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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시 103:1-5)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하루는 에드워드 7세가 민정을 시찰하러 머리까지 나왔다가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궁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길이 너무 멀어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마차 한 대가 지나갔습니다. 그는 마차를 세워서 농부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농부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왕이 “나는 에드워드 7세입니다”라고 말하자, 농부는 그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고 “그렇다면 나는 로마 교황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다시 “교황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농부는 “새 마차를 갖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차가 궁정에 가까워져서 왕이 내리자 호위병들이 급히 달려왔습니다. 농부는 그가 진짜 왕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농담을 사과하려고 했지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며칠 후 그 농부의 집에 군사들이 새 마차 한 대와 편지 한 통을 가져왔습니다.
“로마 교황께 새 마차를 선물로 보냅니다. 에드워드 7세”
농부는 자기의 소원을 농담으로 말했다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 속에 소원이 있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그 소원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북극은 너무 추워서 도저히 사람이 살지 못할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바다 전체가 얼어붙어도 얼음 밑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고, 곰들이 뛰어다니고, 물개들이 숨을 쉬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춥더라도 추위가 죽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용기와 희망을 저버리고 절망하면 안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꿈과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145:18-19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들의 가까이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지런하고, 믿음이 있고, 말씀 안에 거하며,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B.C. 991년경, 다윗 왕이 죄를 짓고 나서 번민하고 있을 때,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한 찬양시입니다.
다윗 왕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기 전까지,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에 고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육신까지 병들어, 뼈가 쇠할 정도로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나서는, 건강을 되찾고, 마음의 평강과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제목은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2011년도에는 모두 다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 아멘.
‘은택’은 ‘보수, 보답, 은혜’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와 보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많습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기쁨과 평강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천국까지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 왕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서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과 생각과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32:25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눈물로 통곡하며,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해져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 왕과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것은, 큰 죄입니다.
시편 116:12절에서, 다윗왕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찬양하며, 서원을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더 나아가서 보답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9-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알아야 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부모를 만나고, 재물을 얻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주의 전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쁘게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은혜를 잊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시며, 모든 병을 고쳐 주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아멘.
‘죄악’은 ‘부정, 위반, 비뚤어진 행동’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등, 크고 작은 죄를 무수히 많이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만약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심판을 하신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어떠하든지, 다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7:13-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봉헌식을 마친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므로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해를 입었을 때, 실패했을 때,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재난이 닥쳤을 때, 병에 들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은총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무감각합니다. 죄 때문에 불행해지고, 죄 때문에 실패하고, 죄 때문에 병든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죄로 인해서, 질병이 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15절을 보면, 사도 야고보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하고, 회개하고, 예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번연은, 1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천로역정’을 썼는데, 그는 “죄 이외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없고, 죄 이외에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이 없고, 죄 의외에 적에게 뒤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 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모든 병이 죄로 인하여 온 것은 아니지만,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의 질병도 쉽게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종종 “나같은 사람도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내 병도 고침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또한 우리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 주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아멘.
‘파멸’은 ‘구덩이, 타락, 사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은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신다”고 고백한 것은, 죽음과 같은 위기와 고난과 환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끝났다고,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제2의 인생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에, 하나님은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또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나으리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는 순간에, 병을 고침받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파멸과 절망과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은총을 베푸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은 물에 빠질 위기에 처한 베드로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을 때 예수님은 즉시 손을 붙잡으시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시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죄악과 사망과 악한 세대와 불법과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하여 주신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더 나아가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아멘.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다’는 것은,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소원에 응답해 주실 때에는, 가정 좋고 아름다운 것을 풍성하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십니다.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독수리가 털갈이를 하여서 새롭게 되듯이, 새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수리는 150년을 사는데, 30-40년 정도 살면, 눈도 어두워지고, 날개에 힘도 없어지고, 부리도 굳어지게 되어서, 활동하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잔뜩 먹이를 먹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금식을 합니다. 그 동안 몸의 털은 다 빠져서, 새 털이 돋고, 부리도 새롭게 되어서, 다시 힘차게 날 수 있게 됩니다. 이 같은 과정을 세 번 네 번 반복하면서, 거듭난다고 합니다. 새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수리와 같은 새로운 힘을 날마다 허락하여 주십니다.
시편 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5:21-28절을 보면, 가나안 여인이 믿음으로 끈기있게 소원을 간구하여, 딸의 병을 고침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여인이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하였으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다시 거절하셨습니다.
그래도 여인이 포기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자신의 소원을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로부터 여인의 딸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것입니다. 큰 고통입니다. 자식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큼 큰 소원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보고, 읽고, 듣는 사람들에 따라서, 이해하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고쳐 주셨기에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병을 고쳐 주셨기에,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먼저 나와 부르짖음으로 인하여, 깨끗하게 고침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 때문에 축복받는 것입니다. 축복받았기에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았습니다.
