최초의 바둑기록 문헌상 최초의 국수(國手)기록 '고구려의 국수(國手) 도림(道琳)과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이 바둑을 두었다.'(三國史記 百濟本記) |
737년 | 최초의 바둑관련 향가(鄕歌) '신충(信忠)이 바둑으로 친분이 두터운 신라 35대 임금 효성왕(孝成王)을 그리며 원수가(怨樹歌)를 지었다.'(三國遺事) |
880년경 | 문헌상 최고의 돌바둑판 대문장가 최치원은 노년에 해인사에서 바둑을 두었는데 그 당시 둔 석국(石局·돌바둑판)이 있다. |
1000년경 | 바둑관련 고려가요 '고려 초기 중국 상인 하 두강(賀頭江)이 내기바둑으로 예성강의 한 아름다운 부인을 빼앗으니 그 남편이 예성강에서 슬피 울며 부른 노래가 예성강곡(禮成江曲)이라 한다.'(高麗史樂志) |
1010년 | 진중(陣中)대국 '고려 초기 강조(康兆)는 거란의 성종이 이끄는 40만 대군과 대치 중 진중에서 바둑을 두었다.'(高麗史) |
1090년경 | 현존하는 최초의 바둑시 박인량(朴寅亮)이 중국 금산사(金山寺)에서 스님들이 대나무 아래서 바둑두는 광경을 보고 「금산사」라는 시를 지었다. |
1104년경 | (중국)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책 중국 이일민(李逸民)이 펴낸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 |
1230년경 | 최초의 금석문 바둑기록 고려 고종 때 명신 금의(琴儀)의 묘지명 |
1280년경 | 의원바둑인 '충렬왕 때의 명의 설경성(薛景成)은 중국 원나라 세조를 치료하여 궁중을 무상출입, 황제 앞에서 바둑을 두었다.'(高麗史) |
1340년경 | 현존하는 최고의 암각(岩刻)바둑판 고려 轢殆?때의 대학자 우탁(禹倬)은 선경을 찾아 노닐었는데 충북 단양 사인암(舍人岩) 앞에 암각바둑판이 남아 있다. |
1351년경 | 최초의 바둑문장 목은 이색(李穡)이 선친 이곡의 유품 중 바둑돌을 보고 「기기(記棋)」라는 바둑글을 지었다. |
1712년경 | 최초의 순장바둑 기록 문헌 조선조 숙종 때의 학자 김창업(金昌業)이 지은 「노가재연행록(?稼齋嚥行錄)」에는 '중국에서 바둑을 두었는데 처음 배자(排子)가 없는 것이 달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
1790년경 | 현존하는 최초의 바둑논문 이덕무(李德懋)의 혁기론(?棋論) |
1820년경 | 바둑돌 산지 경상도 양산군 기장읍은 차성현 기포(碁浦)라고 불리었느데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그곳의 바둑돌을 보고 「자연기석(自然碁石)」이라는 장편시를 지었다. 자연석을 바둑돌로 사용한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
1850년경 | 바둑연시(聯詩) 정원용(鄭元容)이 지은 연시 64수 |
1886년 | 현존하는 최고의 기보 고종 때의 정치가 김옥균(金玉均)이 일본 망명시절 본인방 슈에이(本因坊 秀哉)에게 여섯점 접바둑을 두었다. |
1899년 | 최초의 한일 국수급 대국 백남규(白南圭) 국수와 일본의 가리가네(?金準一) 初단이 최초의 한일 국수급 대국을 두었는데 일본바둑과 순장바둑으로 번갈아 두었다. |
1910년경 | 바둑층시(層詩) 정환직(鄭煥直)의 기국문(碁局文) 상하 두편 13층 |
1913년 | 최초의 바둑책 출판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펴낸 「기보(棋譜)」, 묘수풀이 수록 |
1918년 | 현존하는 최고의 한일 국수급 대국 기보 백남규(白南圭)국수와 일본의 사이토(齊?슬?賢德) 四단이 둔 기보 |
1927년 | 현존하는 최고의 순장바둑 기보 윤경문(尹敬文) 국수와 개성의 손득준이 이 순장바둑을 두었다. |
1930년 | 최초의 기원 개설 민영휘(閔永徽)의 산정별장에 당시 국수급들이 개설 |
1933년 | 최초의 바둑월간지 「신정기보(新訂碁譜)」 발간 (경성위기연구소) 순장바둑과 일본식 바둑 기보 및 정석 등 수록 |
1936년 | 최초의 바둑대회 「전조선선수권대회」<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개최, 처음으로 신문 관전기 게재 <유광렬(柳光烈)> |
