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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26 우길도 사당 外/ 고은
우길도 사당
우길도
스물여섯 가호 해녀들
큰 섬 방대도로 물질 간다
강원도 묵호 고성
거기까지
실려가
그 바다 물질 간다
소화 15년 여름
우길도 해녀
열일곱 명이
큰돈 벌러 강원도로 실려가
동해 해일을 만나 다 물귀신 되었다
우기도 남정네들
흐득흐득 울었다
각시 잃고
어멈 잃고
딸 잃고 울었다
남은 아낙 전달보 마누라가
반병신 서방
전달보를 타이른 뒤
밤마다
이 사내
저 사내에
몸 주어 울음 달랬다
그리하여
10년 사이
이씨 자식
홍씨 자식
석씨 자식
서씨 딸 낳아주었다
그 전달보 마누라
나이 여든한살에 세상 떠나니
성발이 다른
아들 딸들
손자
외손자
우길도 여러 핏줄 다 모이어
장사지내니
섬 위 당산나무 가지
거기에
시신 모셔놓으니
까마귀들 오고
박새들 오고
들쥐 오면
들고양이 와
들쥐 달아나더라
20년 뒤 그 당산나무 밑
한칸 집 지으니
그것이
허각시 사당이라
지난날 전달보 마누라
그 육덕(肉德)
그 심덕(心德) 기리어
허각시 사당이라
누군가가
허씨라 하여
허각시 사당이 되었으니
우길도 대대로 자손번성
빌어 마지 않았으니
남색 사자
은사와 상좌라
세속 부자보다 더 진한
사자(師資)라
이럴 바에야
무엇하러
세속이 있고
탈속이 있어야 하나
1942년 그 어둑어둑한 시절
가야산 해인사에는
예순여섯살
통현화상이 계셨더라
절의 논 말고
따로 논을 몇두락 가지고 있었으니
지주의 대찰에
지주의 노승이었으니
몇해 전까지 강원 학인에게
전등록을 가르치던
부자 강백 노승이었으니
그 이름 통현화상이더라
그 화상에게
아주 이쁜 열세살 사내 동승이 와 있었으니
오늘 저녁
산중 또래
60객
70객 노승 열둘이 모여
표고버섯 요리에
송엽주 내어
거나하게 잔치를 벌였으니
사미 동승에게
꼬까옷 입혀
노승 통현화상 장가가는 잔치 벌였으니
그날 밤
화촉동방 꾸며
노승 신랑과 동승 신부의 첫날밤을 이루었으니
그 다음날 논 절반을
신부 명의로 이전 수속하고 나서
노승 신랑 싱글벙글
동승 신부 한낮에도 부리나케 불러들였으니
밖에 있지 말고
안에 있거라
밖은 지옥이고
안은 극락이니라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어서 이리 오너라
몽설당
1957년 서울 수송동 조계사
산중 비구들
무슨 일로 모였다
모였다 흩어지지 않고
서울살이 한철이었다
전차도 타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도 탔다
그런데 산중 비구들이
서울에서 살며 생긴 병 있다
한밤중 꿈속에서
색정에 빠지는 병
꿈속에서
색정의 절정
정액을 흔전만전 쏟아버리는 병
어느날 허물없이 실토하였다
교무부장 경산도
월정사 탄허도
범어사 대월도
팔달암 범향도
선학원 일초도 실토하였다
1달에 한번
1주일에 한번
3일에 한번
3일에 한번인 병자가 당수렷다
몽설당(夢泄黨) 당수 경산
대월이 부당수
1년 뒤 탄허가 제안했다
우리 몽설당 해체하고
각자 산중으로 돌아가자고
각자 산중으로 돌아간즉
몽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원섭섭이렷다
튀기 니나노
1904년 2월에 일어난
러일전쟁은
처음에는 러시아가 승전고를 울렸다
까지흐부대 무서웠다
짜르 근위사단 무서웠다
블라지보스또끄에서
육로로 두만강 건너
조선땅을 먹었다
