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이 투신자살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이번에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고 생월이 같아 늘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분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때는 몇 차례 함께 밥먹고 술마시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보니 짠한 마음이 컸다. 그때는 역사적 사실을 겪는 게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를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으니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가는 듯한 이성적인 판단이 먼저 든다. 그분을 내가 직접 만나 말이라도 나눠 본 것은 두 번 뿐인데, 그것도 독대가 아니라 여럿이 만나다보니 그분은 나를 기억조차 못하실 것이다.
1992년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툴 때 난 하루종일 김대중 후보를 따라다니면서 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이 글을 조선일보에 실은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보기에 김대중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69세 무렵이셨던 것같은데, 그때도 김대중 전대통령은 몸이 불편해서 거동이 쉽지 않았다. 유세버스에 타고 같이 움직였는데, 그때 박지원 비서가 날 안내하고, 점심도 챙겨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로하셔서 따로 상을 차려 혼자 잡수시고, 우린 김 후보가 보이는 자리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버스가 이동할 때는 피곤하신지 눈을 감고 주무시거나 쉬던 김 후보는 막상 유세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맹수처럼 돌변해서 마구 포효했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의아했다. 그날 여주던가 경기 동부 어디서 마지막 유세를 한 뒤 나는 용인 집으로 돌아오고, 김 후보 역시 동교동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유세참관기를 적으면서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없다보니 역사 얘기를 하면서 대충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그뒤 다시 김대중 전대통령을 뵌 것은 김한길 씨가 김대중 씨 캠프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김한길 씨가 문화계 지인들을 초청하여 김대중 전대통령과 대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당시 김 전대통령은 저승꽃을 치료하느라고 그런지 여기저기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아마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던 것같은데, 참석자 중 말이 많은 한 사람이 있어 그가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하는 바람에 골고루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거나말거나 김 전대통령은 해박한 지식으로, 달변으로 척척 말씀을 잘 하셨다.
자리가 파한 뒤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셨는데, 김한길 씨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를 올리면 그분은 파안대소하며 손을 잡아주셨다. 그때 나는 별로 드릴 말이 없어 "건강하세요."라고만 했다. 그때 동갑이신 우리 아버지 건강이 나쁘기 때문에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쨌든 김한길 씨 힘이 되라고 간 자린데, 나중에 김한길 씨는 그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 항간에서 말이 많다는 걸 나도 안다. 특히 대북 문제에 관해 현금 5억 달러 준 사건으로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말도 들어서 알고 있다. 나 역시 김정일 집단에게 현금을 준 건 잘못된 것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통수권자의 통치 행위에 대해 무작정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며 해야 한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10만여 명에 이르는 공녀도 보내고, 군사도 보내고, 위안부도 보냈다. 돈 보낸 것으로 그의 모든 것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5억 달러라고 해봐야 5천억원쯤인데, 전쟁 막고, 평화 분위기 조성해 국가 신인도나 경제가 안정되면 수십 배, 수백 배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같은 경우 지금 잘 안돼서 그렇지, 잘만 되면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세계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효과가 더 크다. 즉 한반도는 위험한 땅이 아니다, 안전하게 투자할 만한 곳이다 하는 마음이 들면 이 효과는 개성공단 수익의 수백 배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은 북측이 성의없는 자세로 나오는 한 대북 지원이 없다고 강경하게 나서고 있는데, 그 역시 대북 정책 중의 하나다. 이에 대해 좌파 쪽에 있는 분들은 이 대통령을 맹렬하게 비난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임기 끝날 때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고 비난해도 늦지 않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빛바래게 하고,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게 만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일이다. 한국 대통령이 두번씩이나 북한에 가도록 그는 단 한 차례도 답방하지 않고, 하다 못해 제3국에서조차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김 전대통령이 애가 타서 한번 더 가신다고 벼르실 때에도 김정일은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핵을 쏘고, 미사일을 쏘아댔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애쓴 만큼 김정일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껄렁껄렁 쇼만 했지 진지하게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현정은 회장을 6일씩이나 기다리게 해서 만난 것도 결코 편치 않은 쇼다. 현대그룹이 큰 위기에 빠져 있는데 그 원인의 대부분이 김정일에게 있다. 김정일 믿고 대북사업에 투신한 현대만 덤터기를 써버린 것이다.
국가 원로를 보내드리는 이 시점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평생 꿈꾸어 오신 대북 평화 정책이 제대로 뿌리를 내렸더라면 좋을 텐데, 여러 가지로 교착 상태에 빠져 안타까울 뿐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특히 국가간의 일은 더 그러하다. 그분은 가셨지만, 평화통일을 꿈꾸신 그분의 정신만은 그대로 살아 언제고 통일이 되거든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때 가서 다시 해도 늦지 않다. 전직 대통령이 여러 분 계셨지만 그래도 국격(國格)을 높이신 분으로는 김대중 전대통령이 가장 돋보인다. ---------------------------- 글을 쓰고 나니 김 전대통령께서 운명하실 때 벙어리장갑을 끼고 계셨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기자들이 어려서 잘 모르기 때문에 별 언급이 없는데, 몸이 차서 그러신 것이다. 혈액순환이 안되다 보니 손발이 저리고 몸이 많이 찼을 것이다. 폐색전이라는 게 혈액순환이 잘 안돼 몸이 찰 때 생기는 악성질환이다. 본래 추위를 타시는 체질이라는데, 입원한 이래 혈액순환이 잘 안돼 얼마나 춥게 느끼셨을지 모르겠다. 무슨 일인지 지난 일주일간 나 역시 하반신 체온이 떨어져 잘 때 수면양말을 신고, 체육복을 입었다. 난 소화기능이 떨어져 이 한 여름에 잠시 추위를 느꼈는데, 김 전대통령께서는 추위에 맞서 생사를 다투셨고, 춥다고 하시는 전대통령을 위해 손수 뜨개질을 하셨다는 이희호 여사의 정성이 무산되어 더 안타깝다. 더불어 지난 해 초 뇌종양으로 입원했다가 폐색전으로 돌아가신 장모님이 생각나 더 안쓰럽다. |
출처: 알타이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알타이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