1937년 | 순장바둑 폐지 유진하(柳鎭河)·채극문(蔡極文) 등 순장바둑 폐지 결의 「경성기원」 개설 조남철 첫 일본 유학 기타니(木谷實) 문하에서 수업, 1943년 귀국 「전조선위기선수권대회」(동아일보) 肄?권재형(權載衡), 준우승 윤주병(尹周炳), 3위 노사초(盧史楚) |
1945년 | 한성기원 창립(11월) 조남철 현대바둑 보급, 이후 「조선기원」, 「대한기원」 등으로 개칭, 한국기원의 모태가 됨 |
1948년 | 「조선기원」 발족(4월) 제1회 전국위기선수권대회(연합신문) 조남철 우승, 이후 5연패 |
1949년 | 「대한기원」 발족(7월) |
1950년 | 최초의 단위결정시합(대한기원 주최, 6월 20일) 조남철 三단, 민중식 등 13명의 初단 탄생 |
1953년 | 최초의 도전기 실기 제3기 전국위기선수권대회에서 조남철 四단이 김명환 三단을 3대 0으로 물리치고 3연패 |
1954년 | 사단법인 한국기원 발족 윤호병 총재, 장경근 초대이사장 취임(1. 18) 제1회 승단대회 개최(4. 10) 제1회 입단대회 개최(6. 20) 김태현 입단. |
1955년 | 최초의 바둑 저서 「위기개론」(조남철 저) 발간(1월) 바둑용어 정립 월간바둑지 「기도(碁)」 발행 (홍종선 주간, 대한기도원 발간) 최초의 공식국제대회 제1회 한중 위기교류전(3월 대만 개최) 조남철, 김봉선, 장국원, 민영현 출전 |
1956년 | 최초의 공식프로기전 제1기 국수1위전(국수전, 동아일보 주최) 조남철 四단 우승 |
1957년 | 도전기 라디오 중계 제2기 국수1위전(10. 25) 제1기 국수순위전(세계일보) 김봉선 三단 우승, 조남철 五단 준우승, 제2기까지 진행 |
1958년 | 최초의 TV바둑 한국일보사 방영, 조남철 해설 제1기 왕위전(경향신문) 조남철 五단이 김명환 四단을 2대 1로 물리치고 우승, 69년 제3기까지 진행 |
1959년 | 최하영 (사)한국기원 2대이사장 취임(7. 1) 제1기 오강전(서울신문, 패왕전의 전신) 김명환 四단 우승, 특별대국에서 조남철 六단 승리 제1기 최고위전(부산일보) 조남철 七단 우승 제1회 전국아마바둑선수권대회(한국일보) 김인 우승, 8회까지 진행. |
1961년 | 제1회 전국대학대항 위기선수권대회<서울일일신문사 주최, 2회부터 전국대학생바둑선수권으로 개칭(한국일보 주최)> 조홍제 (사)한국기원 3대이사장 취임(7. 1) |
1962년 |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 조훈현 만9세에 제16회 입단대회 통과(10월) 제1기 청소년배(국제신보) 윤기현 三단이 조상연 二단을 물리치고 우승, 제9기까지 개최 |
1963년 | 세계 최초의 국제전화대국 일본 이시다(石田芳夫) 初단이 한국의 조훈현 初단에 승리(1. 6) |
1964년 | 「TV기원」 개설(KBS-TV) |
1965년 | 최초의 TV기전 탄생 TV배 프로기전, 김인 五단 우승 제1회 동양3국바둑대회(11. 16. 서울개최) 한국 우승, 71년 제6회까지 진행. 제1회 한일 대학생바둑대항전(12. 7. 서울 개최) 한국 6승4패로 우승, 71년 제6회까지 진행 |
1966년 | 제1기 왕위전(중앙일보) 김인 五단 우승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바둑판 조각이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고요지(古窯地)에서 출토 |
1967년 | 이후락 (사)한국기원 4대이사장 추임(2. 24) 바둑전문잡지 「월간 기계(棋界)」창간(7. 7) 69년 8월호부터 제호를 「바둑」으로 개제 사단법인 대한기원협회 발족 김동송 회장 취임 제1회 전국아마국수전(동아일보) 우승 홍종현, 준우승 김규태 제1기 명인전(한국일보) 조남철 八단 우승 |
1968년 | 조치훈 일본기원 최연소(11세) 입단 기록(2월) 제1기 청룡배최강전(조선일보) 김인 六단이 조남철 八단을 3대1로 물리치고 우승 제1회 전국고교생바둑선수권대회(5월 중앙일보) 우승 조기연 제1회 한일 고교생친선바둑대회(8. 1. 도쿄 개최) 일본 우승, 제2회부터 중국이 참가하여 한중일 고교생친선바둑대회로 발전, 제6회까지 개최 한국기원 바둑회관 개관(8. 8) 67년 11월 5일 기공, 종로회관(관철동) 7관왕 제6기 청소년배에서 김인 六단이 김학수 四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
