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心理學的, 哲學的 관점에서 理解하려면
우선 기본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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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학의 한마디~!
상담(四柱, 對人關係 등)은
내담자 등 자신이 스스로 자기 運
(자기 삶의 예측) 등을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김형학이는
당신에게 메타포를 주기만 하지요~
敎示的으로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 그 길을 찾게 하는 것이지요~
이 글을 知人들과 共有하면
自利利他요, 그 知人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
# 불가와 출가
불교를 心理學的, 哲學的 관점에서 理解하려면
우선 기본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이 좋아요~
인도인들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의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精神의 역사, 어떤 마음의 歷史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몇 년 전에 태어났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서기 1천 년 전에 태어났다고 보는
3천 년 佛紀가 있고
서기 5백 년 전에 태어났다고 보는
2천 5백 년 불기가 있습니다.
요즈음 세계 공통으로 쓰는
불기 2552년(서기 2008년 기준)은
서기 5백 년 전에 태어났다라고 보는 佛紀이다.
과거에는 3천 년 불기를 썼다고 한다.
佛紀는 佛生 연대가 아니고 佛滅 연대로서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구시라 城에서
이 세상을 떠나신 年代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평생 이 세상에서 머무신 기간이
80년이니까
이 세상에 오신 것은 2631년 前이지요~.
B.C.623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중인도의 농업국인 까빨리 벌솔도의
城主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아기를 낳으려면
친정에 가서 분만을 했다고 합니다.
마야부인도 친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싯달다를 낳았는데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는 이모인 파사파데의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싯달다 태자 19세에 구리성주 선각왕의 딸인
아수다라를 妃로 맞아 아들 라후라를 낳았다.
싯달다 태자가 出家하려 하자
정반왕은 단호하게 거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싯달다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면
出家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지요~.
‘그것이 무엇이냐?’ 정반왕이 물었어요~.
‘저를 늙지 않게 해주시고
항상 건강하게 해주시고,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不老病死-
그러면
출가와 수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들어줄 수 없는 정반왕은
태자의 뜻을 막지 못했고,
결국은
29세가 되던 해에 밤중에 궁성을 넘어서
수도의 길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그 후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35세 되던 해 12월 초파일에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서
東方에 떠오르는 샛별의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 불교 교단이 성립하다.
金剛經에서 ’1250人‘은
이 經을 말씀하실 당시의 제자들의 숫자입니다.
부처님은 인도의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서
道를 이룬 뒤
중생을 제도하고자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法文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初轉法輪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說法을 시작하면서
녹야원에서 다섯 사람의 비구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녹야원이
바로 불교 교단의 발상지이지요~.
부처님의 설법이 시작된 이후에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가섭 삼형제는
1,000여 명의 도제를 이끌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어요~.
사리불과 목건련은
각각 100명씩의 제자를 이끌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사장자가 50명의 제자를 이끌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교진여를 비롯한 5명을 합하여
이들 1,255인의 제자는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곁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이다.
그렇지만 이는 큰 수효만을 든 것이고,
經典에서 1,250인이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異敎徒였어요~.
가섭 삼형제, 사리불, 목건련 무리들도
다 개종한 분들이지요~.
종교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조직이 있고, 체계가 있고, 신념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의 깨달음이 깊고 그 진리가
월등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모두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큰 가섭은 120살이고 둘째 가섭은 110살,
막내 가섭은 100살이었는데,
부처님 나이가 이때 40세였습니다.
이점은 부처님께서 不可思議한 능력과
신통한 威神力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지요~.
마지막 특징은
석가족에서 많이 출가를 했다는 점입니다.
싯달다 태자를 어릴 적부터 보살피던
이모 파사파데도 출가를 했고,
아수다라를 비롯한 석가족의 많은 여성들이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또 태자로 계실 때의 아들인 라후라와
사촌동생 안나타 그리고 손타라난타라는
배다른 동생도 출가를 했습니다.
