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산 산행기

[시인마뇽]

                                        양자산 

             *산행일자:2008. 7. 27일(수)

             *소재지  :경기광주/양평/여주

             *산높이  :양자산710m, 앵자봉667m, 소리봉607m

             *산행코스:천진암입구-소리봉-앵자봉-양자산-성덕2리마을회관

             *산행시간:9시8분-19시4분(9시간56분)

             *동행    :나홀로

   미국의 역사학자 조지프 A. 아마토의 저서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On Foot)"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지 약 6백만년이 지났다 합니다. 세계 최초로 바빌로니아지도가 만들어진 것이 약4,500년전의 일이라하니, 그 때의 우리조상들이 지금의 우리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 때부터 바로 지도를 보고 걸었다고 계산하더라도 지도를 보고 걸은 기간은 걷기 역사의 1%도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직립보행 역사의 99% 이상을 지도 없이 걸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형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일제  때이니 우리 산꾼들이 등고선을 보고 산위를 걷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0년이 못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동네 뒷산을 지도 없이 잘도 오르내렸습니다. 칡뿌리도 캐먹고 버찌도 따먹는 등 그 당시 절대 부족했던 당분을 보충하고자 그리 높지 않은 뒷산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좀 커서는 먼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했고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토끼몰이 차 푹푹 빠지는 눈 속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가 지도 없이 한 일입니다. 
  

  1970년 5만분의 1 지형도를 처음 사갖고 지리산을 올랐습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빠질 수 없듯이 나침반을 처음 써 본 것도 제가 혼자서 처음으로 지리산을 종주한 그 때였습니다. 지도사용이 서툴렀지만 눈이 나쁜 사람이 처음으로 안경을 해 끼었을 때 온 세상이 내 세상처럼 보이듯이 산세가 한 눈에 잡혀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지도를 빼놓지 않고 휴대한 것은 경기도 일원의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한 1998년부터입니다. 이제 겨우 10년이 됐습니다. 2004년부터 주로 혼자서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지도 덕을 단단히 보았기에 이제는 지도 없이 산 나들이를 나서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저의 안전을 가장 확실하게 담보하는 것이 지도와 나침반이어서 제게는 이 둘이 휴대폰보다 훨씬 듬직한 길동무입니다. 

  어제는 양자산 정상에서 예정에 없던 양자산-백병봉-남한강변 구간으로 하산코스를 변경하느라 이 구간을 지도 없이 걸었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했고 그래서 도중에 그 보다 짧은 성덕2리로 하산해야 했습니다. 이제껏 길동무로 알아왔던 지도가 제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길잡이였음을 어제 비로소 알았습니다. 1968년 한라산을 오른 이후 저 나름대로 40년을 꾸준히 산을 올랐기에 해발 600-700m정도의 경기도 산들이야 지도가 없다고 설마 길을 잃으랴 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화되어 저의 만용을 비웃었습니다. 양지산 정상에서 만난 한 분이 그 길로 올라왔다며 한 번 내려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냉큼 받아들인 것이 결과적으로 잘 못이었습니다.

