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에서 동창회 모임(2009년9월6일)♣
2009년 9월6일 아차산에서 9월 동창회로 모였습니다...
산에서 만난다고 하니 부담이 가서 인지 개개인들의 사정이 많아서 인지 생각보다 적게 모여
12명으로 모였습니다. 며칠 있으며 이진회씨 딸 결혼식도 있고 하니 그 때 에나 만날려고
하는것도 같고...아무튼 만나면 즐겁고 항상 울 친구님들 건강해서 이렇게 자주 만날수 잇으면
좋겠군요^^* 상균씨가 자세히 글을 올렸기에 난 간단히 올리려고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총무님 마나님 음식 솜씨는 대~단히여~~~
정말 맛있게 잘 먹었고 또 울 친구들도 전라도 음식 솜씨가 되어서 각자 싸온 음식과 찰밥도
맛이 있었구요^^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 아침저녁 쌀쌀한 가을 냄새도 풍기고 정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렸하여
이런저런 게절을 맛보며 사는 나라가 아마도 지구상에 그렇게 많지는 안을 것입니다...
정말로 축복 받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어렵다고 하지만 먹을것 풍요롭고 전자제품등..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구요^^
다음 이진회 딸 결혼식 때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구...안녕히~!!
2009년 9월 8일 <정순이가>☎
~~~~~~
2009년 3/4분기 정기모임을 이미 공지한 대로 아차산 산행을 하였다.
참가자의 면면을 보면 무순위로 열거하여 본다.
회장(임한엽),총무(문태식),임상근,임공순,이진회,김준술,김정용,허정순,
김유순,최숙희,김형산,김상균,총 12명이 함께하였다.
예상외로 너무 참여율이 저조하여 회장단의 실망이 대단한바 앞으론 참여하는
넉넉함과 피지못할 사정이 있을시는 전화라도 한번씩 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절실히 요구된다.
오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여친들과 총무(문태식) 아주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하도 음식이 맛있어 남김없이 비빔밥등으로 처분하고 하산하였다.
서운하였지만 2차도 없이 광나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9.19 이진회 혼사에
만날것을 기약하며 바이~바이하며 헤어지다.
여기 올리는 사진은 金삿갓이 헨폰으로 촬영하였슴을 거시기 하노라.
*아차산*
높이 287m.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위치 :서울특별시 광진구 5호선 아차산역 2번출구
고구려 유적 보고(寶庫) '아차산'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해발 28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구리와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40분 정도의 등산로를 오르면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 등의 광범위한 지역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개가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군사유적으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4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아차산 석질고분 - 우미내 마을 서편 바위산 정상부 해발125m 지점에 있는 돌무덤이다. 너럭바위위에
큰돌로 묘를 만든게 특이하며 2개의 긴돌의 나란히 세우고 한쪽 입구를 막았으며 천장에 판석을 덮었다.
* 대성암 - 신라 647년에 의상대가 이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범굴사라했다. 대성암이라는 이름은 1921년
붙은것이며, 현재의 대성암은 1992년 화재로 소실된 후에 지은 건물이며 대응전 왼쪽 뒤암벽에
범굴사불량권과 불량시주기 암각문이 있다.
* 온달샘 석탑 - 아차산 온달샘 약수터 옆에 있는 석탑이다. 현재 석탑의 일부만 남아있어 그 규모를
알 수 없다. 지대석의 양식이나 기단면석으로 보아 신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 관룡탑 - 41년전 부터 법인처사 부부가 쌓았다고 하는 이탑은 아천동 한다리마을 위쪽에 있다.
넓고 얇은 돌을 켜켜이 쌓아올려 쌓은 이탑은 아래 둘레만 해도 10m는 넘어보인다.
윗부분으로 갈수록 탑이 좁아진다.
아차산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역사적인 이야기가있다
조선 명종때 점을 잘치는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종이 소문을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 궤짝에는 쥐가 한마리 인데 5섯마리가
있다고하여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4마리 들어있어서 "아차" 하고 사형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 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산을 아차산으로 불렀다는것이다
고구려때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으로 유명한 온달에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 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3m짜리 공기돌바위와 온달샘등이 있고 아차산성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사적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15호)등이있다 그밖에 고구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보루유적이 있고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곳으로 알려진 천연암굴외에 석곽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