함경도 회령 일대를 먹었다
조선 남자를 죽이거나 쫓아내거나
그런 뒤
조선 여자를 가로챘다
아예 조선 여자와 사림을 차려
떠날 줄 몰랐다
조선땅을 러시아땅으로 삼았다
러시아 연해주를 넓혀
짜르의 영토로 삼아버렸다
일본군이 승전고를 울렸다
일본 혼성여단이 몰려오자
러시아 병사들이 도망쳤다
드디어 러시아가 졌다
함경도 회령땅 경원땅
쫓겨난 남정네 돌아오니
여자들은 만삭의 임산부였다
돌아온 남정네들
그 여자들을 때려죽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쫓겨난 남정네
돌아온 남정네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라사 씨들이 태어났다
아라사 씨들이 자라났다
튀기로 자라나
아버지의 땅으로 간다 간다 하다가 못 갔다
아니면
삼수갑산 화전꾼으로 갔다
계집아이 튀기
갑순이도
카츄사도 아닌 튀기
변방 삼거리
변방 나루터
술집으로 갔다
들병장수로 떠돌다가
이내 술집 니나노로 들어앉았다
하얀 살갗에
갈색머리 니나노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
꽃 본 듯이 꽃 본 듯이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밀양아리랑 한 구절이었다
튀기 니나노 노아(露兒)
노아야 이년 노아야
부르면
예에잇!
하고 달려나왔다 엉덩이가 질펀하였다
배삯 5전
법명 성각 속명은 잊어버렸다
나이가 마흔인가 마흔넷인가
어림없었다
어림없었다
두 번 장가들었다 두 번 홀아비였다
세 번 다시 장가가지 않았다
지나가는 대사 따라 절에 가 머리 깎았다
저 식민지시대
남쪽 가야산 해인사에서
북쪽 묘향산 보현사 상원사 가는 길
어찌어찌
경선 지나
임진강 나루에 이르렀다
삯전 10전인데
달랑 속주머니에 5전이 있었다
그것으로 통사정해도
어림없었다
어림없었다
강물 물살은 빠르게 회돌고
된서리 내린
아침바람이 시렸다
벌써 손이 곱고
입은 옷은 홑옷이었다
어림없었다
어림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기 업은 젊은 아낙
선뜻 5전을 보태주었다
임진강을 건넜다
아낙은
수안길로 가고
그는 개성길로 갔다
엿새 만에 묘향산 상원사에 이르렀다 현생이 전생 같았다
임진나루
그 아기 업은 아낙 위해
그 아기와
아기 엄마와
아기 아빠 위해
그 아낙 친정과 시댁 위해
7일 기도를 했다 그 전생이 금생 같았다
나 혼자 사는 일
어림없었다
어림없었다
조선후기의 먹돼지
노론은 빈대
밤중에
슬금슬금 기어나와
피를 빨았다
소론은 모기
앵앵 날아내며 날아와
피를 빨았다
윗마을 아랫마을
노론 소론
서로 오고 가지 않았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진지 잡수셨습니껴
인사도 있을 리 없다
한 문중
한 종친이라도
당색이 다르면 시월 상달 시제도 함께 모시지 않았다
노론 옷깃 길다
소론 옷깃 짧다
노론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영감마님
마님으로 불렀다
소론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불렀다
제사 지내는 제수도 과일 홍동백서(紅東白西)도 달랐다
걸음걸이
말소리
헛기침 소리
옷차림새 서로 달랐다
먹돼지도 다 알았다
저 양반께서는 노론의 사위님이시네
저 양반 나으리께서는
소론의 사돈의 팔촌이시네
꿀꿀꿀
소남주 타령
과연 나라 망하였다고 자결해야 하는가