  한편 걷기 역사의 99% 이상을 지도 없이 걸었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길을 내며 걸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지도 없이 잘도 산을 다녔고 그 후 산행경험도 충분히 쌓았는데 지도가 없다고 이렇게 포기해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지도에 너무 의존해 감각적으로 길을 찾는 직관 능력이 상당히 저하됐다는 판단입니다. 문명의 이기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한 번 빠져들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이기의 노예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나서는 두 아들의 번호도 새까맣게 잊어버려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면 저의 비상연락망은 올 스톱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전화번호 암기를 쉽게 하기위해 휴대폰에 입력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듯이 길을 찾는 직관을 강화하기 위해 지도를 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해서는 더 깊은 계곡과 더 높은 산을 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야 말로 최고의 길잡이 임을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어쩌면 이번 산행에서 얻은 최고의 결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변역에서 20분에 한 대씩 출발한다는 광주 관음리 행 시내버스를 반시간 가까이 기다려 아침7시30분에야 올라탔습니다. 자칫 길이 막히면 퇴촌에서 천진암 가는 버스를 놓칠 수도 있겠다 싶어 내내 불안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안 막혀 강변역 출발 50분만인 8시20분에 퇴촌 농협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25분을 기다렸다가 광주버스에 올라 15분 후 천진암 정문 앞에 다다르기까지 왕복2차선의 좁은 시골길이 10년 만에 처음 지났는데도 거의 옛날 그대로여서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100년 동안 세월을 농익혀가며 천천히 짓고있는 성당의 건축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궁금해 성지 안을 둘러보고자 했으나 정문도 또 그 위 독서당 옆 쪽문도 모두 닫혀 많이 아쉬웠습니다.

  9시8분 천진암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독서당과 청소년야영장 입구를 차례로 지나 다다른 신일농원 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들어서자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넘쳐 임도 길 위로 흥건히 흘렀습니다. 산행시작 반시간 후 묘지 위 능선삼거리에 올라 왼쪽으로 꺾어 소리봉으로 향했습니다. 길은 임도수준으로 넓었고 이정표가 곳곳에 서있어 지도를 접어 넣고 편안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산 오름에 임했습니다. 비는 뿌리지 않았지만 밤새 산자락에 내려선 안개가 아직 가시지 않은데다 전날 내린 비로 땅바닥이 푹 젖어 있어 한여름의 복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른 쪽 강동수련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 자그마한 바위들이 몇 개 들어앉은 나지막한 쉼터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0시22분 해발607m의 소리봉에 올랐습니다.

쉼터바위를 지나자 오래된 낙엽이 넓은 길을 덮어 앞서 올라온 길처럼 맨 흙살이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간 오르다가 평지 길이 이어져 편하다 했는데 이내 오름길이 계속됐습니다. 570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올라 소리봉 바로 아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 관산 방향으로 몇 걸음 올라가 삼각점이 서있는 소리봉에 올랐는데 표지석도 서있지 않고 나무에 가려 시계가 제로상태여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삼거리로 되돌아가 동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내 오름 길로 바뀐 넓은 능선 길은 송전탑 공사를 위해 닦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공사가 끝나고 길 훼손을 막고자 왕굴 대(?)를 비닐 끈으로 엮어서  덮개를 씌운 능선 길이 시원스레 보였으나 햇빛이 쨍쨍 나는 날에는 방화선 길을 지나는 만큼 고역이겠다 싶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송전탑이 길 안내를 훌륭하게 해주었습니다. 생각보다 촘촘히 들어선 송전탑을 이어주는 큰 길을 걷기도 했고 잠시 좌우로 조금 벗어나 걷기도 했으나 대체로 송전탑을 이어가는 길이 능선 방향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11시40분 해발667m의 앵자봉에 올라섰습니다.

여러 곳의 송전탑을 지나 소리봉을 출발한지 반시간 남짓 후 박석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해진 청소년야영장 안으로 들어가 산을 오르면 소리봉을 거치지 않고 이 고개에 닿게 되는데 제 생각대로 왼쪽아래 청소년야영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막혀있었습니다. 박석고개에서 앵자봉에 이르는 길은 꾸준한 오름 길이었습니다. 다른 해라면 벌써 끝났을 장마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버섯들이 제철을 만났다고 제각기 성장을 하고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산 식구의 막내 격인 매미들은 요 며칠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통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맘때는 매미들이 요란하게 울어대야 산새들이 한 여름의 산상음악회 개최준비를 매미에 맡기고 좀 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한참을 올라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왼쪽 아래로 100년 성당을 신축 중인 천진암 성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표고가 670m로 잘 못 기재된 표지석이 한 가운데 서 있는 앵자봉에 올라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12년 전 천주교 신자인 집사람의 성지순례를 돕고자 차에 태우고 천진암을 찾았다가 나선 김에 발품을 더 팔아 앵자봉까지 올랐습니다. 그 때는 천주교성인묘지를 거쳐 지름길로 바로 올랐기에 경사는 급했어도 코스는 이번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잠자리들이 반겨 맞은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이는 봉우리는 서쪽 멀리 관산 밖에 없었습니다. 20분 남짓 푹 쉰 후 12시4분에 정상에서 일어나 양자산으로 향했습니다.