시편 103:1-5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아멘.
여러분! 무엇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침 받고, 우리의 생명이 파멸에서 속량 받고, 인자와 긍휼의 관을 씌움 받고,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이 만족하게 되어, 우리의 청춘이 독수리 같이 새롭게 되는 것이 먼저입니까?
여러분! 드리는 것이 먼저 인가요? 받는 것이 먼저 인가요?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 주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셔야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물질을 풍성하게 채워 주셔야만,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형편이 되어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아야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드릴 사람 별로 없습니다. 먼저 드려야 축복받습니다. 믿음을 보여 주어야 축복받습니다.
누가복음 21: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천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부자가 한 달란트를 헌금한 것과 가난한 과부가 호주머니 다 뒤져서, 두 렙돈 헌금한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귀합니까? 한 달란트는 대략 계산해보면, 5천만원 정도 되고, 두 렙돈은 몇 십원 정도됩니다. 한 마디로 십원 짜리 동전 하나 헌금함에 넣은 것입니다.
5천만원 헌금한 것과 오백원 헌금 한 것 중에서, 어느 헌금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까?
부자는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했습니다.
두 렙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의 생활비 전부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헌금함으로 내 생활에 부담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담이 안되면, 헌금이 아닙니다. 부담이 될 때, 진정한 헌금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충분한 형편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렸을 때, 칭찬받은 것입니다.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리고 나면, 끼니 걱정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진 것을 아낌없이 하나님 앞에 드렸을 때, 칭찬받은 것입니다. 생활비 전부를 드렸을 때, 칭찬받은 것입니다. 부담을 가지고 헌금했을 때,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엘리야의 말을 듣고, 물을 가지러 갈 때에, 그를 불러 다시 말합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입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없는 쌀로 마지막 밥 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 밥 먼저 자기에게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자기에게 밥 주면, 자기가 가진 돈 준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 밥을 먼저 그 사람에게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그 밥을 내 아들과 먼저 먹고, 죽으시겠습니까? 주시겠습니까? 죽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줄 것이라면, 먼저 통의 가루가 가득차게 해 주시고, 병의 기름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해 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통의 가루도 가득차게 해 주시고, 병의 기름도 철철 넘치도록 해 주신 다음에, “이 정도면 만족하겠니. 이제 나 밥좀 해 줄 수 있겠니”라고 한다면, 밥 안 해 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효성선교교회는 사랑하며 섬기는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사역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선교헌금을 작정하고자 합니다.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봉사자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돕고자 합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단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멀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미전도종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지만, 예배처소가 없는 안타까운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성경책이 없어서 읽을 수도 없습니다. 맘껏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도 없고, 그런 자유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직접적으로 가서 도울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물질로 도와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시간과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며 봉사하는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가장 좋은 것으로 가득차고 넘치도록, 이미 쏟아부어주셨고, 이미 채워 주셨기 때문에, 사랑하며 섬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남부럽지 않는 풍성한 재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쓰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있기에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없기에 하자는 것입니다. 있기에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러나 없는데 하자고 하면, 힘들지요. 이것 저것 다 따져보아도, 쓸 때는 너무 많고, 돈 들어갈 때는 너무 많고, 대신 돈 나올 때는 없고, 돈을 만들어 낼 때도 없고, 그런데 또 헌금하라니, “나중에 있을 때, 하면 안됩니까?”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나중에 있을 때, 하면 안됩니까? 지금 꼭 해야 합니까?”
헌금에 대한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부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거룩한 부담이라고 부릅니다.
“선교헌금 하면, 한 끼나, 하루 밥을 굶어야 하고, 아니면, 하루 더 일해야 하는데”
이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록펠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십일조 계산하는 사람만, 몇 십명이었다”
평생 쓰고도 남을 재물이 있다면, 왜 십일조 못하겠습니까? 십일조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에게 평생 쓰고도 남을 재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십의 일조뿐만 아니라 십의 이도 할 수 있다”
물질이 넉넉하다면, 십일조 못할 이유도 없고, 고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없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넉넉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 내가 쓸 돈이 없기에 고민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1-5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셨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 주시며,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먼저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부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도 재정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복은 고여 있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큰 복을 받았든, 작은 복을 받았든,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흘러갈 때, 큰 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물이 멈추어 있으면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먼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매순간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입술로 언제나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속적인 기도와 물질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곡 2동 777번지 한마음아파트 1차 상가 302호
효성선교교회 김종민 목사
후원계좌: 401821-52-054536 농협 김종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