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까지 고민했던 문정원
강력한 돌고래 점프로
서브 득점 신기록 진행 중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는 성실함과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열었다. 뚜벅뚜벅, 천천히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코트 위에 또 한 명의 장그래가 눈을 떴다.
데뷔 첫 시즌이었던 2011~2012시즌, 11경기에 나와 겨우 3득점뿐이었다. 다음 시즌에는 4경기에서 2점이 전부였다. 2013~2014시즌에도 2경기밖에 못 나왔다. 득점은 4점이었다. 한 세트 25점을 겨루는 배구에서 3시즌 동안 따낸 득점이 다 합해 10점이 안됐다. 문정원(23·한국도로공사·사진)은 코트의 ‘미생’이었다.
목포여상을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에 지명됐다. 선수층이 엷은 여자배구 특성상 2라운드 4순위는 연습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명 순위다. 문정원은 “솔직히 지명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출전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묵묵히 연습만 했다.
배구를 포기할 뻔도 여러 번. 그때마다 한번만 더 참자고 버틴 끝에 문정원은 2014~2015시즌 ‘문데렐라’로 떠올랐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출전 시간이 늘었다. 3시즌 동안 겨우 9점이었던 문정원은 올 시즌 2월 25일 현재 27경기에 나와 250득점을 올렸다. 리그 전체 15위. 국내 선수 중에서는 8위다.
‘미생’이었던 문정원에게 ‘활로’를 열어 준 것은 강력한 서브다. 코트 왼쪽 뒤에서 커다란 호를 그리며 달려와 공을 던진 뒤 날아올라 왼손으로 내리 꽂는다. 단지 폼만 화려한 데 그치지 않는다. 올시즌 문정원은 서브 관련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문정원은 25일 IBK 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서브 득점을 추가하며 시즌 서브 득점 56개째를 기록했다.
한국 프로배구 사상 국내 선수 한 시즌 최다 서브 득점 기록은 남자가 51개(LIG 이경수·2005~2006), 여자가 55개(KGC인삼공사 백목화·2012~2013)다. 문정원은 백목화의 기록을 뛰어 넘으면서 ‘토종 서브 퀸’에 올랐다.
여자 배구에서 모처럼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서브 퀸’의 등장이다. 올드팬들은 옛날 한국 배구 서브의 새 장을 열었던 장윤창을 떠올렸다. 문정원의 서브에 ‘돌고래 서브’라는 별명을 붙였다. 젊은 팬들은 왼손 공격수 라이트 문정원에게 ‘문라이트’라는 별명을 붙였다. 마치 중력이 적은 달에서 뛰듯 걸음과 점프가 사뿐하다.
단순하게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문정원의 서브는 네트 위를 스치듯 날아가 꽂힌다. 왼쪽 코트 구석에서 날아올라 때린 공이 직선과 크로스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문정원은 “수비수들이 꼼짝 못한 채 사이에 꽂히는 서브가 제일 짜릿하다”고 말했다.
문정원은 드라마 속 주인공 장그래를 닮았다. 홀어머니의 뒷바라지 속에 배구선수로 성장했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다. 육상 단거리 선수를 하다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배구로 전향했다. 장그래의 무기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노력의 질’이라면 문정원의 무기는 서브였다. 배구를 시작할 때 3년 선배인 백목화(KGC인삼공사)의 강서브를 보고 “나도 저런 서브 넣고 싶다”는 마음에 갈고 닦았다.
2차 4순위의 지명순서는 걸림돌이었다.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원포인트 서버’로 나가는 게 전부였다.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게 여러 차례였다. 문정원은 “코치님한테 그만두겠다고 울기도 여러 번 울었다”고 말했다.
스물넷, 많지 않은 나이에 ‘마지막’이라는 목표를 삼았다. 문정원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좋아할 때 많이 하려면 더 바짝 해야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자.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했다. 1m 74, 그리 크지 않은 공격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았다. 야간 훈련 때 하루 100개의 서브 훈련을 했다. 10시 30분에 훈련을 마치고 체육관 건너 숙소까지의 약 200m를 터벅터벅 걸었다. 문정원은 “그 시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며 웃었다. 그 노력이 결과를 낳았다. 서남원 도로공사 감독은 ‘오 차장’이었다. 라이트였던 외국인 선수 니콜을 레프트로 돌리고 문정원에게 라이트를 맡겼다. 문정원은 대폭발했다. IBK기업은행에서 FA로 옮긴 세터 이효희는 ‘경력직 천 과장’이었다. 룸메이트 문정원에게 갖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도로공사는 ‘영업 3팀’이다. 문정원은 도로공사의 강점에 대해 “팀워크다. 다 함께 소리 지르고 한 마음 돼서 게임 하는 게 진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무명’이었던 문정원은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한때 배구 그만둘까를 고려했던 미생 문정원의 화려한 변신. 문정원은 “포기하지 않고 한 번만 더하자는 생각을 한 덕분”이라며 “옛날에는 배구가 재밌기만 했는데, 이제 배구가 행복하다”고 했다.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 - 교원공제회 신문 3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