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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요 |
1960년대에 들어 2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대폭 확대되었으며 원양어선을 비롯하여 각종 수산업도 발전함에 따라 선박의 국내 수요가 급격히 증대되었다. 1962년 당시 군사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선질개량 3개년 계획으로 당시의 비효율적인 선박엔진을 디젤엔진으로 대체하게 하였고, 대한조선공사의 시설확장 및 근대화 계획으로 연간 6만6천여 톤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초기 경제개발은 공업구조가 취약하였던 관계로 인해 경공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중화학공업인 조선공업은 특별히 발전하지 못했다. 한편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 정부는「조선공업진흥법」과「기계공업진흥법」을 제정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조선공업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70년대 이후 조선공업이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또한 기술적인 면에서도 표준선형의 설계를 제정하고 선질을 목선에서 강선으로 개량하면서 조선기술의 수준이 급속히 향상되었으며, 국제적 선급협회로부터도 조선기술을 인정받아 베트남과 자유중국에 선박을 수출함으로써 수출산업으로서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조선공법도 블록 건조공법이 완전히 정착되고 용접기술의 국제수준화가 이루어졌으며 각종 조선기자재도 국산화사업에 힘입어 선박 국산화율이 크게 제고된 기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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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업체 현황 |
1962년 7월 말 등록된 조선업체 수는 강선 조선소 9개소, 목선 조선소 97개소, 선박용엔진 제조 및 수리 103개소, 의장품 제조 6개소 등 총 215개소로 1957년 8월말 173개소에 비해 20% 이상 증가했으나, 이러한 증가는 주로 群小 조선공장의 난립에 의한 것으로서 규모가 작은 국내의 조선자금과 조선인력을 더욱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60년대 들어 계속 조선사업장수와 능력은 증가하였으나 건조실적이 저조하여 가동률은 2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조선소 중 가장 규모가 큰 강선조선소인 대한조선공사는 3,000GT급 선대 3기와 500GT급 2기, 3,000GT급 및 7,000GT급 드라이도크가 각1기, 수리선대로서 300GT급 및 500GT급 인양선대가 각 1기씩 있었으며 기타 조선조기(造船造機)를 위한 각종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강선 조선소의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큰 것은 아니었으나 전체 조선공장이 완전 가동되면 강선 조선능력은 1962년 7월 말에 신조선 18,150GT, 수리선 305,800GT이었으며, 여타 목선조선소의 능력까지 합한 총 생산능력은 조선부문에 있어서 신조 50,973GT, 수리 645,980GT이며, 조기부문에서 신조 94,301마력, 보수 853,180마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동은 공장시설의 20%대에 불과하여 나머지 시설은 유휴상태였다.(표 1 참조) (표 2 참조) (표 3 참조) #EAEA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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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조선공장 현황(1961년 8월말 현재)
구 분 |
공장 수 |
생산능력 |
조선 |
造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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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신조선(톤) |
수리선(톤) |
기관제작(HP) |
기관수리(HP) |
인 천 장 항 군 산 목 포 여 수 부 산 포 항 묵 호 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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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4 8 7 45 7 15 3 |
7 3 9 7 6 42 8 4 2
|
15 5 13 15 13 87 15 19 5
|
5,200 500 1,100 1,750 1,950 24,160 2,900 7,030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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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1,100 3,200 12,960 15,800 521,760 20,200 57,800 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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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0 2,800 - 1,050 2,550 32,370 1,880 505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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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0 9,200 9,800 26,580 14,600 813,620 19,100 22,100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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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
99 |
88 |
187 |
45,290 |
639,920 |
54,855 |
946,000 |
자료 : 상공부 |
