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1988년 푸른나무 출판사에서 초판을 출판한 이후 판을 거듭하며 현재까지 100만 부 이상이 팔린 이른바 스터디 셀러의 반열에 오른 역사 교양서이다. 1988년은 87년 유월민주항쟁 이듬해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 물결이 넘실거리며 일어날 때였다.
우리 교육계도 마찬가지여서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관료체제 속에서 경쟁만 부추기며 입시위주의 성적중심교육을 강화하는 교육관계법 개정운동에서부터 스스로 촌지나 참고서 채택료를 거부하는 자정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교육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어났다.
교장 중심의 관료체계나 일제잔재를 버리지 못한 학교문화 등 많은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 중 교과서 문제도 심각한 것 중의 하나였다. 국어, 역사 등 중요과목은 단일본의 국정교과서 인데다가 내용도 국가주의 체제강화가 중심이었고 심지어 필자들은 친일인사들도 많았으니, 그 내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교과서 분석 및 대안 마련에 최선을 다했으나 만만치 않았다. 참고할 만한 책도 별로 없었다.
그 무렵 발간된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우리의 이런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주는 책이었다. 세계 역사의 주요 사건을 새롭고 정확한 시각으로 분석해서 쉽게 쓴 이 책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점과 이해가 얼마나 왜곡되고 잘 못되어 있었던가를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끄러웠지만 시원하고 후련했다. 저자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교실에서 학생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됐다.
이 무렵 나도 푸른나무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을 냈다. <일어서는 교실>이란 이 책은 교단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일과 학생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등의 잡다한 내용이었다. 푸른나무 출판사를 운영하던 윤재철 시인은 1985년에 있었던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된 교사였는데 그런 인연으로 권유를 받고 책을 내게 됐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한 것이다.
그 다음해인 1989년 5월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1500명 이상이 한꺼번에 해직됐고 나는 감옥으로 갔다. 해직된 교사들이 <일어서는 교실>이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의 책을 들고 학교를 방문하며 팔았다. 전교조의 운영과 해직교사의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에는 내 책도 제법 나갔다는데 그 뒤 절판됐다. 유시민은 책이 잘 팔려 그 인세로 독일 유학까지 갔다 왔다.
얼마 전 노회찬재단 행사장에서 유시민을 만났다. 늘 경쾌하고 겸손했다. 내가 다른 일로 먼저 일어서게 됐는데, 지하 행사장에서부터 큰 길거리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해 주었다. 깎듯이 선배로 대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태도가 아름다웠다. 스터디 셀러 작가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