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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독수자 이사야 지성을 지킴에 대하여
26. At the time of prayer, we should expel from our heart the provocation of each evil thought, rebutting it in a spirit of devotion so that we do not prove to be speaking to God with our lips, while pondering wicked thoughts in our heart. God will not accept from the hesychast a prayer that is turbid and careless, for everywhere Scripture tells us to guard the soul's organs of perception. If a monk submits his will to the law of God, then his intellect will govern in accordance with this law all that is subordinate to itself. It will direct as it should all the soul's impulses, especially its incensive power and desire, for these are subordinate to it.
We have practiced virtue and done what is right, turning our desire towards God and His will, and directing our incensive power, or wrath, against the devil and sin. What then do we still lack? Inward meditation.
기도할 때에는, 마음에서 악한 생각의 도발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마음으로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만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은 부주의하고 어지러운 기도는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에서는 영혼의 감각 기관들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만일 수도자가 자기의 뜻을 하느님의 법에 복종시킨다면, 그의 지성은 자기에게 종속된 모든 것을 이 법에 따라 다스릴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모든 충동들, 특히 격분하는 힘과 갈망을 지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갈망을 하느님과 그의 뜻을 향하게 하며, 격분하는 힘이나 진노는 죄와 마귀를 향하게 하면서, 덕을 실천하고 의로운 일을 행해왔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적인 묵상입니다.
27. If some shameful thought is sown in your heart as you are sitting in your cell, watch out. Resist the evil, so that it does not gain control over you. Make every effort to call God to mind, for He is looking at you, and whatever you are thinking in your heart is plainly visible to Him. Say to your soul: 'If you are afraid of sinners like yourself seeing your sins, how much more should you be afraid of God who notes everything? 'As a result of this warning the fear of God will be revealed in your soul, and if you cleave to Him you will not be shaken by the passions; for it is written: 'They that trust in the Lord shall be as Mount Zion; he that dwells in Jerusalem shall never be shaken' (Ps.125:1. LXX).Whatever you are doing, remember that God sees all your thoughts, and then you will never sin. To Him be glory through all the ages. Amen.
만일 독방에 앉아 있을 때에 마음 속에 부끄러운 생각의 씨앗이 뿌려진다면, 경계하고 그것에 저항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력을 다해 하느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보고 계시며, 당신의 마음에 품은 모든 생각을 훤히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영혼에게 “죄인인 네가 네 죄를 보는 것이 두렵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겠느냐?”고 말하십시오. 이렇게 경고하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 안에 나타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매달린다면, 정념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시온 산 같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서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시편 125,1).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생각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범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세토록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나. St Isaiah the Solitary 사막교부들 - 지성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1번- 27번
There is some uncertainty about the identity of the author of the Twenty-Seven Texts that follow. According to St Nikodimos, St Isaiah the Solitary lived around the year 370 and was a contemporary Makarios the Great of Egypt. Most historians today consider him to be later in date. He is now usually identified with a monk who lived initially at Sketis in Egypt, and who then moved to Palestine at some date subsequent to 431, eventually dying in great old age as a recluse near Gaza on 11 August 491 (according to others, 489). Whichever date is preferred, it is evident that the author reflects the authentic spirituality of the Desert Fathers of Egypt and Palestine during the fourth and fifth centuries. St Nikodimos commends in particular his advice on the rebuttal of demonic provocations and on the need to be attentive to the conscience.
On Guarding the Intellect
Twenty-Seven Texts
1.There is among the passions an anger of the intellect, and this anger is inaccordance with nature. Without anger a man cannot attain purity:he has to feel angry with all that is sown in him by the enemy. When Job felt this anger he reviled his enemies, calling them ‘dishonourable men of no repute, lacking everything good, whom I would not consider fit to live with the dogs that guard my flocks’ (cf.Job 30:1, 4. LXX).He who wishes to acquire the anger that is in accordance with nature must uproot all self-will, until he establishes within himself the state natural to the intellect.
정념들(情念,passion) 중에서 지성의 노염은 자연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 노염이 없는 사람은 깨끗함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는 원수가 그의 내면에 뿌려놓은 것에 대해 노여움을 느껴야 합니다. 욥은 이러한 노여움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나를 비웃네, 나보다 나이 어린 자들이. 나는 그 아비들을 내 양 떼를 지키는 개들과도 앉히려 하지 않았을 터인데”(욥 31:1)라고 말하면서 원수들을 욕했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노염을 획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기심을 완전히 근절하여 내면에 지성에 어울리는 상태를 확보해야 합니다.
2. If you find yourself hating your fellow men and resist this hatred, and you see that it grows weak and withdraws, do not rejoice in your heart; for this withdrawal is a trick of the evil spirits. They are preparing a second attack worse than the first; they have left their troops behind the city and ordered them to remain there. If you go out to attack them, they will flee before you in weakness. But if your heart is then elated because you have driven them away, and you leave the city, some of them will attack you from the rear while the rest will stand their ground in front of you; and your wretched soul will be caught between them with no means of escape. The city is prayer. Resistance is rebuttal through Christ Jesus. The foundation is incensive power.
자신이 동료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 미움에 저항하여 미움이 조금씩 약해지고 사라질 때, 마음 속으로 기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한 영들의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은 처음보다 더 강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의 배후에 군대를 남겨 두고서 그곳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공격하러 나간다면, 연약한 그들은 당신 앞에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을 몰아냈다고 해서 당신이 우쭐해져서 도시를 떠난다면, 다른 군인들이 당신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동안 그들 중 일부가 배후에서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불쌍한 당신의 영혼은 도망칠 방도가 없이 앞뒤에서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시는 기도를 의미하고, 저항은 예수 그리수도를 통한 반격을 의미하고, 원수가 진을 친다는 것은 성 내는 기질을 말합니다.
3. Let us stand firm in the fear of God, rigorously practicing the virtues and not giving our conscience cause to stumble. In the fear of God let us keep our attention fixed within ourselves, until our conscience achieves its freedom. Then there will be a union between it and us, and thereafter it will be our guardian, showing us each thing that we must uproot. But if we do not obey our conscience, it will abandon us and we shall fall into the hands of our enemies, who will never let us go. This is what our Lord taught us when He said: ‘Come to an agreement with your adversary quickly while you are with him in the road, lest he hand you over to the judge, and the judge deliver you to the officer and you are cast into prison (Matt. 5:25).The conscience is called an ‘adversary’ because it opposes us when we wish to carry out the desires of our flesh; and if we do not listen to our conscience, it delivers us into the hands of our enemies.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며, 열심히 덕을 실천하여, 양심이 비틀거릴 이유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우리의 양심이 자유를 얻을 때까지 자신의 내면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양심과 우리 사이에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며, 양심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우리가 근절해야 할 것을 낱낱이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양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양심은 우리를 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원수의 수중에 떨어져서, 결코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마태 5:25)고 말씀하시면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육신의 소원을 성취하기를 원할 때 양심이 우리를 대적하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우리가 양심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양심이 우리를 원수에게 내어줄 것이기 때문에, 양심은 송사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4. If God sees that the intellect has entirely submitted to Him and puts its hope in Him alone. He strengthens it, saying: ‘Have no fear Jacob my son, my little Israel’ (Isa.41:14. LXX),and: ‘Have no fear: for I have delivered you, I have called you by My name; you are Mine. If you pass through water, I shall be with you, and the rivers will not drown you. If you go through fire, you will not be burnt, and the names will not consume you. 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who saves you’ (cf.Isa. 43:1-3. LXX).
만일 하느님께서 지성이 완전히 하느님께 복종하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소망을 두는 것을 보신다면, 하느님은 지성에게 힘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이사 41:14),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러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 43:1-3).
5. When the intellect hears these words of reassurance, it says boldly to its enemies: ‘Who would fight with me? Let him stand against me. And who would accuse me? Let him draw near to me. Behold, the Lord is my helper; who will harm me? Behold, all of you are like an old moth-eaten garment’ (cf. Isa. 50:8-9. LXX).
지성이 이렇게 안심시켜 주는 말을 들을 때, 지성은 원수들에게 담대하게 말할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보라, 그들은 모두 옷처럼 해지고 좀이 그들을 먹어 버리리라”(이사50:8~9).
6. If your heart comes to feel a natural hatred for sin, it has defeated the causes of sin and freed itself from them. Keep hell’s torments in mind; but know that your Helper is at hand. Do nothing that will grieve Him, but say to Him with tears: ‘Be merciful and deliver me, O Lord, for without Thy help I cannot escape from the hands of my enemies.’ Be attentive to your heart, and He will guard you from all evil.
당신의 마음이 죄에 대해서 본성적인 증오를 느끼게 되었다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죄의 원인들을 물리치고 그것들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항상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되, 도우시는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아십시오. 하느님을 근심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다만 눈물을 흘리면서 “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나는 원수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면, 하느님께서 당신을 모든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7. The monk should shut all the gates of his soul, that is, the senses, so that he is not lured astray. When the intellect sees that it is not dominated by anything, it prepares itself for immortality, gathering its senses together and forming them into one body.
수도자는 영혼의 문, 다시 말해서 감각들을 모두 닫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유혹을 받아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 무엇에도 지배되지 않는 지성은 불멸을 위해 준비하면서 그 감각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하나의 몸을 형성합니다.
8. If your intellect is freed from all hope in things visible, this is a sign that sin has died in you.
당신의 지성이 눈에 보이는 사물에 대한 모든 희망에서 해방되었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있는 죄가 죽었다는 표식입니다.
9. If your intellect is freed, the breach between it and God is eliminated.
만약 당신의 지성이 해방되었다면, 지성과 하느님 사이의 불화가 제거된 것입니다.
10. If your intellect is freed from all its enemies and attains the Sabbath rest, it lives in another age, a new age in which it contemplates things new and undecaying. For ‘wherever the dead body is, there will the eagles be gathered together’ (Matt. 24: 28).
만일 당신의 지성이 모든 원수에게서 해방되고 안식을 획득한다면, 그것은 썩지 않는 새로운 사물들을 관상하는 새로운 시대 안에서 살게 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든다”(마태 24,28).
11.The demons cunningly withdraw for a time in the hope that we will cease to guard our heart, thinking we have now attained peace; then they suddenly attack our unhappy soul and seize it like a sparrow. Gaining possession of it, they drag it down mercilessly into all kinds of sin, worse than those which we have already committed and for which we have asked forgiveness. Let us stand, therefore, with fear of God and keep guard over our heart, practicing the virtues which check the wickedness of our enemies.
교활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획득하였다고 생각하고서 마음을 지키는 일을 중단하게 만들려고 얼마 동안 우리에게서 떠나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쌍한 참새 같은 우리의 영혼을 공격하여 붙잡아 무자비하게 온갖 종류의 죄 – 이미 범했으나 용서를 구한 죄보다 훨씬 악한 죄 – 속으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서 항상 마음을 지키며, 원수의 사악함을 억제해 주는 덕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12. Our teacher Jesus Christ, out of pity for mankind and knowing the utter mercilessness of the demons, severely commands us: ‘Be ready at every hour, for you do not know when the thief will come; do not let him come and find you asleep’ (cf.Matt. 24:42-43). He also says: ‘Take heed, lest your hearts be overwhelmed with debauchery and drunkenness and the cares of this life, and the hour come upon you unawares’ (cf. Luke 21:34). Stand guard, then, over your heart and keep a watch on your senses; and if the remembrance of God dwells peaceably within you, you will catch the thieves when they try to deprive you of it. When a man has an exact knowledge about the nature of thoughts, he recognizes those which are about to enter and defile him, troubling the intellect with distractions and making it lazy. Those who recognize these evil thoughts for what they are remain undisturbed and continue in prayer to God.
우리의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며 마귀가 얼마나 무자비한지 잘 아시기 때문에, 엄격하게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명령하시고(마태 24,4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며 감각들을 경계하십시오. 만일 하느님에 대한 기억이 당신의 내면에 평안히 거한다면, 그것을 빼앗으러 들어오는 도둑을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들의 본성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내면에 들어와서 자기를 더럽히며 정신을 산만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생각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들을 알아채는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에 동요되지 않고 계속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13.Unless a man hates all the activity of this world, he cannot worship God. What then is meant by the worship of God? It means that we have nothing extraneous in our intellect when we are praying to Him: neither sensual pleasure as we bless Him, nor malice as we sing His praise, nor hatred as we exalt Him, nor jealousy to hinder us as we speak to Him and call Him to mind. For all these things are full of darkness; they are a wall imprisoning our wretched soul, and if the soul has them in itself it cannot worship God with purity. They obstruct its ascent and prevent it from meeting God; they hinder it from blessing Him inwardly and praying to Him with sweetness of heart, and so receiving His illumination. As a result the intellect is always shrouded in darkness and cannot advance in holiness, because it does not make the effort to uproot these thoughts by means of spiritual knowledge.
이 세상의 모든 활동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의 지성 안에 불필요한 것을 전혀 소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욕적인 즐거움을 가지고 하느님을 찬양해서는 안 되며, 악한 생각을 가지고 하느님을 찬미해서는 안되며, 미움을 가지고 하느님을 높여서는 안되며, 질투심 때문에 하느님을 기억하거나 기도하는 일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어두움으로 가득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불쌍한 우리의 영혼을 가두어 놓는 성벽입니다. 내면에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영혼은 순수하게 하느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영혼의 상승과 하느님을 만나는 일을 방해합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의 지성은 항상 어두움에 덮여 있으며, 신령한 지식에 의해서 이러한 생각들을 근절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함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14. When the intellect rescues the soul’s senses from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imbues them with dispassion, the passions shamelessly attack the soul, trying to hold its senses fast in sin; but if the intellect then continually calls upon God in secret, He, seeing all this, will send His help and destroy all the passions at once.
지성이 영혼의 감각들을 육체의 욕망들로부터 구하여 무정념을 불어넣어 주면, 정념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영혼을 공격하여 영혼의 감각들을 죄 속에 굳게 붙잡아 두려 합니다. 그 때 지성이 은밀하게 계속 하느님을 의지한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영혼을 도우시고 모든 정념을 단번에 멸하실 것입니다.
15. I entreat you not to leave your heart unguarded, so long as you are in the body. Just as a farmer cannot feel confident about the crop growing in his fields, because he does not know what will happen to it before it is stored away in his granary, so a man should not leave his heart unguarded so long as he still has breath in his nostrils. Up to his last breath he cannot know what passion will attack him; so long as he breathes, therefore, he must not leave his heart unguarded, but should at every moment pray to God for His help and mercy.
육체 안에 있는 동안에는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여 창고에 들이기 전까지는, 밭에서 자라는 곡식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가 코로 숨을 쉬며 사는 동안에는 결코 마음을 지키지 않고 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정념이 우리를 공격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버려두지 말고, 순간 순간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16. He who receives no help when at war should feel no confidence when at peace.
전쟁 중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평화로울 때에 자신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17. When a man severs himself from evil, he gains an exact understanding of all the sins he has committed against God; for he does not see his sins unless he severs himself from them with a feeling of revulsion. Those who have reached this level pray to God with tears, and are filled with shame when they recall their evil love of the passions. Let us therefore pursue the spiritual way with all our strength, and God in His great mercy will help us. And if we have not guarded our hearts as our fathers guarded theirs, at least in obedience to God let us do all we can to keep our bodies sinless, trusting that at this time of spiritual dearth He will grant mercy to us together with His saints.
