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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추계 학술대회 발표문> 가상공간의 전경과 삶의 단편들: ‘리니지’를 중심으로 발표자: 라 도삼(중앙대 강사) 1. 현실을 넘어 가상으로, 가상을 넘어 현실로 얼마 전 우린 심각한 사태를 목도해야 했다. 게임방 주인이었던 K씨가 ‘리니지’란 온라인 머드게임에서 사용하는 가상의 투구와 갑옷, 무기 등을 도둑맞았다고 성동경찰서에 신고했다. 단순한 신고로 받아들였던 성동경찰서는, 그러나 이 거래가 무려 200만원의 현금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사에 착수, 두 명의 고등학생 형사입건 하기에 이르렀다. 단순히 게임이라고 여기기에는 심각한 상황,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에 살던 한 고등학생이 리니지 안에서 다른 인물을 공격해 숨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채팅을 통해 반말과 욕설이 오고 갔고, ‘직접 만나서 싸워보자’는 말에 게임을 하던 장소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 대구에 사는 유명 폭력배였던 당시 피해자는 조직 폭력배를 이끌고 상경, 급기야 그 고등학생을 찾아내 린치를 가하고 그가 갖고 있던 모든 아이템들을 빼앗아 버렸다.1) 단순히 게임 안에서 벌여졌던 일로 보기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2)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그래픽 머드게임인 ‘리니지’는 지금 열풍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한 달에 2만 9000원을 내고 엔씨소프트(NC Soft)에서 제공하는 이 게임에 접속하는 온라인 인구는 현재 약 50만명. 문화관광부로부터 ‘98 게임대상’을 수상했으며, 우리 나라 게임으로는 드물게 미국, 일본, 홍콩 등 세계에 수출돼 올 55억 원이라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단순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와는 달리 롤 플레잉(Role Playing) MUD 게임[이하 RPG]의 전형을 보여주는 리니지는 현재 매달 3만 명씩 게임 등록자가 늘어날 정도로 MPOG(Multi-Player Online Game)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리니지는 물론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게임으로 치부하기에는 이전의 게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우선, 하나의 사회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리니지라는 주어진 공간만 있을 뿐, 이야기의 시작도 끝도 없다. 또한 참가자의 제한도 없어 수 십명에서 수 천명의 사람이 동시에 게임을 즐긴다.3) 과거의 게임이 ‘죽은’ 컴퓨터와 ‘산’ 인간이 대립이었다면, 리니지와 같은 RPG는 ‘산’사람과 ‘산’사람이 대립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런 점에서 리니지는 게임의 형식을 빈 하나의 사회로서 가상사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둘째, RPG란 개념에서 알 수 있듯 리니지는 특정한 미션을 수행한다기 보다는 운영자가 제공하는 공간환경과 운영시스템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게임공간이다. 각각의 참여자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협동하고 경쟁하며, 동맹을 형성하고 자신의 레벨을 성장시킨다. 그것은 완결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게임이며, 그저 게임이라는 하나의 형식을 빌어 가상공간에 새롭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리니지는 가상공간에서의 삶과 죽음의 전형을 보여준다. 셋째, 따라서 게임의 참여자는 현실과 가상의 이중적 공간에서 삶과 죽음을 체험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살인과 죽음, 혈맹적 동맹이 이루어지고, 성차나 나이차, 경제력과 직업 등에 관계없이 오로지 가상의 ID와 주어진 레벨, 아이템을 가지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을 치뤄 나간다. 아이템을 놓고 거래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ID를 사고 팔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급기야 현실공간에서 현금의 형태로, 또 위의 예에서 보듯 사기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중적 공간에 대한 체험, 그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가상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Newsweek>지에서는 ‘E-Life’라는 특별보고서(special report)를 제출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세상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우리의 일상과 주변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는 것이고, E-Life란 그처럼 변해 가는 세상과 우리의 일상을 설명하는 개념(concept)으로 제시된다.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상공간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다시 말해 우린 지금 가상공간이란 새로운 영역으로 우리의 삶이 이동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싼 다양한 가치관과 규범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그로부터 수많은 혼동과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기술적인 미래예측과 삶의 변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가상공간에서의 삶을 맛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맛보기에 그칠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게임이며 현실이 아니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가상공간이 은유하는 현실 사회체계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앞으로 변해 가는 우리 사회의 규범과 가치체계 문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린 ‘리니지’에 참여해보기로 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본질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다. 실제 게임은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단 수 천명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주어진 역할과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위해 싸워 나간다. 그 속에서는 마치 현실세계를 은유한 경쟁논리와 삶의 양식이 있으며, 인간관계가 있다. 단지 그건 게임의 양식으로 은유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가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엿보고자 하였다. 둘째,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달라지는 규범과 가치체계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고자 한다. 물론 게임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둘러싼 경쟁’이다. 쉽게 말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곳이다. 따라서 현실보다는 더 강력하고 치열한 전쟁과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전쟁과 전투, 경쟁과 동맹의 방식이 현실세계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점이다. ‘길드’와 ‘혈맹’을 만들어지고, ‘프로게임머’와 ‘게임증후군’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진다. 