<표2> 조선소별 생산능력(1962년 7월말)
업 체 명 |
소 재 지 |
생 산 능 력 |
신 조 |
수 리 |
大韓造船公社 釜山造船 工業株式會社 朝鮮 船舶工業株式會社 大榮 造船鐵工所 防禦陣 造船鐵工所 慶南 造船所 朝鮮 機械製作所 大鮮造船 鐵工所 大林 造船所 |
부 산 부 산 부 산 부 산 울 산 부 산 인 천 부 산 인 천 |
10,000 700 1,000 1,200 2,000 250 1,000 1,000 1,000 |
10,000 28,800 7,200 54,000 16,000 4,800 6,000 84,000 5,000 |
합 계 |
18,150 |
305,800 | |
<표3> 1960년대 조선능력 및 가동율 현황
연도 |
조 선 능 력 |
건 조 실 적 |
가동율 (%) |
최대 건조선 (GT) |
공장수 |
GT |
척 |
GT |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
106 100 104 111 115 115 133 139 152 140 |
41,700 49,700 53,640 63,440 80,710 87,750 123,320 157,100 187,000 189,900 |
295 334 312 358 397 253 485 1,083 717 590 |
4,636 8,869 11,625 13,788 17,683 19,944 31,148 37,804 39,100 43,310 |
11.1 17.8 21.7 21.7 21.9 22.7 25.3 24.1 20.9 22.8 |
200 500 2,400 4,000 4,000 5,000 6,100 12,000 12,000 12,000 | 자료 : 상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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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 실적 |
1960년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적극적인 추진은 우리나라 경제의 규모를 급속히 확대시켰으며, 이에 따라 선박의 수요도 급증하게 되어 1962년의 7,904GT에서 1969년에는 270,968GT으로 약 33배의 증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총수요 중 국내 건조 비중은 갈수록 낮아져 1차 계획 기간 중에는 30%를 국내에서 건조한데 비하여, 2차 계획 기간 중에는 15%에도 못 미치는 13.5% 수준에 그쳤다.(표 4 참조) 도입 선박 중에는 상당수가 국내 건조가 가능하였는데 이는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해운 및 어업에도 민간차관 형식으로 경제협력 자금의 상당 부분을 배정지원을 받게 된 반면 무상원조의 대일청구권 자금에서는 불과 20톤 급 미만의 연안어선 건조자금밖에 지원을 얻지 못한데 그 원인이 컸다. 이외에도 차관 연불수입에 의한 구입자금 조달의 용이성, 중고선 도입으로 인한 자금절약, 수입 선박에 대한 면세, 국내건조선박의 가격과 품질에 대한 문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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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4> 1960년대 선박수급 현황
연 도 |
국내건조(GT) |
도입(GT) |
총수요(GT) |
자급도(%) |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
4,636 8,896 11,625 13,788 17,683 19,944 31,148 37,804 39,100 43,230 |
3,268 1,514 709 60,855 67,086 266,559 187,026 233,164 131,921 194,861 |
7,904 10,383 12,334 74,673 84,769 286,503 218,174 270,968 171,021 2,238,171 |
58.7 85.4 94.3 18.5 20.9 7.0 14.3 14.0 22.9 1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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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정책 |
(가) 수출산업화의 기반구축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1960년대의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에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목선건조에서 강선건조로 전환하였다. 따라서 동 시기는 조선산업의 수출산업화를 위한 착실한 준비 기간이었으며 근대화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1966년 대한조선공사가 자체기술로 건조한 2,600GT급 화물선이 최초로 미국선급협회(ABS)의 검사에 합격했으며, 이에 힘입어 선박 수출에도 시야를 돌려 대한조선공사와 대선조선은 바지선 30척을 1967년에 최초로 베트남에 수출하였다. 정부는 1968년부터 선박 수출을 계획하여 그 해에 1,600만$의 수출목표를 세우고 1971년에는 53,750GT를 수출하는 장기계획을 마련하였다. 1969년에는 250GT 참치어선 20척을 대만에 수출하게 됨에 따라 해외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아울러 해외시장 개척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선박의 대형화 추세가 진행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최소 10만톤 급 이상의 선박건조능력을 갖춘 조선소를 검토하게 되었다. 국영의 대한조선공사는 오랫동안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다가 경영합리화의 일환으로 1968년에 민영화되었고 자본금도 30억 원으로 대폭 증자하였다. 또 시설확장계획을 수립하여 제1단계로 1972년 8월까지 12,000DWT급 도크를 6만DWT급 수리용 도크로 확장하고 기존선대 6,000DWT 2기를 60,000DWT급으로 확장키로 했으며, 2단계로 최대 25만DWT급 도크의 건설을 계획하였다.
(나) 조선업 장려책
대부분의 선박용 기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수산업자나 해운업자는 국내 건조를 기피하였기 때문에, 정부는 이미 건조비의 40% 이내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조선장려법을 제정한 바 있었으나 예산 부족 등의 사유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중 5.16혁명 후 정부는 강력한 조선장려책으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시책을 채택하였다.