  이 봉우리의 산세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세를 하고 있다 하여 앵자봉으로 불린다는데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과연 꾀꼬리와 다른 새들이 다른지, 다르면 어떻게 다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기왕이면 일찍이 고구려의 2대 왕인 유리왕이 황조가를 지을 만큼 목소리도 아름답고 그 자태도 빼어난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닮았다고 하는 것이 이 산의 명성을 높이는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앵자봉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꾀꼬리가 아니고 북쪽 아래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 천진암(天眞庵)이었습니다. 조선조 초기의 정통 유학자 권근의 후손으로 성호 이익 선생의 제자들에 의해 선생이 돌아가신 후 종장(宗匠)으로 모셔진 권철신은 학식이 높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특히 주자학에 해박했다 합니다. 권철신의 제자들인 이가환,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이벽 등은 앵자산의 주어사와 천진암에 모여들어 일반 학문뿐만 아니라 천주교 교리도 강학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벽은 서울 수표교에 거처를 정하고 천주교를 선교했는데 선교를 받는 사람들이 권철신이 따르면 모두가 따르겠다고 할 만큼 권철신은 선비들 사이에 명망이 높았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명망 높은 권철신과 그 제자들에 의해 바로 천진암에서 이렇게 자생적으로 태동한 것입니다. 천진암에서 천주교 교리 강학을 시작한 것이 정조 3년인 1779년이었으니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1783년보다 4년 앞선 것입니다. 그 뒤 폐허가 된 천진암 터가 1969년 사지로 확인된 후 1979-1981년 이벽,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등의 묘소가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애당초 불교사찰이 들어섰던 절터가 천주교성지로 탈바꿈을 한 곳이 전 세계에서 천진암 말고 또 있는지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13시12분 여주의 산북면과 양평의 강하면을 이어주는 주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앵자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설치된 하얀 밧줄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이 잠자리가 제가 바짝 다가가도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이 제게서 아무런 적의를 느끼지 못해서라면 저도 산식구의 일원으로 자리를 굳히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앵자봉 출발 22분 후에 다다른 세 번째 헬기장에서 길이 좌우로 갈렸습니다.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왼쪽 길은 한남앵자지맥 길이고, 여기에서 오른 쪽으로 분기되는 한남앵자양자단맥은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양자산을 지납니다. 해발고도는 서서히 떨어졌고 내림 길도 한동안 편안했습니다. 여주군과 LG상록재단이 손잡고 나무들에 명찰을 달아주어 물박달나무와 산초나무 등 여러 나무들과 오랜만에 통성명을 했습니다. 능선을 파헤친 불도자가 그대로 세워져 있는 흉물스런 공사장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쉼터바위를 지났습니다. 양자단맥에 들어선지 33분 후 No.33의 송전탑에 이르자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앵자봉에서 보지 못한 양지산이 구름이 걷혀 분명하게 보인다 했는데 이내 잔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송전탑 하나를 더 지나 바로 아래 주어고개로 내려서자 작은 돌탑이 보여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나 봅니다. 바로 위 삼각점의 높이가 354.8m이니 709.5m의 양자산을 단 번에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해발고도가 100m가량 높은 450봉까지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14시43분 해발710m의 양지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450봉 바위에서 거풍을 마치고 바지를 올린 후 채 1분도 안되어서 양자산에서 내려오는 부부한 팀을 만났습니다. 주어고개에서 하산하겠다는 이 분들이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분들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오른 쪽으로 길이 흐릿하게 난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하여 555봉에 이르자 잠시 암릉길이 전개됐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 올라 한숨을 돌린 곳이 해발645m 지점의 능선삼거리로 “동오리1.4Km/앵자봉3.6Km/양자산0.6Km”의 이정표가 서 있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계속 올라 송전탑이 들어선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전망이 일품이어서 구름들의 잰 몸놀림을 사진 찍은 후 바로 위 양자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양자산 정상 역시 이번이 두 번째로 1999년 여름 하이맛 친구와 같이 올랐었습니다. 그 때는 양자산만 올랐는데도 엄청 힘들었는데, 그 후 9년이 흘러 나이도 육십 줄로 들어섰고 소리봉-앵자봉-양자산을 연계해 훨씬 긴 코스로 올랐는데도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은 그동안 대간과 정맥 길을 꾸준히 종주한 덕일 것입니다. 가지고 간 떡을 꺼내 들으면서 “아사비”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전 10시에 남한강변 전수리를 출발하여 백병봉을 거쳐 4시간 반 남짓 걸려 정상에 올랐다는 이 분이 올라온 길이 참 좋다며 그 길로 내려갈 것을 권해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개념도에 백병봉까지는 나와 있지 않아 어렵다고 했는데 지도를 펴 보이며 길이 백병봉 근처 한 곳만 유의한다면 길 잃을 염려가 없다고 해 이 참에 한남앵자양자단맥 종주산행을 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각시봉을 거쳐 하품리로 하산하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남한강변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관산으로 하산하겠다는 이 분은 먼저 정상을 떠났고 곧 이어 저도 15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자리를 떴습니다.

