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실용주의 웅변
1990년대는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가던 시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이전 시대와 같은 거리 중심의 저항적이고 투쟁적인 웅변은 점차 그 필요성이 감소가 되었다. 그 대신 웅변은 제도권과 교육 현장 속으로 재편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웅변의 제도화와 교육화이다. 과거에는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웅변이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학교 교육과 각종 대회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각급 학교에서는 발표수업과 웅변대회가 활성화되었고, 전국 규모의 웅변대회 역시 꾸준히 개최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한웅변인협회는 전국 조직을 재정비하고 전국웅변대회를 통한 국민 계몽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의 웅변 주제는 백범 정신선양을 비롯하여 평화통일이나 국가 발전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여타 사회단체에서도 웅변대회를 자주 열었으며, 애국심이나 반공을 비롯하여 환경보전이나 청소년 선도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전국적으로 웅변학원이 번성기를 맞았으므로 청소년들의 발표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웅변대회도 자주 열렸다.
그러나 일부 웅변대회는 국민 계몽이나 교육의 목적에서 벗어나 입시경쟁체제와 결합 되면서 이른바 ‘스펙화’현상을 겪게 되었다. 특히, 장관상 등 권위 있는 상이 대학입시 전형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던 시기에는 오직 수상 실적을 위한 경쟁의 장으로 변질이 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웅변교육도 점차 표현력 훈련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으며, ‘웅변’이라는 용어 자체가 ‘스피치’나 ‘토론’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화와 함께 서구식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도입되면서 단순한 일방적 연설보다 상호 소통을 강조하는 방식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웅변학원은 점차 스피치학원으로 명칭부터 바뀌게 되었고, 교육 프로그램도 일반 스피치와 더불어 프레젠테이션이나 구술 면접, 선거연설이나 설교 스피치과정 등 다양성과 실용성을 갖게 되었다.
학원 교육 외에도 상당수 대학에서는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CEO들에 대한 리더십과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CEO스피치과정’을 운영하기에 이르렀으며,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학부과정이나 석, 박사과정에 스피치학과를 개설하여 많은 전문가를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흐름은 웅변이 쇠퇴했다기보다 일방적인 발표에서 상호 소통의 방향으로 재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1990년대 웅변은 국가와 민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바뀌었으며, 군중 속의 외침에서 강의실이나 방송 매체를 통한 소통의 수단으로 점차 변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웅변의 본질, 즉 말을 통해서 생각을 전달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