1969년 | 제1회 전국직장대항바둑대회(2월) 우승 대한교육보험, 준우승 기업은행, 3위 산업은행 이후락 한국기원 초대총재, 서정귀 5대 이사장 취임(3. 25) 최초의 국민학교 바둑특활 실시(9월), 홍익국민학교 제1회 한일 전문기사교류 (11. 27. 도쿄 개최) 한국 2승7패, 71년 제3회까지 진행 |
1970년 | 한국기원 사단법인에서 재단법인으로 등기(3. 25) 서정귀 (재)한국기원 초대이사장 취임(4. 2) |
1971년 | 제1회 어린이국수전(2월 한국기원) 우승 조대현, 준우승 서필원 |
1972년 | 윤희율 일본 제14회 전국여류아마선수권대회에서 외국인으로 첫우승 |
1973년 | 제1기 백남배(1월 대한일보) 김인 七단이 정창현 六단을 물리치고 우승, 제2기까지 개최 제1기 MBC국기전(1월 MBC-TV) 서봉수 五단 우승 제2기까지 진행 제1기 최강자전(국제신보) 조남철 八단이 김인 七단을 2대1로 물리치고 우승, 제5기까지 개최 제1기 기왕전(12월 조선일보) 정창현 七단 우승 |
1974년 | 최영근 (재)한국기원 2대 이사장 취임(2. 8) 제1회 여류국수전(한국경제신문) 김상순 우승 |
1975년 | 제1기 국수전(1월 경향신문) 조훈현 六단이 장두진 二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대한여성기우회(한국여성바둑연맹의 전신) 발족(3월) 한국기원선수권전(3월) 고재희 五단이 홍태선 二단을 2대1로 물리치고 우승 제1기 왕좌전(7월 TBC-TV) 조훈현 六단이 김희중 四단을 물리치고 우승, 2연패 이후 중단 기사파동으로 「대한기원」 분리(3월) 월간 「기도(碁)」 창간(10월) 이성범 (재)한국기원 3대이사장 취임(10. 8) 제1회 여류입단대회(9월 대한기원) 조영숙 윤희율 첫 여류프로 탄생 조치훈 六단 일본 최연소(18세) 타이틀 쟁취 기록 제12기 프로10걸전에서 우승 |
1976년 | 제1회 학생국수전(1월) 우승 한철균(고대), 준우승 박영찬(중앙고) 제1회 한일 아마최강친선대항전(1월) 한국 6승3패 최재형 (재)한국기원 4대이사장 취임(3. 18) 한일 국제전화바둑 실시 조치훈 七단이 서봉수 四단에 승리(4. 4) 한국기원과 대한기원 통합(12. 1) |
1977년 | 제1회 프로:아마대항전 인기 프로기사 10인과 아마10강전 입상자 간에 2점 치수로 대결, 5승5패 기록 제1회 한중고교선수권대회(8월 대만 개최) 한국 6승3연패 우승. |
1978년 | 황용주 (재)한국기원 5대이사장 취임(5. 9) 제1회 기도문화상 제정(5월) 최우수기사상 연승기록상 조훈현 七단, 최다승기록상 강훈 三단, 신예기사상 서능욱 四단, 감투상 이강일 四단 수상 제1기 전일왕좌전(전남일보 전일방송) 조훈현 七단이 서능욱 五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12. 18) 8관왕 등극. |
1979년 | 조훈현 八단 타이틀전 23연속 우승 제14기 패왕전에서 김인 七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3. 28) 제1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5월 도쿄 개최) 편지바둑 한국의 남백우씨와 일본의 모리야씨가 7년 4개월 동안 서신을 통해 대국(72. 6. 6 - 79. 9. 28) |
1980년 | 정수복 (재)한국기원 6대이사장 취임(1. 1) 조훈현 八단 제1차 전관왕 달성(7. 12) 제11기 명인전에서 서봉수 六단을 3대2로 물리치고 명인 쟁취 9관왕 등극 제1기 KBS바둑왕전(KBS-TV) 조훈현 八단이 노영하 七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12. 16), 10관왕 등극 이성범 (재)한국기원 7대이장 취임(11. 27) 조치훈 八단 기사 최초로 은관문화훈장 수상(12. 19) |
1981년 | 제1회 한중 바둑교류전(8월) 한국 8승4패 우승 대학바둑연맹 결성(10월) 조치훈 일본 최연소(24세) 九단 승단 기록 |
1982년 | 제1기 MBC제왕전(2월 MBC-TV) 조훈현 九단이 서봉수 七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조훈현 국내 최초로 九단 승단(5. 4) 조훈현 九단 제2차 전관왕 달성(7. 7) 제16기 왕위전에서 서봉수 七단을 4대3으로 물리치고 왕위 쟁취 8관왕 등극 이홍식 (재)한국기원 8대이사장 취임(11. 25) |