악과의 관계를 버리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께 범한 모든 죄를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혐오감을 느끼면서 자기의 죄와 결별하지 않는 한,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합니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께 기도하며, 자신이 정념들을 사랑하던 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힘을 다해 영적인 길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자식을 지키듯이 자기 마음을 지키지는 못해도, 최소한 하느님께 복종하면서 몸을 죄 없이 보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며, 이 영적 기근 속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성인들과 우리에게 자비를 주실 것이라고 신뢰해야 합니다.
18. Once you have begun to seek God with true devotion and with all your heart, then you cannot possibly imagine that you already conform to His will. So long as your conscience reproves you for anything that you have done contrary to nature, you are not yet free: the reproof means that you are still under trial and have not yet been acquitted. But if you find when you are praying that nothing at all accuses you of evil, then you are free and by God’s will have entered into His peace.
If you see growing within yourself a good crop, no longer choked by the tares of the evil one; if you find that the demons have reluctantly withdrawn, convinced that it is no use making further attacks on your senses; if 'a cloud overshadows your tent (cf. Exod.40:34), and 'the sun does not bum you by day, nor the moon by night' (Ps. 121:6);if you find yourself equipped to pitch your tent and keep it as God wishes - if all this has happened, then you have gained the victory with God's help, and henceforward He will Himself overshadow your tent, for it is His.
So long as the contest continues, a man is full of fear and trembling, wondering whether he will win today or be defeated, whether he will win tomorrow or be defeated: the struggle and stress constrict his heart. But when he has attained dispassion, the contest comes to an end; he receives the prize of victory and has no further anxiety about the three that were divided, for now through God they have made peace with one another. These three are the soul, the body and the spirit. When they become one through the energy of the Holy Spirit, they cannot again be separated. Do not think, then, that you have died to sin, so long as you suffer violence, whether waking or sleeping, at the hands of your opponents. For while a man is still competing in the arena, he cannot be sure of victory.
마음을 다하여 참 경건을 가지고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미 하느님의 뜻에 순응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본성을 거슬러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양심이 당신을 책망하는 한, 당신은 아직 자유롭지 못합니다. 양심이 당신을 책망한다는 것은 곧 당신이 아직도 무죄 방면을 받지 못한 채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만일 기도하는 동안에 당신을 악하다고 고발하는 것이 없으면, 당신은 자유이며, 하느님의 뜻에 의해 하느님의 평화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내면에서 좋은 곡식이 악한 가라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잘 자라는 것을 보면, 만일 마귀들이 더 이상 당신의 감각을 공격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퇴각한 것을 발견한다면, 만일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탈출 40,34),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는다면”(시편 121,6), 만일 당신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장막을 세우고 보존할 준비가 되었음을 발견한다면 – 이 모든 일이 이미 발생했다면, 당신은 이미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것이며, 이제부터 하느님께서 당신의 장막을 덮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는 두려워 떨면서, 오늘 승리할 것인지 패배할 것인지, 내일 승리할 것인지 패배할 것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싸움과 스트레스가 그의 마음을 조입니다. 그러나 그가 무정념을 획득하면, 싸움은 종식됩니다. 그는 승리의 상을 받으며, 나뉘어진 세 가지에 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서로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세 가지란 영과 혼과 몸입니다. 그것들이 성령의 힘으로 하나가 되면, 다시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에 대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한, 자신이 죄에 대해 죽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경기장에서 싸우는 동안에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법입니다.
19. When the intellect grows strong, it makes ready to pursue the love which quenches all bodily passions and which prevents anything contrary to nature from gaining control over the heart. Then the intellect, struggling against what is contrary to nature, separates this from what is in accordance with nature.
성장하여 튼튼해진 지성은, 모든 육적인 정념을 소멸시키며 본성을 거슬리는 것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 주는 사랑을 추구할 준비가 됩니다. 그 때 지성은 본성에 일치하는 것과 어긋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을 분리하며, 본성에 거스는 것과 맞서 싸웁니다.
20. Examine yourself daily in the sight of God, and discover which of the passions is in your heart. Cast it out, and so escape His judgment.
매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여, 마음 속에 있는 정념들을 찾아 내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을 쫓아내어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십시오.
21. Be attentive to your heart and watch your enemies, for they are cunning in their malice. In your heart be persuaded of this: it is impossible for a man to achieve good through evil means. That is why our Savior told us to be watchful, saying: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that leads to life, and few there are that find it (Matt. 7:14).
원수는 교활하고 악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원수를 경계하십시오. 악한 수단을 사용하여 선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4)고 말씀하십니다.
22. Be attentive to yourself, so that nothing destructive can separate you from the love of God. Guard your heart, and do not grow listless and say: 'How shall I guard it, since I am a sinner?' For when a man abandons his sins and returns to God, his repentance regenerates him and renews him entirely.
당신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 파괴적인 것이 당신을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지 못하게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지키며, 부주의하게 “죄인인 내가 어떻게 마음을 지키겠는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죄를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갈 때, 그의 회개는 그를 거듭나게 하고 완전히 새롭게 해줍니다.
23. Holy Scripture speaks everywhere about the guarding of the heart, in both the Old and the New Testaments. David says in the Psalms: 'O sons of men, how long will you be heavy of heart?' (Ps.4:2. LXX), and again: 'Their heart is vain' (Ps.5:9. LXX); and of those who think futile thoughts, he says: 'For he has said in his heart, I shall not be moved'(Ps. 10:6), and: 'He has said in his heart, God has forgotten'(Ps. 10:11).
A monk should consider the purpose of each text in Scripture, to whom it speaks and on what occasions. He should persevere continually in the ascetic struggle and be on his guard against the provocations of the enemy. Like a pilot steering a boat through the waves, he should hold to his course, guided by grace. Keeping his attention fixed within himself, he should commune with God in stillness, guarding his thoughts from distraction and his intellect from curiosity.
신∙구약 성경은 마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들아, 언제까지 내 명예를 짓밟고 헛된 것을 사랑하며 거짓을 찾아다니려 하느냐?”(시편4,2); “속에는 흉계만이 들어 있으며”(시편 5,10) 또 무익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나는 영훤히 흔들리지 않으며’”(시편 10,6): “악인은 제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하느님은 잊고 있다’”(시편 10,11)
수도자는 각각의 성경 본문이 기록된 목적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본문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이야기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인내하며 끊임없이 수덕을 위해 노력하며, 깨어 원수의 도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는 파도를 헤치고 배를 저어가는 도선사(導船士)처럼, 은총의 인도하심을 받아 항로를 고수해야 합니다. 그는 내면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생각을 분심으로부터 지키고 지성을 호기심으로부터 지키면서 고요한 가운데 하느님과 교제합니다.
24. In storms and squalls we need a pilot, and in this present life we need prayer; for we are susceptible to the provocations of our thoughts, both good and bad. If our thought is full of devotion and love of God, it rules over the passions. As hesychasts, we should discriminate between virtue and vice with discretion and watchfulness; and we should know which virtues to practice when in the presence of our brethren and elders and which to pursue when alone. We should know which virtue comes first, and which second or third; which passions attack the soul and which the body, and also which virtues concern the soul and which the body. We should know which virtue pride uses in order to assault the intellect, and which virtue leads to vainglory, wrath or gluttony. For we ought to purify our thoughts from 'all the self-esteem that exalts itself against the knowledge of God'(2 Cor. 10:5).
폭풍우 속을 항해할 때에 안내인이 필요하듯이, 현세에서 우리에게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한 생각과 악한 생각의 도전을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에 경건과 하느님 사랑이 가득하다면, 그 생각이 정념을 지배할 것입니다. 헤시카스트(hesychast)인 우리는 조심하여 신중하게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윗 사람들이나 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에 실천해야 할 덕은 무엇인지, 홀로 있을 때에 실천히야 할 덕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덕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공격하는 정념은 무엇이며, 몸을 공격하는 정념은 무엇인지, 영혼과 관련된 덕은 무엇이며 몸과 관련되 덕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교만이 지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덕은 무엇인지, 허영심과 진노, 또는 탐식으로 인도하는 덕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고 일어서는 것”(2코린 10,5)으로부터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25.The first virtue is detachment, that is, death in relation to every person or thing. This produces the desire for God, and this in turn gives rise to the anger that is in accordance with nature, and that flares up against all the tricks of the enemy. Then the fear ofGod will establish itself within us, and through this fear love will be made manifest.
첫 번째 덕은 이탈(detachment)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 안에서의 죽음입니다. 이탈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만들어 내며,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자연과 일치하는 노염을 일으키고, 이 노염은 모든 원수의 책략에 맞서 타오릅니다. 그 때에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내면에 자리잡으며, 그 두려움을 통해서 사랑이 드러날 것입니다.
26. At the time of prayer, we should expel from our heart the provocation of each evil thought, rebutting it in a spirit of devotion so that we do not prove to be speaking to God with our lips, while pondering wicked thoughts in our heart. God will not accept from the hesychast a prayer that is turbid and careless, for everywhere Scripture tells us to guard the soul's organs of perception. If a monk submits his will to the law of God, then his intellect will govern in accordance with this law all that is subordinate to itself. It will direct as it should all the soul's impulses, especially its incensive power and desire, for these are subordinate to it.
We have practiced virtue and done what is right, turning our desire towards God and His will, and directing our incensive power, or wrath, against the devil and sin. What then do we still lack? Inward meditation.
기도할 때에는, 마음에서 악한 생각의 도발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마음으로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만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은 부주의하고 어지러운 기도는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에서는 영혼의 감각 기관들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만일 수도자가 자기의 뜻을 하느님의 법에 복종시킨다면, 그의 지성은 자기에게 종속된 모든 것을 이 법에 따라 다스릴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모든 충동들, 특히 격분하는 힘과 갈망을 지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갈망을 하느님과 그의 뜻을 향하게 하며, 격분하는 힘이나 진노는 죄와 마귀를 향하게 하면서, 덕을 실천하고 의로운 일을 행해왔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적인 묵상입니다.
27. If some shameful thought is sown in your heart as you are sitting in your cell, watch out. Resist the evil, so that it does not gain control over you. Make every effort to call God to mind, for He is looking at you, and whatever you are thinking in your heart is plainly visible to Him. Say to your soul: 'If you are afraid of sinners like yourself seeing your sins, how much more should you be afraid of God who notes everything? 'As a result of this warning the fear of God will be revealed in your soul, and if you cleave to Him you will not be shaken by the passions; for it is written: 'They that trust in the Lord shall be as Mount Zion; he that dwells in Jerusalem shall never be shaken' (Ps.125:1. LXX).Whatever you are doing, remember that God sees all your thoughts, and then you will never sin. To Him be glory through all the ages. Amen.
만일 독방에 앉아 있을 때에 마음 속에 부끄러운 생각의 씨앗이 뿌려진다면, 경계하고 그것에 저항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력을 다해 하느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보고 계시며, 당신의 마음에 품은 모든 생각을 훤히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영혼에게 “죄인인 네가 네 죄를 보는 것이 두렵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을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겠느냐?”고 말하십시오. 이렇게 경고하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영혼 안에 나타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께 매달린다면, 정념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시온 산 같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서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시편 125,1).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생각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범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세토록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다. Evagrios the Solitary Texts on Discrimination in respect of Passions and Thoughts (Excerpts from The Philokalia) (345/6-399)
Texts on Discrimination in respect of Passions and Thoughts
1. Of the demons opposing us in the practice of the ascetic life, there are three groups who fight in the front line: those entrusted with the appetites of gluttony, those who suggest avaricious thoughts, and those who incite us to seek the esteem of men. All the other demons follow behind and in their turn attack those already wounded by the first three groups. For one does not fall into the power of the demon of unchastity, unless one has first fallen because of gluttony; nor is one's anger aroused unless one is fighting for food or material possessions or the esteem of men. And one does not escape the demon of dejection, unless one no longer experiences suffering when deprived of these things. Nor will one escape pride, the first offspring of the devil, unless one has banished avarice, the root of all evil, since poverty makes a man humble, according to Solomon (cf. Prov. 10:4. LXX). In short, no one can fall into the power of any demon, unless he has been wounded by those of the front line. That is why the devil suggested these three thoughts to the Savior: first he exhorted Him to turn stones into bread; then he promised Him the whole world, if Christ would fall down and worship him; and thirdly he said that, if our Lord would listen to him, He would be glorified and suffer nothing in falling from the pinnacle of the temple. But our Lord, having shown Himself superior to these temptations, commanded the devil to 'get behind Him'. In this way He teaches us that it is not possible to drive away the devil, unless we scornfully reject these three thoughts (cf. Matt. 4:1-10).
2. All thoughts inspired by the demons produce within us conceptions of sensory objects; and in this way the intellect, with such conceptions imprinted on it, bears the forms of these objects within itself. So, by recognizing the object presented to it, the intellect knows which demon is approaching. For example, if the face of a person who has done me harm or insulted me appears in my mind, I recognize the demon of rancor approaching. If there is a suggestion of material things or of esteem, again it will be clear which demon is troubling me. In the same way with other thoughts, we can infer from the object appearing in the mind which demon is close at hand, suggesting that object to us. I do not say that all thoughts of such things come from the demons; for when the intellect is activated by man it is its nature to bring forth the images of past events. But all thoughts producing anger or desire in a way that is contrary to nature are caused by demons. For through demonic agitation the intellect mentally commits adultery and becomes incensed. Thus it cannot receive the vision of God, who sets us in order; for the divine splendor only appears to the intellect during prayer, when the intellect is free from conceptions of sensory objects.
3. Man cannot drive away impassioned thoughts unless he watches over his desire and incensive power. He destroys desire through fasting, vigils and sleeping on the ground, and he tames his incensive power through longsuffering, forbearance, forgiveness and acts of compassion. For with these two passions are connected almost all the demonic thoughts which lead the intellect to disaster and perdition. It is impossible to overcome these passions unless we can rise above attachment to food and possessions, to self-esteem and even to our very body, because it is through the body that the demons often attempt to attack us. It is essential, then, to imitate people who are in danger at sea and throw things overboard because of the violence of the winds and the threatening waves. But here we must be very careful in case we cast things overboard just to be seen doing so by men. For then we shall get the reward we want; but we shall suffer another shipwreck, worse than the first, blown off our course by the contrary wind of the demon of self-esteem. That is why our Lord, instructing the intellect, our helmsman, says in the Gospels: 'Take heed that you do not give alms in front of others, to be seen by them; for unless you take heed,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Again, He says: 'When you pray, you must not be as the hypocrites are: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synagogues and at street-corners, so as to be seen by men. Truly I say to you, they get the reward they want. . . . Moreover when you fast, do not put on a gloomy face, like the hypocrites;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so that they may be seen by men to be fasting. Truly I say to you, they get the reward they want' (cf. Matt. 6: 1-18). Observe how the Physician of souls here corrects our incensive power through acts of compassion, purifies the intellect through prayer, and through fasting withers desire. By means of these virtues the new Adam is formed, made again according to the image of his Creator - an Adam in whom, thanks to dispassion,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and, thanks to singleness of faith, there is 'neither Greek nor Jew,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barbarian, Scythian, bond n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n all' (Gal. 3:28; Col. 3: 10:11).
4. We shall now enquire how, in the fantasies that occur during sleep, the demons imprint shapes and forms on our intellect. Normally the intellect receives these shapes and forms either through the eyes when it is seeing, or through the ears when it is hearing, or through some other sense, or else through the memory, which stirs up and imprints on the intellect things which it has experienced through the body. Now it seems to me that in our sleep, when the activity of our bodily senses is suspended, it is by arousing the memory that the demons make this imprint. But, in that case, how do the demons arouse the memory? Is it through the passions? Clearly this is so, for those in a state of purity and dispassion no longer experience demonic fantasies in sleep. There is also an activity of the memory that is not demonic: it is caused by ourselves or by the angelic powers, and through it we may meet with saints and delight in their company. We should notice in addition that during sleep the memory stirs up, without the body's participation, those very images which the soul has received in association with the body. This is clear from the fact that we often experience such images during sleep, when the body is at rest.
