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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영어인가?
금년 한 해는 새로운 천년을 맞는다고 너도나도 들떠 있어서, 오늘 당장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육개혁을 부르짖는 가운데 영어교육도 그 와중에 휩쓸려 들었다. "영어는 영어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가르치는 데 우리말로 설명을 하는 일은 이제 제발 그만 두고 교실에서는 영어만 쓰자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제도적으로 실시되기에는 많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영어를 전적으로 써야 한다고 교육부가 직접 발표했다고 들은 적이 없다. 그러면 누가 "전적으로 영어만을 써야 한다"고 했는가. 그렇게 '과장하여' 보도한 것은 매스컴이다. 여기서 '과장'이라는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가 비슷한 말의 운을 떼었다고 하면, 매스컴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매스컴은 국민적 바람을 집약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말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교사가 이른 바 native speaker뿐이었으므로 영어는 영어를 통하여 가르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국인 교사가 생기고 또 일제시대에는 일인 교사가 들어와서 영어를 손쉬운 우리말로 그리고 일본말로 설명하기 시작하여, 영어를 우리말로 가르치게 되었다. 결국 영어시간에 영어를 들을 기회보다는 우리말을 들을 기회가 더 많아졌다. 돌이켜보면, 영어시간에 영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5분이 채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운다"기보다는 "영어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영어 수업의 전부였다. 특히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는 학습자를 시험문제풀이 선수로 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 이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리 영어교육의 오늘을 개관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뒤에 대안을 제시하여,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이 글이 시사하는 바를 밝히려고 한다.
2.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영어를 통하여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서는 그 준비가 필요하다. 실천을 위한 기초조사로서 먼저 현실을 개관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학습자의 학습 목적을 보면, 각 단계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초등학교에서는 한 마디로 native speaker 닮기가 목적인 듯하다. 특히 발음이 그런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마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중등학교에서는 상급학교 입시문제 풀이를 위한 훈련이 목적이다. 시험문제풀이 훈련은 연습 효과가 학습자의 성적을 적어도 표준편차 하나정도는 너끈히 향상시켜 준다는 사실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학에서는 졸업을 위한 학점의 이수와 취직을 위한 준비가 목적이다. 특히 TOEFL이나 TOEIC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취직이나 유학을 위하여 좋은 준비가 되는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사회에서는 회화 위주의 영어능력을 최고로 치고, 자식들에게 native speaker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게 할 수만 있다면 일체를 희생해도 좋다는 풍조가 일고 있다.
둘째, 각급 학교의 영어교사들을 보면, 그 구성이 다양하다. 초등학교의 경우에, 영어 전담교사가 있다고는 하나 소수에 지나지 않고 영어교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물론 초등영어는 기초 수준의 영어이니 누군들 못 가르치겠느냐고 하겠지만, 기초일수록 더 튼튼히 다져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중등학교에서는, 영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영어를 가르치므로 겉보기에는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으나 실제는 교사의 구성이 다양하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영어교사가 있을 수 있고,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능력의 차이가 천차만별일 수가 있다. 대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의 영어영문학과 교수라고 해서 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실정은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서도 영어는 몇 마디 하지 않고 우리말만을 사용하여 수업이 진행되므로 교수의 영어 실력을 검증할 기회가 전혀 없다.
셋째, 영어교육의 부대조건을 보면 투자가 미미함을 즉각 감지할 수 있다. 요즈음에는 실제로는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유창성의 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영어회화 교육을 들먹인다. 그러나 한 학급의 학생 수를 보면 회화를 가르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더구나 요즈음은 native speaker가 큰 인기인데, 모든 학교에 native speaker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고 해도 그 수가 충분하지 않다. 특히 시골 학교의 경우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비교적 환경이 좋다는 대학에서조차 native speaker를 고용한다고 하면서도 자격도 없는 싸구려 native speaker를 고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자격의 문제를 논하면, 우리가 우리말의 native speaker라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 있게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밖에도 영어 수업과 관련하여 교육 보조자료나 기자재에 대한 투자가 거의 비관적 수준임을 우리는 발견한다.