1983년 | 조치훈 일본바둑사상 3대타이틀(기성, 명인, 본인방) 첫 석권 기록 여자실업바둑팀<고려투자금융(주)> 창설(6월) 제1회 한일 대학생바둑교류전(9월) 한국 9승1패 김우중 (재)한국기원 2대총재 취임(9. 15) 서정각 (재)한국기원 9대이사장 취임(12. 25) |
1984년 | 제1기 대왕전(대구매일신문) 조훈현 九단이 서능욱 七단을 3대1로 물리치고 우승 제1기 박카스배(동아제약 매일경제신문) 조훈현 九단이 서봉수 七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제1회 세계청소년 바둑대회(7월) 한국 김영환 우승 한일 프로교류전 한국 1승3패 조남철 일본 대창상(大倉賞) 수상 |
1985년 | 제1기 프로신왕전(5월 스포츠서울) 정수현 五단이 강훈 六단을 2대1로 물리치고 우승 「바둑연감」 발간 |
1986년 | 조훈현 九단 제3차 전관왕 달성(6. 20) 제3기 박카스배에서 하찬석 七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11관왕 등극 |
1987년 | 제1회 동양증권배 국제기전(10월 서울경제신문, 동양증권)양재호 六단이 장수영 八단을 3대1로 물리치고 우승, 제3회부터 세계선수권대회로 규모 확대 |
1988년 | 제1기 7·8·9단전(5월 KBS-TV) 서봉수 九단이 김인 九단을 물리치고 우승 제1회 후지쯔배(富士通杯, 4월 일본), 제1회 응씨배(應氏盃, 8월 대만)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개막 장재식 (재)한국기원 10대이사장 취임(6. 30) |
1989년 | 제1기 기성전(1월 세계일보) 조훈현 九단이 유창혁 三단을 4대2로 물리치고 우승 최초의 해외도전기 실시(3. 15, 18) 제23기 왕위전 도전 2, 3국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국 제1회 한일 여류교류전(5월) 한국 2승4패 북한 바둑협회 결성(7월) 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 이창호 三단이 14세에 제8기 KBS바둑왕전에서 김수장 八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8. 8) 제1회 응씨배(應氏盃)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조훈현 九단이 녜 웨이핑(晷衛平) 九단을 3대2로 물리치고 우승(9. 5) 조남철·조훈현 九단 은관문화훈장 수상(9월) 제1기 기성전 도전 1, 2국을 캐나다 밴쿠버시에서 대국 조훈현 九단 '89 프로기사 MVP 수상 이창호 四단 111국(84승 27패)으로 연간 최다대국 기록 |
1990년 | 바둑교실 인가제, 바둑보급 지도사 제도 실시(1월) 김우중 (재)한국기원 3대총재 연임(4. 16) 제1기 비씨카드배 (5월 스포츠서울) 조훈현 九단이 김희중 八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전국어린이바둑교실협회 결성(5월) 이용호 초대회장 취임 세계 최다연승 기록 이창호 四단 41연승 달성(8. 24) 제2기 기성전 도전 1국 백두산에서 대국(9. 16) |
1991년 | 한국바둑룰 개정(3월), 권리와 실전 해결 원칙 입각 SBS배 세계바둑최강전(11월 SBS-TV) 한국 우승 서능욱 九단 세계최다 111면기 개최(12월) |
1992년 | 최연소 세계바둑챔피언 기록 이창호 五단이 17세에 제3회 동양증권배 세계선수권대회 우승(1. 27) 최초의 컴퓨터통신대국(3월) 유창혁 六단이 이창호 六단에 승리 제1기 SBS배 연승바둑최강전(3월 SBS-TV) 이창호 六단이 장수영 九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장재식 (재)한국기원 11대이사장 연임(4. 21) 제1회 IBM배 한일 컴퓨터통신바둑대항전(5월) 한국 3전전승 우승, 제2회까지 개최 '92데이콤배 한중 컴퓨터영상바둑대회(10월)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 九단이 한국의 유창혁 六단에게 승리 제1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11월 SBS-TV 진로그룹) 한국 우승 제1기 한국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12월 한국PC통신) 이창호 六단이 조훈현 九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