더 좋은 아이템을 갖기 위해 ‘사기’가 벌어지고, ‘폭력’이 행사된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과 죽음의 공간인지 모른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접속하고 끊고, ‘나’를 중심으로 모든 가치판단과 규범체계가 이루어지는 사회, 공동체의 문명은 희미한 불빛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이 개인의 욕구(id)만이 가득 찬 사회, 마치 비트처럼 외로운 단자(monad)들이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 그런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셋째, 결국 이 연구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어긋남/비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어긋남과 비낌에 의해 변해 가는 현실에 대한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살아갈 사회에 대한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게임에 대한 연구라기보다는 게임을 텍스트로 가상사회에서 살아갈 우리의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달라지는 사회구성과 운동의 원리를 빗대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함에 있어 우린 ‘리니지’라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담론과 권력관계에 대해 주목해보기로 하였다. 익히 알디시피 담론의 문제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기호체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담론은 ‘대상을 분절 -사물의 체계- 하고 우리의 인식체계를 고정화하는 지표’로서, 구조주의의 시각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의 의식이 머무르는 곳 -언어로 표상(representation)되는 무의식의 세계- 이다. 곧 개인의 의식은 담론을 지반으로 형성되며, 담론은 개인을 포섭하는 권력이 된다. 담론과 권력의 문제는 곧 개인이 어떻게 한 사회 속에 포섭되는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담론과 권력의 문제는 상이하게 달라지는 공간과 커뮤니케이션 상황의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 곧 담론의 문제는 우리의 사고와 판단, 인식을 일치시켜나가는 커뮤니케이션 과정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간화의 길’- 으로 이해되는데, 그것은 관계되어 있는 기술적 수단과 상징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범위에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형성되는 담론의 전달범위와 전달형태, 전달방식을 결정하게 되며,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담론의 형성은 달라지게 된다. 특히 현재의 미디어가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결합한 상호작용적인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한다고 볼 때, 담론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이면을 들춰내게 되고, 그에 따라서 담론은 현실이 아닌 다른 사회를 표상하게 된다. 가상공간이란 곧 현실이 아닌 미디어에 의해 표상된 세계를 말하며, 그런 점에서 그 사회는 현실사회와는 다른 표상을 갖게 된다. 그에 따라 가상공간과 현실사회는 뒤틀리고 비껴가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표상점 또한 그렇게 뒤틀리고 비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궁구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하나의 게임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담론과 권력체계를 분석함으로써 비뚤어지고 뒤틀어진 가상사회에 대한 체험과 반영을 기록해 보겠다는 것이요, 그런 전경을 통해 앞으로 가상사회에 이루어질 담론과 권력에 대해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2. 공간과 담론, 그리고 권력의 문제설정 (1)담론과 공간 인터넷 등장 이후 우리가 미디어를 고려함에 있어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공간’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지금까지 미디어를 사회 내에 존재하면서 사회 내에 존재하는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체계화함과 동시에 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표준화시키고 규범화시키는 구조화의 장치로 간주하였지만4),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우리는 ‘가상공간’(cyberspace)라 불리는 새로운 공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더불어 사람들의 의식 또한 사회라는 공간을 넘어 파편화되고 개별화되는 현상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 속의 미디어를 고려하였다면, 앞으로는 사회에 앞서 -‘사회(구조)가 선험적인 것이다’는 사실에 반대하여- 사회 밖에서 사회를 만드는 미디어에 대해, 그리고 그 미디어가 만드는 공간적 상황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정체성(identity)의 혼란이나 혹은 정체성 공간(identity space)이라고 문제를 설정하는 것은 이와 같은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공간에 대한 고민하였던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한편에선 오랜 구조주의적 전통에서 구조를 떠난 사고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구조주의의 발흥을 일으킨 프로이드(Z.Freud)에서 라깡(J.Lacan)에 이르는 언어구조주의에 있어 ‘공간’의 문제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으며, 그들에게 있어 공간은 항상 존재하는 것 -'선험적인 것‘- 이었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인간이 그 공간 내부에서 구조화되어 가는가 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당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역사적인 질문에 충실히 답변하였던 것이다. 실로 이러한 문제설정에 대한 뒤틀림은 초현실적인 미디어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나는데, ‘포스트’주의라 명명된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에 대한 존중과 미디어적 상황,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환경에 대한 포괄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현대적인 미디어가 새로운 사회적 상황과 언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인데, 훗날 들뢰즈(Z.Deleze)의 평가에 따르면 그것은 각각 언어와 상징체계를 중시하는 수목모델(arborescent model)과 상징의 교환양식과 공간을 중시하는 리좀(rhizome)으로 분리된다.5) 물론 여기서 그와 같은 논의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연구와 관련하여 과연 현대적인 미디어가 어떻게 상징과 표상체계를 뒤틀리게 하는 것인가를 살펴볼 뿐인데, 우리는 여기서 구조주의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던 ‘언어’에 대한 문제를 ‘담론’과 ‘권력’의 문제로서 풀어나간 푸코(M.Foucault)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푸코는 경우 세 가지 단계를 거쳐서 언어의 절대성에 대한 사고를 그 기반부터 붕괴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언어를 담론으로 전환하는 시기(<임상의학의 탄생>), 둘째, 담론이 형성되는 상황과 공간을 고려하는 시기(<지식의 고고학>), 셋째, 담론형성 과정 내에 존재하는 ‘관계’에 대한 고려로부터 담론이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모든 관계 내에 내재되어 있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관계로서 전환하는 시기(<성의 역사>) 등으로 구성된다.6) 특히 이 세 단계의 마지막 단계에서 푸코는 담론에 권력의 문제를 개입시킴으로써 담론형성의 과정을 둘러싼 지배와 저항, 상호작용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언어에서 담론으로의 전환은 언어구조주의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선험적인 것’으로서 언어에 대한 것이었다. 