Just as it is possible to think of water both while thirsty and while not thirsty, so it is possible to think of gold with greed and without greed. The same applies to other things. Thus if we can discriminate in this way between one kind of fantasy and another, we can then recognize the artfulness of the demons. We should be aware, too, that the demons also use external things to produce fantasies, such as the sound of waves heard at sea.
5. When our incensive power is aroused in a way contrary to nature, it greatly furthers the aim of the demons and is an ally in all their evil designs. Day and night, therefore, they are always trying to provoke it. And when they see it tethered by gentleness, they at once try to set it free on some seemingly just pretext; in this way, when it is violently aroused, they can use it for their shameful purposes. So it must not be aroused either for just or for unjust reasons; and we must not hand a dangerous sword to those too readily incensed to wrath, for it often happens that people become excessively worked up for quite trivial reasons. Tell me, why do you rush into battle so quickly, if you are really above caring about food, possessions and glory? Why keep a watchdog if you have renounced everything? If you do, and it barks and attacks other men, it is clear that there are still some possessions for it to guard. But since I know that wrath is destructive of pure prayer, the fact that you cannot control it shows how far you are from such prayer. I am also surprised that you have forgotten the saints: David who exclaims, 'Cease from anger, and put aside your wrath’ (Ps. 37:8. LXX); and Ecclesiastes who urges us, 'Remove wrath from your heart, and put away evil from your flesh' (Eccles. 11:10. LXX); while the Apostle commands that always and everywhere men should 'lift up holy hands, without anger and without quarrelling’ (1 Tim. 2:8). And do we not learn the same from the mysterious and ancient custom of putting dogs out of the house during prayer? This indicates that there should be no wrath in those who pray. 'Their wine is the wrath of serpents' (Deut. 32:33. LXX); that is why the Nazarenes abstained from wine.
It is needless to insist that we should not worry about clothes or food. The Savior Himself forbids this in the Gospels: 'Do not worry about what to eat or drink, or about what to wear' (cf. Matt. 6:25). Such anxiety is a mark of the Gentiles and unbelievers, who reject the providence of the Lord and deny the Creator. An attitude of this kind is entirely wrong for Christians who believe that even two sparrows which are sold for a farthing are under the care of the holy angels (cf. Matt. 10: 29). The demons, however, after arousing impure thoughts, go on to suggest worries of this kind, so that 'Jesus conveys Himself away', because of the multitude of concerns in our mind (cf. John 5:13). The divine word can bear no fruit, being choked by our cares. Let us, then, renounce these cares, and throw them down before the Lord, being content with what we have at the moment; and living in poverty and rags, let us day by day rid ourselves of all that fills us with self-esteem. If anyone thinks it shameful to live in rags, he should remember St Paul, who 'in cold and nakedness' patiently awaited the 'crown of righteousness' (2 Cor. 11:27; 2 Tim. 4:8). The Apostle likened this world to a contest in an arena (cf. 1 Cor. 9:24); how then can someone clothed with anxious thoughts run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Phil. 3:14), or 'wrestle against principalities, against powers, against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world' (Eph. 6:12)? I do not see how this is possible; for just as a runner is obstructed and weighed down by clothing, so too is the intellect by anxious thoughts - if indeed the saying is true that the intellect is attached to its own treasure; for it is said,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Matt. 6:21).
6. Sometimes thoughts are cut off, and sometimes they do the cutting off. Evil thoughts cut off good thoughts, and in turn are cut off by good thoughts. The Holy Spirit therefore notes to which thought we give priority and condemns or approves us accordingly. What I mean is something like this: the thought occurs to me to give hospitality and it is for the Lord's sake; but when the tempter attacks, this thought is cut off and in its place he suggests giving hospitality for the sake of display. Again, the thought comes to me of giving hospitality so as to appear hospitable in the eyes of others. But this thought in its turn is cut off when a better thought comes, which leads me to practice this virtue for the Lord's sake and not so as to gain esteem from men.
7. We have learnt, after much observation, to recognize the difference between angelic thoughts, human thoughts, and thoughts that come from demons. Angelic thought is concerned with the true nature of things and with searching out their spiritual essences. For example, why was gold created and scattered like sand in the lower regions of the earth, to be found only with much toil and effort? And how, when found, is it washed in water and committed to the fire, and then put into the hands of craftsmen who fashion it into the candlestick of the tabernacle and the censers and the vessels (cf. Exod. 25:22-39) from which, by the grace of our Savior, the king of Babylon no longer drinks (cf. Dan. 5:2, 3)? A man such as Cleopas brings a heart burning with these mysteries (cf. Luke 24:32). Demonic thought, on the other hand, neither knows nor can know such things. It can only shamelessly suggest the acquisition of physical gold, looking forward to the wealth and glory that will come from this. Finally, human thought neither seeks to acquire gold nor is concerned to know what it symbolizes, but brings before the mind simply the image of gold, without passion or greed. The same principle applies to other things as well.
8. There is a demon, known as the deluder, who visits the brethren especially at dawn, and leads the intellect about from city to city,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house to house, pretending that no passions are aroused through such visits; but then the intellect goes on to meet and talk with old acquaintances at greater length, and so allows its own state to be corrupted by those it encounters. Little by little it falls away from the knowledge of God and holiness, and forgets its calling. Therefore the solitary must watch this demon, noting where he comes from and where he ends up; for this demon does not make this long circuit without purpose and at random, but because he wishes to corrupt the state of the solitary, so that his intellect, over-excited by all this wandering, and intoxicated by its many meetings, may immediately fall prey to the demons of unchastity, anger or dejection - the demons that above all others destroy its inherent brightness.
But if we really want to understand the cunning of this demon, we should not be hasty in speaking to him, or tell others what is taking place, how he is compelling us to make these visits in our mind and how he is gradually driving the intellect to its death - for then he will flee from us, as he cannot bear to be seen doing this; and so we shall not grasp any of the things we are anxious to learn. But, instead, we should allow him one more day, or even two, to play out his role, so that we can learn about his deceitfulness in detail; then, mentally rebuking him, we put him to flight. But because during temptation the intellect is clouded and does not see exactly what is happening, do as follows after the demon has withdrawn. Sit down and recall in solitude the things that have happened: where you started and where you went, in what place you were seized by the spirit of unchastity, dejection or anger and how it all happened. Examine these things closely and commit them to memory, so that you will then be ready to expose the demon when he next approaches you. Try to become conscious of the weak spot in yourself which he hid from you, and you will not follow him again. If you wish to enrage him, expose him at once when he reappears, and tell him just where you went first, and where next, and so on. For he becomes very angry and cannot bear the disgrace. And the proof that you spoke to him effectively is that the thoughts he suggested leave you. For he cannot remain in action when he is openly exposed. The defeat of this demon is followed by heavy sleepiness and deadness, together with a feeling of great coldness in the eyelids, countless yawnings, and heaviness in the shoulders. But if you pray intensely all this is dispersed by the Holy Spirit.
9. Hatred against the demons contributes greatly to our salvation and helps our growth in holiness. But we do not of ourselves have the power to nourish this hatred into a strong plant, because the pleasure-loving spirits restrict it and encourage the soul again to indulge in its old habitual loves. But this indulgence - or rather this gangrene that is so hard to cure - the Physician of souls heals by abandoning us. For He permits us to undergo some fearful suffering night and day, and then the soul returns again to its original hatred, and learns like David to say to the Lord: 'I hate them with perfect hatred: I count them my enemies' (Ps. 139: 22). For a man hates his enemies with perfect hatred when he sins neither in act nor in thought - which is a sign of complete dispassion.
10. Now what am I to say about the demon who makes the soul obtuse? For I am afraid to write about him: how, at his approach, the soul departs from its own proper state and strips itself of reverence and the fear of God, no longer regarding sin as sin, or wickedness as wickedness; it looks on judgment and the eternal punishment of hell as mere words; it laughs at the fire which causes the earth to tremble; and, while supposedly confessing God, it has no understanding of His commandments. You may beat your breast as such a soul draws near to sin, but it takes no notice. You recite from the Scripture, yet it is wholly indifferent and will not hear. You point out its shame and disgrace among men, and it ignores you, like a pig that closes its eyes and charges through a fence. This demon gets into the soul by way of long-continuing thoughts of self-esteem; and unless 'those days are shortened, no flesh will be saved' (Matt. 24:22).
This is one of those demons that seldom approach brethren living in a community. The reason is clear: when people round us fall into misfortune, or are afflicted by illness, or are suffering in prison, or meet sudden death, this demon is driven out; for the soul has only to experience even a little compunction or compassion and the callousness caused by the demon is dissolved. We solitaries lack these things, because we live in the wilderness and sickness is rare among us. It was to banish this demon especially that the Lord enjoined us in the Gospels to call on the sick and visit those in prison. For 'I was sick,' He says, 'and you visited Me' (Matt. 25:36).
But you should know this: if an anchorite falls in with this demon, yet does not admit unchaste thoughts or leave his cell out of listlessness, this means he has received the patience and self-restraint that come from heaven, and is blessed with dispassion. Those, on the other hand, who profess to practice godliness, yet choose to have dealings with people of the world, should be on their guard against this demon. I feel ashamed to say or write more about him.
11. All the demons teach the soul to love pleasure; only the demon of dejection refrains from doing this, since he corrupts the thoughts of those he enters by cutting off every pleasure of the soul and drying it up through dejection, for 'the bones of the dejected are dried up' (Prov. 17:22. LXX). Now if this demon attacks only to a moderate degree, he makes the anchorite more resolute; for he encourages him to seek nothing worldly and to shun all pleasures. But when the demon remains for longer, he encourages the soul to give up, or forces it to run away. Even Job was tormented by this demon, and it was because of this that he said: '0 that I might lay hands upon myself, or at least ask someone else to do this for me' (Job 30:24. LXX).
The symbol of this demon is the viper. When used in moderation for man's good, its poison is an antidote against that of other venomous creatures, but when taken in excess it kills whoever takes it. It was to this demon that Paul delivered the man at Corinth who had fallen into sin. That is why he quickly wrote again to the Corinthians saying: 'Confirm your love towards him . . . lest perhaps he should be swallowed up with too great dejection' (2 Cor. 2:7-8). He knew that this spirit, in troubling men, can also bring about true repentanc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St John the Baptist gave the name 'progeny of vipers' to those who were goaded by this spirit to seek refuge in God, saying: 'Who has warned you to flee from the anger to come? Bring forth fruits, then, that testify to your repentance; and do not think that you can justsay within yourselves. 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Matt. 3:7-9). But if a man imitates Abraham and leaves his country and kindred (cf. Gen. 12:1), he thereby becomes stronger than this demon.
12. He who has mastery over his incensive power has mastery also over the demons. But anyone who is a slave to it is a stranger to the monastic life and to the ways of our Savior, for as David said of the Lord: 'He will teach the gentle His ways' (Ps. 25:9).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is hard for the demon to catch, for it shelters in the land of gentleness. There is scarcely any other virtue which the demons fear as much as gentleness. Moses possessed this virtue, for he was called 'very gentle, above all men' (Num. 12:3). And David showed that it makes men worthy to be remembered by God when he said: 'Lord, remember David and all his gentleness' (Ps. 132:1. LXX). And the Savior Himself also enjoined us to imitate Him in His gentleness, saying: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Matt. 11:29). Now if a man abstains from food and drink, but becomes incensed to wrath because of evil thoughts, he is like a ship sailing the open sea with a demon for pilot. So we must keep this watchdog under careful control, training him to destroy only the wolves and not to devour the sheep, and to show the greatest gentleness towards all men.
13. In the whole range of evil thoughts, none is richer in resources than self-esteem; for it is to be found almost everywhere, and like some cunning traitor in a city it opens the gates to all the demons. So it greatly debases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filling it with many words and notions, and polluting the prayers through which he is saying anything that contributes to the sense of your own importance.
14. When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attains some small degree of dispassion, it mounts the horse of self-esteem and immediately rides off into cities, taking its fill of the lavish praise accorded to its repute. But by God's providence the spirit of unchastity now confronts it and shuts it up in a sty of dissipation. This is to teach it to stay in bed until it is completely recovered and not to act like disobedient patients who, before they are fully cured of their disease, start taking walks and baths and so fall sick again. Let us sit still and keep our attention fixed within ourselves, so that we advance in holiness and resist vice more strongly. Awakened in this way to spiritual knowledge, we shall acquire contemplative insight into many things; and ascending still higher, we shall receive a clearer vision of the light of our Savior.
15. I cannot write about all the villainies of the demons; and I feel ashamed to speak about them at length and in detail, for fear of harming the more simple-minded among my readers. But let me tell you about the cunning of the demon of unchastity. When a man has acquired dispassion in the appetitive part of his soul and shameful thoughts cool down within him, this demon at once suggests images of men and women playing with one another, and makes the solitary a spectator of shameful acts and gestures. But this temptation need not be permanent; for intense prayer, a very frugal diet, together with vigils and the development of spiritual contemplation, drive it away like a light cloud. There are times when this cunning demon even touches the flesh, inflaming it to uncontrolled desire; and it devises endless other tricks which need not be described.
Our incensive power is also a good defense against this demon. When it is directed against evil thoughts of this kind, such power fills the demon with fear and destroys his designs. And this is the meaning of the statement: 'Be angry, and do not sin' (Ps. 4:4). Such anger is a useful medicine for the soul at times of temptation.
The demon of anger employs tactics resembling those of the demon of unchastity. For he suggests images of our parents, friends or kinsmen being gratuitously insulted; and in this way he excites our incensive power, making us say or do something vicious to those who appear in our minds. We must be on our guard against these fantasies and expel them quickly from our mind, for if we dally with them, they will prove a blazing firebrand to us during prayer. People prone to anger are especially liable to fall into these temptations; and if they do, then they are far from pure prayer and from the knowledge of our Savior Jesus Christ.
16. As sheep to a good shepherd, the Lord has given to man intellections of this present world; for it is written: 'He has given intellection to the heart of every man' (cf. Heb. 10:16). To help man He has given him incensive power and desire, so that with the first he may drive away wolflike intellections, while with the second he may lovingly tend the sheep, even though he is often exposed to rains and winds. In addition, God has given man the law, so that he may shepherd the sheep; He has given him green pastures and refreshing water (cf. Ps. 23:2), a psaltery and harp, a rod and staff. In this way he gathers hay from the mountains, and is fed and clothed from his Hock; for it is written, 'Does anyone feed a Hock and not drink its milk?' (1 Cor. 9:7). Therefore the solitary ought to guard this Hock night and day, making sure that none of the lambs is caught by wild beasts or falls into the hands of thieves. Should this happen in some valley, he must at once snatch the creature from the mouth of the lion or the bear (cf. 1 Sam. 17:35).
What does it mean for the lambs to be caught by wild beasts? It means that when we think about our brother we feed on hatred; when we think about a woman we are moved with shameful lust; when we think about gold and silver we are filled with greed; and likewise when we think about gifts received from God, our mind is gorged with self-esteem. The same happens in the case of other intellections if they are seized by the passions.