과연 나라 빼앗겼다고 비분강개
척양척왜 의병으로 기의(起義)해야 하는가
과연 이 나라 천추만대 그대로
영영 이어가야 하는가
과연 이 나라 벼슬아치 노는 것 보아
현감이라는 자
3년 가물에
논바닥 쩍쩍 갈라지고
아이들 부황 나 죽어가는데
그 백성 구휼은커녕
집안 화로까지
마당 구석 병아리 몇 마리까지
갈비뼈 앙상한
늙어빠진 검둥이까지 걷어간다
과연 이 나라 벼슬아치 노는 것 보아
현감은 현감대로
그 밑
이방 형방은 이방 형방대로
아니 그 밑으로
한동네 사는
마을 이정(里正)은 이정대로
한동네 사는
좌수어른과 함께
걷어들이고
또 걷어들여 마지않았다
저 위 궁궐 내탕금은 또 어디서 나오나
저 삼정승
저 정일품에서 종구품들은 그들대로
저 팔도 감사도
저 각 고을 목사들은 그들대로
걷어들이고
또 걷어들여 마지않았다
어찌하여 이런 나라
이런 착취로
몇천년
몇백년을 내리닫이 살아온
누대 백성의 아픈 삶이더냐
조선인구 1천만에
쌀 1천만섬 소출이면
보리에
밀에
옥수수에
기장에
조와 수수에
한해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아도 되는데
어찌하여
윗길 아랫길 굶어 죽은 송장 널브러졌더냐
나 모르겠다
전라도 고부 농투성이 소남주
도조(賭租) 논 두 마지기마저
올해는 내놓아야 한다 내놓고 새끼 세 마리 굶겨 죽여야 한다
나라가 있거나 나라가 없거나
나는 모 심을 땅 그놈의 모진 격양가 부를 땅
한뼘도 없다
나 모르겠다
나룻배와 사공
누군가가 나룻배와 사공을 노래했더라
섬강에 다리 없을 때
나룻배 영감
지국총 지국총 노저어
물 건너 데려다주는
나룻배 영감
벌써 30년 넘어
물 건너 마을
건너오고
건너가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월
어느날 그 나룻배 사공이 나타나지 않았다
강물 내려다보이는 암자 언저리에서
오래 연기가 났다
늙은 나룻배 사공 화장하는 다비 연기였다
그 나룻배 사공
지난날 이름을 떨친
화엄사 선방 조실
무하(無何) 대선사였다
어느날 선방 뛰쳐나와
나룻배 하나 만들어
나룻배 사공이 되었던 것
그 무하 대선사였다
한오리 연기 들피 스러졌다
세 번 시집간 아낙의 어느날
여보
여보 큰일 났어요
당신 아이하고
내 아이하고
대판 싸우고 있어요
그 싸움을
우리 아이가 말리다가 다쳤어요
여보
여보
어서 나와
아이들 싸움 말려요
여보
여보
당신 아이가 코피 흘려요
내 아이 얼굴이 멍들었어요
여보
여보
어서 나와요
우리 아이가 넘어졌어요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어서 나와요
일생
화동 화개 밖 강기슭 대망리 들녘 마을
그 들녘의 임자이신
지주 성일조 어른네
왕마름으로 온 임종만 씨
어쩌자고 서른넷 노총각인고
다음날부터
이 노총각께서 마고자 바람으로 거동하시기를
소작인 실사(實査)
가가호호
들녘 기슭
들녘 복판 오막살이들
샅샅이 드나들었다
며칠 만에 소작인 겉사정 속사정 다 알아버렸다
닭 몇 마리
돼지 몇 마리
소 몇 마리까지 알아버렸다
여름 호밀밭
가을 콩밭 수수밭
겨울 물레방앗간
봄날 제석산 암자가
임종만의 밤낮 임시처소 밤처소인지라
대망리 아래뜸 처녀 용녀
대망리 중뜸 처녀 지덕이
사계리 과부 변씨
용당리 누구
지평리 누구
대망리 아래뜸 옥봉이
대망리 위뜸 춘향이 순례
심지어 서방 있는 아낙
할멈과
앞 못 보는 열네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꼬시고
어르고
공갈협박하고
갖가지 딱한 사정과 곤기에 맞춰 끌고 가