익히 알디시피 언어구조주의에서 ‘언어’는 무의식의 지반이요 선험적인 질서 이상은 아니었다. ‘언어없이 생각없다’는 가정하에 언어구조주의는 언어로 표상되는 사회질서와 구조화 과정을 설명하는데, 푸코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런 언어가 항상 고정적인 것일까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그는 언어를 담론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때 담론이란 대상을 분절하는 방식으로 동일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담론에 따라 그 대상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곧 담론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체계와 인식의 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그는 <임상의학의 탄생>과 <말과 사물>을 통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에 대한 분절방식’과7) 인식의 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한다.8) 두 번째 단계에서 푸코가 고민하는 것은 담론형성에 대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언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조건을 찾아내고, 그 언표가 발하는 효과를 찾아내는 것인데, ‘지식의 고고학’으로 명명된 이와 같은 과정에서 푸코는 담론 ‘자체’가 아니라,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과 특정한 유형의 실천을 만들어 내는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곧 같은 담론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에 따라, 말하는 사람에 따라, 개념에 따라, 전략에 따라 달라지는 담론의 형성과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건(événement)’과 ‘실증성(positivité)’의 차원 양방향에서 진행된 ‘담론적인 것’과 ‘비담론적인 것’ 사이의 교환은 ‘효과를 지향하는 언표’를 지극히 제한함으로써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좌표점으로 가정되었던 구조주의의 일반에서 제기되었던 ‘언어’에 대한 사고를 크게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처럼 담론형성의 조건을 엄격히 하여 그 효과성을 제한하기 시작한 푸코는 이후 계보학적인 방법론으로의 전환9)을 통해 아예 담론 자체의 절대성과 지고지순성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해 이후 푸코는 한 사회에 지배적 담론이 있다거나 하나의 담론이 각 개인(의 무의식)을 지배한다고 가정하는 사고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써 그는 담론에 ‘권력’의 문제를 개입시킨다. 담론의 문제에 ‘권력’의 문제를 개입시킨 것은 다분히 전략적이다.10) 즉 하나의 담론이 개인을 지배한다는 담론의 절대성과 지고지순성에 대응하여 담론과정 내에서 나타나는 힘들의 차이와 복수성, 상호관계에 더 주목하자는 차원에서 ‘권력’의 문제를 개입시킨 것이다.11) 이때 말하는 권력은 담론을 둘러싼 힘들의 차이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관계에 내재되어 있으며 순간적으로 유동하고 변화하는 흐름을 만든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담론이 지배한다거나 개인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충돌과 끊임없는 투쟁, 관계들의 변화와 역전, 불평등하고 유동적인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다.12) 쉽게 말해 담론 상에서 갖는 관계와 위치, 전략상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 단계를 거쳐 푸코는 담론과 대상이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게 된다. 각각의 담론은 특정한 장 -외재성의 장- 속에서 존재한다. 거기에는 주어진 특정한 상황이 있으며 공간이 내재한다.(담론적인 것에 대한 비담론적인 것의 효과)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담론은 효과를 지향한 언표의 집합으로써 개인을 특정한 방식으로 실천하도록 만든다.(담론의 효과) 그러나 그것은 고정적이고 항상적인 것이기 보다는 상호작용적이고 유동적인 것이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뒤바뀌고 역전된다. 그에 따라 담론과 담론의 효과는 달라지게 되고, 언어가 갖고 있던 지고지순성과 절대성 또한 사라지게 된다. 담론은 권력을 운반하고 산출하며 그것을 강화하지만 또한 서서히 침식하고 노출시키고 약하게 만들고 가로막게 해주는 것이다.13) 따라서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담론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계기(상황)와 공간, 그리고 담론을 둘러싼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한 것이다. 더구나 현대적인 담론 생산의 매개체인 미디어는 점차 현실적인 것들 -사회적이고, 구조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가상의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말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가 상호작용하며 경쟁하고 그 관계를 순간적으로 역전시키고 전가시킨다. 그런 지금 하나의 특정한 담론이 사회를 지배한다거나 담론 과정에 누군가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현재의 상태는 복수적인 힘들의 차이와 다가적(多價的)인 규칙, 상호관계의 전화와 반복, 외적인 상황과 운영체계의 규칙들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푸코의 담론이론은 오늘날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상공간의 문제를 엿보는데 중요한 단서를 주고 있다 할 것이다. (2)가상공간의 담론과 권력 우리가 가상공간을 놓고 담론과 (담론을 둘러싼) 권력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 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가상공간은 미디어를 통해서 형성된 공간이라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점에서이다. 쉽게 말해 가상공간이란 우리의 육체가 놓여져 있는 물질공간과는 달리 그야말로 커뮤니케이션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관계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 경제적 위치 등등과 같은 -가 아니라 오로지 커뮤니케이션 관계일 뿐이다.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가 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상공간이야말로 순간적인 역전과 유희가 이루어지는 담론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가상공간이 갖는 특징적인 담론체계에서 비롯된다. 익히 알다시피 가상공간은 수많은 정보의 분산과 공유, 그리고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정보의 분산과 공유를 기반으로 출발한 인터넷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과 담론으로 가득 차 있다. 각각의 사이트는 개성과 가치, 분산과 공유를 기반으로 수많은 웹사이트들과 경쟁한다. 여기에는 특정한 규율이나 규범이 없으며, 금기나 억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차이’와 ‘균열’, 끊임없이 생산적이고 복수적인 ‘힘’들의 준동만이 있을 뿐. 따라서 특정한 하나의 지배적 담론[구조]이 존재한다거나 하나의 담론이 개인을 지배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링크마커(link marker)를 통해 수많은 사이트와 텍스트들이 ‘마치 거미줄(web)처럼’ 얽혀 있는 사회, 순간적인 공간이동과 매니아적 열정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그런 가정이 가능하겠는가?14) 셋째, 따라서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담론을 둘러싼 권력의 문제다. 단적으로 말해 가상공간은 상호작용적 공간이다. 그것이 텍스트의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건 아니면 다른 웹사이트로의 여행하는 것이건 간에 사용자(user)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공간이다.15) 그 관계는 순간적이고 유동적이며, 균열적이고 분산적이다. TV가 산업주의로 대별되는 거대한 욕망의 표준화된 규범체계였다면, 가상공간은 미세한 욕망이 끊임없이 분출되는 분화구이다. 따라서 담론을 둘러싼 권력의 중심은 과거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린 ‘권력’의 문제를 통해 담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호작용적이고 양가적인 지배와 저항의 게임을 즐기고 노려야 한다. 물론 우린 권력의 문제를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것, 혹은 지배적인 것, 통치적인 문제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 또한 양가적이다. 