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 해도 항상 가을 기분은 아니다. 가을은 무언가 풍요로운 것이라고, 우리의 이미지가 그려내는 넉넉한 가을이 되기에는 올 추석은 스산한 것이 꼭 오랜 비와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하기로 하면 어머니가 뭍에 나와 계시니 한결 수월했다. 이것저것 무겁게 싸들고 배를 타고서야 들어갔던 일이 새삼스럽다. 그렇지만 병이 중한 큰며느리와 함께 단 둘이서만 기거하는 집 분위기가 편안할까 말이다.
막상 집안은 여 여사네 가족들이 북적대고 살던 때완 다르게 깔끔하고 정갈하다 못해 ‘집이라는 세트장’같았다. 어디 하나 먼지도 묻어나지 않은 집이라니, 한자로 집가(家) 자는 지붕 밑에 돼지를 뜻한다지 않던가. 그저 돼지처럼 편안한 관계의 가족들이 돼지우리에서처럼 가식 없이 살라는. 그래선지 집안은 아이들의 흔적 때문에 항상 뭔가 움직이는, 다음 순간 달라지는 표정을 갖게 되지 않던가. 그런데 이제는 정적 그 자체였다.
“어머니이, 안 계신가요? 형니임… …”
샘 쪽에서 천천히 돌아 나오는 시어머니는 손을 치마에 대충 문지르신다. 건넌방 문을 열고 나오는 형님은 앞섶을 잡으며 머리를 매만진다. 놀라운 것은 그 형님이 몇 년 전의 어머님 모습처럼 착각된 것이다. 단 둘이서 기거한지 몇 달이 지나고 보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여자가 닮아 있는 것이다. 희한했다. 여 여사는 단호하게 분수를 지키던 어머님의 첫 인상이 떠올라 섬뜩했다.
“사람이 과식한다냐.”
여 여사가 처음 시댁에 들어간 때도 지금처럼 가을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가을, 일년 중 어느 집이나 곡간이 가장 풍성할 때였다. 그런데 어머님은 그리 말씀했다. 즉각적인 반응은 ‘그럼 사람이 과식하지 개가 과식하나’ 하는 것이었지만, 물론 속말뿐이었다.
조금 서운했던 그 말의 의미가 지금은 복이 되었다. 다이어트가 뭐 대순가, ‘과식’은 생각 있는 사람 노릇이 아니라던 그 습관 하나면, 모든 일에서 자기 컨트롤이 된다는 의미가 되었다. 여 여사야 독립해 나온 이래 자신의 부엌을 가졌으니 자유롭다면 자유로운 세월이었다. 그러나 부엌의 주인장이자 청소부로서 알게 모르게 살쪄갔다.
“뒤 터에서 지가심 몇 폭 뽑았다. 쌩지들 안 좋아허냐.”
“아니 제가 할텐데요오.” 여 여사는 뒤 터 쪽을 넘겨보는 시늉을 한다.
이제 마루 앞으로 모인 두 여자는 깡마른 모습으로 “사람이 과식한다냐”를 시위하고 있었다. 여 여사는 괜스레 몸을 숙인 듯 앞으로 했다. 스물쩍 부푼 뱃살을 감춰보려는 동작이었다. 천고마비라면? 여여사는 갑자기 마소가 된 느낌이었다. 자신의 유년시절에 누적된 부족감을 보상하기라도 하듯이 이 시대의 엄마들은 탐욕적인 식탁을 꾸민다. 그리고 종말처리장 노릇을 한다.
여기 시골집의 두 여자는 시류를 비껴가는 듯 했다. 나이 들어 강단 있는 시어머니와 젊어서 병든 며느리가 왜 닮을 수 있을까. 서울에서 처음 내려올 때 희멀겋던 얼굴도 섬에서 나온 어머니를 따라 약간 그을었고, 비틀거리던 걸음도 많이 탄탄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야채 죽으로 시작한 식생활도 많이 나아진 것이 시골의 좋은 공기도 공기려니와, 분명 어머니 덕일 게다. “정말 미운” 며느리, 며느리라고 하고 싶지 않았던 며느리를 살펴주는 어머니는 무슨 맘이며 무슨 정성이었을까. 그러면서 어머니는 천천히 쇠잔해가며 병자와 닮아간 것이다. 천연스럽게 어머님은 노쇠해가고 형님은 병이 깊어 가는가. 영그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다같이 자연스러운 변화요, 그렇다면 다 같이 생성에 속하지 않은가.
뒤늦게 도착한 남자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어머니이자 할머니를 에워싼다. 저 자그마한 깡마른 여인이 이 가을 풍요로운 장면의 구심력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