바로 석가족 자신들이 출가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간성과
여러 가지 자비로운 보살핌과 교양과
인격이 원만하고 훌륭함을 알 수 있습니다.
# 부처님의 십대제자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늘 곁을 떠나지 않은 제자는 1,255명이다.
그 중에서도 뛰어난 자가 500명이었다.
이들은 佛典 편찬을 위해
1차 결집 때 모였던 제자이며
이를 500羅漢이라고 부릅니다.
경주 석굴암에도
십대제자 羅漢像이 삥둘러쳐 있듯이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열명의 제자를
十大弟子라고 한다.
十大弟子는 尊者라고 하여 존칭을 붙여 부른다.
舍利佛존자는
10대 제자 중에 지혜가 가장 높은 분이다.
般若心經이나 기타 어려운 내용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사리불을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건련 존자는 사리불과 친구이면서
신통력이 뛰어난 분이지요~.
대가섭 존자는 萬行을 가장 잘하는
頭陀(수행)第一이었습니다.
成佛 후 부처님은 45년 동안
인간의 마음에 대해 說法하였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法華經을 설할 때 꽃비가 내렸다.
석가모니는 말없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모두가 어리둥절 하고 있는데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것이며
그 참 뜻을 알아차렸다고 하여
拈花示衆의 微笑라고 합니다.
구시라성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을 때
대가섭 존자는 늦게 도착하였지요~.
그래서 가섭은 부처님의 최후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香더미가 쌓인 불곽 옆으로
다가섰다.
그때 관 안에서 부처님이
두 팔을 밖으로 내보였습니다.
이를 槨示雙趺라 한다.
(槨 –관을 담는 궤 곽, 趺-책상다리할 부, 발등 부)
이것 역시 그 마음을 전한 것이지요~.
사리불이나 목건련은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는
대가섭 존자가 그 법통을 계승하였습니다.
아나율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장님이 되었지만
지혜의 큰 눈을 얻어
우주만상의 진실한 모습을 살펴보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天眼第一이었다.
수보리 존자는
우주의 평등한 진리를 가장 깊게
체험한 분으로서 平等第一이었으며
☀金剛經은
부처님과 수보리 존자의 對話로 이루어진
輕典이지요~.
또한 수보리는
‘空’의 이치를 잘 알기로 손꼽히는 큰 아라한으로서
解空第一이었다.
수보리는
기원정사를 짓게 한 급고독장자 수닷타의 조카로
브라만 계급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空生으로서
空과 無의 도리를 가장 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敎化 活動을 벌리는데 있어
다른 道를 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중상과 박해를 받아도
그들과 다투거나 쟁론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그를 가르켜 無諍第一이라 하였지요~.
부르나 존자는
부처님의 법을 알기 쉽고
論理가 분명하게 설명하는 說法第一이었습니다.
가전연존자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論理가 정연한 論理第一제자로서
변방의 포교에 열심이었습니다.
우바리존자는
노예계급으로 이발사 출신이면서도
계율을 잘 지켰던 持戒第一이었다.
라후라존자는
비밀리에 누구도 알지 못하게 훌륭한 일을 잘하는
제자다.
그래서 이 분을 密行第一이라 한다.
라후라존자는 부처님의 아들이다.
아난다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부처님을 평생 모셨습니다.
아난이란 歡喜, 기쁨이라는 뜻이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道를 통하시던 날
아난존자가 태어났다.
20세에 출가한 아난존자는
부처님 곁에서 25년간 설법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들었습니다.
그 以前에
說法하신 것은 부처님이 다시 하신 것도 있고
이미 法問을 들은 사람에게 되돌은 것도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 중에 多聞第一의 칭호를 듣습니다.
특히 아난다존자는
모든 경전의 첫 머리에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如是我聞’ 할 때의 주인공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대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하는 대회를 주도하였고
거기에서 아난다존자가
자신이 들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暗誦해냈기에
오늘날까지 부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