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들레와 어머니-
요즈음 여름 날씨는 예전과 달리 기온도 높고 무척 변덕스럽다. 에너지 과잉소비와 환경오염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의 영향인지 최근에는 예전에 없이 하루에 비가 세번도 내리는 아열대성 기후의 모습을 보이면서 기온도 35~36도를 성큼 오르내리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묻어나니 차라리 고된 산행을 하면서 더위도 이기고 체력도 단련할 목적으로 일찍 집을 나선다. 버스로 1시간여 이동 후 도착한 산길 들머리 논가에는 잠자리들이 유유자적 날아다니고 하늘은 구름 한 점없이 뜨거운 햇살과 연한 파랑으로 그려져 있었다. 들머리를 지나 산길을 제법 가니 예쁜 색갈의 잎으로 단장한 들꽃들이 마음껏 교태를 부리거나 상냥스럽고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산행 초보자 시절, 내가 시골 출신임을 알고 있는 산우들이 예쁜 들풀을 보면 이름이 뭐냐고 자주 나에게 물었지만 정확히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산행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들풀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었다. ‘동자풀’, ‘풍접초’, ‘꽃창포’등 생소한 이름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들풀은 ‘민들레’다. 수수한데다 촌스럽고 잡초처럼 친근하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민들레를 어릴적부터 좋아했다. 숨을 풀떡거리며 오르다가 잠시 쉬었다 가려고 앉은 돌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치 민들레로 보이는 노란 꽃잎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었고 한뼘 남짓 키를 세운 꽃대궁이가 여리 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싹 말라가는 잡초 한 자락이 함께 서 있어 살짝 걷어내니 그만 민들레 꽃대궁이는 스르르 내게 인사하듯 기울어지고 말았다. 순간 당황해서 다시 그 잡초를 지지대로 세워보니 잡초라고 생각했던 그 마른 풀은 한 몸에서 난 줄기였다. 그 주위에 몇 개의 잎줄기들이 싱싱하게 자라나 있었지만 유독 변색되고 말라가는 잎줄기만 노란 꽃대궁이를 받쳐주고 있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말라서 힘 없고 여린 존재였지만 한몫을 든든히 해내는 모습이 마치 연로하신 나의 어머니와 같았다. 내 어머니는 연세가 연세인지라 몸놀림, 기억력, 판단력은 예전과 같지 않지만 집안 어르신으로서 역할은 여전하시다. 시골에 사시다가 부산에 사는 자식 집으로 오셨지만 그 전에는 텃밭 잡초를 뽑아내고 오이, 가지, 감자, 고구마, 고추 등을 심고 수확도 직접 하셨다. 일이 몸에 익은 탓인지 “아개비, 어디 호맹이로 풀을 뽑으며 배추라도 심을 땅이 없나”라 하시면서 소일거리를 찾으셨지만 아파트 생활을 한 탓에 그렇게 해 드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그만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고 이제는 걸음도 잘 걷지 못하신다. 먹먹한 마음으로 종종 어머니의 옆에 앉아 허리와 어깨를 주무려 드리면 “아이쿠 시원하다. 조금 울로 밑으로 해 봐라.”하시면서 아들의 손길이 몸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신다. 이럴 때마다 원래 나는 어머니에게서 비롯해서 어머니 품 안에서 자랐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하면서 늦게 철이 든 바보 자식으로서 지금까지 어머니의 은혜에 보은하지 못한 것들을 찾고 또 찾고 있지만, 연세가 많아 쇠약해지고 심리적으로 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과 함께 안스러움만 한없이 크다. 이 한 여름, 산에는 연초록의 잎사귀들이 바람결에 기대어 그 생명의 찬연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런 풍성함 속에서도 쇠락과 나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 가지에서 나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꽃을 피워내며 다음을 기약하는 한 송이의 민들레를 보면서 어려웠던 가정경제를 잘 이끌어 오셨고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소진한 어머니의 몸과 마음의 기운을 어떻게 다시 채워드려야 할지, 자주 생각에 잠긴다. 그러던 중 어제는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는 납새미를 고향, 남해친구에게 부탁해서 받아 쪄드렸드니 "생선이 참 맛있네. 남해 개기아닌가?"하시면서 제법 큰 한 마리를 맛있게 다 드셨다. 그간 남해산 생선맛에 익숙한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이 그렇게 예쁘 보일 수 없었다. 보내 온 생선이 다 떨어지면 이 한 여름 더위를 잘 이겨 내시도록 전복죽도 준비해 드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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