강간
반강간
화간
갖은 재주부려 정을 통하고 마니
일이년 뒤 일곱 마을에서 열여섯이나 씨를 보았나니
죽이지 말고 길러라
다 저 먹을 것
저 입을 것 타고났느리라
잘 길러라
후일 큰일에 쓰일 것들이니라
끝내 지주 성영감의 소박맞은 딸
그 생과부를 상간하여
아들을 낳으니
어엿한 지주의 사위가 되어
야금야금
지주의 논마지기 밭뙈기 하나하나
제 앞으로 등기 이전하여
마름으로 부임한지
9년 만에
마름이 지주로 바뀌었나니
늙어
자리보전한 옛 지주 성영감 탄식하기를
내가 강도를 불러들여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구나
새 지주 임종만께서
제 씨를 길러낸 소작 여편네들에게
소작료 절반 탕감의 은택을 베풀고
정월 초하룻날
본댁 씨 세배 받으며
하루 내내 동동주에 취하여
일본에는 천황 있고
경성에는 총독 있고
여기 대망리에는 나 임종만이 있도다
하고 크게 웃었나니
다음해
독립운동자금 걷으러 온
독립군의 청을 거절하다가
칼 맞아
세상 마쳤나니
그 장례행렬 삼베두건 십릿길 배다른 아들딸들 장엄하였나니
혜봉 영전
저 마곡사 밑
구암리
감나무 한 그루 멋없이 서 있는 집
따라서 멋없는 집
그 집에
멋없이
머무는 사람
중도 아닌 속도 아닌 사람
혜봉(慧峰)이라
어느날 한 젊은이가 팽팽한 가슴팍으로 찾아갔다
영감님 혜봉 영감님
영감 땡감님
혜봉 땡감님
내 깨달음을 보시오
내 다 마쳐버린 화두의 끝 보시우
으스댔다
혜봉 팔장끼고 서 있다가
문 닫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뒤 혜봉 입적
감은 열리고 또 열렸다
세월 적적
어느날 옛 젊은이가
늙수그레 찾아왔다
그 집 위
마곡사 법당
혜봉 위패 모신 영단에 가
엎드렸다
엎드려
뉘우쳤다
제 아상(我相) 제 중생상(衆生相)을
뉘우칩니다
제 망상 뉘우치옵니다
지난날의 제 증상만(增上慢)
이제야 뉘우치옵니다
그런 참회인사 올린 뒤
제 손가락을
촛불에 지져댔다
지글
지글
지글
지글
그 뜨거움으로 뉘우쳤다
검지손가락 한 마디가 지글지글 탔다 짓뭉개졌다
마침 그 절 노승이
역한 살 타는 냄새 맡고
법당 안에 들어서더니
눈살 찌푸려 게송 2절 읊어내었다
그 노승 쉰 목소리
지난날 세상 떠난 혜봉노장 꼭 닮았구나
학에게 오리의 다리라
오리에게 학의 다리라
이게 네 전생이로다
허허 시집가서
물 뜨러 나왔다가
신랑 방으로 가지 않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다니 원
이게 네 내생이로다
이상춘
이런 사람이 있었느니
흙담 모퉁이
배롱꽃 피어나고
지붕 한쪽
박꽃이 피어나고
이런 아름다운 사람 있었느니
조선 개성
송도고보 조선어 교사 이상춘(李常春)
낮에는 가르치고
밤에는 하나하나
조선의 낱말 모아들이니
어언 11년째
어언 낱말 9만개에 이르렀느니
때마침 조선어편찬회 소식 듣고
경성으로 달려가
조선어사전 원고 공책 한짐을 넘겼으니
넘기며 한마디
어찌 이것이 나의 것입니까
조선의 것입니다
그날로 개성으로 돌아가
오로지 송도고보 조선어 교사일 따름이었느니
그 이름
이상춘
그 이름
한글 조선어사전의 첫 바탕
이상춘
하산
두간두간 초가집들이 나온다
띄엄띄엄 초가집들이 나온다
이제 살았구나
맨드라미 닭벼슬 반갑구나
옥잠화 이울었구나
지리산 노고단 골짝
아홉 달 만에
내려온 빨치산 여맹(女盟) 임진자
구례 마서 다락마을
다 빈터 되고 말았는데
여기 외가 동네 수동리
용하디용하게
초가집 둘이 남아 있다
외숙모 계실까
외사촌 오빠 무길이