We must not only guard this flock by day, but also keep watch at night; for by having fantasies of shameful and evil things we may lose some of the sheep entrusted to us. And this is the meaning of Jacob's words: 'I did not bring you a sheep which was caught by wild beasts; I made good of myself the thefts of the day and the thefts of the night. I was parched with heat by day, and chilled with frost by night, and sleep departed from my eyes' (Gen. 31:39-40. LXX).
If a certain listlessness overtakes us as a result of our efforts, we should climb a little up the rock of spiritual knowledge and play on the harp, plucking the strings with the skills of such knowledge. Let us pasture our sheep below Mount Sinai, so that the God of our fathers may speak to us, too, out of the bush (cf. Exod. 3) and show us the inner essence of signs and wonders.
17. Our spiritual nature, which had become dead through wickedness, is raised once more by Christ through the contemplation of all the ages of creation. And through the spiritual knowledge that He gives of Himself, the Father raises the soul which has died the death of Christ. And this is the meaning of Paul's statement: 'If we hav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shall also live with Him' (cf. 2 Tim. 2:11).
18. When the intellect has shed its fallen state and acquired the state of grace, then during prayer it will see its own nature like a sapphire or the color of heaven. In Scripture this is called the realm of God that was seen by the elders on Mount Sinai (cf. Exod. 24:10).
19. Of the unclean demons, some tempt man in so far as he is man, while others disturb him in so far as he is a nonrational animal. The first, when they approach us, suggest to us notions of self-esteem, pride, envy or censoriousness, notions by which non-rational animals are not affected; whereas the second, when they approach, arouse incensive power and desire in a manner contrary to nature. For these passions are common to us and to animals, and lie concealed beneath our rational and spiritual nature. Hence the Holy Spirit says of the thoughts that come to men in so far as they are men: 'I have said, you are gods, and all of you are children of the most High. But you shall die as men, and fall as one of the princes' (Ps. 82:6-7). But what does He say of the thoughts which stir in men non-rationally? 'Do not be as the horse and mule, which have no understanding: whose mouth must be controlled with bit and bridle in case they attack you' (Ps. 32:9). Now if 'the soul that sins shall die' (Ezek. 18:4), it is clear that in so far as we die as men we are buried by men, but in so far as we are slain or fall as non-rational animals, we are devoured by vultures and ravens whose young 'cry' to the Lord (Ps. 147:9) and 'roll themselves in blood' (Job 39:30. LXX). 'He that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Matt. 11:15).
20. When one of the enemy approaches you and wounds you, and you wish to turn his sword back into his own heart (cf. Ps. 37:37:15), then do as follows: analyze in yourself the sinful thought that has wounded you, what it is, what it consists of, and what in it especially afflicts the intellect. Suppose, for instance, that a thought full of avarice is suggested to you. Distinguish between the component elements: the intellect which has accepted the thought, the intellection of gold, gold itself, and the passion of avarice. Then ask: in which of these does the sin consist? Is it the intellect? But how then can the intellect be the image of God? Is it the intellection of gold? But what sensible person would ever say that? Then is gold itself the sin? In that case, why was it created? It follows, then, that the cause of the sin is the fourth element, which is neither an objective reality, nor the intellection of something real, but is a certain noxious pleasure which, once it is freely chosen, compels the intellect to misuse what God has created. It is this pleasure that the law of God commands us to cut off. Now as you investigate the thought in this way and analyze it into its components, it will be destroyed; and the demon will take to flight once your mind is raised to a higher level by this spiritual knowledge.
But before using his own sword against him, you may choose first to use your sling against him. Then take a stone from your shepherd's bag and sling it (cf. 1 Sam. 17) by asking these questions: how is it that angels and demons affect our world whereas we do not affect their worlds, for we cannot bring the angels closer to God, and we cannot make the demons more impure? And how was Lucifer, the morning star, cast down to the earth (cf. Isa. 14:12), 'making the deep boil like a brazen cauldron’ (Job 41:31. LXX), disturbing all by his wickedness and seeking to rule over all? Insight into these things grievously wounds the demon and puts all his troops to flight. But this is possible only for those who have been in some measure purified and gained a certain vision of the inner essences of created things; whereas the impure have no insight into these essences, and even if they have been taught by others how to outwit the enemy they will fail because of the great clouds of dust and the turmoil aroused by their passions at the time of battle. For the enemy's troops must be made quiet, so that Goliath alone can face our David. In combat with all unclean thoughts, then, let us use these two methods: analysis of the thought attacking us, and the asking of questions about inner essences.
21. Whenever unclean thoughts have been driven off quickly, we should try to find out why this has happened. Did the enemy fail to overpower us because there was no possibility of the thought idea of bread persists in a hungry man because of his hunger, and the idea of water in a thirsty man because of his thirst, so ideas of material things and of the shameful thoughts that follow a surfeit of food and drink persist in us because of the passions. The same is true about thoughts of self-esteem and other ideas. It is not possible for an intellect choked by such ideas to appear before God and receive the crown of righteousness. It is through being dragged down by such thoughts that the wretched intellect, like the man in the Gospels, declines the invitation to the supper of the knowledge of God (cf. Luke 14:18); and the man who was bound hand and foot and cast into outer darkness (cf. Matt. 22:13) was clothed in a garment woven of these thoughts, and so was judged by the Lord, who had invited him, not to be worthy of the wedding feast. For the true wedding garment is the dispassion of the deiform soul which has renounced worldly desires. [In the texts On Prayer it is explained why dwelling on ideas of sensory objects destroys true knowledge of God.]
22 Whenever unclean thoughts have been driven off quickly, we should try to find out why this has happened. Did the enemy fail to overpower us because there was no possibility of the thought ... missing text ...
... idea of bread persists in a hungry man because of his hunger, and the idea of water in a thirsty man because of his thirst, so ideas of material things and of the shameful thoughts that follow a surfeit of food and drink persist in us because of the passions. The same is true about thoughts of self-esteem and other ideas. It is not possible for an intellect choked by such ideas to appear before God and receive the crown of righteousness. It is through being dragged down by such thoughts that the wretched intellect, like the man in the Gospels, declines the invitation to the supper of the knowledge of God (cf. Luke 14:18); and the man who was bound hand and foot and cast into outer darkness (cf. Matt. 22:13) was clothed in a garment woven of these thoughts, and so was judged by the Lord, who had invited him, not to be worthy of the wedding feast. For the true wedding garment is the dispassion of the deiform soul which has renounced worldly desires.
In the texts On Prayer it is explained why dwellinng on ideas of sensory objects destroys true knowledge of God.
23. As we stated at the beginning, there are three chief groups of demons opposing us in the practice of the ascetic life, and after them follows the whole army of the enemy. These three groups fight in the front line, and with impure thoughts seduce our souls into wrongdoing. They are the demons set over the appetites of gluttony, those who suggest to us avaricious thoughts, and those who incite US to seek esteem in the eyes of men. If you long for pure prayer, keep guard over your incensive power; and if you desire self-restraint, control your belly, and do not take your fill even of bread and water. Be vigilant in prayer and avoid all rancor. Let the teachings of the Holy Spirit be always with you; and use the virtues as your hands to knock at the doors of Scripture. Then dispassion of heart will arise within you, and during prayer you will see your intellect shine like a star.
라. Evagrius Ponticus (345 - 399)
We have learnt, after much observation, to recognize the difference between angelic thoughts, human thoughts, and thoughts that come from demons...Struggling with logismoi
Timeline for Evagrius Ponticus
345 Born into a Christian family in the small town of Ibora on the shores of the Black Sea, in the Roman province of Pontus, north of the present Turkey.
380 He joined Gregory of Nazianzus in Constantinople, where he was promoted to deacon and eventually to archdeacon.
381 He was present at the Second Ecumenical Council convened by Emperor Theodosius I.
383 Became a monk at the monastery of Rufinus and Melania the Elder at Jerusalem. Later joined a cenobitic community of monks in Nitria and eventually moved to Kellia.
399 Died after 17 years in the desert.
"...one of the Christian Desert Fathers, the monk Evagrius Ponticus (345-399 A.D.), taught a form of hesychasm (Greek: quiet) in which one comes to see the conditioned links between thoughts and emotions, and then, through meditation and prayer, finds a deep calm called apatheia. In apatheia the mind is integrated and purified of its naturally tumultuous activity, allowing one to simply “be” in God’s presence or to pray without distraction. Monks such as Evagrius believed that virtue in one’s speech and behavior would follow freely from a mind that is emptied of distracting thoughts. Some other Christian contemplatives would describe this emptying as a kind of on-going detachment from chaotic thoughts. It’s not that thinking goes away--sometimes our thoughts may bring blessings or healings!--but that we experience an inward spaciousness so that we are not so caught up in our own thoughts and worries. When we have this kind of detachment, we are less likely to mistake our thoughts and opinions for our present reality."...Christian Mindfulness &Emptiness"At the same time, it is clear that none of these fathers adopted his [Evagrius] Origenistic doctrine of God in which the Son or Logos is subordinated to the Father. Nor did they believe that history circles upon itself, recovering all that exists to begin a new age. The ages recycle age after age. This is simply a restating of Origen's apokatastasis or "the restitution of all things." Finally, all of the Fathers, including the Cappadocians rejected the body-soul dualism, which is prominent in Evagrios' Gnostica Kephalaia. He seems to have acquired this anthropology through the study of Origen and Clement of Alexandria; and perhaps, from his contemporary, Didymus the Blind (313-398), who was also a devotee of Origenism/Platonism. The soul/body dualism espoused by Evagrios in his later writings (ones now being endorsed by many of the monastics on Mt. Athos) amount to sheer Gnosticism. This doctrine and the teaching based upon it have been repeatedly condemned by the holy fathers of the Church and by Ecumenical Councils. Nevertheless, these unsober monastics refuse to accept the judgment of the Orthodox Church, and follow their own self-willed path into the heresies of Evarianism, Origenism, other forms of neo-Platonism and sheer Gnosticism....COMMENTARY ON THE PHILOKALIA: THE CONDEMNATION OF EVAGRIOS PONTICOS...by Archbishop Lazar Puhalo"
THE SAPPHIRE LIGHT OF THE MIND: THE SKEMMATA OF EVAGRIUS PONTICUS...by William Harmless, Raymond R. Fitzgerald
"Here we would like to introduce one of Evagrius's mystical treatises, the Skemmata ("Reflections"). It is a small collection of terse proverbs that takes up some of his favorite themes: the interplay among the eight deadly "thoughts" (logismoi); the distinction between the "life of ascetic practice" (praktike) and the "life of mystical knowledge" (gnostike); the practice of pure prayer. More importantly, the Skemmata articulates the center of Evagrius's theology--and "theology" in his sense of it: the encounter of the praying mind with God."
COMMENTARY ON THE PHILOKALIA: THE CONDEMNATION OF EVAGRIOS PONTICOS...by Archbishop Lazar Puhalo
On Evagrius, the Desert Fathers, and the seven deadly sins: An afternoon with William Harmless
Guide to Evagrius Ponticus...edited by Joel Kalvesmaki
Evagrius Ponticus
Excerpts from
De Vitis Patrum, Book II
By Rufinus of Aquileia
Chapter XXVII
EVAGRIUS (VIII.86)
We saw there this most wise man, wonderful in all sorts of ways, called Evagrius. Among the other virtues of his soul he had been given the grace of discernment of spirits (1 Cor.12.10) and the renewal of the mind (Ephesians 4.23) as the Apostle teaches. There was no other among the brothers who had attained to such a great and subtle spiritual knowledge. He had amassed an impressive store of learning through his experience in so many matters, and not least through the grace of God, but much of his learning had come to him through having been a disciple for a long time of the blessed Macarius, a most famous man by the grace of God, outstanding in signs and virtues, as everyone knows.
His abstinence was incredible, and he gave instruction to the brothers about it. If they were really serious about mortifying the body and driving away demonic phantasies he would encourage them to be very sparing in the amount of water they drank. "For," he said, " If you flood the body with a lot of water you generate even more phantasies, and offer a bigger space to the demons." He taught many other things about abstinence very insistently. For himself he used water very sparingly and hardly even ate much bread. The other brothers in that place were quite content with bread and salt. In all that great number of people you could hardly find anyone who even used a little oil. Many of them did not lie down to sleep, but sat and meditated, as I do believe, on the divine Word...De Vitis Patrum, Book II By Rufinus of Aquileia
Most Egyptian monks of that time were illiterate. Evagrius, a highly-educated classical scholar, is believed to be one of the first people to begin recording and systematizing the erstwhile oral teachings of the monastic authorities known as the Desert Fathers. Eventually, he also became regarded as a Desert Father, and several of his apothegms appear in the 'Vitae Patrum' (a collection of sayings from early Christian monks).
Evagrius rigorously tried to avoid teaching beyond the spiritual maturity of his audiences. When addressing novices, he carefully stuck to concrete, practical issues (which he called praktike). For example, in Peri Logismon 16, he includes this disclaimer:
I cannot write about all the villainies of the demons; and I feel ashamed to speak about them at length and in detail, for fear of harming the more simple-minded among my readers.[4]
His more advanced students enjoyed more theoretical, contemplative material (gnost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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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gismoi
“Orthodox spirituality places great emphasis on the nous, or mind (intellect), and the thoughts, logismoi, that the mind produces. It does so because everything we do begins in the nous with thoughts (logismoi). ‘As a man thinks in his heart, so is he’, we read in Proverbs…..Nous, Logismoi,and the PhilokaliaThe most prominent feature of his research was a system of categorizing various forms of temptation. (also known as Logismoi or Assaultive Thoughts, are thoughts and thought/images that come to us and are distracting) There are many church fathers who teach us how to identify them and how to deal with them.He developed a comprehensive list in 375 AD of eight evil thoughts (λογισμοι), or eight terrible temptations, from which all sinful behavior springs. This list was intended to serve a diagnostic purpose: to help readers identify the process of temptation, their own strengths and weaknesses, and the remedies available for overcoming temp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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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grius taught that tears were the utmost sign of true repentance and that weeping, even for days at a time, opened one up to Go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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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the other Cappadocian fathers Gregory of Nazianzus and Basil of Caesarea, Evagrius was an avid student of Origen of Alexandria (c. 185-250 AD), and he further developed certain esoteric speculations regarding the pre-existence of human souls, the final state of believers, and certain teachings about the natures of God and Christ. These speculative teachings were declared heretical by the Second Council of Constantinople in 553 AD. When subsequent ecumenical councils sought to clarify these anathemas, Origen (along with Evagrius and a few others) were condemned as well.