① 건조자금 구성 : 실수요자는 총건조비의 10%에 해당하는 자기자금을 부담케 하고 보조금 40%, 융자금 50%의 비율로 건조비를 구성. ② 정부보증융자 조치 : 실수요자의 담보물 결여에 의한 사업의 지연을 막고 실수요자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선박 건조기간 중에는 정부보증 융자로서 공사를 시행하고 완공 후 건조된 선박만을 후취담보. ③ 이자율 경감과 상환 기간의 연장 : 융자금의 이자율을 년 5%, 상환기간을 15년으로 연장하여 수요자의 연간부담금을 경감. ④ 도입선용 원자재의 관세면제 : 철강재, 목재 등 수입되는 조선용 기자재의 관세 면제를 통하여 선박 건조비를 절감. ⑤ 대한조선공사의 재건 : 우리나라 최대의 조선 시설을 보유하고 연간 1만GT의 강선 건조 능력을 갖춘 대한조선공사가 누적된 부채로 막대한 경영상의 애로를 겪고있는 상황이어서 5개년 계획 수행에 차질을 야기할 우려가 있으므로 정부는 1962년 4월 법률 제1064호로서 대한조선공사법을 공포하여 주식회사의 체제였던 동사를 완전히 국영기업체로 개편.
(다) 수산개발, 선질개량, 선박도입에 대한 3개년 계획
1964년도에 정부는 자금 사정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산개발, 선질개량, 선박도입에 대한 3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수산개발 3개년 계획 - 연승어선, "스턴트롤"工船, 어업母船 등 227척 건조를 위하여 13,700만 달러를 차관 - 대중형기선, 저인망어선, 포경선 등 589척을 건조하기 위하여 5,264만 달러를 차관 - 연안어로형 어선 5,632척의 동력화 - 저성능기관 어선 4,748척의 디젤기관화를 위하여 5,264만 달러를 차관 ② 선질개량 3개년 계획 : 국내 선박의 70% 이상이 노후화하여 경영 적자 요인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비능률적인 hot engine의 디젤기관화와 노후 해체의 보수를 추진. ③ 해운선박도입 3개년 계획 : 외항 수송 수요량 증가에 따라 정부는 국내화물을 국내선박으로 수송할 수 있는 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175천GT의 선박도입을 추진.
또한 1965년도에 정부는 대일청구권 자금에 의한 조선계획을 포함, 선박수요처인 농림부와 교통부의 선박수요량을 연도별, 선종별, 톤수별로 확정하고 대형 선박의 국내건조 공급을 위한 기존 시설의 확장 및 근대화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대한조선공사에 대한 시설확장 및 근대화 작업(최대건조능력 13,000GT, 연간능력 66,000GT, 자본금 10억 원에서 30억 원으로 증자)에 착수하는 한편 정부는 대일 청구권자금을 이용해 어선의 건조 및 도입을 시행했다.(표 5 참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최종 연도인 1966년에 있어서의 조선공업은 예년에 비해 상당한 활기를 띠었다. 이것은 어선의 근대화에 따라 연안 및 원양어업 진출을 도모하려는 어업계의 동향과 대일청구권자금 중 어업협력자금에 의한 선박건조 및 도입계획이 수립된 데 비롯되었다. 당초 대일청구권 무상원조자금의 어업협력자금 제1차 연도 사용액 899만 달러 중에서 어선도입자금으로 360만 달러가 배정되었으나 실제 도입실적은 없었다. 어선건조자금으로 424만 달러가 배정된 것은 1966년 말 146만 달러의 조선용 자재와 9.3만 달러의 어선동력 개량을 위한 자본재의 도입으로 155만 달러에 해당하는 물자만이 도입되어 이것이 조선공업 생산 활동에 기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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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5> 대일 청구권자금에 의한 어선건조 및 도입실적
구분 |
사업내용 |
도입기자재 |
규모 및 수량 |
도입액(천$) |
어 선 건 조 |
기선저인망
근해어선 연안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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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건조자재 일부 및 기관, 강판, 의장품 근해어선 건조자재 건조자재 일부 삼재 3,840㎥ 기관부문 310대분 발전기 260대분 |
100톤급 28척 50톤급 35척 70톤급 6척 소형어선 514척 (4,686톤) 중형어선 776척 (20,675톤) |
2,104 - - 277 5,98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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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어선 |
대형기선저인망 선망어선 |
2수인 저인망어선 선망어선단 |
100톤급 16척 70톤급 18척 |
1,871 1,727 |
합 계 |
총 33,490톤 1,392척 |
11,915 | 자료 : 경제기획원 |
(라) 표준선형의 제정
