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엘 가야하나.
토요일 오후에 망설임 끝에 한국병원엘 갔다. 둘째 아들을 보호자 삼아 가려던 것 포기하고 혼자 간다. 왼쪽 발목 복숭아씨 속에 들어있는 물을 주사기로 뺀 의사는 사흘간 붕대를 풀지 말고 3주간 무리한 운동을 말라고 한다. 난 어기기로 했다. 그가 엑스레이를 찍게 하고 약을 5일간이나 처방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이미 보름 전에 부상을 당해 물 찬 것 외엔 거의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 까닭이다. 내 몸의 아니 생명체의 자연치유력을 나는 믿는다. 참 건방지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질병을 고안해내는 이들이나 질병을 과대하는 이들 속에 그 의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병원 체질이 아니다.(누군 병원 체질인가?)
일요일 날씨가 좋다. 한강에게 산에서 얼른 와 같이 목욕탕에 가기로 하고 9시에 집을 나서 555번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증심사 쪽에 들어서자 등산복 차림으로 걷고 운전하는 사람들 뿐이다. 차는 운림중학교 쪽부터 막힌다. 다행이도 버스는 반대차선으로 역주행하며 큰 지체없이 정류장에 내려준다. 9시 40분. 주차장도 온통 색색의 등산복 물결이다. 거리가 막힐 지경이다.
9시 52분, 증심교 아래서 김밥을 하나 사서(2,500원) 토끼등 쪽으로 오르기로 하고 길을 트는데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골짜기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안 가본 길이라 그 쪽으로 들어서는데 바람재 길이다. 언젠가 바람재라는 말을 산에서 본적도 있고 상호도 많이 보았는데 정작 모른다는 생각에 잘 들어섰다는 생각을 한다. 완만한 계곡을 계속 올라간다. 공사를 하느라 하얀 깃발이 낮게 꽂혀있고 나무 도막도 가지런히 묶어둔 것도 많다. 30분쯤 발목을 걱정하며 돌길을 오르자 약수터가 나타난다. 잠깐 물을 마시고 5분쯤 오르자 바람재다. 토끼등에서 산장가는 늦재의 중간쯤인가?
토끼등 쪽으로 넓은 길을 걷는다. 덕산 너덜겅 약수는 돌사자 입 서너개에서 물을 콸콸 쏟아낸다. 배낭에 담긴 며칠 전의 물을 버리고 새로 담은 다음 한 모금 마신다. 토끼등에도 사람이 가득하지만 동화사터 오르는 길 앞에 노파가 광주리를 놓고 떡을 팔고 있다. 모시떡을 1,000원어치만 달라한다. 두 개에 다른 떡 작은 걸 하나 더 얹어준다.
토끼등에서 동화사터 오르는 경사길에도 사람이 많다. 그들이 쉬면 앞지르기로 하고 따른다. 모두 잘 오른다. 무리지어 온 이들이 서로를 북돋으며 오르는데 보기가 좋다.
너덜의 끝의 옹달샘도 동화사터의 샘도 그냥 지나쳐 중봉쪽으로 오른다. 광주시내는 검은 띠 아래에 포위 당해 있고 그 위쪽 하늘은 푸르다.
천왕봉과 서석대가 가까이 보인다. 11시 20분 쯤 땀을 식히며 모시떡을 먹는다. 굵은 돈부 앙꼬가 씹히는 맛이 좋다. 땀이 식으려하자 다시 일어난다. 중봉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다. 며칠 전 추운 날씨로 얼었던 길은 풀린 날씨와 등산객의 발자국 때문에 녹아 질척인다. 길을 조금 벗어나 마른 풀길을 걷기도 한다. 중봉에도 사람이 가득하여 바로 서석대를 보고 오른다.
장불재 버리고 공사 중인 길을 가로질러 군부대 길 좀 걷다가 개울을 건너 산으로 접어든다.
10여분 미끄러운 길을 숨가쁘게 올라 서석대 아래 바위에 앉으니 12시 10분쯤. 사람 많으니 이 자리도 좋다하고 바위 뒤로 도는데 50대 지긋한 어른 한 분이 식사 중이다. 미안하다며 더 돌아 맥주에 김밥을 편다. 그 분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내 쪽으로 온다. 국립공원 등 산에 관한 이야기 후에 내가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한다. 그분이 ‘예,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뵌 분이네요. 모자를 벗어보시겠습니까?’한다. 확인하더니 나를 아신다 한다. 그러고 보니 뵌 분이다. 화순읍내 M 초등학교에 계시는 양 선생님이시다. 방학 중이면 학기 중의 스트레스와 새 학기의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심신단련 연수를 하고 계신다 한다. 중학교 때부터 산을 다니셨으며 화순관내의 산과 무등산의 작은 봉우리와 골짜기를 많이 알고 계신다. 모후산을 유마사에서만 가지 말고 동복 유천리에서 가면 삼나무 숲길이 좋다고 하신다. 지난 5월에 화순초의 연수 자리에서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할 애기들을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생각난다. 규봉암을 돌아 산장 쪽으로 하산할 계획이란다. 발목 때문에 새인봉으로 간댔더니 발목에 좋을 거라며 약술을 꺼내 주신다. 장뇌삼에 동충하초에 술인지 약인지 모를 것을 스텐 등산 컵으로 세잔을 먹다가 아에 다 주신다. 술 기운은 거의 없다. 웃사람보다 아랫사람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에겐 선물도 주고 술도 사주고 싶단다. 다 도사들이다. 나 더러 출세하더라도 낮은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그런 사람이면 돈을 보태서라도 선거운동을 하시겠단다. 하산 조바심을 내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는 100미터를 세 시간에 걸어 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도 하신다. 홍삼 사탕도 주신다. 입석대가 이젠 단아한 여성처럼 보인다고 하신다.
입석대에서 사진도 찍고 애길 나누며 내려와 장불재에서 헤어진다. 윌이라는 요쿠르트를 주신다. 나는 드릴 게 없다. 참 가난하다.
지난 9월 헤맸던 길을 쳐다보며 새인봉 쪽으로 내려온다. 새인봉 절벽도 새로 본다. 소나무에 저멀리 자욱한 서쪽 하늘 아래의 햇살보며 사진을 찍어본다. 나의 감미안은? 심미안은?
하산 완료 4시 10분쯤. 시내버스에 오른다. 사흘간 매라던 붕대는 하루만에 풀어버렸다. 내가 안고 사는 병은 발목만이 아니다. 어쩌면 발목의 상처는 내가 항상 병자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경종인지도 모른다. 경종을 달고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 그러면 낫지 말라고? 고약한 불효자로고. 그럴 수도 있지. 혼자 웃는다.
첫댓글 읽기 힘들고 지루해요
너 보라고 쓴 것은 아니란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