The eight patterns of evil thought are gluttony, greed, sloth, sorrow, lust, anger, vainglory, and pride. While he did not create the list from scratch, he did refine it. Some two centuries later in 590 AD, Pope Gregory I, "Pope Gregory The Great" would revise this list to form the more commonly known Seven Deadly Sins, where Pope Gregory the Great combined acedia (discouragement) with tristitia (sorrow), calling the combination the sin of sloth; vainglory with pride; and added envy to the list of "Seven Deadly Sins"....Wikipedia
"Evagrius was a friend of the Cappadocians Fathers and would become the first great theoretician of the spiritual life. He stressed the centrality of wordless, imageless prayer, and his writings display a fondness for brief, oracular sayings. Within a year of his death,his friends and disciples—Palladius, Cassian, Rufinus—would be persecuted as “Origenists” and run out of Egypt. Evagrius was condemned 150 years later, and his works circulated anonymously"....William Harmless
"Two hundred years after his death, Evagrius’ cell at Kellia was still considered to be haunted by an evil demon that had led “Evagrius astray, alienating him from the true faith, and it filled his mind with abominable teachings.” A brother “from foreign parts” came to Kellia and asked to stay in Evagrius’ cell. Possibly mindful of the saying of Saint Macarius of Egypt, “Do not sleep in the cell of a brother who has a bad reputation,”14 the priest tried to dissuade him, but the brother insisted. The first week he stayed there without incident, but the second week he failed to appear on Sunday; when the priest went to check on him he found that “the brother had put a rope around his neck and strangled himself.”15 This story undoubtedly circulated in monastic circles as a cautionary tale warning against “Evagrian” tendencies.16 Other evidence, however, shows that Evagrius’ writings were still being requested by monks in Egypt in the seventh and eighth centuries.17 The Virtues of Macarius, assembled after 450, closely link Evagrius with Macarius the Great, one of the most eminent saints of Egypt.18 In them Evagrius is called “the wise,” hardly an epithet applied to someone anathematized.19 Did this unfortunate “foreign” suicide at Kellia come from Asia Minor or Syria where Evagrius’ works still circulated and where his ascetical teaching was still admired? Was this curse on Evagrius somehow a lingering memory of (some) Egyptian resentment against the earlier foreign (that is, Greek) interloper, a tension hinted at in the Apophthegmata?20 If so, how representative was this resentment?"...source: COPTIC PALLADIANA I:THE LIFE OF PAMBO
Did Evagrius Ponticus (AD 346–99) have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by Jonathan Hill
"Evagrius Ponticu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nd influential spiritual writers in the early Christian church. This author argues that he suffered from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in particular, the demonic ‘thoughts’ which he repeatedly describes meet all the criteria for obsessions. If this is true, it offers a new perspective on the relation between pastoral theology and psychiatric disorders: the spiritual tradition which Evagrius helped found may, as a result, have tended to exacerbate such symptoms in others, but it also possessed the resources to address them in a practical way."
Evagrius Ponticus: Monastic Theologian
St. EVAGRIUS PONTICUS (345-399)
A HISTORY OF MONASTIC SPIRITUALITY by Luc Brésard, of the abbey of Citeaux
Appears to be a syllabus for a course study and contains some interesting information about monasticism as well as some details about key players in early Christian monasticism.
COPTIC PALLADIANA I:THE LIFE OF PAMBO
Writings of Evagrius Ponticus:
Excerpts from The Philokalia
Evagrios the Solitary Introductory Note
Evagrios the Solitary Outline Teaching on Asceticism and Stillness in the Solitary Life
Evagrios the Solitary Texts on Discrimination in respect of Passions and Thoughts
Evagrios the Solitary Extracts from the Texts on Watchfulness
Evagrios the Solitary On Prayer: One Hundred and Fifty-Three Texts
Other writings (see The Shapphire Light of the Mind: the Skemmata of Evagruis Ponticus...by William Harmless and Raymond R. Fitzgerald)
"Over the last 50 years, scholars (mostly French-speaking) have been steadily editing and translating Evagrius's works. The Engish-speaking world, however, has seen little of this. Two of his finest works, the Praktikos and the Chapters on Prayer, have been translated into English, as has his Ad monachos."
Praktikos
"The Praktikos is a guide to ascetic life written by the early Christian monk Evagrius Ponticus. It was originally written in Greek, but also has Syriac and Armenian versions. This work is the best preserved of all the Evagrian writings due to the relatively large number of manuscripts and wide distribution."
The Praktikos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also Various Introductory Texts on Virtues and Vicesalso Mysticism: Evagrius Ponticus and John Cassian Evagrius
Chapters on prayer
The Chapters on prayer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Ad monachos
Kephalaia gnostica
The Kephalaia gnostica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AntirrehetikosThe ANTIRRHETIKOS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GnostikosThe Gnostikos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Peri logismon (Concerning thoughts)
"Peri logismon ("Concerning Thoughts or On Thoughts"), explores the eight thoughts by focusing on their sequence and interplay."
The Peri logismon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De octo spiritibus (On the eight spirits of evil)
Ad virginem
Skemmata
"...one of Evagrius's mystical treatises... It is a small collection of terse proverbs that takes up some of his favorite themes: the interplay among the eight deadly 'thoughts' (logismoi); the distinction between the 'life of ascetic practice' (praktike) and the 'life of mystical knowledge' (gnostike); the practice of pure prayer...."
The SKEMMATA online with Greek text translated by Luke Dysinger, O.S.B..
마. The Ark of the Covenant The Virgin Mary
The Ark of the New Covenant
God the Holy Spirit overshadowed and then indwelled the Ark. The Ark became the dwelling place of the presence of God [Exodus 40:34-35] God the Holy Spirit overshadowed and then indwelled Mary. At that time Mary's womb became the dwelling place of the presence of God [Luke 1:35].
The Ark contained the Ten Commandments [the words of God in stone], a pot of manna, and Aaron's rod that came back to life [Deuteronomy 10:3-5; Hebrews 9:4]. The womb of the Virgin contained Jesus: the living Word of God enfleshed, the living bread from heaven, "the Branch" (Messianic title) who would die but come back to life [Luke 1:35].
The Ark traveled to the hill country of Judah to rest in the house of Obed-edom [2 Samuel 6:1-11] Mary traveled to the hill country of Judah (Judea) to the home of Elizabeth [Luke 1:39]
Dressed in a priestly ephod, King David approached the Ark and danced and leapt for joy [2 Samuel 6:14] John the Baptist, son of a priest who would himself becomes a priest, leapt for joy in Elizabeth's womb at the approach of Mary [Luke 1:43]
David shouted for joy in the presence of God and the holy Ark [2 Samuel 6:15] Elizabeth exclaimed with a loud cry of joy in the presence God within Mary [Luke 1:42]
David asked, "How is it that the Ark of the Lord comes to me?" [2 Samuel 6:9] Elizabeth asks, "Why is this granted unto me, that the mother of my Lord should come to me?" [Luke 1:43]
The Ark remained in the house of Obed-edom for 3 months [2 Samuel 6:11] Mary remained in the house of her cousin Elizabeth for 3 months [Luke 1:56].
The house of Obed-edom was blessed by the presence of the Ark [2 Samuel 6:11] The word "blessed" is used 3 times in Luke 1:39-45 concerning Mary at Elizabeth's house.
The Ark returned to its sanctuary and eventually ends up in Jerusalem where the presence and glory of God is revealed in the newly built Temple [2 Samuel 6:12; 1 Kings 8:9-11] Mary returned home from visiting Elizabeth and eventually comes to Jerusalem, where she presents God the Son in the Temple [Luke 1:56; 2:21-22]
God made Aaron's rod (which would be kept in the Ark) return to life and budded to prove he was the legitimate High Priest [Numbers 17:8]. God would resurrect His Son, who had become enfleshed in Mary's womb and born to bring salvation to all mankind, to prove He is the eternal High Priest [Hebrews 4:14].
When the Ark was outside the Holy of Holies [when it was being transported] it was to be covered with a blue veil [Numbers 4:4-6] In Mary's appearances outside of heaven visionaries testify that she wears a blue veil.
In Revelation 11:19 John sees the Ark of the Covenant in heaven [this is the last verse of chapter 11] In Revelation 12:1 John sees Mary in heaven. It is the same vision Juan Diego saw of Mary in 1531 — the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standing on the moon.
Michal Hunt, Copyright © 2002, revised 2006 Agape Bible Study. Permissions All Rights Reserved.
바. 테오둘로스에게 보낸 깨어있음과 거룩함에 대하여
사제 성 헤시키오스
1.깨어있음이란
오랜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면
욕정적인 생각과 욕정적인 말들과 악한 행위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는 영적인 방법입니다.
깨어있음은 가능한 한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에 이르게 하며 신적인 감추어진 신비를 우리가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깨어있음은 우리로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의 계명을 다 이루게 해주며 다가올 시대의 모든 축복까지도 우리에게 베풀어줍니다.
깨어있음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신 마음의 순수함(깨끗함) 바로 그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이 깨어있음의 영적인 고귀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아니 오히려 우리의 부주의함 때문에 이 깨어있음은 오늘날 수도승 사이에서도 극히 드뭅니다. 그 본성이 이러하기에 깨어있음은 비싼 댓가를 치르고서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 안에 형성되고 나면 이 깨어있음은 우리를 진실하고 거룩한 생활 방식에로 인도해 줍니다. 이 깨어있음은 우리 영혼의 3부분(이성부 정념부 욕망부)을 어떻게 올바르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오관을 확고하게 지키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깨어있음은 날마다 4추덕을 날마다 성장하도록 촉진시킵니다. 그것은 또한 곧 우리의 관상의 기초가 됩니다.
2.위대한 입법자인 모세 -아니 오히려 성령께서는- 이 덕의 순수하고 포괄적이며 고상한 성질을 보여주며 우리가 어떻게 그 것을 얻고 완성하는지를 가르쳐주며 말하기를 “네 자신을 삼가 주의하여라. 그리하여 네 마음 안에 악념이란 은밀한 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라.”(신명15.9 칠십인역) 여기에서 ‘은밀한 것’이란 나쁜 생각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부들이 악마들이 인간 마음 안에 불어넣는 암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생각이 지성 안에 나타나자마자 우리 자신의 생각들은 그 것을 쫓아가며 그 것들과 욕정적인 교제를 갖게 됩니다.
3.깨어있음은 모든 덕과 계명을 포용하는 길입니다.
깨어있음은 마음의 고요이며 정신적 심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깨어있음은 지성을 지켜줍니다.
4.태생 소경이 태양빛을 보지 못하듯 깨어있음을 추구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하느님 은총의 풍요한 광채를 보지 못합니다. 그는 악한 생각이나 말과 행동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들과 행동들로 인해 그는 죽을 때에 지옥을 다스리는 자들한테 붙잡히게 마련이다.
5.깨어있음(주의 깊음)은 어떤 생각에 의해서도 결코 깨어지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 자체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호흡하며 그분의 도움으로 깨어있음은 용감하게 적들을 대면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마음들을 살피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영혼은 그 달콤함과 뭇 인간들에게는 감추어진 내적인 싸움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게 되어 결국 악마는 몰래 다가와 영혼을 악으로부터 유인하지 못하게 되고 영혼의 고귀한 업적도 파괴하지 못하게 됩니다.
6.깨어있음이란 마음의 입구에 생각을 끊임없이 고정시키거나 생각을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약탈자이며 살인자들의 생각들이 다가올 때 그 것들을 찾아내게 되며 이 약탈자이며 살인자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듯하고 기만적인 모습으로 악마들이 우리 지성을 속이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점에서 성실하다면 우리는 많은 경험을 얻게 되고 영적 싸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게 됩니다.
7.악한 생각들과 행위들의 원천을 봉쇄하고자 하는 사람 안에 있어서 지성에 대한 끊임없는 깨어 주시함은 지옥과 하느님을 두려워함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이 영혼에게서 물러가심으로서 그리고 우리를 단련시키고 가르쳐주는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물러 가신다든가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시련들은 우리 생활을 바로 잡도록 해줍니다. 특히 일단 깨어있음의 고요를 경험한 사람이 그것을 소홀히 할 때 그러합니다. 끊임없는 주시(주목)는 내적 안정성을 주며 그리고 이 내적 안정성은 깨어있음을 본성인 듯이 강화시키며 이 강화는 점차로 그리고 제 때가 되면 영적 전투에 대한 통찰력을 선사합니다. 이는 항구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하게 만들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상태로서 우리는 모든 심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지성은 완전한 고요를 즐기게 됩니다.
8.그리스도 안에 숨어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정신은 굳세게 버티어 서서 자신의 안 보이는 적들을 격퇴하게 될 때 이는 마치도 한 떼의 사냥개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훌륭한 방어자세로 버티고 서있는 한 마리 들짐승과도 같습니다. 이럴 때 정신은 내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적들의 내적인 매복을 훤히 내다보게 됩니다. 원수들에 맞서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름으로서 정신은 다치지 않게 됩니다.
9.만일 당신이 열렬하고 신비에 입문하였고 이른 새벽 주님 면전에 서 계시다면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깨어 있으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 것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10. 많은 물이 모여 바다들 이룹니다. 그러나 생각들에 의해 더 이상 산만해지지 않는 극도의 깨어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영혼의 내적 깨어있음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를 위한 꼭 필요한 기초가 되어주며 비밀스런 단 하나의 깊은 관상기도의 기초가 되어주며 그리고 제대로 알고 평가하는 겸손, 정직과 사랑을 위한 필요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깨어있음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강력하고 집중되어 있고 지칠 줄을 모릅니다.
11. “주님, 주님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이 들어간다.”고 하였다(마태7.21) 아버지의 뜻은 “너는 주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라(시편97.10)”는 말씀 안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바치는 동시에 우리의 악한 생각들을 미워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12.그 분의 육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한 생활의 모범을 남겨주시고 우리의 옛 타락에서 다시 불러주셨다. 게다가 그 분은 연약한 우리를 가르치시어 우리가 겸손과 단식, 기도와 깨어있음으로 악마들과 싸워야 함을 가르쳐주셨다.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 들어가셨고 악마가 마치도 그 분이 한낱 인간인 듯이 주님께 다가왔을 때에도 주님은 단식으로 영적 싸움을 시작하셨고 이 단식으로 전투에서 승리하셨다. 비록 하느님이시고 모든 신들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전혀 그런 단식이 필요 없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13.나는 지성을 욕정적인 생각들로부터 점차로 깨끗하게 만드는 깨어있음의 형태가 됨이 무엇인지 내가 생각한 바를 쉽고 분명하게 당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영적 전투를 하는 때에 나는 유용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어려운 말로 감추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더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나의 자녀 디모테오여! 내가 갈 때 까지 그대가 읽은 것에 주의를 다하시오!”(1디모4.13)
14. 첫째 형태의 깨어있음은 아주 면밀히 모든 정신적 심상이나 암시를 조사해보는 것입니다. 정신적 심상에 의해서만 사탄이 악한 생각을 우리 안에 만들어 내고 이것을 지성 안에 암시하여 우리 지성이 길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15. 두 번째 형태의 깨어있음은 모든 생각들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며 마음을 깊은 침묵과 고요와 기도 안에 지키는 데 있습니다.
16. 세 번째 형태의 깨어있음은 끊임없이 겸손 되게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17. 4번째 형태의 깨어있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18. 나의 자녀들이여 이런 형태의 깨어있음은 문지기처럼 나쁜 생각들이 들어오는 입구를 막는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려 주신다면 다른 곳에서 다른 것들과 더불어서 효과적인 그 밖의 형태들도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키고 물질적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19. 우리가 어느 정도 욕정들의 원인들을 제거하면 우리는 시간을 영적 관상에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영적 관상에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쉽게 육적인 욕정들로 되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지성은 완전히 어두워지게 되고 지성은 물질적인 것들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20. 영적 전투에 들어간 사람은 동시에 겸손, 완전한 주의 집중, 악마들에 대한 저항능력과 그리고 기도가 필요하다. 먼저 그는 겸손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싸움이 교만한 악마들에 대항하는 것이므로 그가 자신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분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교만한 자들을 미워하신다.”(참조 잠3.34 70인역)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철저한 주의 집중을 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모든 생각들로부터 깨끗이 지키게 됩니다. 그는 또한 악마를 거부하고 대항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그가 악마를 알아차릴 때 마다 즉시 그를 단호히 내쫓게 됩니다. 성경에 “저를 모욕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으리니 내 영혼이 오직 하느님 안에 쉬리니(시편119.42:62.1)” 라고 하였다. 그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마를 거부하며 반박하자마자 즉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악마가 예수님의 귀한 이름으로 패배하고 쫓겨남을 보리라. 그리고 악마가 바람 앞에 먼지나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게 되리라.