한편 1965년에 상공부는 대한조선학회에 표준선형의 설계를 의뢰함에 따라 1971년까지 대한조선학회는 조선공사를 비롯한 현장설계 기술진, (주)한국해사기술 설계진, 한국선급협회,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각 대학 등 각 분야 조선설계자의 협력으로 근해어선, 원양어선, 연안객선, 연근해유조선, 화물선 및 원양화물선 등 65여 종의 중소형 표준선형의 기본설계를 수행하였다. 선형 및 선종에 따라 선박안전관계 규정과 한국선급협회 규정에 맞도록 설계하였으며 1,000GT급 이상의 화물선, 유조선 등은 향후 미국 선급협회 입급을 예상하여 ABS규정에도 부합되는 구조로 설계를 진행하여 계획조선의 실시와 설계기술의 향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선박의 건조가 동일한 선종?선형이라 해도 선주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사양을 갖게 되므로 양산할 수 없는 게 보통이지만 일시에 많은 선복이 요구될 경우 표준선형 설계에 의한 계획조선을 실시하여 조선산업 뿐만 아니라 해운업 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었다. 표준선형 설계에 의하여 건조하는 경우 소요되는 자재와 공정 표준화 및 단순화가 가능하므로 선박의 질적 향상과 공기의 단축, 선가절감을 꾀하고 설계기술이 빈약한 그 당시 각 조선소에서도 기 작성된 표준에 의거 건조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기술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으며 또한 계획조선으로 조업도의 향상을 기하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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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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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을 주로 건조한 1950년대는 물론이고 1960년대 전반의 우리나라 조선기술은 선진국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6년 대한조선공사에서 2,600GT급 화물선을 자체 기술진의 힘으로 건조하여 ABS로부터 품질인증을 받고 1968년에는 4,000GT급 화물선을 건조하여 ABS와 KR의 검사에 합격함으로써 국내 조선기술이 점차 국제 수준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었다. 제1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정부는 조선기술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표준형선을 연차적으로 제정, 발표하고 선박용 중소형 디젤기관 제작, FRP선제작 기술개발, 통신기기 및 탐지기 제작, 특수 용접봉 제작 등 각종 관련기기의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대한조선공사의 기술자 양성소를 활용하여 조선기술자의 양성을 후원하였다. 제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에도 조선업체에 대한 기술자료 제공, 공정개선을 통한 원가절감책 권고 등의 기술지원을 적극 추진한 결과 1960년대 후반에는 선체부문에 있어서 신공법이 확보되었으며 블록 건조법이 완전 정착되고 용접기술의 국제 수준화, 표준형선의 설계를 통한 설계기술의 향상 등이 성취되고 공기 단축 및 원가 절감 면에서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외에도 1968년 11월 6일 민영화된 대한조선공사는 시설 확장에 대비하여 1만GT급 선박의 설계 및 건조, 2만GT급 선박의 수리, 용접의 자동화 및 고속화, 선박 하역장치의 자동화, 특수선박 건조, 냉동장치의 국산화, 어선의 어로장치 개선, 경금속 및 합성수지 의장품 제작, 선박용 유압기계의 국산화, 특수합금의 제작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기술 개발을 적극 추진하였다.(표 6 참조) |
<표6> 제1,2차 5개년계획 기간중 조선기술 개선사항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기간 |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
- 조선용 디젤기관 (소형) 제작 - FRP선 기술개발 - 통신기기, 어군탐지기 제작, 특수용접봉 제작 등 각종 관련기자재의 국산화 추진 - 블럭 건조방법 채택 - 의장품규격 표준화(KS) 시행 - 표준선 세부설계 - 조선용 기호, 약호 통일안 작성 |
- 10,000GT급 선박설계 및 건조 - 20,000GT급 선박의 수리 - 용접의 자동화 및 고속화 - 선박 하역장치의 자동화, 냉동장치의 국산화, 어선 의 어로장치 개선, 선박용 유압기계의 국산화 등 기 자재부문 기술 수준 향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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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련 기관 |
(가) 한국선급협회
사단법인 한국선급협회는 1960년 6월 20일 국내 해운, 보험, 무역, 조선업계 및 해운기술계와, 조선기술계의 권위자가 설립 필요성을 인식하여 발기인회를 개최하면서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9월 10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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