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4-2)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함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오직 영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다>
이 주제는 믿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한 일차적인 문제는 우리가 외적으로 일을 하는 방식이나 밖의 표현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의 방법이나 요령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가 팔십세가 될 때까지 부르지 않으셨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떠한 방법도 주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한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며 그분이 모세에게 원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모세의 인격임을 보여 주셨다. 나는 지금 우리가 일을 함에 있어서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훌륭한 기술과 방법을 가져야 한다. 주님을 섬길 때도 또한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에 달려 있음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방법과 체험을 가지고 있을찌라도, 다른 사람들은 성공하는 반면에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합당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격이 합당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합당하고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매일 매일, 시시때때로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진리와 생명으로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은 과정을 거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살아 계신다. 이 영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누리고, 살고, 움직인다. 이것이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 우리는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상을 가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하는 올바르고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첫째로 우리는 이상을 가져야 한다. 곧 우리는 계시와 진리를 가져야 한다. 이 이상은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갈망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래 가졌던 생명은 피조된 생명이며, 그것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파괴되고 빼앗긴 바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해 우리 안에 들어오기를 갈망하셨다. 그러므로 인생의 의미는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부요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가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공허할 것이다. 신약에 와서 우리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육신이 되시고 고난의 인생을 사시고 죽음과 부활을 거쳐 그 영, 곧 성령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경이 중의 경이요, 기적 중에 기적인 분이시지만,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부족하다. 곧 “하나님은 실제로 계시는가? 거듭남이 사실인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의 거룩케 하고 변화시키는 역사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이러한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시련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우리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곧 우리는 그분의 현존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신다는 이상을 보아야만 한다. 이것은 알고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다!
둘째는 우리 믿는 이들은 세 부분으로 된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보아야만 한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체험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오직 영 안에서만 체험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것은 단지 여김으로는 효력이 없다. 반드시 우리가 영 안에서 행해야 한다. 십자가의 죽이는 요소, 곧 죽이는 능력은 성령 안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이전에는 반드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로 끝내져야만 했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 이후에 우리는 반드시 영 안에서 행해야만 한다. 성령께서 우리 영 안에 계신다. 할렐루야!
셋째로 완결되고 완성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이제 우리 영 안에서 생명이 되심을 보아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은 이제 우리 영 안에 우리 생명으로 계셔서 하나님을 우리의 모든 것으로 누리게 한다. 우리는 이 생명을 우리 영 안에 첫열매의 누림으로 가지고 있다.
<위의 이상을 본 후에는 다음의 네 가지의 체험이 필요하다>
이 이상을 본 후에 우리는 다음 네 가지의 체험들이 필요하다. 첫째로 우리는 어떤 혼합된 생각도 없이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롬8:6). 자기 수양으로 우리 자신을 개선하거나 개발하려고 하지 말라.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고 찬송하고 방언하는 것이다.
영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방언하는 것,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것이 우리의 생각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라. 즉시 당신은 영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영 안에 모든 영적인 것의 부요함이 있다.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내 영 안에 모든 것의 실재가 존재한다.
둘째로, 우리는 연합된 영에 따라 행해야 한다(롬8:4). 셋째로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거치시고 우리의 영과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영을 체험해야만 한다(롬8:11).
이러한 것들이 체험될 때, 당신의 영과 혼과 심지어는 죽을 몸에도 주님의 생명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존재의 세 부분, 곧 영과 혼과 몸까지도 새 생명을 가질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그 영, 곧 성령으로써 우리 인격 전체의 행실인 몸의 행실들을 죽여야 한다(롬8:13). 이 절에 관한 사도 바울의 말씀은 매우 비밀스럽고 깊다. 바울은 우리가 우리 영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들을 죽인다고 말한다.
로마서 8장 13-14절은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고 말한다. 몸은 성질을 내고, 시비 걸고, 싸우고, 술마시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죽임당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죽음으로써 사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몸의 행실을 죽이면 우리는 살 것이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길은 계속해서 주님의 죽으심 안에 머무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머물러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려면 주님의 죽으심 안에 거하고 머물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체험하려면,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기 원하심을 보아야 한다.
이것을 위해 그분은 세 부분으로 된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끝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 영 안에 들어와 우리가 그분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영으로 생명이 되게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생각에 들어와서 우리의 생각을 생명이 되게 하시도록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영을 따라서만 살고 움직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죽음과 부활을 거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죽을 몸에 생명을 줄 것이며, 우리의 전 존재, 곧 영과 혼과 몸이 생명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 곧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누린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우리의 일상적인 일들 가운데 어떤 일에서든 영을 따르는 데서 벗어날까 깨어 조심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어떤 일에 서든 영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합당하지 않는 자가 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