21만일 우리가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된 기도를 성취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지고 싸울 무기가 없는 것입니다. 이 기도란 영혼의 내적인 성소 안에서 언제나 살아있는 기도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은밀한 적을 징계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22.당신 지성의 눈길로 빨리 예민하게 마귀의 침입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는 즉시 그 것을 반박하여 내쫓고 뱀의 머리처럼 그 것을 짓밟아야 합니다. 동시에 탄원하며 그리스도를 부르고 그러면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 마음의 곧바름을 명백히 식별하게 될 것입니다.
23. 군중 속에 있는 어떤 사람이 거울을 쥐고 그 것을 바라보면 자기 얼굴뿐만 아니라 거울을 드려다 보는 사람의 얼굴도 함께 바라보게 되듯이 자기 마음속을 드려다 보는 사람도 그 자신의 상태뿐만 아니라 악마들의 검은 얼굴들도 보게 됩니다.
24.지성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악마적 환상을 정복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마귀들은 교활해서 정복당한 체하면서 우리를 자만으로 가득 차게 해서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놈들은 단 1초도 우리에게 속임수를 쓰지 못합니다.
25.옛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속아서 자신들을 영적인 원수들의 손에 넘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만군의 주 하느님께서 이집트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탈32.4)
26.황금송아지는 절름발이 지성을 나타냅니다. 지성이 악마들을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한 지성은 쉽게 악마들을 물리칩니다. 마귀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앎에서 얻은 기술로 물리칩니다. 그러나 지성이 어리석게도 자신을 신뢰하게 되면 매처럼 거꾸로 박히게 됩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신뢰하오니 나는 도움을 받았으며 내 육신은 다시 꽃피리니(시편28.7)”하였고 “주님 말고 누가 나를 위해 일어나 나쁜 생각들의 떼와 맞서 내 곁에 설 것인가?”(시편94.16)라고 하였다. 하느님 말고 자신을 신뢰하는 이는 누구나 거꾸로 쳐 박히게 될 것입니다.
27.영적 전투에 참여하고 싶으면 거미를 마음의 고요함의 모범으로 삼으라. 그렇지 않으면 으당 그래야 하는 만큼 그 만큼 그 지성 안에서 고요해지지 않을 것이다. 거미는 작은 벌레들을 사냥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끊임없이 ‘바빌론의 자녀들을’죽여야 합니다.(시편137.9) 싸우는 동안 당신은 거미처럼 자기 영혼 안에서 고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싸우는 동안 당신은 성령에 의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28.숨을 쉬지 않고 땅을 걷는 것이 불가능하듯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 마음을 욕정적인 생각들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영적인 원수를 물리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29.날마다 좁지만 즐거운 마음의 길을 여행할 때 겸손 되게 당신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책망하며 당신의 적을 반박하며 맞설 준비를 갖추고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깨어있으십시오! 그러면 지성소를 보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심오한 비밀들을 비추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안에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물’이 감추어져 있고 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로 머무시기 때문입니다.(골2.3,9)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당신은 성령께서 당신 영혼 안에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을 주도하여 ‘베일을 벗은 얼굴’로 지성이 볼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2고린3.18) 그 누구도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주 예수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고12.3) 다른 말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 유혹의 6단계 그리스어 포함 간단
Temptation (πειρασμος — peirasmos): also translated in our version as ‘trial’ or ‘test’. The word indicates, according to context: (i) a test or trial sent to man by God, so as to aid his progress on the spiritual way; (ii) a suggestion from the devil, enticing man to sin.
Using the word in sense (ii), the Greek Fathers employ a series of technical terms to describe the process of temptation. (See in particular Mark the Ascetic, On the Spiritual Law, 138-41, in vol. i of our translation, pp. 119-2-; John Klimakos, Ladder, Step 15, translated by Archimandrite Lazarus [op.cit., pp. 157-9; Maximos, On Love, i, 83-84, in vol. ii of our translation, pp. 62-63; John of Damaskos, On the Virtues and vices, also in vol. ii of out translation, pp. 337-8.) The basic distinction made by these fathers is between the demonic provocation and man’s assent: the first lies outside of man’s control, while for the second he is morally responsible. In detail, the chief terms employed are as follows:
(i) Provocation (προβολη — proslovi): the initial incitement to evil. Mark the Ascetic defines this as an ‘image-free stimulation in the heart’; so long as the provocation is not accompanied by images, it does not involve man in any guilt. Such provocations, originating as the devil, assail man from the outside, and so he is not morally responsible for them. His liability to these provocations is not a consequence of the fall: even in paradise, Mark maintains, Adam was assailed by the devil’s provocations. Man cannot prevent provocations from occurring; what does lie in his power, however, is to maintain constant watchfulness (q.v.) and so reject each provocation as soon as it emerges into his consciousness — that is to say, at its first appearance as a thought in his mind or intellect (μονολογιστος εμφασις — monologistos emphasis). If he does reject the provocation, the sequence is cut off and the process of temptation is terminated.
(ii) Momentary disturbance (παραρριπισμος — pararripismos) of the intellect, occurring ‘without any movement or working of bodily passion’ (see Mark, Letter to Nicholas the Solitary: in out translation, vol. i, p. 153). This seems to be more than the ‘first appearance’ of a provocation described in stage (i) above; for, at a certain point of spiritual growth in this life, it is possible to be totally released from such ‘momentary disturbance’, whereas no one can expect to be altogether free from demonic provocations.
(iii) Communion (ομιλια — homilia); coupling (συνδυασμος — syndyasmos). Without as yet entirely assenting to the demonic provocation, a man may begin to ‘entertain’ it, to converse or parley with it, turning it over in his mind pleasurably, yet still hesitating whether or not to act upon it. At this stage, which is indicated by the terms ‘communion’ or ‘coupling’, the provocation is no longer ‘image-free’ but has become a logismos or thought (q.v.) and man is morally responsible for having allowed this to happen.
(iv) Assent (συγκαταθεσις — synkatathesis). This signifies a step beyond mere ‘communion’ or ‘coupling’. No longer merely ‘playing’ with the evil suggestion, a man now resolves to act on it. There is now no doubt as to his moral culpability: even if circumstances prevent him from sinning outwardly, he is judged by God according to the intention in his heart.
(v) Prepossession (προληψις — prolipsis): defined by Mark as ‘the involuntary presence of former sins in the memory’. This state of ‘prepossession’ or prejudice results from repeated acts of sin which predispose a man to yield to particular temptations. In principle he retains his free choice and can reject demonic provocations; but in practice the force of habit makes it more and more difficult for him to resist.
(vi) Passion (q.v.). If a man does not fight strenuously against a prepossession, it will develop into an evil passion.
아. 정념 그리고 생각을 식별하는 것에 관하여
- 독수자 에바그리오, 『필로칼리아 1』, 도서출판 은성, 엄성옥 옮김, pp.46-69
1.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우리를 최전방에서 공격하는 마귀들의 세 집단이 있습니다: 탐식(gluttony)의 욕구를 부추기는 마귀, 탐욕적인 생각을 선동하는 마귀, 그리고 사람들로부터의 존경을 추구하도록 선동하는 마귀들. 그 외의 다른 마귀들은 이들을 뒤따라오면서 이미 이 세 집단의 마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우리는 먼저 탐식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한 음란의 마귀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또 먹을 것이나 재산, 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 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물질들을 박탈당했을 때에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좌절의 마귀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또 모든 악의 근원인 탐욕을 추방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마귀의 첫 자손인 교만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말에 의하면, 가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잠언 10,4). 간단히 말해서, 최전방에 나선 마귀들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마귀의 힘에도 함락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마귀는 주님에게 이 세 가지 생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주님에게 돌들을 빵으로 변화시키라고 권했고, 다음에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 온 세상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마지막으로 주님이 그의 말을 듣는다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에게 물러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 가지 생각을 멸시하고 거부하지 않는 한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마태 4,1-10 참조).
1. Of the demons opposing us in the practice of the ascetic life, there are three groups who fight in the front line: those entrusted with the appetites of gluttony, those who suggest avaricious thoughts, and those who incite us to seek the esteem of men. All the other demons follow behind and in their turn attack those already wounded by the first three groups. For one does not fall into the power of the demon of unchastity, unless one has first fallen because of gluttony; nor is one's anger aroused unless one is fighting for food or material possessions or the esteem of men. And one does not escape the demon of dejection, unless one no longer experiences suffering when deprived of these things. Nor will one escape pride, the first offspring of the devil, unless one has banished avarice, the root of all evil, since poverty makes a man humble, according to Solomon (cf. Prov. 10:4. LXX). In short, no one can fall into the power of any demon, unless he has been wounded by those of the front line. That is why the devil suggested these three thoughts to the Savior: first he exhorted Him to turn stones into bread; then he promised Him the whole world, if Christ would fall down and worship him; and thirdly he said that, if our Lord would listen to him, He would be glorified and suffer nothing in falling from the pinnacle of the temple. But our Lord, having shown Himself superior to these temptations, commanded the devil to 'get behind Him'. In this way He teaches us that it is not possible to drive away the devil, unless we scornfully reject these three thoughts (cf. Matt. 4:1-10).
2. 마귀들이 선동하는 생각들은 우리의 내면에서 감각적인 대상들에 대한 개념들을 만들어 내며, 이러한 개념들이 새겨진 지성은 내면에 이러한 대상들의 형태를 지닙니다. 따라서 지성은 자신에게 제시된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어떤 마귀가 접근하고 있는지 압니다. 예를 들어, 나를 모욕하거나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큰 증오의 마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것이나 존경과 관련된 제안이 떠오른다면, 그것과 관련된 마귀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생각들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정신 속에 모습을 나타내는 대상에 따라서 어떤 마귀가 우리 가까이에서 그 대상을 주입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모두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성은 본질적으로 활동에 의해 과거의 사건들의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본성에 어긋나는 노염이나 욕구를 만들어 내는 생각들은 마귀가 야기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선동을 받은 지성은 정신적으로 간음을 범하며, 몹시 성을 내며, 따라서 우리를 질서있게 유지해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동안 지성이 감각적인 대상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되어 있어야만 하느님의 광채가 지성에게 모습을 나타냅니다.
2. All thoughts inspired by the demons produce within us conceptions of sensory objects; and in this way the intellect, with such conceptions imprinted on it, bears the forms of these objects within itself. So, by recognizing the object presented to it, the intellect knows which demon is approaching. For example, if the face of a person who has done me harm or insulted me appears in my mind, I recognize the demon of rancor approaching. If there is a suggestion of material things or of esteem, again it will be clear which demon is troubling me. In the same way with other thoughts, we can infer from the object appearing in the mind which demon is close at hand, suggesting that object to us. I do not say that all thoughts of such things come from the demons; for when the intellect is activated by man it is its nature to bring forth the images of past events. But all thoughts producing anger or desire in a way that is contrary to nature are caused by demons. For through demonic agitation the intellect mentally commits adultery and becomes incensed. Thus it cannot receive the vision of God, who sets us in order; for the divine splendor only appears to the intellect during prayer, when the intellect is free from conceptions of sensory objects.
3. 욕망과 분노를 경계하여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정욕적인 생각들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금식하고 철야하고 바닥에서 잠을 잠으로써 욕망을 죽이며, 오래 참음과 인내, 용서,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서 분노를 길들입니다. 이 두 가지 정념(욕망과 분노)은 지성을 재앙과 멸망으로 몰고 가는 모든 악한 생각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음식과 재산, 자만(자기높임),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러한 정념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종 마귀들은 몸을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다를 항해하다가 거센 바람과 파도 때문에 위험에 처한 사람이 배에 실은 물건들을 내던져 버리듯이, 우리도 그렇게 행해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할 때에 사람들의 눈에 보이려고 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행해도 원하는 상을 받겠지만, 자만심이라는 마귀의 바람 때문에 처음 것보다 더 심한 파도를 만나 항로에서 벗어나서 파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에서 주님은 우리의 키잡이인 지성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엋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1-18)
영혼을 고치시는 의원께서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서 우리의 분노하는 부분을 고쳐 주시고, 기도를 통해서 지성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금식을 통해서 욕망을 시들게 하시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러한 덕행들에 의해서, 창조주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 아담 – 그 안에서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이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 이 형성됩니다(갈라 3,28; 콜로 3,10-11).
3. Man cannot drive away impassioned thoughts unless he watches over his desire and incensive power. He destroys desire through fasting, vigils and sleeping on the ground, and he tames his incensive power through longsuffering, forbearance, forgiveness and acts of compassion. For with these two passions are connected almost all the demonic thoughts which lead the intellect to disaster and perdition. It is impossible to overcome these passions unless we can rise above attachment to food and possessions, to self-esteem and even to our very body, because it is through the body that the demons often attempt to attack us. It is essential, then, to imitate people who are in danger at sea and throw things overboard because of the violence of the winds and the threatening waves. But here we must be very careful in case we cast things overboard just to be seen doing so by men. For then we shall get the reward we want; but we shall suffer another shipwreck, worse than the first, blown off our course by the contrary wind of the demon of self-esteem. That is why our Lord, instructing the intellect, our helmsman, says in the Gospels: 'Take heed that you do not give alms in front of others, to be seen by them; for unless you take heed,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in heaven.' Again, He says: 'When you pray, you must not be as the hypocrites are: for they love to pray standing in synagogues and at street-corners, so as to be seen by men. Truly I say to you, they get the reward they want. . . . Moreover when you fast, do not put on a gloomy face, like the hypocrites; for they disfigure their faces, so that they may be seen by men to be fasting. Truly I say to you, they get the reward they want' (cf. Matt. 6: 1-18). Observe how the Physician of souls here corrects our incensive power through acts of compassion, purifies the intellect through prayer, and through fasting withers desire. By means of these virtues the new Adam is formed, made again according to the image of his Creator - an Adam in whom, thanks to dispassion,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and, thanks to singleness of faith, there is 'neither Greek nor Jew,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barbarian, Scythian, bond n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n all' (Gal. 3:28; Col. 3: 10:11).
4. 잠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환상들 속에서 마귀들이 우리의 지성에 어떻게 형상과 형태를 새겨 놓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정상적인 경우, 지성은 사물을 볼 때에 눈을 통해서, 말을 들을 때에 귀를 통해서, 또는 몸을 통해서 경험한 것들을 지성에게 새겨 놓고 지성을 자극하는 기억을 통해서 이러한 형태와 형상들을 받아들입니다. 내 생각에, 우리가 잠을 잘 때, 육적인 감각들의 활동이 정지될 때에, 마귀들은 기억을 일으킴으로써 이러한 인상을 새겨 놓는 듯합니다. 그 경우에, 마귀들은 어떻게 기억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정념들을 통해서일까요? 그렇습니다. 정념이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고 순결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잠 잘 때에 악한 환상을 경험하지 않으며, 악하지 않은 기억의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천사들의 힘에 의해서 야기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성인들을 만나며 그들과의 교제의 기쁨을 누립니다. 자는 동안에 기억은 몸의 참여가 없이 영혼이 몸과 제휴한 상태에서 받아들인 이미지들을 선동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종종 잠 자는 동안에, 몸이 휴식하는 동안에 그러한 이미지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이 마를 때에도 물을 생각할 수 있고 목이 마르지 않을 때에도 물을 생각할 수 있듯이, 탐심을 가지고 금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탐심이 없이도 금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일에도 적용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한 종류의 환상과 다른 종류의 환상을 식별할 수 있다면, 마귀들의 교활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들이 환상을 일으키기 위해서 파도 소리와 같은 외적인 것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We shall now enquire how, in the fantasies that occur during sleep, the demons imprint shapes and forms on our intellect. Normally the intellect receives these shapes and forms either through the eyes when it is seeing, or through the ears when it is hearing, or through some other sense, or else through the memory, which stirs up and imprints on the intellect things which it has experienced through the body. Now it seems to me that in our sleep, when the activity of our bodily senses is suspended, it is by arousing the memory that the demons make this imprint. But, in that case, how do the demons arouse the memory? Is it through the passions? Clearly this is so, for those in a state of purity and dispassion no longer experience demonic fantasies in sleep. There is also an activity of the memory that is not demonic: it is caused by ourselves or by the angelic powers, and through it we may meet with saints and delight in their company. We should notice in addition that during sleep the memory stirs up, without the body's participation, those very images which the soul has received in association with the body. This is clear from the fact that we often experience such images during sleep, when the body is at rest.
