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가자
김재선 김진섭 김태원 문찬술 백웅열 우영제 이성우 이헌영 최일선
1. 3월 유적답사 정몽주 이석형 등잔박물관을 찾아서...
오리역 6번출구에 모인 친구 여덟 명이다.
버스를 타고 오기로 한 일산 형을 기다려
예정 보다 조금 늦게 아홉명이 60번 광주행 버스에 오른다.
한 삼십여 분 달렸는가 우리들은 능원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대략 이십여미터 앞에 길 안내 표지가 보이고 우측으로 꺽자 바로 다리 난간이 보인다.
다리 건너기 직전 우측에 자연석에 단심가 시비가 서 있다.
앞면엔 한문으로 된 단심가 뒷면엔 한글로 번역된 단심가가 새겨져 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명나라에 갔다 돌아오는 세자 마중길에 사냥 나갔다 낙마하여 중상을 입는다.
이성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병문안을 하고 이방원의 접대를 받는 자리에서 방원이 먼저 하여가를 부른다.
포은이 답례로 단심가를 부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선죽교에서
도저히 살려서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방원이 사주하여 심복 조영규의 철퇴를 맞고 살해되었다.
하여가(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丹心歌)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차신사료사료 일백번갱사료)(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백골이 위진토하야 혼백이 유야무라도)(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與(향주일편단심이야 영유개리야여)(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단심가를 찬찬히 훑어보며 학창시절 김종권선생님을 떠 올려 본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혹은 야은 길재) 여말 삼은도 떠오른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야은의 소리가 마치 들리는 듯^^
유적답사의 묘미는 우리들을 추억 속의 어렸던 그 시절로 안내 한다는 것이다.^^
유적지에 들어서니 안내판 재실 사당 연못 그리고 멀리 묘역의 석물이며 봉분 곡장 등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몽주 어머니가 지었다는 백로가 시비도 서있다.
송도에서 절명한 포은이 왜 용인 땅 이곳에 묻히게 되었는가?
선죽교에서 절명한 포은이 개풍에 묻혔는데 고향땅 영천으로 이장하게 되어
상여가 죽전에서 쉬게 되었는데 홀연히 바람이 불어와 명정이 날려가므로 뒤쫓았는데 이곳에 떨어졌단다.
이곳에 묻어 달란다고 하여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런데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아마도 후세인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명당에 묻혔다고 하면 어쩐지 설득력이 없었을 것 같다.^^
아무리 명당이라도 그렇지 고향 땅 마다하고 타향에 묻히다니 수구초심이라 하지않던가 머 이러면서...^^
묘역으로 올라 우선 조망부터 살펴본다.
풍수의 문외한인 이넘의 눈에도 아늑하게 산자락에 자리 잡은 유택 예사로이 안보인다.
자리 잘 잡았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거의 왕릉급의 석물이며 곡장 난간석과 둘레석(병풍석)을 두른 봉분이며 왕릉 같다.
일반인들은 상석도 합장이라도 하나인데 두개를 놓아 왕릉의 혼유석 처럼 보인다.
원래 석물에 후손들이 최근에 또 세워 좁은 공간에 많은 석물이 놓이다 보니 비좁아 보이고 답답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포은의 증손녀 사위 연안 이씨 저헌 이석형의 무덤으로 옮겨간다.
연안 이씨는 당나라에서 귀화 한 우리나라 명문 성씨이며 저헌 선생은 이 가문의 중흥조라 할만 하다.
그의 후손들 중 고관대작 명문장가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월사 이정구는 인조때 4대 문장가의 한사람이다.
많은 이야기를 교환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반추하며 연안이씨 비각공원을 거쳐 등잔박물관에 들른다.
개인의 수집 유물을 일반에게 공개하기 위한 테마박물관으로서 민속박물관 보다 등잔 소장품이 많단다.
상우당 김동휘선생은 수원에서 살아왔기에 건물 모양을 수원화성 공심돈을 모델로 지어진 건축이란다.
전시 공간은 부억 찬방 사랑채 안방에 어울리는 소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등잔의 소재별 또는 용도별 그리고 외국의 등잔들도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오 육십 연대 아련한 어린시절 옛 정취에 흠뻑 빠져든다.
야외 전시장이며 구서구석 돌아보고 왔던길 다시 돌아 버스 다니는 찻길로 나왔다.
뒷풀이는 오리역 인근 감자탕 집으로 정하고 반대편 오리역 가는 60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감자탕 집에 좌정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헌영이 발렌타인 21년산 한병을 꺼내더니 잔에 따라 나누어 준다.
연거푸 3잔을 마셨던가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며 기분은 점점 업업된다.^^ㅎㅎ
복잡한 시간이 아닌지라 우리들의 독 무대가 되고 부어라 마셔라 권커니 자커니 웃음소리 요란하다.^^
모두들 점점 행복의 나라로 빠져든다.
알맞은 취기에 오르고 오늘은 계산도 헌영이 채금 진단다.^^
다음은 이차 생맥주 한잔 더하고 가잔다.
내 사전엔 이차는 없다가 이번엔 고무줄이 되고 말았다.^^
웅열이 먼저 간다고 할때 나도 줄행랑 쳐야 하는건데 마음 약해져 주저 앉고 말았다.
과함은 부족함 만 못하다고 했잖은가 채워주는 맥주잔 넙죽넙죽 받아넘긴게 술이 술을 먹는다더니...ㅎㅎ
이번엔 영제가 계산했는가 이미 계산했단다.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소 저헌 이석형선생의 묘소 등잔박물관 나에겐 남다른 의미 있는 시간이였다.
함께 한 친구들이 있어 즐거움이 배가되는 하루였다.
좋은 곳 안내 해 준 영제 헌영 두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며
아울러 함께 걸어 준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친구들 모두 잘 들어 갔겠지?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낄낄 대 보세나~~~
빨리 기력 회복하여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21+TGIF = Very happy time tks.
이회장, 몸조리 잘 하셔서 4월달 산행과 문화탐방에 차질이 없기를 빕니다! 친구들의 건강을 서로가 지켜주기 위해, 다음부터는 저부터 기분을 좀 절제하도록 하겠슴다.
藥酒도 過猶不及입니다!!!
별집대장님, 加油!!!!.
餘生동안 계속 답사 다니려면 너와나 모두 건강챙기며 쬐끔씩만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