넷째, 사회적 현상을 보면, 온 세상이 영어판이니 영어를 공부를 해야겠는데, 다른 것은 다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으나 회화가 자신이 없으니 회화를 배워야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native speaker의 뺨을 칠 정도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코쟁이 뺨치기 영어회화"라는 식의 책들이 범람하겠는가! 그러나 정작은 읽기나 쓰기에도 전혀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것은 잘 하겠거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일찍이 느끼거나 파악한 사람들은 자식들이라도 내세워 대리만족이라도 얻고자 한다. 따라서 자식의 영어 공부를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식의 올바른 성장이나 전인적 발전을 무시하고라도, 자식이 "영어 도사"가 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각오와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3. 무엇이 문제인가?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은 정규교육에서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는 학교교육 체계 안에서 논의해야 할 성질의 문제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을 개관한 바를 중심으로 천착해 보면, 우리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도출할 수가 있다. 첫째, 영어교육의 목표가 현실적이지 못하다. 초등학교에서처럼 native speaker 닮기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나라를 이중언어 국가로 할 것이라는 목표가 필요하다. 중등학교에서는 입시준비가 영어교육의 실질적 목표가 되어 있는 한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이라든가 음성언어 위주의 영어교육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습자와 학부모 그리고 사회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영어시간에 교사가 영어를 통한 영어수업을 한다고 하면서 입시문제 풀이는 제쳐놓고 영어로 마냥 지껄이기를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공교육에서는 교과의 진도라는 것이 있어서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상적 목표와 현실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하여서는 영어를 직접 가르치는 교사의 영어실력이 뛰어나야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교사의 영어실력은 적어도 한 교시를 쉬지 않고 영어로 지껄일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이른 바 영어회화라고 짤막한 말을 편하게 주고받는 것과 한 주제를 놓고 길게 설명하는 것은 크게 차이가 있다. 따라서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을 위하여 영어실력이 뛰어난 교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초등학교의 경우에 극소수의 뛰어난 교사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절대다수의 교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그들이 영어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중등학교에서는 영어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이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다 음성언어를 통달했다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대학 수준에서도 같은 정도의 능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셋째, native speaker의 고용이 만연하면서 영어교육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음성언어는 native speaker가 가르치는 것이니 한국인 교사는 그저 보조교사로 남아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인식마저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자격을 제대로 갖춘 native speaker를 고용하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적으로도 전국적으로 충분할 만큼의 숫자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일부 학교에서만 그들을 고용할 수 있어서 교육의 기회 균등에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의무교육에서 더하다. 또한 교사의 질적인 면과 능력으로 볼 때, native speaker가 꼭 훌륭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native speaker의 고용이 가져오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한국인 영어교사는 영어학습의 여러 문제와 영어와 우리말 그리고 영어권의 문화와 우리 문화 사이의 비교와 대조에 익숙하다. 그리고 학습의 효율에서도 native speaker보다 내국인 영어교사가 더 뛰어나다.
