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칠정산 내외편"의 약점
칠정산 내외편에는 약점이 있었어. 이순지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겠지만, 그가 참조한 회회력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천동설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단 말이지. 그 약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구중심설에서 나와. 지구중심설은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달과 태양, 그리고 오행성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태양계 모델이야. 물론 너는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근데 이건 별문제 아니야. 어차피 역법을 계산하는 데는 지구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칠정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기 때문이지. 오히려 역법을 위해서는 관측자 중심으로 천동설이 옳은 것처럼 계산할 필요가 있어. 더 큰 문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에서 나온단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늘에 관하여에서 전개한 우주론을 받아들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해. 지상계는 불완전한 것(물, 불, 흙, 공기)들이 결합해 있는 불순한 세계이고 천상계는 신령스러운 에테르로 이루어진 순수하고 완전한 세계지. 천상계는 완전한 세계이니, 어느 한 곳 부족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아홉 겹의 공과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 이걸 천구(天球)라고 부르는데, 에테르가 응결한 수정체와 같은 것이야.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천구 하나하나에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차례대로 박혀있고 여덟 번째로 항성(붙박이별) 천구가 있다고 생각했어(나머지 천구는 부동의 원동자인 종동천 ― 중세 천문학에서는 신이 거주하는 열 번째 천구를 추가한단다). 별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천구가 일정한 속도로 지구 둘레를 돌고 별은 그 천구에 박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천구가 완전한 형태의 공이라면, 그리고 태양이 태양 천구에 박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원의 내각은 360°이므로 당연히 1년이 360일이어야 하지 않겠니? 실제로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1년을 360일로 계산했다고 해. 많이 불편했겠지? 50년 정도 지나면 한 달이 차이가 날 테니 말이야.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인들은 정밀한 관측을 통해 1년이 365일이 조금 넘는다는 것을 발견해. 또 그들은 태양이 일정한 속도가 아니라 부등속 운동을 한다는 것도 발견하지.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관측자료를 손에 넣고 있었어. 프톨레마이오스는 난관에 부딪힌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인 그에게 태양은 완전한 구형의 천구에 박혀 원운동을 해야 했어. 그런데 지구에서 관측한 태양의 운동은 내각이 365°가 넘는 운동을 하는 것으로 관측된단 말이지.
여기서 프톨레마이오스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보기로 할까?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적 가공물을 하나 만나게 될 거야. 만약에 지구가 태양 천구의 중심에 놓여 있다면, 당연히 태양은 내각이 360°인 원운동을 하고 등속운동을 하는 것으로 관찰될 거야. 그런데, 지구가 태양 천구의 중심을 벗어나 어느 한쪽에 치우쳐 놓여 있다면, 태양이 완전한 원운동을 하고 등속운동을 하고 있어도 지구에 있는 관찰자에게는 태양이 360°보다 더 큰 내각의 운동을 하고 부등속운동을 하는 것처럼 관찰될 거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때 지구는 두 개의 이심(원에서 중심을 벗어나 있는 점) 중 하나에 놓여있다고 보았단다. 그리고 지구가 놓여있는 이심이 중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가를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계산하여 증명했지. 이렇게 해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완전 원운동 개념에 저촉하지 않으면서도 관측자료를 충족시키는 멋진, 그러나 사실과는 관계없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거야.
천구가 원 운동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또 하나 있었어. 화성의 역행 현상이 그것이야. 화성은 2년이나 2년 반마다 한 번씩 앞으로 순행하다가 제자리에 잠시 멈췄다 뒤로 후퇴하는 운동을 한단다. 화성 천구가 공과 같은 것이고 그것이 한 방향으로 등속운동을 한다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지.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곤란을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해결하려고 했어. 주전원이란 천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보조 천구를 말하는 것이야. 화성은 화성 천구에 박혀있는 게 아니라 그 천구를 둘러싸고 있는 보조 천구에 박혀 운동한다고 설명하는 것이지. 중세말에는 항성(붙박이별)들의 불규칙한 출몰을 설명하기 위해 이 주전원을 64개까지 늘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단다. 계산이 오죽 안 맞았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니.
어찌 되었든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태양계 모델은 아라비아에서 꽃피우게 된단다. 아라비아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 에 붙인 아라비아어 이름 알 마게스트는 ‘위대한 책’이라는 뜻이래. 오늘날까지 그 책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서기 천년 경에 이 천문학은 다시 유럽으로 역수입되어 중세와 르네상스 천문학과 역법의 기초가 돼. 서양 고대의 율리우스력을 대체해 16세기에 성립해서 오늘날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이 그것이야. 한편으로 이 천문 사상과 아라비아의 역법이 13세기 유럽과 아라비아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인들을 통해 중국에 전달되는 거야.
중국에 수입된 아라비아 역법이 회회력이고 아라비아 천문학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중국의 역법이 수시력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했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과 회회력에서는 절기를 이심원 운동을 하는 태양의 실제 운동에 맞게 약간 불균등하게 정했지. 그에 비해 수시력은 중국 역법의 전통에 따라 절기를 평균적으로 나누었단다. 평기법을 사용한 거야. 이 방식은 칠정산 내외편에서도 답습되었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가 안고 있는 원운동이라는 태생적 약점에 더해 평기법까지 수시력(명대에는 대통력)은 명나라 말기에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게 돼. 절기 산정에 오차가 발생하고 일식 예측이 자꾸 빗나가는 거지. 역법을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말이야.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라는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도착한 거야(히라카와 스케히로 지음, 노영희 옮김,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동아시아, 2002)에는 마테오 리치와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을 중국에 전해준 이야기가 흥미롭게 소개되어있단다). 마테오 리치는 광동에서 6년을 머물면서 전교 활동을 하다가 기독교를 중국에 효율적으로 전도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돼. 그래서 3년에 걸쳐 걸어서 북경까지 갔단다. 그는 중국어에 통달하고 한문을 익혀 천주교 교리를 한문으로 해설한 천주실의를 저술하기도 했어.
그런데 그가 북경에서 고관들과 사귀며 전교 활동을 계속하던 중 명나라 조정의 관리들이 새로운 역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돼. 자신이 알고 있는 천문학적 지식을 알려주자 고관들이 명나라 황제 만력제를 알현할 기회를 줬단다. 만력제는 그 자리에서 마테오 리치에게 새로운 역법을 만드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지. 대신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겠다는 약속도 하고 말이야. 마테오 리치는 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개종할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그는 곧바로 예수회 본부에 소속 신부 중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를 급파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그래서 중국으로 건너온 천문학자가 아담 샬(Adam Shall, 湯若望. 1591~1666)이야. 아담 샬이 중국에 건너와서 새로운 역법을 만든 것은 만력제가 죽은 후 새로 즉위한 마지막 황제 숭정제 때야.
첫댓글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렇게 훌륭한 과학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