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고선
제114회 산행일지 : 고비에서 느낀 서로의 소중함
(경북 청도군 운문산)
일시 : 2012년 2월 25(토)
참석자 : 문광덕, 김이돌, 금도현, 김생곤
날씨 : 흐림
지난 1월과 2월 사이 고3 아들이 수능 후 수시전형에서 몇 차례 낙방하고 정시모집에서 두 군데 합격을 했다.
아빠가 권유한 기차여행을 다녀오더니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이번 주는 그런 아들이 힘든 재수의 공부를 시작한 지 첫 주간이다.
앞으로의 힘든 1년을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믿고 기다려주는 것 말고는 아버지가 도와줄 일은 거의 없다.
2월 중순에는 출장차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일주일간 다녀왔는데 인터라켄에서부터 시작되는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겨울 알프스를 만났다.
작은 것이지만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색깔별로 4개를 현지에서 구입하여 온 것을 운문사로 향하는 차안에서 뽑기로 나누어 가졌다.
운문산은 등고선의 초창기인2003년 1월, 제5회 정기산행으로 총무 교매와 둘이 산행하였는데 그것도 정확하게는 억산을 다녀왔기에 실제로는 처음인 셈이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입구에서 물으니 입산금지란다.
차를 돌려 밀양의 석굴사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억산방향으로는 산행이 가능하다기에 시간도 많은 듯 하여 인공암벽이 있는 공영주차장에 주차하였다.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산불감시원이 와서 대장에 이름을 남기고 가란다.
운문산은 휴식년제 중이어서 출입이 금지되고 있으며 기간이 끝나더라도 5월 16일부터 11월 말까지만 예약에 의한 가이드 산행만 허락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개울을 다르다가 적당한 곳에서 오르기 시작했는데 결국 등심바위를 거쳐야 했다.
등심바위에서 200여 미터를 오다가 봉우리 입구에서 우측으로 꺽었어야 했는데 무심코 좌측의 능선길을 계속 따르는 실수가 있었다.
쉬면서 귤도 먹고 음료도 마신 후 좀 더 걸었더니 내리막이 이어지고 운문사가 앞에서 발아래로 나타난다.
이 길이 잘못된 것을 안 것은 여기에서였다. 하는 수 없이 뒤돌아왔는데 족히 30분 이상은 소비하였다.
잘 아는 사이라고 총무가 지도도 준비해오지 않아 어딘지 정확히 모르지만 참나무가 우거진 안부에서 고춧가루를 잔뜩 넣은 ㅇㅇ으로 식사를 하다.

식사 후 30-40여분을 걸어서 억산을 향하는 팔풍재 입구의 삼거리에 닿았다. 다시 한 시간을 걸어 범봉(962m)을 지나 딱밭재에 닿았지만 아직 정상은 1.8km, 저만치 높은 곳에 있다.
벌써 시계는 오후 3시를 향하고 있다. 딱밭재 사거리에서 석골사는 2.6km, 그리고 운문사는 4.5km의 거리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일부 남쪽사면을 따라 난 등산로에는 길이 질척이고 북쪽사면에서는 아이젠이 필수적이다.

정상에 이르는 곳곳에는 좌측 즉 운문산 방향으로는 ‘운문산 생태 ∙ 경관보전지역’이라 채취 등 각종 행위를 금지하는 표시가 여럿 있다.
오후 4시가 넘어 1,188m의 운문산 정상에 닿았다. 가지산은 5.4km의 거리에서 흐릿하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셀카로 단체사진을 찍고는 갈 길이 멀고 해는 짧기에 바삐 돌아섰다.
500 미터를 되돌아오면 석골사, 딱밭재, 그리고 운문사 방향(이쪽 표지는 출입금지여서 떼어낸 듯하여 없음)의 사거리에 닿는데 마침 운문사 방향으로 발자국도 있고 두어개의 시그널이 보이기에 우측 이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는데 이것이 오늘의 결정적 실수였다.
미리 말하지만 조금 더 멀지만 딱밭재까지 운문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어야 했다.
처음 10여분의 하산 길만 눈만 좀 많을 뿐 그럭저럭 괜챦았으나 그 이후 시그널은 간혹 보이지만 발자국도 없어졌고 잡목도 많고, 경사도 급하고, 한마디로 하산로가 없어져 버렸다.
되돌아가기에도 시간이 늦고 이미 내려온 길을 올라가기도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간혹 보이는 시그널을 따라 길을 만들어가며 하산을 강행했다.
2003년, 교매와 억산에서도 국제신문 시그널만 따라 어두워진 이후에 겨우 하산한 아픈 기억이 있는데 불안감이 스멀스멀 저며 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이 나타나 돌아가 보았지만 이번엔 폭포가 있고 폭포 상단엔 얼음이 골짜기를 메우고 있다.
이 얼음을 건너든지 아니면 절벽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매송이 벗었던 아이젠을 다시 신고 폭포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상단 5미터 정도 폭의 얼음위에 조심스레 섰다.
예서 미끄러지면 폭포의 얼음을 타고 수 십 미터 아래로 떨어져 죽음이다. 위험하게 보여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매송은 한번을 살짝 미끈하여 혼이 난 이후에 돌아섰다.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은 얼음계곡 건너기를 포기하고 급한 경사를 헤쳐 내려왔다.
위험한 절벽 구간은 벗어났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겨울의 짧은 해가 땅 밑으로 고개를 숙인 지 한참이나 되었고 이제 땅거미가 밀려와 어느새 주위에 가득하다.
오늘따라 아무도 랜턴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상대적으로 밝은 계곡으로 길을 잡았고 한참 후에야 너르고 편안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밤이다. 휴대전화를 조명으로 비추며 줄지어 내려오는데 산짐승의 울음이 여러 차례나 들려온다.

8시 20분, 운문사 부근 포장된 길을 만나자 긴장이 풀어지며 모두들 주저앉는다.
어둠에, 배고픔에, 피곤함에, 위험에 다들 정말 아찔했으며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함께 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가까이 사시는 장로님댁에 전화를 넣어 부부와 함께 용성에서 소갈비로 늦은 만찬을 행복하게 들고는 11시가 다되어 집에 도착 했다.
여러 번 전화와 문자를 주었던 딸이 반갑게 맞는다.
며칠 후, 페이스 북에 산행사진과 함께 내용을 간단히 올렸더니 여러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내 평생 다닌 산행 중 이토록 위험한 산행은 없었듯이 모두에게 잊혀지지않을 기억이 될 것 같다.
안전빵 산행, 준비된 산행이 무엇보다 최고의 산행이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