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어떤 한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
라고 사전은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분명 패러다임은 인류전체, 시대적 스케일에서의 의미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도 패러다임을 정의할수 있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했으니 그렇기도 하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인간은 그렇게 간단,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의 생명체인것 같지만, 실은 무수한 세포들이 공존하는 다세포 생명체이다.
그만큼 의식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나라고 느끼는 나'는 중앙의 대표적인 의식일 것이다.
하지만 중앙의 대표의식 외에도 우리몸속엔 각자의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있다.
백혈구가 그렇고, 정자도 그렇다.
세포속의 미토콘드리아도 인간과는 별개의 원시생명체라고 한다.
이처럼 수많은 생명체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삶을 영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생명체들이 공존하다보니 이들을 조화롭게 통합시켜 질서를 유지하는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놀라울정도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조금의 부조화라도 생기면, 인체는 금방 이상이 온다.
그리고 대표의식이 의도하는 바와 달리 인체 각 부분의 의식들은 각자의 돌출행동을 하기도 한다.
인간이 느끼는 쾌락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고급의 정신적 쾌락이 있는가하면, 저급의 물질적, 육체적 쾌락이 있다.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하면, 퇴폐적인것에의 끌림도 있다.
나라는 존재가 단일한 하나의 존재라면, 저렇게 상반된 욕구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구는 신체 각 부분의 다양한 욕구에서 비롯된다.
강박증 역시 욕구와 관계있다.
그것은 육체적 차원의 욕구이다.
육체적 차원이라 해서 식욕이나 성욕같은 차원은 아니다.
쾌감을 느끼는 뇌의 한부분을 자극시키려는 육체적 차원의 욕구이다.
그 자극을 위해서 '이미지 조작'등의 다소 정신적인 차원의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완전하고 완벽한 이미지로부터 오는 강한 자극의 쾌감을 느끼고자 한다.
뇌의 어느 부분들이 스스로 그 쾌감을 알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유도를 한다.
중앙의식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쉽게 말하면 습관이라고도 하지만 습관이란 것은 인체의 각 부분들이 '자기 편한대로 행동하는 방식'이다.
반복은 프로그래밍과도 같다.
반복에 의해 프로그래밍되면, 그 패턴대로 따르는 것이 각 세포들에겐 편한 것이 된다.
컴퓨터 디스크에 어떤 내용이 각인되면, 그 각인된 내용대로 작동하듯이 인체에도 어떤 패턴이 각인되면,
그 패턴을 유지하고자 하게 된다.
그것은 '틀'이라고도 할수 있고, 개인적 차원의 '패러다임'이라고 할수도 있다.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면, 중앙의식이 주도해서 바꾸어야 한다.
때로는 부분의식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이미지 조작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잘못된 쾌락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첫댓글 조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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