Just as it is possible to think of water both while thirsty and while not thirsty, so it is possible to think of gold with greed and without greed. The same applies to other things. Thus if we can discriminate in this way between one kind of fantasy and another, we can then recognize the artfulness of the demons. We should be aware, too, that the demons also use external things to produce fantasies, such as the sound of waves heard at sea.
5. 성내는 것은 마귀들의 악한 의도에 협력하는 것으로서, 마귀들의 목표를 크게 촉진시킵니다. 그렇게 때문에 마귀들은 밤낮 우리로 하여금 성 내게 하려고 애씁니다. 우리의 온유함 때문에 성냄이 방해를 받으면, 마귀는 즉시 그럴 듯한 핑계를 대어 성 내게 만들려 합니다. 우리가 크게 성 내면, 마귀는 더러운 목적을 위해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이유에서든지 부당한 이유에서든지 성내서는 안 되며,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칼을 넘겨 주어서는 안 됩니다.
종종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흥분합니다. 당신이 음식, 재산, 영광 등에 대한 관심을 초월했다고 말하면서도, 그처럼 서둘러 전쟁에 뛰어드는 이유를 말해 보십시오. 당신이 모든 것을 체념했다고 하면서도, 계속 지키는 개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일 당신이 개를 데리고 있어 그 개가 다른 사람들에게 짖고 공격한다면, 아직도 당신에게 개가 지켜 주어야 할 재산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격앙하는 것이 순수한 기도를 파괴한다고 알고 있으므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순수한 기도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여줍니다. 나는 당신이 성도들을 망각하고 있음에도 놀랍니다: 다윗은 “노여움을 그치고 성을 가라앉혀라”(시편 37,8)고 외쳤고, 전도자는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코헬 11,10)고 촉구하며, 사도 바울로는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1티모 2,8)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동안에 개들을 집 밖에 세워 두는 신비한 옛관습에서도 동일한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에 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 독사의 무서운 독이다”(신명 32,33). 그렇기 때문에 나자렛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음식이나 의복 때문에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 까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그런 것에 대해 근심하는 것은 이방인들과 불신자들, 주님의 섭리를 거부하고 창조주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표식입니다. 한 닢에 팔리는 참새 두 마리라도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이러한 태도를 갖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입니다(마태 10,29).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내면에 더러운 생각들을 일으킨 후에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걱정을 선동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셨습니다(요한 5,13 참조). 염려 때문에 기운이 막히면, 거룩한 말씀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이러한 염려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면서 날마다 자만심을 채워 주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 제거해야 합니다. 혹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춥고 헐벗은 중에도 인내하며 의의 면류관을 기다린 사도 바울로를 기억해야 합니다(2코린 11,27; 2티모 4,8). 바울로는 이 세상을 운동장에서의 경주에 비유했습니다(1코린 9,24 참조). 걱정스러운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필리 3,14)을 위해 달음질 할 수 있으며,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에페 6,12)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운동 선수가 입은 옷이 무거우면 방해를 받듯이, 자체의 보물에 집착하는 지성은 염려하는 생각들의 방해를 받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했습니다.
5. When our incensive power is aroused in a way contrary to nature, it greatly furthers the aim of the demons and is an ally in all their evil designs. Day and night, therefore, they are always trying to provoke it. And when they see it tethered by gentleness, they at once try to set it free on some seemingly just pretext; in this way, when it is violently aroused, they can use it for their shameful purposes. So it must not be aroused either for just or for unjust reasons; and we must not hand a dangerous sword to those too readily incensed to wrath, for it often happens that people become excessively worked up for quite trivial reasons. Tell me, why do you rush into battle so quickly, if you are really above caring about food, possessions and glory? Why keep a watchdog if you have renounced everything? If you do, and it barks and attacks other men, it is clear that there are still some possessions for it to guard. But since I know that wrath is destructive of pure prayer, the fact that you cannot control it shows how far you are from such prayer. I am also surprised that you have forgotten the saints: David who exclaims, 'Cease from anger, and put aside your wrath’ (Ps. 37:8. LXX); and Ecclesiastes who urges us, 'Remove wrath from your heart, and put away evil from your flesh' (Eccles. 11:10. LXX); while the Apostle commands that always and everywhere men should 'lift up holy hands, without anger and without quarrelling’ (1 Tim. 2:8). And do we not learn the same from the mysterious and ancient custom of putting dogs out of the house during prayer? This indicates that there should be no wrath in those who pray. 'Their wine is the wrath of serpents' (Deut. 32:33. LXX); that is why the Nazarenes abstained from wine.
It is needless to insist that we should not worry about clothes or food. The Savior Himself forbids this in the Gospels: 'Do not worry about what to eat or drink, or about what to wear' (cf. Matt. 6:25). Such anxiety is a mark of the Gentiles and unbelievers, who reject the providence of the Lord and deny the Creator. An attitude of this kind is entirely wrong for Christians who believe that even two sparrows which are sold for a farthing are under the care of the holy angels (cf. Matt. 10: 29). The demons, however, after arousing impure thoughts, go on to suggest worries of this kind, so that 'Jesus conveys Himself away', because of the multitude of concerns in our mind (cf. John 5:13). The divine word can bear no fruit, being choked by our cares. Let us, then, renounce these cares, and throw them down before the Lord, being content with what we have at the moment; and living in poverty and rags, let us day by day rid ourselves of all that fills us with self-esteem. If anyone thinks it shameful to live in rags, he should remember St Paul, who 'in cold and nakedness' patiently awaited the 'crown of righteousness' (2 Cor. 11:27; 2 Tim. 4:8). The Apostle likened this world to a contest in an arena (cf. 1 Cor. 9:24); how then can someone clothed with anxious thoughts run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Phil. 3:14), or 'wrestle against principalities, against powers, against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world' (Eph. 6:12)? I do not see how this is possible; for just as a runner is obstructed and weighed down by clothing, so too is the intellect by anxious thoughts - if indeed the saying is true that the intellect is attached to its own treasure; for it is said,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Matt. 6:21).
6. 생각들은 어떤 때는 다른 것에 의해서 중지되며, 어떤 때는 스스로 중단됩니다. 악한 생각들은 선한 생각들을 중단시키며, 역으로 선한 생각에 의해 중단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중시하는지 주목해 보시고, 그에 따라서 우리를 정죄하시거나 인정하십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환대하려는 생각은 주님을 위한 것이지만, 시험하는 자가 공격할 때에 그 생각이 중지되며, 시험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환대를 베풀려는 생각이 임하지만, 선한 생각이 임할 때에 이 생각은 중단됩니다. 선한 생각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이 덕을 실천하게 합니다
.6. Sometimes thoughts are cut off, and sometimes they do the cutting off. Evil thoughts cut off good thoughts, and in turn are cut off by good thoughts. The Holy Spirit therefore notes to which thought we give priority and condemns or approves us accordingly. What I mean is something like this: the thought occurs to me to give hospitality and it is for the Lord's sake; but when the tempter attacks, this thought is cut off and in its place he suggests giving hospitality for the sake of display. Again, the thought comes to me of giving hospitality so as to appear hospitable in the eyes of others. But this thought in its turn is cut off when a better thought comes, which leads me to practice this virtue for the Lord's sake and not so as to gain esteem from men.
7. 우리는 많은 관찰을 한 결과로서 천사들의 생각, 인간의 생각, 그리고 마귀들에게서 온 생각의 차이점을 식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천사들의 생각은 사물의 참된 본성, 그리고 그것들의 영적 본질을 찾아내는 것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면, 금이 땅 속에 마치 모래처럼 흩어져 있어 크게 수고하고 노력해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땅에서 발견된 금은 물로 씻고 불로 정련한 다음에 장인들의 수중에 들어가며, 장인들은 그것으로 장막의 촛대와 잔과 향로를 만드는데(탈출 25,22-39 참조), 우리 구세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바빌론 왕은 그 잔으로 마시지 못합니다(다니 5,2, 3 참조). 클레오파스 같은 사람은 이러한 신비로 불 타는 마음을 가져 옵니다(루카 24,32 참조). 반면에 마귀의 생각은 그러한 일을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습니다. 마귀의 생각은 파렴치하게도 유형적인 금을 취하며, 거기서 올 부와 영광을 기대하라고 속삭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생각은 금을 획득하려 하지 않으며,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정념이나 탐심이 없이 금의 이미지를 정신 앞에 가져다
7. We have learnt, after much observation, to recognize the difference between angelic thoughts, human thoughts, and thoughts that come from demons. Angelic thought is concerned with the true nature of things and with searching out their spiritual essences. For example, why was gold created and scattered like sand in the lower regions of the earth, to be found only with much toil and effort? And how, when found, is it washed in water and committed to the fire, and then put into the hands of craftsmen who fashion it into the candlestick of the tabernacle and the censers and the vessels (cf. Exod. 25:22-39) from which, by the grace of our Savior, the king of Babylon no longer drinks (cf. Dan. 5:2, 3)? A man such as Cleopas brings a heart burning with these mysteries (cf. Luke 24:32). Demonic thought, on the other hand, neither knows nor can know such things. It can only shamelessly suggest the acquisition of physical gold, looking forward to the wealth and glory that will come from this. Finally, human thought neither seeks to acquire gold nor is concerned to know what it symbolizes, but brings before the mind simply the image of gold, without passion or greed. The same principle applies to other things as well.놓습니다. 다른 것들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8. 미혹자라고 알려진 마귀는 특히 새벽에 형제들을 찾아와서 지성을 이 도시 저 도시, 이 집 저 집으로 데려가는데, 그러한 방문을 통해서 결코 정념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때에 지성은 꽤 오랫동안 옛 친지들을 만나며, 그러한 만남에 의해서 자신의 상태가 부패하는 것을 허용하게 됩니다. 지성은 조금씩 하느님의 지식(영적 지식)과 거룩에서 멀어지며, 자신의 소명을 망각합니다. 그러므로 홀로 지내는 은수자는 이 마귀를 경계하며, 자신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내야 할지 유의해야 합니다. 이 마귀는 목적 없이 되는 대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독수도승의 상태를 타락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랑에 의해 지나치게 흥분하고 많은 만남에 취한 지성은 즉시 음란의 마귀, 분노의 마귀, 또는 좌절의 마귀의 포로가 됩니다.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지성이 지닌 고유의 밝음을 파괴합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이 마귀의 교활함을 알고 싶다면, 성급하게 그에게 말을 걸거나, 현재 일어나는 일 및 마귀가 우리의 정신 안에서 이러한 방문들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강압하는지, 그리고 서서히 지성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 등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는 이런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 나타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도망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알고자 하는 것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나 이틀 정도 마귀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마귀의 속임수를 상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정신적으로 마귀를 책망하여 도망치게 합니다. 그러나 시험을 받는 동안에 지성은 구름에 가려져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귀가 물러갈 때까지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합니다. 홀로 고독하게 앉아서 지금까지 발생한 일들을 회상하십시오: 당신은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디로 갔습니까. 어디에서 음란의 영, 좌절의 영, 분노의 영에게 붙잡혔으며,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이러한 사실들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억해 두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 번에 마귀가 접근할 때에 그의 가면을 벗길 준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감추어져 있는 내면의 약한 부분을 의식하려고 노력하면, 다시는 마귀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마귀를 노하게 하려면,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즉시 그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당신이 처음에 어디로 갔고 다음에는 어디로 갔는지 등에 대해 그에게 말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마귀는 치욕을 견디지 못하여 크게 화를 낼 것입니다. 마귀가 당신에게 속삭였던 생각들이 당신에게서 떠나갔다고 말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마귀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합니다.
이 마귀를 물리치고 나면, 매우 졸립고 무감각해지며, 어깨가 무겁고 하품이 나오고 눈꺼풀이 무거운 느낌이 임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이 모든 현상을 쫓아 주실 것입니다.
8. There is a demon, known as the deluder, who visits the brethren especially at dawn, and leads the intellect about from city to city, from village to village, from house to house, pretending that no passions are aroused through such visits; but then the intellect goes on to meet and talk with old acquaintances at greater length, and so allows its own state to be corrupted by those it encounters. Little by little it falls away from the knowledge of God and holiness, and forgets its calling. Therefore the solitary must watch this demon, noting where he comes from and where he ends up; for this demon does not make this long circuit without purpose and at random, but because he wishes to corrupt the state of the solitary, so that his intellect, over-excited by all this wandering, and intoxicated by its many meetings, may immediately fall prey to the demons of unchastity, anger or dejection - the demons that above all others destroy its inherent brightness.
But if we really want to understand the cunning of this demon, we should not be hasty in speaking to him, or tell others what is taking place, how he is compelling us to make these visits in our mind and how he is gradually driving the intellect to its death - for then he will flee from us, as he cannot bear to be seen doing this; and so we shall not grasp any of the things we are anxious to learn. But, instead, we should allow him one more day, or even two, to play out his role, so that we can learn about his deceitfulness in detail; then, mentally rebuking him, we put him to flight. But because during temptation the intellect is clouded and does not see exactly what is happening, do as follows after the demon has withdrawn. Sit down and recall in solitude the things that have happened: where you started and where you went, in what place you were seized by the spirit of unchastity, dejection or anger and how it all happened. Examine these things closely and commit them to memory, so that you will then be ready to expose the demon when he next approaches you. Try to become conscious of the weak spot in yourself which he hid from you, and you will not follow him again. If you wish to enrage him, expose him at once when he reappears, and tell him just where you went first, and where next, and so on. For he becomes very angry and cannot bear the disgrace. And the proof that you spoke to him effectively is that the thoughts he suggested leave you. For he cannot remain in action when he is openly exposed. The defeat of this demon is followed by heavy sleepiness and deadness, together with a feeling of great coldness in the eyelids, countless yawnings, and heaviness in the shoulders. But if you pray intensely all this is dispersed by the Holy Spirit.
9. 마귀들을 미워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크게 기여하며 거룩한 성장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서 이러한 미움을 튼튼한 나무로 키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쾌락을 사랑하는 영들이 그것을 억제하며, 영혼으로 하여금 다시 과거의 습관적인 사랑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고치시는 의원께서는 우리를 버림으로써 이러한 방종 – 또는 치료하기 어려운 부패의 원인 – 을 치료하십니다. 그분은 밤낮 우리가 두려운 고난을 겪는 것을 허락하시는데, 그 때에 영혼은 다시 원래의 미움을 회복하며, 다윗처럼 “더할 수 없는 미움으로 미워하나이다. 그들은 저에게도 원수가 되었나이다”(시편 139,22)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행동으로나 생각으로 범죄하지 않을 때 – 이것은 완전히 정념에서 벗어난 상태의 표식입니다 – 에 원수들을 완전히 미워합니다.