그렇기에 담론의 문제에 ‘권력’을 개입시킨 푸코의 태도는 대단히 이중적인데, 그것은 한편에서 권력이 갖고 있는 절대성, 통치성에 대한 거부로부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적 담론이 갖고 있는 유희와 놀이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권력을 ‘특정한 국가 내에서 시민들의 복종을 보증하는 제도나 기구들의 총체로서 정권을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불어 그것은 ‘폭력과도 현저히 달라 예속의 형태를 띠지 않고’, ‘하나의 집단에 의해 다른 집단에 행사되는 항상적인 지배체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출현 영역에 내재하며 하나의 조직된 전체를 구성하는 세력관계들의 다양성이고, 끊임없는 투쟁과 충돌을 거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강화하며 역전시키는 놀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매순간 순간 모든 관계에서 나타나며, 한 사회의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된 이름에 다름 아니다.16) 쉽게 말해 권력이란 이제 어느 누가 쥐고 있는 것,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적어도 권력을 그토록 항상적이고 고정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technology)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권력이 상호작용적으로 유동하고 변화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우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가 스스로 말하듯 각각의 미시권력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세력선을 형성하고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 경우 권력은 적어도 일정시기에 있어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된다.17) 문제는 각각의 관계 내부에서 존재하는 미시권력들 사이에서의 역전, 그리고 동질화하고 계통별로 정리하여 한 곳에 모이지 않게 하는 기술들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앨빈 토플러가 주장하듯 ‘권력이동’(powershift) -권력의 질변화- 이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18) 무엇보다도 현대적인 미디어 테크놀로지 -이른바 ‘지식’(knowledge) 혹은 ‘지적 테크놀로지’(KT:Knowledge Technology)라 부르는- 는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상호작용성과 분산성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테크놀로지는 구조를 대신하여 개인을 그 자리에 서도록 함으로써 그 스스로 권력의 중심이 되도록 하고 있다. 권력의 질 자체가 지배적인 것에서 생산적인 것으로, 일괄적인 것에서 분산되고 산포되는 것으로, 일방적인 것에서 상호작용적인 것으로 바꿔지고 있는 것이다. 가상사회란 그러한 모습들의 전경을 갖고 있는 곳이다. 가상사회란 사이버네틱(cybernetic) 환경으로서 그 원래의 의미[그리이스어의 kubernetic]대로 수많은 항해자들의 공간이다.19) 다시 말해 그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메트로폴리스처럼 펼쳐진 네트워크 망을 항해하는 사회가 바로 가상사회인 것이다. 그의 의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성되는 네트워크가 달라지고 상호작용적인 관계, 커뮤니케이션의 위치가 달라진다. 표준화된 양식과 규범은 없으며, ‘쾌락의 원칙’을 넘어선 ‘프로이드’적 문화도 없다. 욕망은 욕구에 가깝게 전개되며 문명은 야생의 질서에 가깝게 다가간다. 그런 점에서 가상사회야말로 이전의 문명 -아날로그세계- 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문명 -비트의 문명/네트의 사회- 을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가상공간과 게임의 전사들 익히 알다시피 가상공간(cyberspace)이란 조어를 처음 만들었던 윌리엄 깁슨(W.Gibson)이 그의 소설 <뉴로멘서>를 쓴 이유는 캐나다의 벤쿠버 힐가에서 전자오락에 몰입해 있던 한 소년을 보고서이다. 게임에 몰입해 있는 소년을 보고 저것이야말로 공감각적인 환영을 만들어주는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했고, <뉴로멘서>에 그와 같은 공감각적인 환영의 세계를 담게 된다.20) 1961년 MIT대학에 재학중인 스티브 러셀(Steve Russel)에 의해 <스페이스 워)>라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이 개발된 이래 컴퓨터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영역에서 벌일 수 있는 또 다른 경쟁과 오락의 장소가 되었다.21) 이후 1973년 미국 아타리(Atari)사의 탁구 형태의 블록 깨기 게임인 <퐁>(Pong)이 개발된 되고, 1978년 일본 다이토사가 일명 ‘갤러그’라 불리는 <Space Invader>가 출시되면서 아케이드 게임이 출시되면서 게임은 ‘오락기’를 타고 하나의 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모든 게임에는 특별한 유형의 경기규칙과 운영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이 점은 컴퓨터 게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게임의 개발자는 기본적인 운영체계를 세우고, 그 위에 각각의 게임방식을 설정하게 된다. 그 게임방식에 따라 게임참여자는 게임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주어진 임무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와 같은 게임 운영방식에 따라 컴퓨터 게임을 분류해보면, 그것은 각각 아케이드, 어드벤쳐, 시뮬레이션, RPG 게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아케이드 게임은 일반적으로 전자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그래픽 화면에 나오는 물체를 조정하여 점수를 따는 게임으로 위에서 설명한 ‘갤러그’가 대표적이다. 이런 아케이드 게임은 보통 슈팅게임, 스포츠게임, 보드게임, 퍼즐게임, 액션게임 등이 있다. 1984년 애플컴퓨터가 선보인 ‘로드 런너’는 플레이어가 적으로부터 도망치면서 금괴를 모으는 게임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며, 1990년에는 브로드번드(Broadbund)사가 선보인 ‘페르시아 왕자’가 큰 인기를 끌었다. 둘째, 어드벤쳐 게임은 큰 특징은 독자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미리 주어진 텍스트에 따라 사건이나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고 게임의 최종 목적지에 가면 승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락실 게임과는 달리 게임 내용을 중간 중간에 저장해 놓았다가 그 지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에 따라 게임 참여자는 게임 개발자(생산자)가 정해 놓은 텍스트 내에서 게임을 운영하게 된다. ‘미션’을 중심으로 한 어드벤처 게임으로는 ‘미스트(Myst)', '원숭이 섬의 비밀’ 등이 있다. 셋째, 이에 반해 시뮬레이션 게임은 실제 인간이 처하기 힘든 상황, 위험한 상황, 혹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상황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모든 환경을 컴퓨터에서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임을 말한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징은 실제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에게 조작의 자유권을 주는데 있으며, 그런 점에서 플레이어는 ‘진짜 상황에 있는 것과 같은’(being there/telepresence) 착각에 빠지게 된다. 또한 다른 게임과는 달리 게임 과정에 수많은 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작의 결과에 따라 그 결과 또한 각각이 달리 나타나게 된다. 시뮬레이션 게임 중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삼국지 시리즈’와 ‘워 크래프트’에서 ‘스타크래스트’로 이어지는 게임이 그것인데,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생산자가 제공해 놓은 기본적인 텍스트 내에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통해 상대를 제압한다는데 있다. 그것은 마치 바둑이나 장기와 같다. 게임제공자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동등한 조건’을 부여한다. 각각의 참여자는 주어진 조건하에서 각기 다른 전략을 가지고 갖가지 변인을 조작함으로써 게임에 임한다. 이에 따라 게임참여자의 텍스트에 대한 참여는 깊숙히 이루어지게 되고, 각 게임참여자들이 게임과정에서 상호작용함으로써 게임은 흥미를 더하게 된다. <표1> 컴퓨터 게임의 종류와 특징