1993년 | 현재현 (재)한국기원 12대이사장 취임(3. 10) 도전기 최다연패 기록(3월) 조훈현 九단 패왕전 16연패(77년 제13기부터 제28기까지) 충암동문기사회 1백단 돌파(7월) 한국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 제6회 후지쯔배(부사통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유창혁 六단이 조훈현 구단을 물리치고 우승(8. 7) 아마七단 탄생(8월) 강영일·김동섭 등 8명 제1회 4도시대항 소년소녀바둑대회(9월) 우승 북경, 준우승 부산 제1기 EBS배 여류프로기전(12월 EBS-TV) 윤영선 初단이 이지현 初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제1기 프로여류국수전(12월 한국경제신문) 윤영선 初단이 김민희 初단을 2대1로 물리치고 우승 |
1994년 | 세계최다관왕 기록 이창호 六단이 제18기 기왕전에서 우승(3. 16), 13관왕 달성, 국내기전(16개) 사이클링 히트 달성 제7회 후지쯔배(富士通杯)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조훈현 九단이 유창혁 六단을 물리치고 우승(8. 7) 제1회 롯데배 한중 바둑대항전(9월) 한국 8승6패 우승 한국기원 회관 이전(10. 5) 종로구 관철동에서 성동구 홍익동으로 제1회 한중 신예대항전(10월) 한국 7승5패로 우승 제1회 보해컵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11월 보해양조) 중국의 루이 나이웨이(芮乃偉) 九단이 펑 윈(豊雲) 七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세계 최초의 컴퓨터통신 도전기 제2기 한국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 결승 제1국(12. 30) |
1995년 | 한국 세계대회 8연속 제패 기록 제3회 진로배 우승(2. 22), 3연패 한국여성기우회 한국여성바둑연맹으로 명칭 변경 이창호 七단,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3월) 제1회 한일 아마정상대항전(4월 한겨레신문) 한국 10승4패 우승 차민수 四단, 제1회 우정배 창설(5월 중국) 류 샤오광(劉小光) 九단 6승1패 우승 한국근대바둑선구자 고균 김옥균의 바둑판 일본에서 귀환(7. 11) 제7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창호 七단이 조훈현 九단을 물리치고 우승(7. 14) 제1기 테크론배 프로기전 출범(9월 매일경제신문) 한국현대바둑50주년 기념 순장바둑 특별대국(10. 6) 이창호 七단이 조남철 九단에 승리 제6회 세계페어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이경보·권효진이 대만팀을 물리치고 우승(11. 12) 제1회 신사배에서 한국의 서봉수 九단이 중국의 마 샤오춘(馬曉春) 九단을 물리치고 우승(11. 21) 제1기 박카스배 천원전 출범(11월 스포츠조선) 한국바둑텔레비전(B-TV) 개국(12월) |
1996년 | 정동식 五단, 한국기원 사무국장 취임(1.3) 한국, 진로배 4연패(2.10) 이창호 七단 23연속 우승, 제7회 동양증권배 우승(3.20) 제65회 (재)한국기원 정기이사회에서 김우중 총재가 제4대 총재로 재추대 이창호, 제8회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5. 4) 이창호 七단, 은관문화훈장(2등급 수상)(5. 4) 세계 최대 바둑제전 삼성화재배 창설(6.17) 이창호·유창혁, 九단으로 특별승단(6.17) 조훈현 九단, 타이틀 최다연승부문(23연승)으로 기네스북에 오름(6.18) 이창호, 제9회 후지쯔배 우승(8.3) 공익근무요원인 이창호 九단, 훈련소 입소(8.26) 이창호, '96세계바둑최강결정전 우승(4전 전승, 10.18) 이창호, 제3회 응씨배 우승(11.6) 조치훈, 생애 두 번째 대삼관 달성(11.7) 명지대, 바둑지도학전공 개설(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