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생활을 10년째 하고 있지만 제주문화원에서 사진을 배우는 사진반에서 청보리를 찍으러 가파도에 20명 이상의 단체가 가기로 했다. 6대의 승용차를 타고 제주시에서 출발하였는데 우리 차에는 육지출신인 나와 제주출신인 반원 4명이 타고 있었는데 제주 생활 10년차인 나만 가파도에 처음 가는 것이 아니라 제주출신의 중년층인 그 분들은 가파도에 처음가는 것은 물론이고 가파도로 들어서는 모슬포까지 가는 길도 몰라 내가 안내하여야만 했다.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배로 10여분 거리이지만 가파도는 제주사람들한테도 그 만큼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배를 타고 가파도에 도착해 보니 회장님과 총무님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인원보다 참가인원이 많았고 배편예약이 만석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회장단에서 다음 배로 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전쟁터에 나가는데 장수가 없는 격이었다. 솔선수범하는 것 까지는 존경을 받을 만 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단원 소속인 나라도 대신 빠져주고 회장단이 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용장 밑에 졸병이 없다고 덕장 밑에 부덕한 단원이 없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파도는 예전에는 참외로 유명하였으나 현재는 보리와 낚시터로 대체되었다. 일제 때 김성숙, 김한정이라는 교육자를 배출하였으며, ‘신유의숙’이라는 6년제 학교를 운영했다. 이로인해 제주본도에서 거꾸로 가파도까지 유학을 하였던 곳이다. 2010년도에는 행안부로부터 친환경 명품 섬 'Best 10'에 선정 되었다. 올레 10-1코스가 개설되었다. 송악산이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본도를 향하여 헤엄치는 게의 모습이다.
가파도는 대정읍 모슬포에서 5.5 Km 남쪽에 떨어져 있는 섬으로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섬의 면적은 0.84㎢로서 마라도 보다 약 2.5배가 크다. 이 섬은 원래 국유 우마목장 이었으나 19세기 중엽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약 1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파도 주변은 파도가 거칠어서 가끔 파선하는 일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1653년 네델란드의 선박인 스펠웰호가 가파도에 표착한 사건은 유명하다. 그 배에 승선하고 있던 헨드릭 하멜이 그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서 저술한 "화란선 제주도난파기"와 "조선국기(朝鮮國記)"를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바가 있다.
이 섬은 '갚아도 좋고 말아도 좋다'는 유행어의 발생지이다. 제주항쟁 때 가파도도 일어서고 마라도도 일어서자 하였으며, 가파도로 도망가도 좋고 마라도로 도망가도 좋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는 갚을 깃은 갚고,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은 갚지 말아야 하는 역사정립의 의미로 승화되고 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접고 우선 올레길을 따라 가파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가파도에 고인돌 군락지가 있다는 것이 새로 왔고, 돌로 둥그렇게 쌓은 마을재단이 특이하였으며 바다멀리 테우에서 직접 고기를 잡는 모습도 들어왔다. 이름 모를 꽃이 해안가 바위틈에서 곱게 자라고 있었다. 북동쪽 해안가에는 환해장성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가파도에서 환해장성의 필요성이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들자 단순한 밭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해장성은 삼별초의 입성을 전후하여 쌓기 시작했던 것이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인데, 이러한 영향력이 가파도까지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다 건너 송악산과 형제섬이 보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산방산의 풍경은 너무 멋있게 들어왔다.
가파도는 올레 10-1코스가 개설된 곳이기도 하다. 총 5km로 1~2시간 코스이다. 매년 봄에는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청보리축제지라는 것이 실감나게 새파란 청보리 밭이 가파도를 뒤덮고 있었다. 마라도가 마주 보이는 섬의 남서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벽에는 벽화가 제법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제주 구 시내권의 두맹이골목에서 본 것과 유사한 그림들로 마을 풍경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파도 둘레길은 시멘트길과 흙길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데 산책하기에는 역시 흙길의 운치가 한결 좋게 다가왔다.
나의 사진 수준은 그 동안 똑딱이를 들고 다니며 그 것도 완전 자동에 놓고 찍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DSLR카메라를 준비하여 아직은 조리개와 셔터우선의 조작도 제대로 못하기에 자동 또는 P모드에 놓고 손에 익히는 수준이다. 두 번째 돌 때는 청보리밭의 풍광은 물론이고 멀리 보이는 마라도와 한라산, 송악산 너머 산방산은 물론이고 가파초등학교에 세워진 김성숙 선생의 동상, 고인돌, 마을재단, 전통 올랫길, 개와 고양이, 우엉밭, 이름 모를 꽃에 대한 접사촬영, 돌담 등 닥치는 대로 찍어 보았다. 그리고 주변의 동료 분들한테 사진기의 각 구성요소에 대한 기능들에 대해서도 이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계속 질문을 하면서 조금씩 사진에 대한 실습을 통해 지식을 넓여 나가고 있다.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서재철 선생님께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렌즈를 위에서 돌리지 말고 아래에서 받쳐서 해 보라는 것이었다. 다소 불편하다고 하자 불편해도 몇번만 반복하다 보면 더 자연스럽고 떨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것만이라도 실천해 보자고 다짐하면서 배운 대로 반복해 보았다. 역시 선생님의 지적이 옳았고 오늘 그 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한 교육효과가 있었다.
고양이가 제법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해안가 정자에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개중에서 가장 큰 송아지만한 개가 밧줄에 묶여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보자마자 짓어 댔다. 나는 어렸을 적 중학교에 왕복 20km를 혼자서 고개를 넘고 산을 넘어 걸어서 통학했다. 그 때마다 여러 개의 마을을 지나가게 되는데 개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 놀고 있었는데 개를 길러보지 않은 나는 그 개들을 너무 무서워 피하여 다니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한 개들에 대한 두려움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혼자 살던 아들 녀석이 요크샤테리아라는 조그만 개를 사서 기르다가 기를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비행기를 태워 제주도로 데려왔다. 그 개를 기르면서 개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졌고 개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송아지만한 개가 거침없이 짖어댔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멍엄아 짓지 말고 우리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서 말을 걸었다. "옳지, 옳지, 착하지"하면서 가까이 접근하자 꼬리를 흔들면서 편안하게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동물인 개도 그러한데 인간관계도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리라.
사진출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함께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하면서 반주를 나누는 시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자리라 서먹서먹하지만 그러한 자리를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사진촬영도 중요하겠지만 인간미를 갖고 정을 돈독히 나누게 된다. 늦게 도착한 회장단도 참여하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모슬포에서 삼영호가 운항하며 09:00, 11:00, 14:00 , 16:00출발한다. 가파도에서는 09:20, 11:20, 14:20, 16:20분 돌아온다. 배로 10여분 걸린다. 그러나 일기 조건 등으로 자주 바뀌니 미리 전화(064-794-3500)문의를 해 보는 것이 좋다. 운임은 성인기준 4천~5천원이다.
□ 상세자료
http://jejuin.tistory.com/256
http://jejuin.tistory.com/242
http://jejuin.tistory.com/643
□ 전문기사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83879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88974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89047
첫댓글 역사와 사실, 그리고 생각과 느낌까지 세세하게 잘 적어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무덤덤하게만 여겨왔던 일들로만 여겨왔지만 여러가지 가파도의 내력까지 알려주시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그리고 글쓰시는 실력도 대단하네요..수상록을 써도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여행수기 같이 나열하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작문 실력도 대단 하시고 가파도의 내력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잘못된점이 있으면 지적하여 주시고 시정하는 방향으로하지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