옻나무 근처만 가도
옻 오르던
외사촌 동생 무숙이 살아 있을까
너 임진자 마음 놓았구나 내일 잡히겠구나
어느 좌탈입망
1959년 사봉산 상국사에서
세수 75세
법랍 65세의 청구당 대선사께서
상국사 동쪽
외나무다리 밑 개울가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그대로 물에 처박혀 세상을 마쳤다
한참 지난 뒤에야
그 시신을 본 상좌들이
시신을 들어다
방에 눕혔다
그러자 둘째상좌 희도 수좌가
우리 스님께서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된다 하여
이미 굳은 시신의 뼈마디를
삐걱삐걱 굽혀
어거지 결가부좌로 앉혀놓았다
등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지자
목에 가는 철사를 감아
벽에 고정시켰다
그러고 보니
영락없는 좌탈입망
저 오대산 상원사 한암 교정의 열반과 다를 바 없다
저 밀양 표충사 효봉 종정의 열반과 다를 바 없다
일주문 밖 사진사 데려오더라
어서 사진 찍어놓아라
그때 맞상좌 희만이 다른 절에서 뒤늦게 왔다
이 거짓 좌탈입망을 알고
대성일갈
이 무슨 짓들이냐
우리 스님을 이렇게 욕되게 하느냐
이 무슨 지옥 갈 짓들이냐
하고 울부짖었다
둘째상좌 희도는 사진 다 찍은 사진사를 내보냈다
한마디
여기가 지옥인데 따로 갈 지옥이 어디 있나
개안(開眼)
시중(時中)이라
공자 한마디
시중이라
때 안에 있음이라
때에 응하여 있음이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절집 한마디
시절인연이라
이세상
저세상
때만한 인연 그 무엇이리오
과연
열네살 때 먼 두 눈이
때 안과
때 밖 다하고
때 인연 다하고 났던가
마흔일곱살에
두 눈을 떠
33년 전의 가을 단풍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의 사내 오준헌 두 눈을 떠
무엇보다 무엇보다
여자의 얼굴
바라보는 기쁨이여
먹뱅이
저 두만강 언저리
러일전쟁
거러지 같은
러시아 극동부대 졸병 가가린
그 곱슬머리 사내의 씨로
경원 밖
백호나루 간난이 딸로 태어나니
먹뱅이라
먹뱅이라는 얄궂은 이름
제 이름으로 달고 자라나니
그네 아라사 튀기
먹뱅이
오다가다 만난
뱃놈 찜보 마누라가 되었구나
그럭저럭 저럭그럭
찜보와
찜보마누라 튀기마누라 잘도 살아가는구나
밤 이슥히 갈자리 방바닥 서너 번 방아질도 에지간하구나
개구멍
밥상엔 웬 부추무침이신가
부추 먹은 영감
밤에 활발하시다
개성에서는 부추
군산에서는 솔
마산에서는 정구지
그 고장 밤에도
사내들 활발하시다
솔 먹고
정구지 먹고 활발하시다
밥상에 웬 상추무침이신가
상추 먹은 영감
밤에 곯아떨어지신다
코고는 소리 한참 들은 뒤
마누라가
개구멍으로 나가
이웃집 부추 먹고
기다리는
홀아비 방문 연다
닭 두 홰 운 뒤
축 늘어져 돌아온다
돌아와
찬물 두 그릇
벌떡 마신다
코고는 소리 옆에서
코고는 소리 내기 시작한다
善과 惡 -민족, 민중, 역사 / 고은 시인의 만인보 26권을 읽고
양백산인 박희용
그래도 시의 뿌리가 닿아있는 곳은 선이다. 성리학자들이 ‘사단은 본연지성이므로 선하고 칠정은 기질지성이므로 악으로 흐르기 쉽다’라고 한 말이 비록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나, 만인보 26권에 현현한 세계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의 구조 위에 서 있다.
