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金海金氏)는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제12대손 김유신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유신의 직계종파는
고려의 김목경(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그의 아우 김익경(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金克一·金馹孫·金大有)이다.”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란 김해김씨 판도판서공 휘관파(版圖判書公 諱管派)의 별칭이며, 판도판서공파란 중조(中祖) 관(管)할아버지께서 고려말에 판도판서(版圖判書-고려 말기에,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粮)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판도사의 으뜸 벼슬)라는 벼슬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이하 자손들을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또는 판도판서공 휘관파(版圖判書公 諱管派)라고 한다. 조선 정종조에 김해김씨를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하였고 절효공 휘극일(節孝公 諱克一), 탁영공 휘일손(濯纓公 諱馹孫), 삼족당 휘대유(三足堂 諱大有) 등 三人을 가리켜 청도삼현(淸道三賢)이라 칭하였으며 한집안에서 4대(四代)에 걸쳐 3현인(賢人)이 났다는 것은 고래(古來)로 매우 드문 일이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 후손(後孫)들을 삼현파(三賢派)라 불렀다.
시조 : 太祖王태조왕(수로)
2세 : 道王도왕(거등)
3세 : 成王성왕(마품)
4세 : 德王덕왕(거질미)
5세 : 神王신왕(이시품) 6세 : 神王신왕(좌지) 7세 : 惠王혜왕(취희) 8세 : 莊王장왕(질지)
9세 : 肅王숙왕(겸지) 10세 : 讓王양왕(구형 마지막 왕)
11세 : 世宗세종 武力무력 武得무득
12세 : 率友솔우 舒玄서현
13세 : 庾信유신
14세 : 三光삼광
15세 : 允中윤중
16세 : 長淸장청
17세 : 雄允웅윤
18세 : 擎柱경주
19세 : 成海성해
20세 : 挺喆정철
21세 : 琇胤수윤
22세 : 天授천수
23세 : 商佐상좌
24세 : 浩호
25세 : 華齊화제
26세 : 振酉진유
27세 : 承意승의
28세 : 天精천정
29세 : 恒齡항령
30세 : 洙聖수성
31세 : 商欽상흠
32세 : 成雨성우
33세 : 一曙일서
34세 : 匡國광국
35세 : 宗栢종백
36세 : 繡수
37세 : 以琢이탁
38세 : 瑞天서천
39세 : 陽喆양철
40세 : 是秋시추
41세 : 鎭國진국
42세 : 奎祥규상
43세 : 道浹도협
44세 : 湯雨탕우
45세 : 萬瑞만서
46세 : 師孟사맹
47세 : 相宙상주
48세 : 邦直방직
49세 : 益銛익섬
50세 : 柱國주국
51세 : 晢卿절경-무자손
牧敬목경[金寧君派금녕군파(京派경파) : 益卿익경 : 監務公派감무공파(四君派사군파)
52세 : 普보 : 著저(文簡公派문간공파) 秀수(密直公派밀직공파) 蘭란(平章事公派평장사공파)
53세 : 致門도문 : 達門달문[參贊公派참찬공파 顯門현문[奉常公派봉상공파 昌門창문] 密直使公派밀직사공파
54세 : 覲근
55세 : 孝源효원 孝芬효분
56세 : 震孫진손
57세 : 永堅영견(參判公派참판공파), 永瑞영서(橫城公派횡성공파),
永貞영정(安敬公派안경공파), 永純영순(石城公派석성공파)
안경공파(安敬公派)는 금녕군파(金寧君派)[=경파]의 지파(支派)로.
경파에서 분파된 안경공파.
김해김씨(金海金氏) 안경공파(安敬公派)란 시호(諡號)가 안경(安敬)이신
휘영정(諱永貞) 할아버지 그 이하 자손들이다.
수로왕이 즉위 7년에 아유타국(현재 인도 중부지방의 고대국가)의 공주인 허황옥(許黃玉, 33~189.3.1)을 왕비로 맞이하여 10남 2녀를 낳았는데 맏아들은 김씨로 왕통을 잇고 두 아들은 왕비의 간곡한 요청으로 왕비의 성인 허(許)씨(태인허씨)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화하여 하동 7불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허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이씨가 있으며
세 성씨가 다같은 혈족이라며 종친회도 '가락중앙종친회'로 하였습니다.
김해김씨의 중시조는 수로왕의 12세손인 김유신(金庾信)장군이다. 김유신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이며 무열왕의 딸 지소 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신라의 장군이자 각간(角干)인 김무력(金武力, 구형왕의 막내 아들)이고, 아버지는 당대의 이름난 장군인 김서현(金舒玄), 어머니는 진흥왕의 동생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입니다.
김해 김씨 경파의 파조인 김목경(金牧卿)은 고려 충정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 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습니다. 김목경의 맏아들 김보(金普)는 공민왕이 세자 때 국가의 사절로서 중국의 북경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습니다. 김보의 6세손 김영견(金永堅 : 동지중추부사), 김영서(金永瑞 : 현감), 김영정(金永貞 : 성종 때 대사헌), 김영순(金永純 : 한성판관) 4형제가 빼어났으며, 숙종때 명신 김우항(金宇杭)은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으로 1713년(숙종 39년) 우의정(右議政)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