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루트를 움직이다
1. S루트를 갔다. 이 코스는 현재 S가 머물고 있는 파주시 ‘서현공원’에서 출발하여, S와 나의 추억이 있는 장소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간적으로 이어지는 묘한 느낌 때문에 내가 이름붙인 길이다. 서현공원에서 출발한 길은 용미리마애불, 윤관묘, 마장호수, 기산저수지, 장흥유원지로 이어진다. 1995년 학교 행사의 동지로 활동하다, 그 뒷풀이를 겸해 둘이서 찾은 ‘장흥’에서 우리의 23년의 시간이 만들어졌다.
2. S루트는 그 자체로도 방문할 매력을 갖고 있지만, S와의 추억은 길과 공간에 특별한 감성을 부여했다. ‘추억’은 좋은 기억이다. 사라졌지만 사라졌기에 낭만적인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면서 감성적 휴식에 스며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몇 잔의 술을 마시면서 가을의 처연함과 그것을 즐겼었다.
3. 하지만 오늘은 ‘감상적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어떤 내용도 없이 무덤덤해질 뿐이다. ‘망각’의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일까? 최근 의도적으로 행하고 있는 ‘과거의 감상으로부터 벗어나기’의 영향때문일까? 무력해지고 위축되어 가는 현재의 나의 모습때문일까? ‘그리움’을 지닌 사람에 대한 ‘애틋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과거의 감상적 기억을 거부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잊는 것은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일이다.
4. 올해 그런 삭막함이 지배한다. 몇 년 전부터 추진했던 인간관계 프로젝트에 대해 허망함을 느꼈고, 몇 군데 참여했던 인문학 동아리에서도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기록했던 소중한 사람(어머니, S, Y)에 대한 ‘기일 멘트’도 남기지 못했다. 과거의 어리석은 기억에 대한 집착은 벗어나야겠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억은 지켜야 한다. 어쩌면 추억도 노력 속에서 남겨질지 모른다. 추억이 의미있고 소중하다면, 일시적으로 다가온 내면의 건조함은 극복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최소한의 인간적 정서를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5. 삶은 언제든 ‘현재’에 대한 충실한 집중이다. ‘현재’는 지금의 사태만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현재다. 그리움이 무뎌진 것은 현재의 감성적 황폐함을 반영하고 있다. 감성 또한 이성의 힘을 통하여 교정될 수 있다. 이성적 판단을 통해 선택된 감정을 노력을 통해서도 소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부정적 요인을 극복하면서 스스로 생각한 ‘긍정적’ 성취를 실현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의미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다.
첫댓글 --- "의미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인간의 얼굴’을 잃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