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미로에서 만난 21년의 인연
권 혁 배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생각한다.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 산행을 단축하겠다는 총무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코스가 줄어들 줄 알고 배낭에 먹을거리 하나 넣지 않고 새벽 계방산 자락에 발을 디뎠다. 러셀(눈을 헤치며 길을 내는 것) 하며 나아가는 선두를 따라가는 걸음조차도 천근만근이다. 계방산 정상을 지나 오대산 진입로에 다다랐을 때, 눈앞을 가로막은 '입산 금지' 표지판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이제 하산하겠구나.' 하지만 산악회 선두는 망설임 없이 그 금지선을 뚫고 전진했다. 아침조차 거른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처음 따라온 낯선 단체라 아는 이 하나 없으니, 염치없이 간식거리 하나도 얻어먹을 처지가 못 되었다. 문득, 이 지독한 눈밭 위로 지난가을 짙은 안개가 겹쳐온다.….
늦가을, 나는 여느 때처럼 홀로 가지산과 청도 운문산을 연계하는 무박 산행을 신청했다. 오리무중이 아니라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천지였다. 낙오를 가장 경계해야 했다. 그때 가지산의 안개도 지금 오대산의 눈보라만큼이나 지독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목표로 일회성으로 모인 산행이다. 내가 늦어져 남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산꾼들의 금기 1호이다. 새벽 가지산의 안개는 어찌나 짙던지 헤드 랜턴을 켜도 빛이 안개에 부딪혀 바로 앞 내 발등조차 비추지 못했다. 고개를 들면 짙은 안개는 거울처럼 랜턴 빛이 반사되어 오히려 앞이 안 보였다. 길을 알 수 없어 지도를 펼쳐보아도 사방이 흰 안개 벽이라 여러 차례 길을 잃고 방황했다. 낯선 이들 틈에서 낙오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직 풀이 없는 바닥만 보며 죽기 살기로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안개 속을 헤치고 내려와 새벽 안개가 마법처럼 걷혔을 때, 운문산 지역을 들어서 장님이 눈을 뜬 기분으로 걸었다. 종착지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일었다. 대구 학창시절 바로 옆 유명한 사찰을 서울에 살게 된 지금에야 방문하다니,
곧이어 나처럼 정신없이 달려온 한 회원을 만났다. 짧은 대화로도 마음이 통해 그는 어느 산우회를 소개해주며 인터넷 주소를 적어주었다. 늘 혼자서 산을 타는 버릇인데, 그날따라 인터넷에 접속해 총무라는 사람과 인사를 했다. 마침 그들이 예정한 산들이 대부분 내가 이미 다녀온 곳들이었다. 몇 차례 초대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혼자가 편하기도 했고, 익숙한 길을 남들과 떼 지어 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연말 산행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설산을 깨운다. 무슨 인연이기에 이렇게 따라와서 생고생을 자처했을까 후회막급이다. 시간은 이미 점심때를 훌쩍 넘겼지만 속을 채운 건 없었다. 어느 무덤가에서 잠시 쉴 때 쌓인 눈 위에 그냥 드러누웠다. 얼굴에 짜증과 후회가 그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누군지 모를 옆 회원이 슬며시 사탕 한 알을 건넸다. 단 맛이 그렇게 새로울 줄이야, 평생 먹은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사탕이었다.
그날 숨을 고르며 둘러본 운문사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여승들만 수행하는 사찰. '여승'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알찌근하고 애틋한 사연 하나쯤 품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마침 무슨 행사가 있는지, 머리를 파랗게 깎은 수많은 비구니가 큰 누각에 모여 죽비소리에 맞추어 일제히 절을 올리고 경문을 암송하고 있었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그 낭랑하고도 묵직한 소리에 홀로 서 있던 나는 엄숙한 경건함에 압도당했다. 안개가 걷힌 서늘한 아침 공기속에 많은 비구니가 하나처럼 움직이며 토해내는 일치된 경문소리는 속인이 범접할 수 없는 별세상 모습이었다.
나는 운문사가 맺어준 인연으로 지금, 이 눈 속을 헤매고 있다. 등산로 옆에 1·21 사태 때 공비들이 침투했던 루트라는 빛바랜 간판을 무심히 지나쳤다. 나는 지금 그 공비보다 더 험한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라는 시의 한 구절이 실감 났던 운문사의 신비롭던 탈속의 느낌은 천리만리 사라졌고, 낭만으로 알던 흰 눈은 지옥 길을 연상케 한다. 길은 갈수록 험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멧돼지 가족인 듯한 일고여덟 마리의 무리가 눈을 지치며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폭설 속에서도 어찌나 가볍고 거침없이 달리는지, 눈 속에 갇혀 허우적대는 우리 모습과 대조되어 부러움 섞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저들도 나처럼 눈을 원망할까, 먹이가 없다고 조물주를 탓할까? 어쩌면 준비 못 한 나만이 세상을 탓하고 내 발로 찾아와 이 눈을 탓하고 있는 건 아닌가. 갑자기 온 세상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시련을 주려고 내린 눈이 아니다. 내가 여기 왔을 뿐.
