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한번쯤 과학영재고와 과학고를 꿈꾼다.
꿈이 현실이 되기에는 그 길이 너무나 멀고 험난하다.
올해는 부산영재고에서 포트폴리오를 1M짜리 그림파일 3개로 제한했다. 과열된 포트폴리오 제작으로 작년에 택배트럭이 매일 몇차례오가는 곤혹을 치룬 결과이다. 경기영재고, 서울영재고, 대구영재고는 서류전형 후에 수학, 과학 시험을 치렀다. 경기영재고의 수학문제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이었고, 서울영재고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문제가 많았고, 대구 영재고는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시험을 보러 다녀온 아이들이 말했다.
내가 써 준 학생이 8명 복수 지원으로 인해 21개의 영재고 추천서를 썼다. 수학선생님도 이 정도 쓰셨다. 우리학교에서 영재고 지원자가 18명이었다. 부산영재고 1차 서류전형은 우리학교에서 두명이 붙었다. 그 중한 학생은 스펙도 좋고, 내신도 좋았다. 한 학생은 수학을 뛰어나게 잘했다. 경기, 서울, 대구는 1차 서류전형에서는 거의 모두 붙었다. 서울영재고와 대구영재고 시험에서는 모두 떨어졌고, 경기영재고 수학, 과학 시험 후 5명이 합격했다. 이들이 캠프 후에 최종 두명이 붙었다. 이 중 한명은 부산영재고 서류전형에 붙었던 학생이다. 그 중 한명은 잘 모르지만 대회출전 같은 스펙은 많지 않은 학생이다.
결론적으로 스펙보다는 내신과 실력이다.
그러나 교사가 추천서를 써 줄 때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한 것만을 써주려면 쓸 것이 없다.
수업시간에 성실한 것은 물론 학교 과학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교내 과학, 수학관련대회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스펙쌓기가 아니라 학생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성실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가져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추천서를 써줄 수 있다. 마음은 마음으로 통한다.
리더십을 쓰는 난이 있다고 해서 꼭 반장이나 학교회장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팀을 짜서 연구할 때 서로를 배려하고, 의사소통을 잘하는 정도의 리더십이면 될 것 같다. 결국 스펙은 서류전형에서 아주 조금 반영되는 것 같다. 수학, 과학에 대한 실력에 의해 2차로 뽑히면 캠프에서는 탐구능력과 협동력 의사소통능력등이 실제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돋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능력은 타고 나기도 하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대회를 준비하면서 내면화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영재고 추천서를 쓰면서 꽤나 투덜거렸었다. 과학적 영재성도 있고, 내신도 좋아야하고, 리더십도 있어야 하고, 봉사도 많이해야하고...이런 완벽한 아이들이 어디 있냐고...아이들을 이중으로 고생시킨다고...오히려 과학영재아들 중에는 리더십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아이들도 많다고...그러나 뽑힌 아이들을 보니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매우 잘하는 아이를 뽑았다기 보다는 수학과학이 매우 뛰어나고, 다른 것이 부족하지 않은 아이들이 선발된 것 같아서이다.
영재고에 떨어진 학생들이 8월에 있을 과학고 추천서를 부탁한다는 문자가 오고 있다. 과학담당 교사로서 추천서를 쓰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로움 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아이들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많은 아이들이 모두 이공계에 진학할 것인가?
아이들의 목표가 특목고가 아니라 인류에 이바지할 과학자 이면 좋겠다. 좀 더 넓게 경험하고, 여유있게 공부하면 좋겠다.
중학교 3년을 학교에서는 내신관리, 학원에서 특목고 준비로 청소년기를 다 보내고 나면
읽은 책도 없고, 세상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서로 의사소통할 줄도 모르고, 추억조차 공부한 것 밖에 없다면....
그러나 그렇게 준비한 특목고를 떨어지면 이 아이들의 충격이 너무 크다.
타고난 영재가 아니면 미치도록 공부해야한다. 내신도 좋아야하고, 수학, 과학 실력도 매우 좋아야 한다. 자기 생각도 분명해야하고, 의사소통도 잘해야하고, 실험설계 보고서 작성 능력 등등 단순한 스펙이 아닌 진정한 과학적 탐구능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떨어진다. 그 차이는 침착함이나 섬세함의 차이에서 올 수도 있다. 3년을 준비했는데 떨어졌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학고는 내신의 비중이 더 크다. 전교 10등 안에는 들어야 할 것 같다. 수학, 과학은 물론 완벽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전교 1등은 떨어지고 10등 넘어 아이가 붙은 경우를 보면 내신만 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종 목적지가 과학자나 공학자라면 특목고는 거쳐가는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학생들이 이곳을 최종 목적지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아는 어떤 학생은 과학고에 떨어지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선망하는 세일고도 뺑뺑이에서 밀려 별로 세지 않은 학교에 갔는데 워낙 우수하니까 학교에서 키워줘서 대회출전을 많이 해서 좋은 성적을 얻고, 내신도 좋아서 포항공대에 갔다. 포항공대도 과학고아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아니면 할 수 없다. 천천히 가면 된다. 이 세상의 과학이 모두 영재들에 의해서만 발전되어 온 것은 아니므로....
왜 이런 특목고는 생겨서 꽃다운 나이에 버거운 짐을 지고, 꿈을 이룬다는 이름하에 키도 못 크게 고생을 시키는지...
과외와 학원이 금지된 좋은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아이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내 인생에 읽은 80%의 책은 학교숙제 이외에 할 일이 없었던 중학교 시절 다 읽었다. 세계문학전집, 한국단편문학전집..등 두껍고, 세로줄로 빽빽하게 쓰어진 문학책을 읽으며 지적우월감을 느꼈던 그 시절에 쌓은 지혜는 지금도 내 삶의 근간이 되고 있다. 특목고를 준비하더라도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
워낙 시간이 없는 걸 앎으로....참 헛소리이다.
어째거나 다양한 길 중 하나 일 뿐이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되 안되면 실망하지 말고, 그래도 과학자의 길을 쭈욱 준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