  16시28분 양평군의 강하면 성덕리와 강상면 송학리로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 만난 왼쪽으로 대곡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속도를 내 직진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내리기 시작한 굵은 빗방울이 좀처럼 그치지 않아 7-8분 후 방수카바를 씌우고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정상 출발 반시간이 채 못 되어 지난 삼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오른 쪽으로 1-2분을 이어가다가 남쪽으로 꺾여 이 길이 아니다 싶어 삼거리로 되돌아와 직진하는 제 길로 들어선 후 또 다시 길을 잘 못 들을까 걱정되어 산행속도를 늦추었습니다. 정상을 출발하고 나서는 지도 없이 대충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산행을 하는 것이어서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낭패이기에 지도를 보고 산행할 때보다 몇 배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15시51분에 다다른 삼거리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왼쪽 길로 들어선 후 2-3분을 내려가 “아사비”표지기를 만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25분을 더 걸어 다다른 낮은 봉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이 봉우리가 아사비님 지도에서 본 394.9봉임을 알았습니다. 몇 분전에 비가 그쳐 복숭아를 꺼내 먹으며 5-6분을 쉰 후 8분 간 걸어 내려가 안부사거리에 내려섰습니다. 백병봉이 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틀린 것은 하산 후에 안 일이고 이 정도 거리이면 백병봉을 오르는데 1시간 남짓 걸릴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하산 길이어서 넉넉잡아 2시간이면 남한강변의 전수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채로 기록을 정리하며 숨을 돌렸습니다. 안부에서 똑바로 7-8분을 올라 앞이 탁 트인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18시12분 성덕2리 날머리에 도착했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첫 번째 송전탑에서 양자봉을 사진 찍은 후 송전탑 길을 따라 오르다가 나지막한 봉우리 앞에서 직진해 오르지 않고 오른 쪽으로 꺾은 것이 길을 잘 못 든 시작이었습니다. 넓은 송전탑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서자 송전탑 길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며 고도를 낮추어 이 길이 아니다 싶었고, 그래서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으로 되올라가 희미하게 난 숲 속 길을 따라 똑바로 내려갔습니다. 몇 분 후 송전탑공터에 내려섰더니 물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 데다 산세로 보아 계속 내려가면 계곡을 만날 것이 분명해 바람 한 점 없는 숲 속 길을 되올라가 다시 송전탑 길로 복귀했습니다. 앞서 비껴선 봉우리를 거의 다 올라 오른 쪽으로 꺾어 1-2분을 진행해 봉우리 북쪽 바로 아래 지점에 세워진 “성덕2리/송학리”이정표를 만났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일단 송학리 방향으로 4-5분을 진행해 보다가 먼저 만난 송전탑이 다시 보여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로 원 위치했습니다. 백병봉은 포기하고 성덕2리로 하산하겠다고 생각을 바꾼 후 5-6분을 내려가 “성덕2리1.7Km/양자산2.3Km/백병산”의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 다다른 시각이 17시28분으로 안부사거리에서 20분이면 족한 거리를 1시간이 거의 다 걸렸습니다. 잠시 쉬며 물을 꺼내 마신 후 백병산 길로 들어서 2-3분을 급하게 내려가자 길이 희미해 도저히 더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수중에 참고할 지도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지 이번에 절감했습니다. 별 수 없이 갈림길로 되올라가 백병산 산행은 포기하고 왼쪽의 성덕2리 길로 들어섰습니다. 묘지 두 곳을 지나서 이정표와 안내판이 세워진 성덕2리 날머리에 도착하기까지 갈림길에서 40분가량 걸렸고 양자산 정상부터는 3시간 14분이 걸렸습니다.