오후가 깊어 가는 데도 목적지는 아득했다. 언제부턴가 눈이 좋다, 경치가 기가 막힌다 등으로 밝았던 대화가 싹 사라졌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어떤 위기의식을 느낀 듯 침묵의 행진이 느릿느릿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듯 움직이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모두 제 몸 하나 건사도 힘든데 누굴 도울 형편은 못 된다. 낙오는 죽음이라는 방정맞은 생각이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수록 더 자주 떠오른다. 누구는 산을 찾아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데 나는 이게 뭔가, 이 무슨 무모한 행동인가! 주머니 속 폴더 폰은 통화이탈 표시만 떠 있다. 하얀 설산과 무수한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날 안개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는데 눈은 내린 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크게 과시하고 있다.
산악회장과 총무가 예정된 코스를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도중 하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고, 탈출로는 눈 속에 파묻혀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동절기 산행은 16시 이전 하산이 바람직하다고 배우기만 했다. 이미 그 시간은 지났다. 산속의 땅거미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사방을 집어삼킬 것이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선두에서 러셀을 오래 한 총무는 이미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다른 이들은 감히 앞으로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 역시 기진맥진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처음 온 단체에 힘들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하릴없이 짧은 해만 탓했다.
어느 순간, 기둥의 반이 눈에 파묻힌 상원사 방향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위에는 모자처럼 눈이 쌓여 글씨도 반만 보였다. '살았다.' 안도의 기운이 차가운 눈을 헤치고 회원들 가슴을 따뜻하게 변화시켰다. 걸음이 빨라지고 여기저기 말문들이 트였다. 랜턴 불빛에 의지해 허겁지겁 주차장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 버스가 라이틀 켠 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경찰서에 조난 신고를 고려 중이었단다. 아이젠과 스패치를 챙기며 마음속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송년 산행이라고 회원 중 한 사람이 자기 고향의 특식 문어 숙회를 준비했다. 식당의 산채정식도 진수성찬이었다. 열네 시간을 빈속으로 눈 쌓인 산을 헤맸는데 맛 없는 게 뭐 있겠는가! 체면이고 뭐고 차릴 겨를이 없었다. 마구 입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더 먹고 싶었지만, 여전히 서먹한 분위기 탓에 "밥 좀 더 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옆자리 사람이 남긴 밥그릇을 슬그머니 가져와 비웠다. 술은 못 하지만,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 건네주는 독주를 두어 잔 받아 마셨다. 짜르르한 온기가 돌자마자 미리 버스에 올라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양재 하차 준비하라는 총무 말에 눈을 떴다.
창밖으로 화려한 서울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운문사도 상원사도 아닌 속세의 불빛이 환하게 나를 반겨주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딴 세상 같은 눈보라 속을 헤매다 내가 살던 세상에 돌아왔다. 그래 나는 세속인이야 번뇌와 욕망이 가득한 이 도시가 더 편한 세속인. 마치 먼 다른 세상, 다시 못 볼 어느 공간을 여행한 것 같았지만 이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안도감이 더 가득 찬다. 갑자기 하얀 눈밭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고고한 산행이 최고인 줄 알았던 내가, 지독한 폭설 속에서 타인의 호의 어린 사탕 한 알에 감동했고, 그들이 남긴 밥 반 공기에 만족감이 배가 됐던 꿈같은 하루를 마감했다. 그 특별했던 연말 산행은 내 산행 인생의 이정표를 바꾸어 놓았다. 혼자 걷던 길에서 함께 걷는 길로 접어들게 한 그 산우회와, 나는 지금도 매달 두 번씩 같이 산에 오른다. 눈보라와 안개 속을 함께 뚫고 지나온 세월이 어느덧 21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허기를 알고 다리를 걱정하는 진짜 '산우(山友)'가 되었다.
배낭을 꾸리다 문득 거울을 본다. 가지산 안개 속을 헤매던 오십 대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운문사의 청아한 경문 소리와 오대산의 시린 흰 눈,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따스한 사람들의 온기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첫댓글 선생님 멋지세요!
백두인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여러 에피소드들이 담겨있어 지나간 산행 추억들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형님 21년 전 껄 기억하시고.....
선생님 멋지십니다
선생님, 글을 읽는 내내 저도 그 시간 속을 함께 걷는 듯 생생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선생님보다 조금 늦게 합류하여 직접 그 시절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적어주신 글 덕분에 선생님께서 걸어오신 궤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도 옆에서 함께 채워나갈 수 있어 영광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날 식당에서 처음오신 형님을 챙기느라 보니 안 계셔서 버스에 가서 보니 맨 뒷좌석에서 깊은 잠에 빠져 계신 모습을 보고 안도 했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추억을 다시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련한 기억의 바다에 침잠해 있는 보석 하나를 문득 발견했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