선과 악의 선택은 불안정한 기질지성의 속성대로 순간적인, 즉흥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해당 인간의 근본에 연원하고 있음을 만인보 26권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나 윤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 그리고 중성이라는 삼면으로 섞어서 보지만, 고은의 시는 선이면 선, 악이면 악, 이렇게 분명하게 낙인찍어 편 갈라 두 줄 세운다. 고은의 검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운명이 결정되어, 향기로운 이름이거나 시궁창내 나는 이름이거나 그 중 하나를 반드시 천추 역사기록에 남기고 만다.
그러나, 그 천추 역사기록은 어디까지나 대단히 私的인 고은 개인의 작업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공개적인 검증을 통해서 내린 차원의 평가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한 시인이 쓴 지극히 사적인 평가이다. 그러므로 수백 년 뒤에는 삼국유사처럼 야사로 치부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물론 문학이, 시란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적인 작업이지 사회적 제약을 받는 공적인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한 시인의 시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이면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되고 마는 숙명을 가진다. 고급 시집이라면 수백, 수천 년 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쳐 후손들이 문학작품에 나타난 21세기 한국사를 연구하고자 할 때 소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그때에는 그 시집 속에 기록된 시인의 평가가 반드시 약발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만인보에 등장한 숱한 선인과 악인들은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질 때 이미 단심재판을 받은 기결수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시인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기 소유의 백지 위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가진다. 그 자유는 시인에게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다. 그 천부의 권리 행사 속에서 만인보 속 세상의 선인과 악인은 한갓 피고인일 뿐이다. 그들 피고인들에겐 애초부터 변호사를 댈 권리도, 변명할 권리도, 항소할 권리도 없다. 하늘이 비를 뿌리면 삼라만상이 무조건 맞아야하듯이 고은이라는 하늘이 내린 언어적 선고형량에 의해 두고두고 선인 또는 낙인으로 낙인 찍혀 역사의 감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죄수의 신분과 형량을 확실히 하고자 시인 고은도 그의 시에서 익명을 쓰지 않고 실명으로 그들을 적시하고 있다. 왜냐면 시인으로서의, 史官으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확실히 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에겐 시인 면허증이 필요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보지 않는 자들이 시인이랍시고 나서서 역사와 인간을 평가하는 시를 남발한다면 결국 허위를 후세들에게 남겨주는 실착을 범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위를 걸러내기 위해선, 참으로 올바른 역사의식과 직필의지를 가진 시인만이 면허증을 받아 역사시를 써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은은 형식적 의미의 시인 면허증을 몇 개나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면허증도 몇 개 갖고 있다. 그 면허증을 근거로 하여, 단심재판의 위태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피해나가면서 과거 역사의 현장에 몸담았던 인간들의 해골을 무덤에서 하나하나 불러내 형량 선고장을 발부하고 있다. 단독 단심재판관 고은의 선고형량은 장구한 세월 동안에 걸쳐 다양한 독자들의 활발한 비평을 통해 적, 부적을 판정받을 것이고 새로 생기는 독자들로부터 더 깊은 내면적 의미의 시인 면허증을 누증해서 받게 될 것이다.
그 시인 면허증을 주는 주체는 민족, 민중, 역사이다. 그 주체는 만인보 26에 나오는 ‘경주 최부자’, ‘전달보 마누라’, ‘손화문과 김도택’, ‘큰언니 성희’, ‘처녀 월계’, ‘처영’, ‘아기 업은 젊은 아낙’, ‘부설’, ‘무하 대선사’, ‘이찬갑’, ‘이상춘’, ‘맏상좌 희만’, ‘중목사 김현봉’과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선의 편에 선 사람들이다.
