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대화가와 가장 잘 어울린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김종구는 돌아가는 세태에 대한 끔찍하리만치 타협을 모르는 시대의 반항아였습니다. 벌써 그가 떠난지 15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의 뇌리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까무스름한 얼굴과 작은 키에 까탈스럽고 단호한 사진에 대한 철저한 직업의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경제적 여유의 다큐멘타리작가도 아니었고 오히려 핍박스런 사물에 대한 견디지 못하는 정직의 자유인이었습니다. 거의 80년대를 인사동의 많은 주막집에서 밤마다 불러대는 막걸리 술타령으로 예술에 대한 시각을 잠시라도 메워 보려는 미묘한 견해를 서로 들추어 냈다. 당시로서는 시인, 화가들이 골목에서 마걸리 술판에 잠시 몸을 던지며 삶에 대한 우수를 마치, 술취한 놀이로 분출구를 찿으려했던 시대적 이단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금의 세태와는 다른 사람과의 끈질긴 긴 인연을 견주어 가며 서로의 우정을 맺어 갔다는 것입니다 가끔 강용대와 김종구형은 곧잘 어울려 지방출장으로 전국 곳곳을 누비며 오지취재를 찿아 떠났고 둘의 막역한 관계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종구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강용대는 충격에 쌓였고 머지않아 5년후 별아이 화가강용대도 세상을 뜨고 맙니다. 이 일에 대한 많은 지인들은 둘만의 따듯한 우정의 싹을 더 이상 쌓지 못하는 피라밋 우정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인사동 수운회관에 있는 유카리화랑의 15주기 유작전에서 그의 사진을 접했습니다. 젊은 날의 시인, 정치가, 가수들의 빛바랜 인물사진들에서 분명한 것은 정말로 세상의 덧없슴입니다. 이 시대의 한 가락 풀포기로 태어나 한국의 커다란 시대상의 조류들은 더 없는 간절한 느낌표입니다 가고 없는 시대의 총아, 김종구 유작전에서 현실은 참담하였으나 미래의 한국은 아름다웠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다큐멘타리 사진 작가 김종구 형 생각에 잠시 눈을 감습니다
2009 12. 12 빗재 김용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