넷째, 사회적으로 음성언어로서의 영어를 학습하려는 막연한 열기는 극에 달해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이고 공리적인 영어학습의 목적이 그와는 상충된 면모를 내보인다. 학교교육이 학습자들을 말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은 하면서도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주문은 잊지 않는다. 엄청나게 큰 학급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일도 힘이 드는데, 학습 진도라는 것이 있어서 교사의 재량을 한정하고 있다. 더구나 교사는 학습자를 시험문제 풀이의 달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도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공교육에서 음성언어로서의 영어를 배우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해외로 유학이나 연수를 보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학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자녀에게 줄 수 있도록 선택된 사람들은 극소수이니, 결국 국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영어교육에 대한 투자의 적절성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4.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위에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상을 서술하고, 문제점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이제는 그 문제점 하나하나에 대안을 개진할 차례이다. 첫째, 영어교육의 이상적 목표와 현실적 목표 그리고 사회적 요구 등을 감안하여, 이를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입시문제 풀이연습이 중요하여 음성언어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 두 개의 목표를 하나로 엮는 노력을 하면 된다. 물론 근년에 들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듣기문항을 획기적으로 많이 넣어 음성언어를 강조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부족하다. 좀더 세련되고 전문적인 듣기문항이 요구되고, 가능하다면 말하기 시험이 가미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극단적 처방으로는 영어과목 자체를 수능시험에서 제외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영어과목이 수능시험에서 빠지면 아무도 영어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영어를 모르고는 대학이나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되어 있어서 영어를 무시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둘째, 영어교사의 질적 문제는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사회적 공론은 지금 당장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의 전면적 실시가 교사의 음성언어 능력 부족 때문에 불가능하리라고 한다.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을 하려고 하면, 교사의 영어가 마땅히 유창하고 정확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에서는 정확성보다는 유창성을 더 강조하고 있지만, 교사는 학습자보다 더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므로, 그의 영어가 유창해야 함은 물론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교사의 양성은 당연히 대학에서 맡아야 하는 바, 우리의 교사양성 체계 자체에 문제는 없는가 반성해 볼 일이다. 대학에서는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으로 교사를 양성하지 않으면서, 교사들에게는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하라고 하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대학의 영어 관련 학과목부터 영어를 통하여 수업을 하게 하면, 그런 제도 아래에서 배운 교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셋째, native speaker를 꼭 고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돈을 많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자격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선별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우리말 그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깊은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가능하다면 native speaker의 고용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차라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교사양성 제도를 더 보완하여 흔히 말하는 near native에 버금가는 영어 구사능력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영어교사는 영어구사 능력뿐만 아니라 영어권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충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native speaker가 한결 좋을 듯하지만 그들은 우리 문화를 알지 못한다. 간단히 말하면, 영어교사는 영어와 우리말 그리고 영어권 문화와 우리 문화를 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위에 외국어, 특히 영어를 외국어로 배워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인 영어교사를 선호하게 된다.
넷째, 위에 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문제가 되는 것은 음성언어를 가르치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반에 수십 명의 학생을 앉혀 놓고 영어회화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회화라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으므로 다인수의 학급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은 그룹으로 나누어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설과 교사가 필요하다. 더욱이 해외로 자녀를 내보내려는 학부모가 국내에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하므로 더욱 완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또한 일부 부유층이 자녀를 해외로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해외 유학이나 연수에 비견할 만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모든 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예외로 두기보다는 그들도 함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공교육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5. 이런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짧은 글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과 문제 그리고 대안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이런 논의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차례이다. 특히 대안에서 (1) 영어교육의 목표와 목적이 현실과 괴리된 점을 개선하고, (2) 영어교사의 영어구사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하며, (3) 한국인 영어교사의 양성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하여 대학에서부터 영어를 통한 영어수업을 하도록 할 것과 (4) 수업 환경의 개선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으로 지적하였다. 영어를 통한 영어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로서 든 이 네 가지 대안 또는 조건을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엇인가? 답은 아주 명백하고 간단하다. 이 모든 대안과 조건을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그 사이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 보여준 어리석음은 무엇이든지 "우선 저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발상이다.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영어를 통하여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사이 그렇지 못한 행태를 방관해 오다가 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시정하려는 노력은 좋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큰 변화를 강행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실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면, 대안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대학에서부터 실시하고 다음은 중등학교 그리고 초등학교로 점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대학교수들은 그래도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되므로 아무런 무리도 없이 곧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중등학교와 초등학교 교사들을 재훈련하여 준비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초등학교 교사들의 재교육에 비중을 크게 두어야 할 것이다. 영어를 통한 영어교육을 일시에 전면적으로 실시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실시해 나가는 것이 상책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