그 면허증을 빛나게 해주는 조역으로서는 ‘이광수’, ‘가야산 통현화상’, ‘연산군’, ‘자장’, ‘원광’, ‘부안사또’, ‘견훤’, ‘도림’, ‘왕마름 임종만’, ‘변설호’, ‘둘째상좌 희도’ 등의 악의 편에 서 있는 군상들이다.
면허증을 주는 주체들은, 살아생전에는 악들로부터 모질게 구박받으며 세상의 변두리에 숨어사는 신세였으나 만인보 대명천지에서는 ‘善’이라는 훈장을 달고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이렇듯이 만인보 세상은 중생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 세상과는 상반되는 구조를 갖는다.
만인보의 세상이 정신적 정통성과 합법성을 갖는다. 왜냐면 혼탁하던 흙탕물이 가라앉아 물과 흙으로 분명이 구별된 모습이 본질이고 혼탁한 흙탕물의 모습이란 지나가는 현상이듯이, 선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본질이고 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스쳐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시인이라면 본질을 추구하지 허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이란, 면허증을 받을만한 시인이란 본질의 편에 서서 허위와 모순의 세상을 벗겨내고 진실과 합리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고은이 19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만난 민족, 민중의 원형이 바로만인보 26속에 등장하는 선의 편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량한 면, 비록 한때는 악의 모진 공격을 받아 피폐하지만, 먹어둠이 지나 새벽이 오고 비로소 먼동이 트듯이 악의 종자들은 종내에는 스러지고 선의 종자들이 길게 살아남는다는 세상이치를 민중 그들에게서 보았기에, 고은의 민주화운동은 동력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 세상 가득 민주주의가 만개하였다. 그 시절의 믿음에 대한 보답으로 고은이 만인보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남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 만인보 세상에 그들의 이름 석자를 부활시켜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생명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민족, 민중, 그리고 역사에 대한 든든한 믿음과 의지를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상은 만인보 세상과는 다르다. 우길도 전달보 마누라 허씨는 해일에 마누라 잃고 우는 사내들의 울음을 육덕으로 달래어 주었지만 현실 세계의 도학자들 눈에는 온 동네 사내들에게 몸을 준 화냥년일 뿐이다. 그들의 평가로는 전달보 마누라가 악의 편인 것이다. 이렇듯이 오늘도 어김 없이 시정잡배들은 선과 악을 단순하게 판정하고, 권력자들은 여전히 선과 악의 경계를 자의로 넘나들고 있다. 더욱 교활한 자는 자기가 행위하는 모든 것을 선으로 판정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인된 자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딱 한 가지, 밝은 눈으로 자세하게 보아두었다가 한 편의 시를 쓰는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 현실 세계 속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밝은 눈’이 관건이다. 그러한 눈을 가진 자만이 비로소 ‘시인 면허증’을 선량한 민중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 민중들은 그 면허증을 주면서 반드시 있는 그대로 보고 시를 써 역사에 실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민중의 당부에 충성하여야만 시인의 사적 평가가 공적 평가로 승화할 수 있다. 이때에야 비로소 시인의 눈이 만인의 눈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적 형식이나 시적 미학면에서 소루한 점이 있지만, 또 인물과 소재, 주제가 재탕 삼탕 되는 점이 있지만 고은의 눈은 만인의 눈을 대변할만하므로 시인 면허증을 민족, 민중, 역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1933년생이면 2008년 올해로 76세, 장삼이사들은 젊은날 정신력의 반도 못 남았을 나이이지만 시인 고은이 이 나이되어도 만인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임이 분명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인보의 세상이 드넓게 드깊게 펼쳐짐으로써 민족, 민중의 고통이 잦아들고 미래 역사가 반듯하게 만들어지는데 문학이, 시가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2월 6일 오후 열락연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