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들 중 제작비 대비 수익률로 상위 5위 안에 드는 성적을 기록한 인디영화{‘인디(Independent의 약어)’란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데, 이윤확보를 1차적 목표로 하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우선시되는 영화를 말한다}는 「후회하지 않아」라는 퀴어영화{사전적으로 ‘퀴어(Queer)’란 ‘기묘한’의 뜻을 지녔지만 통상 동성애자를 경멸·풍자적으로 부르는 단어로서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말한다}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시골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안고 서울생활을 시작한 ‘수민’은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삶에 힘들어하던 ‘재민’의 차를 대리운전하게 되면서 두 남자의 만남은 시작되고, 잠깐 동안이었지만 서로 깊은 인상을 품게 된다. 그 후 수민은 공장을 나와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한 선배의 소개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게이 호스트바에 취직하게 된다. 한편, 집안에서 정해 준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재민은 자꾸만 수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피할 수 없어 수민이 일하는 호스트바로 찾아가게 된다. 재민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수민에게 빠져들고, 수민 또한 재민에게 마음이 다가가면서 두 남자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 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총 제작비 1억원을 투입한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4만 3,000여명의 관객을 모으며 인디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해 조명을 받았고, 최근 베를린 영화제의 파노라마 부분에 초청받아 외국인들에게 선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해 총 107편의 한국영화가 개봉되었으나 그 중 수익을 거둔 영화는 단 20편뿐인 현실에서 상업영화도 아닌 인디영화 한편이 그와 같은 결실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인디영화의 가장 모범적인 전례가 될 것이라 한다. 사실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 ‘왕의 남자’에서도 동성애 장면이 일부 나오는 것에 비추어 보면, 퀴어영화가 기존의 문화적 충격이나 정서적 거부반응보다는 어느 정도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하는 영화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만약 이러한 동성애 감정이 결혼 단계까지 발전하여 혼인신고를 하고 정액제공자나 대리모 등에 의한 인공수정, 양육 기타의 방법으로 아이를 가질 경우 그들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간의 결혼에도 늘 이혼이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듯이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닐 수 없는데, 동성부부가 이혼할 경우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갖지 못한 타방은 면접교섭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미국 유타(Utah) 주 대법원 판결이 2월16일자로 선고된 바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미국 내 동성간 결혼의 인정여부에 대하여 알아보자. 미국에서는 이를 흔히 ‘게이 결혼(gay marriage)’이라 부르는데, 그에 대한 법적 보호를 부르짖는 사회분위기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는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각 주의 자치권을 기초로 만들어진 연방국가이므로 연방정부는 각 주의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전통 존중의 차원에서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와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 달라는 사회분위기가 거세어지자, 1996년경 결혼의 개념정의를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 명시적으로 규정한 결혼보호법(the Defense of Marriage Act)이 연방의회에 의해 통과되고 같은 해 9월 21일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이에 서명함으로써 발효하게 된다. 이에 불구하고 이 법은 각 주가 자치적 입법에 의해 결혼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1996년 미국 하와이 주를 시초로 버몬트 주, 메사츄세츠 주, 캘리포니아 주 등은 동성결혼은 인정하되 전통적 ‘혼인(marriages)’의 신고가 아니라 이와는 다른 별개의 개념인 ‘결합(civil union)’신고를 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소개할 유타 주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는 원고(피상고인) 케리 린 존스(Keri Lynne Jones, 이하 ‘존스’라 함)란 여성과 피고(상고인) 체릴 파이크 발로우(Cheryl Pike Barlow, 이하 ‘발로우’라 함)란 여성으로서, 이들은 2000년경부터 사귀게 되면서 결혼을 결심하고 같은 해 11월경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는 버몬트(Vermont) 주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게 된다. 그 후 이들은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협의를 거쳐 우선 발로우가 정자기증자(sperm donor)의 도움을 받아 인공수정을 통해 첫째 아이를, 그리고 존스가 같은 방법으로 둘째 아이를 가지기로 하고, 이에 따라 발로우는 2001년 10월 출산을 하였는데 출생증명서에는 성을 ‘존스 발로우’로 기재했다. 또한 2002년 5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타 주법을 고려하여 유타주 법원에 자신들을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수행할 ‘공동후견인(co-guardians)’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하여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2003년 10월경 존스와 발로우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자 아이를 낳은 발로우는 아이를 데리고 별거를 시작했고, 이윽고 유타주 법원에 존스에 대한 후견인 지정취소를 신청하여 법원의 취소결정을 받았다(버몬트 주법상 결합신고는 유타주에서 인정되지 않으므로 발로우는 별도로 이혼신고 같은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2003년 12월경 존스는 유타주 지방법원에 아이에 대한 자신의 면접교섭권(visitation right)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카먼로(Common law)상의 ‘인 로코 퍼렌티스 원칙(doctrine of in loco parentis; 부모는 아니지만 일정한 지위에 있는 자가 후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존스에게도 면접교섭권을 청구할 당사자적격이 인정되고, 나아가 존스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의 복리후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존스의 청구를 인용했다.
이후 발로우가 불복하여 유타주 대법원의 심리가 열렸고, 대법원은 “존스가 후견인 지위를 상실하면서 인 로코 퍼렌티스 원칙에 의한 보호관계가 종료되었고, 존스가 원용하고 있는 유타주 대법원의 1978년 그리블 사건(Gribble v. Gribble) 판결에서 혈연관계 없는 계부에게도 면접교섭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으나 이는 유타주 성문법에 의한 것일 뿐 그 사례를 성문법상 면접교섭권 보호조항이 없는 동성간 결혼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면서 원심을 파기하였다. 즉, 아이를 낳는데 기여한 바 없는 존스는 인공수정을 통한 생모인 발로우와 공동후견인으로 등록된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을 가질 수 있을 뿐 후견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함과 동시에 면접교섭권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여서, 미국 내 다른 주에서의 유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2004년 2월경 한 남성커플이 서울시내 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동성간 결혼식을 올린 뒤 주소지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호적법 제125조 제1항은 호적사건에 관한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에 대하여 관할가정법원에 불복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 남성커플이 가정법원에 불복신청을 하였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민법 제812조 제1항은 “혼인은 호적법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면서 제813조는 혼인신고 접수시 호적공무원은 당사자가 혼인적령에 도달했는지,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얻었는지, 근친혼이나 중혼이 아닌지 기타 법령에 위반함이 없을 때에는 이를 수리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향후 소송이 제기될 경우 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지켜볼 문제라 생각된다.
향후 우리나라도 정치 및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짐으로 인해 미국의 몇몇 주들과 같이 전통적 혼인신고와는 다른 동성커플의 결합신고 개념을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이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만약 이들이 결합관계의 해지를 원하면서 인공수정이나 양육 등을 통해 가진 아이에 대해 양육권을 갖지 못한 타방이 면접교섭권을 법원에 청구할 경우 위 유타주 대법원 판결은 하나의 선례적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