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주..
왜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저 멀리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아쉬움이 밀려오는것일까..
축구라는 경기의 특성상 공격을 진두 지휘하고 골맛을 보는 공격수에게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지만 한국 축구 역사상 왼쪽 터치라인을 이렇게 지배했던 선수가 있었을까..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44년만의 첫 선제골의 주인공
그리고 2분뒤 국민역적으로 내몰림..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공의 궤적으로 멋지게 일궈낸 통한의 한일전의 한장면 한장면등을
주제로 글을 이어나간다
PART 1------ 98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아픔...
흔히들 베컴하면 화려한 외모로 전세계 축구팬의 핫이슈메이커이지만..
축구를 조금이나마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오른발에 더 가치를 둘것이다
그의 공의 궤적과 정확성은 여타 스피드와 피저컬의 한계를 깰정도로
너무도 완벽하고 잉글랜드의 팀 전체 전술의 반이상을 차지할정도로 멋진 킥력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저자는 이점이 잉글랜드가 단순함에서 벗아나지 못하는거같다
제라드와 램파드의 공존만큼이나 빨리 베컴의 의존도를 벗어났어야하는데..)
왜 뜬금없게 베컴얘기를 꺼내는지 의아해 할수있으나...
내가 본 하석주의 볼줄은... 베컴의 볼줄 만큼이나 아름답다고 감히 말수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지 오른발과 왼발의 차이일뿐이지 이 두선수 모두 킥에 있어서는 최고 정점의 선수들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베컴에게는 없는 성실성과 투지 오버래핑능력까지 갖춘선수가 하석주선수이니
이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더 말할나위없이 충분하다고본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좋은기억보다는 안좋은기억을 더 오래 기억하는 습성때문에..
정말 멋진 기억들조차 파묻혀 선수생명에 위협을 줄정도로 어쩌면 가장 비참할지도 몰랐을
고통을 떠안겨주게 되지 않나싶다
98프랑스 월드컵...축구스타 차범근호는 예선에서의 도쿄대첩과 강력한 경기력으로 전국민의
16강 진출의 염원을 한몸에 받고있었다..
하지만 에이스 황선홍의 중국전 부상과 보이지않는 국민들의 부담스런 기대에 감독이하 선수들
모두 정신적으로 큰압박에 시달려 제 컨디션을 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과론이지만 축구라는것이 막상 본인스스로의 컨디션 정신력 운동력등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눈치와 센스 그리고 현장분위기 적응력이라고본다
그당시 유행이 피파에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본것이 백태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였다
지나친 과욕은 평정심을 잃고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타스포츠에서도 심심치않게
봐와서 잘 알것이다
그 당시 멕시코전 주심은 분명 파울에 민감했다
만약 하석주선수가 골에대한 기쁨과 흥분을 잠시 거두고 심판의 성향과 멕시코 특유의 엄살을
조심했더라면.........월드컵 원정 첫승은 일찌감치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익히 알기로 멕시코전은 10:11로 싸운걸로 사람들눈에는 기억되겠지만..
사실 전반전까지 폭넓은 활동으로 타겟맨으로써 충실하던 김도훈이 후반전에 들어서 다리에
경련이나 실상은 9:11의 게임이였다
우리의 슬픈 축구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치고 있어서 나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너무도 우리 선수들이 불쌍해보였다
블랑코의 개구리점프 드리블이 그렇게 미워보였다..
그리고 하석주 선수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이때부터 어쩌면 네덜란드전의 0:5패배의 징조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축구는 팀플레이의 경기다 팀분위기가 80프로다
감독과 선수 그리고 자국민의 압박이 안좋게 나올시 선수들의 경기력에 상당히 큰 타격을 준다
하석주는 한게임 출장정지를 당했고...네덜란드전을 부상당한 황선홍과 함께 벤치에서 처참히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하석주 본인의 자리에서 활개치는 오배르마스를보며 얼마나 분투를 삼켰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레모니의 기쁜이 채 가시기도 전에 퇴장이라니..
네덜란드와의 경기후 차범근은 대표팀 수장에서 월드컵 예선이 끝나기도전에 비행기에 몸을싣고
낙향하고말았다...
이미 16강은 물건너갔지만 마지막남은 벨기에전은 선수들에게 어떤의미였을까..
감독의 경질과 목표달성 실패.. 만약 마지막 남은 경기마저 패해서 3패라는 결과를
안고 돌아간다면 생계란 맞는꼴은 불보듯 뻔할거같다는건 선수단 전체가 공감했을것이다
벨기에는 한국을 이길경구 16강진출이 가능하기에 100프로 전력으로 나왔다
그래서 경기는 더 치열했다
이때부터 한국축구의 슬픈근성이 더욱더 확고해졌다고본다
대한민국은 골을 먹어야 정신을 차린다는...슬픈 근성..
벨기에전도 선취골을 허용후 끌까지 포기하지않고 버틴 결과물인거같다
그 경기장에서 가장 동점골을 열망했던이도 하석주였는지도 모른다..
유상철의 다이빙슛보다도 하석주의 감기는 프리킥이 왜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걸까..
축구 전문가들은 하석주의 왼발킥의 완성을 97년도 부터라고한다 통계를 보면 이미
평가전과 각종 아시안컵등에서 그의 왼발에서 골과 어시스트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나온다
어쩌면 잉글랜드의 베컴처럼 우리에게도 강력한 총알이 있었는데..
왜 자폭할수 밖에 없었는지...
포물선을 그리는 그의 볼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