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궁집은 영조가 막내 딸 화길옹주를
능성위 구민화에게 시집보내고 딸을 위해 지어 준 집이다. .
화길옹주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숙의 문씨 소생이다.
영조는 화령, 화길 두 옹주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특히나 화길옹주를 능성위 구민화에게 시집 보낼 적에는
친히 나라에서 목수들을 기용해 집을 지어줬을 정도로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12살에 시집가서 비교적 이른 나이인 19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그녀는 이 궁집에서 약 7년간 생활하다 별세한 것이다.
그 사이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고 남편 구민화도 40살에 졸하였다.
영조의 서녀로 어머니는 숙의 문씨이다.
숙의문씨는 사도세자를 무고하여 뒤주 안에서
굶어 죽게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녀는 화안옹주와 정후겸 등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청탁을 일삼았으며
내의원의 인삼을 빼돌려 팔아먹기도 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즉위 년에 모든 일이 발각되어 대궐에서 유배되었다.
그의 오라비 문성국도 이 일에 관련되어 유배, 끝내 사약을 받았다.
후궁의 직책을 뺏긴 그녀는 더이상 후궁이 아니라
'문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다.
정조는 그 당시 나이어린 고모인 화길, 화령 옹주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정조는 그들에게서 옹주의 직위를 박탈하지 않았다.
화길옹주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풀어달라고 눈물로 영조에게
호소했다는 기록이 있어 화를 면한다.
첫댓글 부모의 응보를 애뜻한 화길이 받았나보네요. 좀 더 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야 할 것을...이리도 아름다운 곳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