마지막으로 보아야 하는 게임의 형태는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리니지’와 같은 롤 플레잉 게임(RPG:Role Playing Game)이다. RPG는 플레이어가 주어진 하나의 역할을 맡아 임무나 목적을 달성해가는 형식으로, 참여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RPG의 특징은 자유도가 높다는데 있다. RPG의 경우 어드벤처 게임과 같이 꼭 닥쳐진 상황을 해결할 필요는 없다. 또한 아케이드처럼 상대를 꼭 이겨야 할 필요도 없으며, 단지 주어진 공간에서 자신의 맞은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RPG의 두 번째 특성은 플레이어의 성장도를 나타내는 수치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플레이어가 어떻게 활동하고 했는가라는 과거의 기록을 점수화시킴으로써 그가 게임과정에서 치룬 전투와 전투능력을 레벨로서 나타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RPG는 다양한 이벤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드벤처의 경우 이런 이벤트를 꼭 거쳐야 하지만 RPG의 경우 반드시 이벤트를 거칠 필요는 없다. 생산자가 만들어 놓은 게임공간과 규칙 내에서 경쟁한다는 사실은 전략시뮬레이션이나 RPG의 경우 유사하다. 그러나 전략시뮬레이션의 경우 각각의 참여자가 ‘공동의 목표’ 하에 ‘동등한 조건’으로 참여 전략의 차이를 놓고 경쟁할 뿐이지만, RPG의 경우는 공동의 목표도 없을뿐더러 게임 참여자의 조건이나 역할 또한 각각의 다 다르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만 게임공간 내에서 생존을 위해 각기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이며 외로운 단자들이다. 자기보다 높은 단계의 경쟁자가 있는가하면 자기가 갖고있지 않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게임 참여자가 목표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이며 게임 공간 내에서 자신을 키워내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목적이 달성되면 게임이 끝나는 전략시뮬레이션과는 달리 롤 플레잉 게임의 경우 시작도 끝도 없다. 그것이 끝나는 순간은 모든 참여자가 접속을 끊고 가상공간에서 삶을 포기하는 순간 뿐. 텍스트의 영역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게임 참여자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각각의 게임을 구성하게 된다. 이처럼 각각의 게임은 생산자가 제시해 놓은 기본 텍스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참여방식과 게임진행방식이 달라지게 된다. 각각의 게임유형의 텍스트에 대한 개방성의 여부(공동의 목표유무)와 참여자간 상호작용성(컴퓨터와 사람/컴퓨터를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의 정도를 기준으로 게임의 진형을 분할하면 다음 <표 2>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표 2> 게임유형의 분류도 RPG는 텍스트에 대한 개방성과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한다. 더구나 RPG의 경우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다중이 참여하는 MUD게임 형태를 띠면서 RPG는 하나의 가상사회를 이루게 된다. 즉 각각의 참여자가 특정한 목적이 전제되지 않은 개방적인 게임 공간에 참여하여, 다중적인 사람들과 경쟁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RPG형 MUD게임 형태인 ‘리니지’가 가상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이유같은 이유에서이다. 미리 말하자면 ‘리니지’에는 게임의 공간과 게임 운영 규칙만 있을 뿐, 공동의 목표가 없이 서로 경쟁한다. 그 과정에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중적인 네트워크 상에서 서로 대화하고 동맹을 맺고 경쟁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리니지’는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도록 만듦으로써 현실의 가치체계와 규범체계를 벗어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역으로 현실가치체계를 파괴하도록 만든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세계, 우린 이제 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4. 가상공간의 권력과 담론: ‘리니지’의 세계 위에서도 말했듯 하나의 담론은 대상에 대해 분절하는 방식을 말한다. 곧 하나의 사회 내에 있는 대상에 대한 분류체계이며,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가르는 체계이다. 따라서 하나의 담론은 그 사회 내에 있는 내적 대상을 포괄하여 하나의 질서체계를 세우게 되며, 다른 한편에서 그 사회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물에 대한 인식과 가치판단의 체계를 제공하게 된다. 따라서 담론의 문제는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며 그 사회의 질서와 가치의 문제가 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푸코의 주장에서 보듯 그것은 각각의 고유한 공간과 시기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담론생산과 소비과정에서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 상에서의 관계와 위치, 상호작용에 관련된 문제다. 그러니 만큼 중요한 것은 각각의 담론이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문제인데 컴퓨터 게임의 경우 그 대부분은 -네트의 세계가 그렇듯- 운영자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각각의 운영자는 게임의 ‘공간’을 설정하게 되고, 그 속에서 각각의 참여자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때 참여자의 경우 아날로그 세계에서 그것과는 달리 자의적인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자신을 만들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쉽게 말해 게임의 운영자는 게임 참여자의 기본적 속성에 대한 다양한 모델을 제공하고 참여자 스스로가 그 모델 중 선택하거나 조작하여 게임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날로그 세계는 일반적으로 주어져 있는 -선험적인- 사회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린 우리가 원하지 않은 공간에서 태어났고, 원하지 않은 캐릭터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간에 일치하지 않은 인식이나 판단, 행동을 할 경우 정신병으로 혹은 형사법으로 사회적으로 격리된다. 그건 바꿀 수도 없는 게임이고, 원칙도 없는 게임이다. 그러나 디지털의 가상세계는 만들어진 세계다. 그것은 우리가 결정하여 참여하게 되고,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빠져 나올 수 있는 사회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대에 가까운 자율성과 상호작용성을 누리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된다. 게임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사회’란 그처럼 주어진 ‘선택’과 가능한 ‘규칙’하에서 구성되는 새로운 사회인 것이다. (1)‘리니지’의 공간과 주체의 형성 리니지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제작운영하고 있는 <NC소프트>에서 제공한 운영체계를 기본으로 한다. 무릇 모든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공간의 배치형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대상들을 구조화하고 그 속에서 운동하는 각각의 개인을 강제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리니지는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를 기반으로 한다. 원작의 만화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느니 만큼 게임 리니지 또한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다. 리니지의 공간은 크게 ‘말하는 섬’과 ‘본토’ -글루디오 영지- 라는 2개의 영토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는 섬’은 플레이어가 최초로 게임을 시작하는 장소로 비교적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본토’는 말하는 섬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약 20분 정도 걸리는 곳 -실시간으로- 으로 이곳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높은 레벨과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각각의 공간은 안전구역과 전투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중세 유럽의 전경과 같다. 중세 유럽은 성의 내부와 외부를 기준으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가른다. 성의 내부는 신과 신의 현실적 대행자의 영주가 지배하고 있으며 그 모든 사람들은 정상인으로 구성된다. 