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으로 살펴보는 창포주

단오날(端午日) 하면 ‘그네와 씨름’, ‘창포’가 연상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남녀노소가 다 같이 즐겼던 철갈이 풍속이자 하나의 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하더라도 단오는 설, 추석과 함께 4대명절의 하나였다. 5월에는 두레놀이가 성행했거니와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처녀들에게 있어 어쩌면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단오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오날만큼은 산이며 들로 나들이도 가고, 또래들과 어울려 널이며 그네를 뛰는 등 ‘자유로운 하루’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오날의 대표적인 시절식이 수리취떡이라면 이날의 세시주는 단연 창포주(菖蒲酒)라고 할 것이다. 창포주는 찹쌀고두밥에 누룩과 창포뿌리를 짓찧어 낸 즙으로 빚은 술인데, 단오날에 창포주를 마시는 풍습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주는 약리작용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 [동의보감]을 비롯 [임원경제지], [고사십이집], [농정회요], [산림경제집요], [양주방] 등에도 창포주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임원경제지]나 [양주방]의 창포주 제조법을 보면, “5~6월 경에 창포뿌리를 캐어 즙을 낸 다음, 찹쌀로 지에밥을 쪄서 누룩과 합하여 빚는다.”고 하고 있다. 또 ‘별법(別法)’으로 잘 익은 청주에 단오일 며칠 전에 창포뿌리를 침지하여 빚는 창포주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듯 단오날 창포주를 빚어 마시는 풍습은 창포의 방향성과 약성을 함께 취함으로써, 더워지는 여름을 대비하여 건강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포는 석창포라고 하는 천남성과의 다년초로 전국의 연못이나 호수, 물가에 자생하는데, 창포의 향기가 뛰어나 악병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석창포의 약리작용을 보면, 주성분으로 정유성분(아세톤)과 배당체를 함유, 그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이 있으며,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킨다. 또한 잘 익힌 창포주를 하루에 5홉들이 잔으로 한 잔씩 세 번 마시면 기운이 화(和)하고 무병하여진다고 믿었으며,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귀먹은데, 목쉰데, 배 아픈데, 이질, 풍한 습비에도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야외에서 축제처럼 즐기는 즉흥적인 술

조선 전기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문집인 [양곡선생집(陽谷先生集)]에 수록된 ‘단오(端午)’라는 시를 보면 “오늘이 바로 단오이니 / 소년들이 무리지어 즐겁게 노네 / 거리마다 다투어 씨름을 하고 / 나무마다 그네를 뛰네 / 술잔에 창포를 띄어 따뜻하고 / 문에는 애호를 엮어 달았네 / 노인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가? / 밤새도록 책을 덮고 잠자는 것이네”라고 적혀있다. 또한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서파집(西坡集)] 중 ‘대전 단오첩(大殿端午帖)’이란 시에는 “창포를 오래 묵은 술에 띄울 제 / 석류는 5월에 꽃을 피우네 / 금화전에서는 부지런히 한낮에 강의하니 / 시대의 운수가 형통하게 되었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창포주는 단순히 고즈넉하니 사랑방에서 마시기 보다는, 단오 무렵 물가에 나아가 야음을 하면서 물가의 창포를 뜯어 술에 띄우기도 하고 창포향기는 물론 단양(端陽)의 좋은 절기를 시(詩)와 함께 감상하는 시주풍류(詩酒風流)와 어울리는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창포를 캐다 머리를 감기도 하고 뿌리를 캐어 비녀꽂이를 하는 풍속이 여인네들의 습속이었다면, 잘 익은 술에 창포잎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