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 14일 새벽,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매니저가 급하게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
사진)을 찾았다. 상임 지휘자인 브루노 발터(Walter)가 심한 감기에 걸려 이날 오후 지휘대에 오를 수 없다는 전갈이었다. 갓 두 달 전 뉴욕 필 보조지휘자에 임명된 스물다섯 살 번스타인이 발터를 대신해 지휘대에 섰다. '젊은 조수가 뉴욕 필을 이끌다.' 뉴욕타임스는 다음 날 1면 기사를 통해 풋내기 지휘자 번스타인(1918~1990)의 성공적인 데뷔를 세상에 알렸다.
지난 14일 밤 뉴욕 57번가 카네기홀에선 65년 전 그날을 기념해 뉴욕 필과 카네기홀이 번스타인 데뷔 65주년 기념 연주회를 열었다. 로린 마젤에 이어 내년부터 뉴욕 필을 이끌 차기 음악감독 알란 길버트(Gilbert)가 번스타인의 음악으로만 채운 연주회를 이끌었다. 카네기홀 주연주장인 2804석 스턴(Stern)홀은 4층 발코니 석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번스타인이 1954년 작곡한 《워터프론트》 영화음악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첫 순서부터 웅장한 현악과 관악이 뿜어져 나왔다. 얼마 전 타계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워터프론트》 음악은 미국의 냄새를 풍긴다"고 말할 만큼, 이 음악은 뉴욕과 미국을 상징하는 코드가 됐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번스타인이 1957년 작곡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였다. 테너 존 그로브스(Groves)와 소프라노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즈(Martinez)가 각각 주인공 토니와 마리아 역을 맡고, 〈뉴욕 코럴 아티스트〉합창단이 뉴욕 필과 함께 콘서트 형식으로 꾸민 이 연주는 '클래식 드림 팀'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뮤지컬 콘서트 무대였다. 100명 가까운 뉴욕 필 단원들은 토니와 마리아가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밀어를 나누는 〈발코니 신〉과 〈마리아〉〈아이 필 프리티〉〈아메리카〉〈투나잇〉〈제트 송〉등 빛나는 뮤지컬 아리아들을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빚어냈다. 미국 최고의 클래식 연주장 중 하나로 꼽히는 카네기홀이 대중 음악을 어떻게 공연장에 어울리게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준 무대였다.
이날 연주회는 번스타인 탄생 90주년과 뉴욕 필 음악감독 임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번스타인 페스티벌〉후반부의 클라이맥스였다. 카네기홀과 뉴욕 필은 지난 9월 24일부터 12월 13일까지 3개월에 걸쳐 뉴욕 곳곳에서 번스타인 작품 연주와 세미나를 50차례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번스타인 같은 위대한 천재 덕분에 뉴욕이 세계의 문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