반면 성의 밖은 온갖 비정상인으로 가득차 있다. 부랑자와 정신병자, 도망간 농노 등등 그곳은 율법의 세계라기 보다는 야생의 세계이며, 정상의 세계라기보다는 생존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다. 리니지 역시 이 성을 기준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마을로 재현된 여기는 안전구역이다.22) 여기서는 몹 -NPC(Non Player Creature)의 일종- 과의 전투는 가능하지만, 플레이어간 전투는 불가능하다. 플레이어간 전투가 금지된 안전지역인 만큼 에너지 -일명 피- 가 많이 손상되었을 경우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에너지를 채울 수 있고 플레이어 상호간의 물건을 거래하거나 또는 혈맹 -플레이어들이 만든 조직- 들간의 집합 장소로서 사용된다. 캐릭터가 게임도중 사망하였을 경우 또한 안전지역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반면 마을 밖의 지역은 플레이어가 전투를 치루는 지역이다. 전투지역은 마을과 선착장 등을 벗어난 모든 지역을 말하며 마을 밖은 특정한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NPC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몹들과 전투를 통해 아데나와 아이템을 얻음을 물론 각종 전투경험을 통해 자신의 경험치를 높여 레벨을 높혀가는 장소다. 전투지역에서는 각 플레이어 간 전투도 가능하고, 각 지역마다 특정한 NPC이 고정적으로 나타난다. 리니지에는 리니지만의 시간이 있다. 현실을 은유한 리니지의 시간은 2시간을 주기해 해서 낮과 밤이 반복된다. 밤은 현실처럼 서서히 어두워져서 마침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이고 플레이어는 ‘양초’나 ‘등잔’과 같은 아이템을 이용하여 전투를 벌여나가야 한다. 만약 이 아이템들이 없을 경우 플레이어가 생존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리니지’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는 우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 -가상의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리니지에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캐릭터는 왕자, 기사, 엘프, 마법사가 있다.23) 플레이어는 이 중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고를 수 있으며, 마법사를 제외한 각각의 캐릭터가 성별로 나눠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총 7가지가 된다. 이어 플레이어는 총6개로 구성되어 있는 캐릭터의 능력적인 특성을 선택하게 되는데, 주사위를 돌려 자신이 원하는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를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된다.24) 단 여느 게임과 달리 리니지의 경우 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는 3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캐릭터 선택 화면 캐릭터의 선택에 있어서 플레이어들의 일정한 특성이 나타난다. 머드게임은 플레이어의 현실 세계를 머드게임 내의 세계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현실세계의 성별, 나이, 외모, 신체적 조건, 호칭(이름) 등은 머드게임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자신이 원하는 성별과 호칭, 특성을 선택함으로서 플레이어들간에 현실세계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외적인 차이는 사라지고 오직 서로간의 구분은 레벨과 힘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현실세계의 지위와 모습은 사라지고 머드게임이 제공하고 있는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규칙만이 사람들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우리는 리니지라는 게임공간에 들어가 리니지에서 통용되는 아데나와 아이뎀을 주는 조건으로 설문을 실시하였는데, 총 24명의 응답자의 반응을 보면 총 9명이 자신의 성과는 다른 성을 자신의 캐릭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중 8명은 남성이 여성을, 그리고 1명의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생존을 위한 투쟁 : 삶과 죽음의 전쟁 리니지는 기본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중적 플레이어가 참여하여 자신의 삶과 생존을 목표로 살아가는 가상공간이다. 그리고 그 삶과 생존을 위해 다중적 플레이어들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공간이다. 각각의 사회가 나름대로 살아가는 생존방식과 사회적 규칙에 대한 계약이 있듯 리니지에도 마찬가지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림 2> 리니지의 게임장면 리니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 ‘아데나’라고 불리는 이 돈은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말하는 섬’에서 ‘본토’로, ‘본토’에서 ‘말하는 섬’으로 이동할 때 내는 배표값을 지불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이 ‘아데나’는 리니지라는 공간에서 살아갈 때 필수적인 ‘경제적 수단’이 된다. 리니지는 기본적으로 생존게임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들이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각종의 일반 아이템과 무기류, 방어구들이 있다. 그 대부분은 상인들에게 아데나를 주고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고급의 아이템들은 모두 전투를 통해서 얻게 된다. 결국 아이템이 무엇이 있는가는 곧 그 사회에서 얼마나 생존능력이 있는가를 나타내 주는데,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 높은 단계의 레벨에 있는 사람이나 아이템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구걸’하기도 한다. 또한 필요한 경우 플레이어간 아이템을 상호 교환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사기와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총 응답자 24명 중 20명이 아이템 교환을 놓고 사기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표 3> 리니지에서 사용하는 아이템의 종류
이제 돈(아데나)와 필요장비(아이템)을 갖춘 플레이어들은 전투의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기본적으로 리니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전투는 몹(몬스터)과의 전쟁이다. 플레이어는 몹을 죽임으로써 아데나와 각종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다중의 플레이어들과 첫 번째 관계를 맺게 된다. 그 첫단계는 협동이다. 그들은 몹을 죽이기 위해 서로 공동 전술을 펼친다. 비교적 낮은 레벨에 있는 경우 몹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죽을 수 있는데 이 경우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 옆에서 공동작전을 펼침으로써 쉽게 몹을 처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몹이 죽은 다음에 발생한다. 몹이 지니고 있는 아데나와 아이템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며, 심한 경우 몹을 죽인 플레이어보다는 주변에서 관찰하고 있던 플레이어가 그것들을 재빠르게 주워갈 수 있다. 이때 각 플레이어간의 감정적인 대립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그것은 즉각적인 플레이어간 전투로 발전할 수 있다. 두 번째 전투는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벌이는 전투다. 게임 상에서 플레이어간 감정이 안 좋을 경우, 혹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데나와 아이템이 탐날 경우, 혹은 이후 설명할 PK를 죽이는 경우인데, 여기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게임을 종료하게 되고 게임을 다시 시작할 경우 레벨을 다운당하게 된다. 반면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플레이어는 경험치를 높여 레벨을 올릴 수 있다. 반면 각각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참여할 당시 가졌던 중립적인(Neutral) 캐릭터가 점점 빨갛게 변하는 혼돈적인(Chaotic) 캐릭터으로 변하게 되며, 이 경우 PK로 낙인찍혀 경비경에게 쫓기거나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에게 공격을 받게 된다. 물론 PK에 대한 공격은 용인된다.25) 세 번째 전투는 혈맹과 혈맹이 벌이는 이른바 혈전이다. 