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최근 실존 인물에 대한 다큐나 영화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재조명은 우리가 관심 갖고 사랑했던 또는 무시했고 몰랐던 인물들의 매력과 진실을 전달한다. 우리 대부분이 지닌 왜곡과 편견을 교정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생동감 넘치는 삶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익숙한 것의 재발견이며 오도된 것의 원상복귀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흐’는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로 끊임없이 형식의 새로움과 내용의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고흐’의 무엇이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매력을 던지고 있는가?
괴테는 “인간은 사회에서 어떠한 사물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오직 고독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가장 적용될 수 있는 인물이 ‘고흐’가 아닐까? 고흐는 절대적 고독 속에서 자연의 순수한 신비와 자연이 던지는 신적인 영상을 잡으려 했고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자신의 특수한 눈으로 표현한 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고흐는 그림 그리는 이유를 말한다. “내가 보는 것을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고흐는 혼잡한 도시의 삶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도시는 그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하늘, 숲 사이를 지나는 바람,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수많은 꽃과 풀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연과 동화된 사람들, 이러한 세계가 고흐의 영감을 끊임없이 창출시키는 대상이었다. 자연 속에서만 고흐의 재능이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고흐는 계획하고 준비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한 번의 호흡으로 대상을 자신의 시선에 따라 표현하는 본능적인 화가였다. 고흐의 지나친 즉흥성을 비난하는 고갱의 말에도 고흐는 자신의 그림 기법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흐의 근원적 고독은 그가 사람들을 기피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흐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그리워했다. 영화 속에서 고흐는 이별을 못견뎌한다. 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방문한 동생 ‘테오’가 곧 떠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동생을 껴안고 어린아이처럼 가지 말라고 칭얼댄다. 동료화가 고갱이 떠나는 것에 흥분한 나머지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한다. 고흐는 자연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자연이 그에게 평안과 위로를 준 반면, 그가 만났던 사람들은 동생 테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처를 주고 떠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가 총상을 입고도 총을 쏜 사람을 밝히지 않고 죽어갔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다. 자신의 희생으로 누군가의 죄를 감싸준 것이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 앞에서>는 고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과 내면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의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정열이 때론 자신의 정상적인 사고를 흔들고 그를 위태롭게 하지만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치고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의 빛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대담한 색을 사용하여 빛과 입체적인 모습을 평면에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화가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고흐는 자신있게 자신의 재능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었고 그 재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삶의 과제로 여겼던 것이다.
고흐의 열정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몇 번의 광기어린 행동으로 정신병에서 입원하고 난 후 고흐는 다시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그림에 열중한다.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사고로 죽기 전 80일 간 76편의 그림을 완성하는 집중도를 보인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자신의 열정을 바칠 어떤 대상이다. 그러한 대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사람이다. 대상은 사람일수도, 학문일수도, 종교일수도, 음악일수도 있다. 고흐에게 그것은 그림이었다. 또한 자신의 행위가 의미있음을 확인해주는 누군가의 격려 또한 중요하다. 절대적 고독 속에서도 그것을 이해해 줄 소수의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작업은 지속될 수 있다. 빈센트 고흐는 모두의 오해 속에서도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그의 위대함을 인정했던 동생 테오의 격려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그의 열정과 동생의 격려가 만들어낸 위대한 합작품이었는지 모른다.
고흐의 삶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항상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조금은 안타깝지만 결코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소수의 사람들의 지극한 사랑이 있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주어졌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향해 온몸을 던졌고 그러한 믿음 속에서 삶을 마무리했다는 것은 그의 삶이 결코 초라하거나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비극적인 것은 그의 희망과 가치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고흐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었던 구도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며, 그 순간 그에게 닥친 운명의 힘을 원망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담대함과 내려놓음의 참다운 모습을 실천하고 있다.
첫댓글 밤하늘의 빛나는 별, 고흐!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자신의 열정을 바칠 어떤 대상이다!!!
남프랑스 여행 때 둘러보았던 고흐의 발자취가 다시 떠오른다. 열정을 닮고 싶었었지. 삶의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