  19시4분 성덕2리 마을회관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성덕2리 날머리에서 양자산을 빠져나와 3-4분후 성덕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두 계곡의 합수점에 다다랐습니다. 구두를 벗고 스틱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무릎 위로 불어난 개울물을 조심해서 건넜습니다. 몸을 대충 닦은 후 옷을 갈아입느라 25분가량 쉰 후 성덕2교 다리를 건너 마을회관을 찾아갔습니다. 옆집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일요일이라서 차들이 많아 20분 연착한 양평행 버스를 탄 시각이 19시30분이었습니다. 양평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팔당역까지 가서 전철로 산본 집으로 가는 데 총3시간이 걸렸습니다. 

  산 속에서 지도가 저를 안내했듯이 인생에서도 제 길로 인도하는 소중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 분의 인도만 있다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은 천진암에 모여들어 지도 한 장 없이 새로운 신앙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천진암을 우리나라 천주교의 자생지로 성지가 된 것입니다. 인류가 99%의 걷기 역사를 지도 없이 걸었듯이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은 신부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연 가시밭길이었고 그들은 목숨을 바쳐 가시밭길을 지나 후손들에  신앙의 지도를 남겼습니다. 그들이 걸은 가시밭길이 얼마나 험난했는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일시적으로 배교를 했고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에 발을 끊은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조정은 이벽,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권이신등의 목숨만으로는 모자라 103인의 순교자를 내고서도 박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선조정은 새롭게 내고 있는 올바른 신앙의 길을 그려놓은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을 바로 내고 지도를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청파 윤도균]

이 무더운 날씨에 나홀로 새벽 이른길을 나서 찿아가신 광주의 양자산을 올르셨다 하산길에 목표하셨던 하산코스를 잃어버리고 알바 산행을 하시고 산행을 마치셔야 했던 찝찝한 기분을 지도에 비유하여 글을 쓰셨네요 후배님 산행기를 읽을때 마다 늘 정말 대단 하시단 생각을 합니다 나홀로 여름철 산행을 하시다 멧돼지라도 만나시면 어쩌실려나 ...? 늘 걱정이 됩니다 저는 늘 단체 산행에 익숙하다 보니 지도는 일체 지참을 않고 다닌답니다 늘 근교 산행이고 조대장이 있어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 후배님 글을 읽으니 내가 그동안 조대장만 믿고 내 공부를 안 하였다는 생각을 하며 나를 반성합니다 늘 안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