다른 게임과는 달리 리니지는 플레이어들끼리 모여 ‘혈맹’이라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는데, 각각의 혈맹은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하여 엄격한 자격조건과 선발기준을 갖고 있다. 켄트성을 차지하기 위한 최종의 싸움에서, 혹은 혈맹과 혈맹의 감정적 대립과 아이템 확보를 위해 싸우는 혈전의 경우 조직과 조직이 대립하는 ‘패싸움’의 형태를 띠는데 이 경우 각 혈맹의 ‘군주’들은 도전과 응전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26) 공식적인 허가를 받는 만큼 플레이어를 죽였다고 해서 PK가 되지는 않는다. 리니지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레벨을 높혀가는 것이다. 그러니 만큼 전투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몹과의 전투는 기본이지만, 플레이어 플레이어간의 전투, 혈맹과 혈맹과의 전투는 삶과 죽음을 위한 전투가 된다. 우리의 조사에서 총 24명의 조사자 전체가 PK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7) PK를 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플레이어들는 총 19명이었는데 그 이유는 각각 ‘욕하니까’(6), ‘나를 PK해서’(2), ‘카오였기 때문에’(2), ‘좀 더 나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4), ‘실수로’(5)로 나타났다. 반면 죽었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대다수 응답자는 ‘기분이 더럽다’, ‘반드시 응징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기분을 나타냈다. 물론 조사한 설문이 표본수가 지나치게 적고 엄밀한 통계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게임 참여자들이 게임상의 문제보다는 감정적인 대립에서 PK를 하고 있었고, 또 그것이 실제 ‘현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공간의 권력관계를 엿보도록 만든다. 리니지는 이런 전투과정을 통해 레벨을 올리고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초보과정인 레벨 10단계까지는 비교적 쉽게 올라가지만 10이상은 많은 노력과 절대적인 시간투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조사에 따르면 20-30단계에 속한다고 응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으며, 이들은 최소 3개월에서 평균 6개월 이상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대답했으며, 40이상에 속한 네 명의 응답자 또한 최소 1년이 넘었으며, <원더우먼 99>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경우 2년 가까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레벨을 올려가는 과정에 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전투에 참여하여 아데나와 아이템을 구하면서 자신의 경험치를 높여가야 하는데, 문제는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아이템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는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리니지의 공간에서는 자기 보다 높은 레벨에겐 무조건 ‘~님아’라고 부르면서 존칭어를 사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아이템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대개의 경우 PK를 당할지도 모를 위협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리니지의 세계에서 권력을 갖는 사람, 즉 담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레벨이 높은 사람이다. 그는 혈맹을 조직하여 자신의 조직을 이끌 수 있을뿐더러, 온갖 아이템을 무기로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PK를 서슴치 않는다. 실례로 우리가 게임에 참여했을 때도 <짬뽕맨>이란 아이디 사용자가 무려 30여명의 플레이어를 죽이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고, 우리 또한 곧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림 3> 리니지의 채팅창에서 벌어지는 아이템 거래의 모습 리니지가 비록 결코 끝나지 않는 텍스트의 연속된 게임이지만, 리니지에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기본된 소망은 ‘왕’이 있는 ‘켄트성’을 차지해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참여자는 켄트성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켄트성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혈맹에 가입하여 다른 혈맹과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된다. 혈맹은 리니지 캐릭터 중 오직 ‘왕자’만이 할수 잇는 것으며, 왕자 캐릭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레벨이 10이 넘으면 혈맹을 조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혈맹에 가입할 혈원을 모집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강한 혈맹을 만들어야기 때문에 혈원 모집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 붙는다. 강한 혈맹일수록 같은 혈원을 보호하기 위해 거의 현실의 ‘조직폭력배’ 수준의 행동강령을 가지고 있으며, 혈맹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 이들은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혈맹까지도 있다. <그림 4> 리니지에서 결성된 ‘혈맹’의 인터넷 홈페이지 이러한 리니지의 세계는 분명 현실세계를 은유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켄트성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끊임없는 전쟁의 성격을 담고 있다. 게임의 목표인 켄트성을 차지한다고 해도 곧바로 다른 혈맹의 도전을 받게 되고, 그에 따라 켄트성을 차지하는 것은 아날로그 시간대로 보통 2-3일에 불과하다.28) 이처럼 끊임없는 전투의 세계로 그려진 리니지는 현실의 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예컨대 플레이어의 캐릭터 레벨 단계, 아이템 소유, 아데나의 소유정도, 혈맹의 유무와 강약 등은 현실세계의 개인의 지위, 능력, 재산의 유무, 속해있는 조직(기업, 학교, 국가 등)과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현실을 은유한’ 게임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현실을 배우도록 함으로써 지극히 비현실적인 현실의 체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위해 다른 플레이어를 죽인다던가(PK),사기29)와 도박30)을 벌인다든가 하는 것은 분명 ‘가상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림 5> 리니지 밖의 인터넷 공간에서 아이템이 거래되는 게시판 이처럼 리니지는 현실을 은유함으로써 현실과 비슷한 경험과 체험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 제작운영사인 <NC소프트>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 게임이며, 그가 만들어 놓은 운영체계에 따라 배치된 사물과 대립하며 운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NC소프트>가 리니지의 공간을 하나의 담론으로 구조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공통의 목표 -임무이나 이벤트-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플레이어들이 특정한 텍스트 흐름에 따라 활동하도록 만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만 각각의 게임참여자들이 살아가고 관계맺고, 경쟁하고 전쟁하는 공간과 규칙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을 사회를 은유하고 있지만, 그 나름의 체계를 가진 현실이 아닌 ‘현실의 세계’, 즉 가상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에 따라 리니지는 현실의 담론체계와 대립하며 자신만의 공간, 가상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현실의 담론체계와는 달리 담론을 둘러싼 새로운 대립과 갈등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건 흔하게 ‘언어’라기보다는 ‘전쟁’같은 형상을 띠게 된다. 대상을 지배하기 위한 담론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리니지의 공간과 주체구성에 대하여: 각각의 플레이어는 현실세계와는 달리 플레이어의 의도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플레이의 공간과 캐릭터를 설정하게 된다. 또한 각각의 플레이어는 최대 3개의 캐릭터를 소유할 수 있다. 특별한 목적에 따라 플레이어는 특정한 지점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게임의 상황에 도전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현실공간에서와 같은 고정적이고 항상적인 기호는 없으며,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이질적인 기호들로 충만해 있다. 게임 참여자는 상황이 불리할 경우 접속을 끊으면 된다. 몇시간 후에 재접속하면 상황이 변해있고, 플레이어는 변화한 상황 속에서 새롭게 게임을 준비하면 된다. 이처럼 기의없는 기표들로 충만한 세계, 그런 사회에서 그 어떤 고정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담론과 대상을 둘러싼 권력관계에 대하여: 리니지의 공간에서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긴박한 상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그것은 현실세계에서와는 달리 절박하고 절대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처럼 권력이 대상을 속박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그것과는 달리 리니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권력관계는 순간적이고 유동이며 상호작용적이다. 동시에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평균 1,700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그들을 다 만나기란 불가능하고, 지속적인 움직임 속에서 고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것은 거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한 도로를 걷는 것과 같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스쳐 지나간다. 서로는 서로에 대해 관심도 없을뿐더러, 조금도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의 목표이고, 각자가 속한 조직(혈맹)일 뿐이다. 그러나 그 또한 강제로 그들을 속박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자신이 생존하기 편리한 과정으로서 혈맹에 가입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관계란 없다. 그만큼 그들의 관계는 대상에 대한 지배를 둘러싼 일시적이고 이면적이고 이질적이고 전투적인 권력관계를 갖게 된다. 셋째, 대상의 점유를 위한 전략들: 리니지의 세계에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서있는 절대적인 금기란 없다. 그것은 단지 플레이어의 레벨과 아이템, 혈맹의 가입여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 스스로의 생존법칙을 갖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존한다. 그것이 때론 비열한 게임양상으로 벌어져 ‘현피’가 되기도 하지만, 그 대부분의 경우는 어떤 규칙 하에서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전쟁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 플레이어를 죽이기도 하고(PK), 키워주기도 하고, 보호해주기도 한다. 그것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를 뿐이다. 현재 가지고 있는 위치와 관계, 상호작용에 따라 그 나름의 계약이 발생하게 되고 그 조건하에서만 계약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상을 분류하고, 기호를 기입하고, 대상을 소유하는 고유하고 항상적인 방식 -담론체계- 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항상적인 역전의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분명 리니지는 현실공간을 은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점에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을 재현하고 있고 그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상을 분절하고 인식하는 체계는 현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여전히 가상적이며, 게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오늘도 각각의 서버에 무려 1700명 이상이 접속해 있는 하나의 사회다. 그 속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고, 그 나름대로의 대상에 대한 분류체계와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지금 네트워크를 타고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리니지라는 게임을 단순히 게임으로 보지 않고, 가상사회로 보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5. 결론: 가상의 공간, 가상의 권력 어쩌면 우린 하나의 게임을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게임이 미치는 악영향 -특히 중독증- 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악영향이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어긋나면서 생겨나는 ‘증상’에 불과하다. 그건 현실세계에서는 ‘규율’되어야 할 것들이지만 가상세계에서 더 ‘자극’되어야 할 것들이다. 세계는 점차 가상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가상사회가 만들어져가고 있고, 각각의 사회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담론과 권력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의 격자방처럼 미세한 단위로 나뉘어져 있고, 그 각각의 방마다 외로운 비트들이 들어서 있다. 비트가 원래의 물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듯, 각각의 방은 이질적인 대상들과 담론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범체계와 가치체계 또한 이질적이고 유동적으로 파편화 되어 있다. 그건 너무나도 이질적인 형태여서 거기서 어떤 동질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 하나의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하나의 담론이 다른 대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고 또한 소박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각각의 미세한 단위로 분화하고 있는 담론을 생각해야 하며 그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의 형성과 소비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권력의 중심이 각각의 개인을 중심으로 미세한 단위로 분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회를 구성하는 중심이 물질적인 선험적인, 이미 주어져 있는 사회가 아닌 나라는 점이다. 곧 내가 사회를 만들고 내가 사회를 구성한다. 네트워크 사회란 그처럼 참여자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점이다. 구조에서 개인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린 아직도 여전히 하나의 규범과 가치 틀을 고집하고 있다. 다양성을 용인하기 보다 사회적 금기를 중요시하고, 다원성을 말하기보단 표준화된 사고틀을 고집하고 있다. 각각의 개성을 중시하고 창안하기 보단 아직도 공동의 목표와 공통의 담론을 중시한다. 가상공간의 문명이 다양성과 다원성에서 나아가 이질성과 복수성, 힘들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때, 현대의 권력이동이 그런 이질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볼 때, 이런 사회에서 가상공간의 문명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좀 더 유연하고 넓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 자아와 대상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각의 단위에서 그 차이를 발현하는 이질적인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본능적인 이드 -생산적인 욕망- 의 폭발로부터 새로운 계약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 계약은 ‘공동되고 통일된 목표’를 정하기 보단 각각의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 상의 위치와 관계, 상호작용 내에서 이질적인 타자들의 다자간 협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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