9. Hatred against the demons contributes greatly to our salvation and helps our growth in holiness. But we do not of ourselves have the power to nourish this hatred into a strong plant, because the pleasure-loving spirits restrict it and encourage the soul again to indulge in its old habitual loves. But this indulgence - or rather this gangrene that is so hard to cure - the Physician of souls heals by abandoning us. For He permits us to undergo some fearful suffering night and day, and then the soul returns again to its original hatred, and learns like David to say to the Lord: 'I hate them with perfect hatred: I count them my enemies' (Ps. 139: 22). For a man hates his enemies with perfect hatred when he sins neither in act nor in thought - which is a sign of complete dispassion.
10. 영혼을 우둔하게 만드는 마귀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러한 마귀가 다가올 때에 영혼이 자신에게 합당한 상태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벗어버리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거나 사악함을 사악함으로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기조차 두렵습니다. 그러한 영혼은 심판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말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며, 세상을 두려워 떨게 만드는 지옥 불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만 하느님의 계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영혼이 죄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보면서 당신이 성경을 읽어 주어도 그 영혼은 무관심하며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사람들 가운데서 영혼의 수치와 치욕을 지적해도, 그 영혼은 마치 두 눈을 감고 울타리를 향해 돌진하는 돼지처럼 당신의 말을 무시합니다. 이 마귀는 영혼으로 하여금 계속 자만하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그 날수를 줄여 주지 않으시면 어떠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마태 24,22).
이 마귀는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형제들에게는 거의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이 불행해지거나 병에 걸리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갑자기 죽음을 맞으면, 이 마귀는 몰려 나갑니다. 그 영혼이 약간의 가책이나 동정심을 경험하기만 하면, 마귀가 초래한 무감각함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독수도승에게는 이런 일들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며 질병에 걸리는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복음서에서 병자들을 돌아보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방문하라고 명하신 것은 특히 이 마귀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마태 25,36)
그러나 은수자가 이 마귀를 만났으나 부정한 생각들을 받아들이거나 자기 독방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하늘로부터 오는 인내와 자기 지배를 받은 것이며, 무정념(dispassion, apatheia)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거룩한 생활을 하겠다고 서원했으나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의 거래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 마귀를 조심해야 합니다.
10. Now what am I to say about the demon who makes the soul obtuse? For I am afraid to write about him: how, at his approach, the soul departs from its own proper state and strips itself of reverence and the fear of God, no longer regarding sin as sin, or wickedness as wickedness; it looks on judgment and the eternal punishment of hell as mere words; it laughs at the fire which causes the earth to tremble; and, while supposedly confessing God, it has no understanding of His commandments. You may beat your breast as such a soul draws near to sin, but it takes no notice. You recite from the Scripture, yet it is wholly indifferent and will not hear. You point out its shame and disgrace among men, and it ignores you, like a pig that closes its eyes and charges through a fence. This demon gets into the soul by way of long-continuing thoughts of self-esteem; and unless 'those days are shortened, no flesh will be saved' (Matt. 24:22).
This is one of those demons that seldom approach brethren living in a community. The reason is clear: when people round us fall into misfortune, or are afflicted by illness, or are suffering in prison, or meet sudden death, this demon is driven out; for the soul has only to experience even a little compunction or compassion and the callousness caused by the demon is dissolved. We solitaries lack these things, because we live in the wilderness and sickness is rare among us. It was to banish this demon especially that the Lord enjoined us in the Gospels to call on the sick and visit those in prison. For 'I was sick,' He says, 'and you visited Me' (Matt. 25:36).
But you should know this: if an anchorite falls in with this demon, yet does not admit unchaste thoughts or leave his cell out of listlessness, this means he has received the patience and self-restraint that come from heaven, and is blessed with dispassion. Those, on the other hand, who profess to practice godliness, yet choose to have dealings with people of the world, should be on their guard against this demon. I feel ashamed to say or write more about him.
11. 모든 마귀들은 영혼에게 쾌락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다만 낙담의 마귀만이 그것을 삼가는데, 이는 그는 낙담을 통해서 영혼의 모든 즐거움을 차단하고 영혼을 메마르게 만들어 영혼의 생각들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가 꺾인 정신은 뼈를 말린다”(잠언 17:22). 만일 이 마귀가 어느 정도까지만 공격한다면, 운둔자는 더욱 단호해집니다. 왜냐하면 이 마귀는 은둔자로 하여금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쾌락을 피하라고 격려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보다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영혼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하거나 도망치게 만듭니다. 욥도 이 마귀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으며, 그 때문에 “폐허 더미 속에서 누가 손을 내뻗지 않으며 재난 속에서 누가 부르짖지 않으랴?”(욥기 30,24)라고 말했습니다.
이 마귀를 나타내는 상징은 독사입니다. 사람이 독사의 독을 적절히 사용하면 다른 해로운 동물들의 독을 없애는 해독제가 되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취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습니다.
바오로는 고린도에서 한 사람을 이 마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즉시 고린도 교회에게 다시 편지하면서 “여러분은 이제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빠지고 맙니다”(2코린 2:7)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영이 사람들을 괴롭히면 참 회개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자요한은 이 영의 괴롭힘을 받으면서 하느님 안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마태 3:7-9)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본받아 그의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는 사람은(창세기 12:1 참조) 이 마귀보다 더 강해집니다.
11. All the demons teach the soul to love pleasure; only the demon of dejection refrains from doing this, since he corrupts the thoughts of those he enters by cutting off every pleasure of the soul and drying it up through dejection, for 'the bones of the dejected are dried up' (Prov. 17:22. LXX). Now if this demon attacks only to a moderate degree, he makes the anchorite more resolute; for he encourages him to seek nothing worldly and to shun all pleasures. But when the demon remains for longer, he encourages the soul to give up, or forces it to run away. Even Job was tormented by this demon, and it was because of this that he said: '0 that I might lay hands upon myself, or at least ask someone else to do this for me' (Job 30:24. LXX).
The symbol of this demon is the viper. When used in moderation for man's good, its poison is an antidote against that of other venomous creatures, but when taken in excess it kills whoever takes it. It was to this demon that Paul delivered the man at Corinth who had fallen into sin. That is why he quickly wrote again to the Corinthians saying: 'Confirm your love towards him . . . lest perhaps he should be swallowed up with too great dejection' (2 Cor. 2:7-8). He knew that this spirit, in troubling men, can also bring about true repentanc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St John the Baptist gave the name 'progeny of vipers' to those who were goaded by this spirit to seek refuge in God, saying: 'Who has warned you to flee from the anger to come? Bring forth fruits, then, that testify to your repentance; and do not think that you can justsay within yourselves. We have Abraham as our father' (Matt. 3:7-9). But if a man imitates Abraham and leaves his country and kindred (cf. Gen. 12:1), he thereby becomes stronger than this demon.
12. 분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마귀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질의 노예가 된 사람은 수도 생활이나 주님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다윗은 주님에 관해서 “가련한 이들에게 당신 길을 가르치신다”(시편 25:9)라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홀로 생활하는 수도자의 지성을 사로잡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성은 온유함이라는 땅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들은 어떤 덕목보다도 온유함을 더 두려워합니다. 모세는 이 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3)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은 “주님,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노고를 기억하소서”(시편 132:1)라고 말하면서 온유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기억하심을 받을 자격이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주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절제하지만 악한 생각들 때문에 격앙하여 화를 내는 사람은 마치 마귀를 키잡이로 삼고서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파수견을 주의 깊게 제어하며 양은 삼키지 않고 늑대만 죽이도록 훈련하며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12. He who has mastery over his incensive power has mastery also over the demons. But anyone who is a slave to it is a stranger to the monastic life and to the ways of our Savior, for as David said of the Lord: 'He will teach the gentle His ways' (Ps. 25:9).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is hard for the demon to catch, for it shelters in the land of gentleness. There is scarcely any other virtue which the demons fear as much as gentleness. Moses possessed this virtue, for he was called 'very gentle, above all men' (Num. 12:3). And David showed that it makes men worthy to be remembered by God when he said: 'Lord, remember David and all his gentleness' (Ps. 132:1. LXX). And the Savior Himself also enjoined us to imitate Him in His gentleness, saying: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Matt. 11:29). Now if a man abstains from food and drink, but becomes incensed to wrath because of evil thoughts, he is like a ship sailing the open sea with a demon for pilot. So we must keep this watchdog under careful control, training him to destroy only the wolves and not to devour the sheep, and to show the greatest gentleness towards all men.
13. 악한 생각들 중에서 자만심만큼 책략이 풍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며, 도시 안에 거하는 교활한 반역자처럼 성문을 열어 모든 마귀들이 들어오게 합니다. 그것은 독수도승의 지성에 많은 말과 개념들을 채우고, 그가 자기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드리는 기도를 오염시키면서 그의 지성을 크게 저하 시킵니다. 다른 마귀들은 패배하면 서로 제휴하여 이 악한 생각의 힘을 증가시키며, 자만심이라는 문을 통해서 영혼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 상태보다 못하게 만듭니다(마태 12:45 참조). 자만심은 교만을 낳는데, 교만은 하느님의 모양의 인(印)이요 모든 아름다움의 면류관인 천사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목숨이 무자비한 사람의 수중에 달려 있을 때에 속히 교만을 버리십시오. 열렬한 기도에 의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데 기여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 마귀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13. In the whole range of evil thoughts, none is richer in resources than self-esteem; for it is to be found almost everywhere, and like some cunning traitor in a city it opens the gates to all the demons. So it greatly debases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filling it with many words and notions, and polluting the prayers through which he is saying anything that contributes to the sense of your own importance.
14. 독수도승의 지성이 무정념을 조금이라도 획득하면, 그것은 자만심이라는 말을 타고서 즉시 도시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그 명성에게 주어진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음란의 영이 지성을 방탕의 돼지우리 안에 가둡니다. 이것은 그것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불순종하는 환자들, 즉 병이 완전히 낫기 전에 돌아다니거나 목욕을 시작하여 병이 도지는 환자들처럼 행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요히 앉아서 내면에 주의를 집중하면 거룩함이 성장하고, 우리는 보다 강력하게 악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적 지식을 깨우친 사람은 많은 일에 대한 관상적인 통찰을 획득할 것이며, 한층 더 높이 올라가면, 주님의 빛을 보다 분명히 받을 것입니다.
14. When the intellect of the solitary attains some small degree of dispassion, it mounts the horse of self-esteem and immediately rides off into cities, taking its fill of the lavish praise accorded to its repute. But by God's providence the spirit of unchastity now confronts it and shuts it up in a sty of dissipation. This is to teach it to stay in bed until it is completely recovered and not to act like disobedient patients who, before they are fully cured of their disease, start taking walks and baths and so fall sick again. Let us sit still and keep our attention fixed within ourselves, so that we advance in holiness and resist vice more strongly. Awakened in this way to spiritual knowledge, we shall acquire contemplative insight into many things; and ascending still higher, we shall receive a clearer vision of the light of our Savior.
15. 마귀들의 극악함을 모조리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단순한 독자들에게 해를 끼칠 염려가 있어 그것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하기도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음란의 마귀의 교활함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보렵니다. 수도승이 영혼의 육욕적인 부분에서 무정념을 획득하고 내면의 부끄러운 생각들을 진정시켰을 때, 이 마귀는 즉시 함께 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독수도승으로 하여금 부끄러운 행동과 몸짓을 구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은 영구적인 것은 되지 못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음식을 절제하고 철야하고, 영적 관상을 발달시키면, 그것을 가벼운 구름처럼 몰아낼 수 있습니다. 때로 이 교활한 마귀는 육에 접촉하여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의 불을 붙이기도 하며, 여러 가지 책략을 끝없이 고안해 내기도 합니다.
분노가 이 마귀를 대적하는 훌륭한 방어책이 되기도 합니다. 그 성질이 이러한 종류의 악한 생각을 대상으로 발휘되면, 마귀는 두려워하며 그의 악한 계획이 파괴됩니다. 그러한 노염은 시험을 받는 영혼에게 유익한 약입니다.
분노의 마귀도 부정의 마귀가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그는 우리의 부모나 친구나 친척들이 이유 없이 모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성을 내어 마음속에 등장한 사람들에게 악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상들을 경계해야 하며, 그것들을 재빨리 정신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에 그것들을 몰아내지 않고 우물쭈물하면, 그것들은 타오르는 횃불이 될 것입니다. 쉽게 노염을 품는 사람들은 특히 이러한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노염을 품는 사람은 순수한 기도 및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집니다.
15. I cannot write about all the villainies of the demons; and I feel ashamed to speak about them at length and in detail, for fear of harming the more simple-minded among my readers. But let me tell you about the cunning of the demon of unchastity. When a man has acquired dispassion in the appetitive part of his soul and shameful thoughts cool down within him, this demon at once suggests images of men and women playing with one another, and makes the solitary a spectator of shameful acts and gestures. But this temptation need not be permanent; for intense prayer, a very frugal diet, together with vigils and the development of spiritual contemplation, drive it away like a light cloud. There are times when this cunning demon even touches the flesh, inflaming it to uncontrolled desire; and it devises endless other tricks which need not be described.
Our incensive power is also a good defense against this demon. When it is directed against evil thoughts of this kind, such power fills the demon with fear and destroys his designs. And this is the meaning of the statement: 'Be angry, and do not sin' (Ps. 4:4). Such anger is a useful medicine for the soul at times of temptation.
The demon of anger employs tactics resembling those of the demon of unchastity. For he suggests images of our parents, friends or kinsmen being gratuitously insulted; and in this way he excites our incensive power, making us say or do something vicious to those who appear in our minds. We must be on our guard against these fantasies and expel them quickly from our mind, for if we dally with them, they will prove a blazing firebrand to us during prayer. People prone to anger are especially liable to fall into these temptations; and if they do, then they are far from pure prayer and from the knowledge of our Savior Jesus Christ.
16.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가 그렇듯이, 주님은 인간에게 현세에 대한 이해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주리라”(히브 10:16)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을 돕기 위해서 그에게 분노하는 능력과 갈망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분노하는 능력의 도움을 받아 늑대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며, 비록 종종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갈망의 도움을 받아 사랑으로 양들을 보살핍니다. 게다가 하느님은 인간이 양을 돌볼 수 있도록 법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푸른 풀밭과 시원한 물을 주셨고(시편 23:2), 시편과 수금, 막대기와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그는 산에서 건초를 모으며, 양의 젖을 먹고 양털로 지은 옷을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 떼를 치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1코린 9:7)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수도승은 밤낮 이 양 떼를 지키며, 한 마리 양이라도 사나운 짐승에게 잡히거나 도둑에게 잡혀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혹시 골짜기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즉시 사자나 곰의 입에서 양을 구해내야 합니다(1사무 17:35 참조).
양이 사나운 짐승에게 잡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형제에게 증오심을 품는 것, 여인에 대해 생각할 때에 부끄러운 욕정을 느끼는 것, 금이나 은을 생각할 때에 탐욕으로 가득차는 것,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선물들에 대해 생각할 때에 우리의 정신이 자만심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낮에만 아니라 밤에도 이 양 떼를 지켜야 합니다. 부끄러운 환상과 악한 것들을 소유함으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양들 중 일부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음과 같은 야곱의 말의 의미입니다: “들짐승에게 찢긴 것은 장인께 가져가지 않고 제가 물어냈습니다. 낮에 도둑을 맞든 밤에 도둑을 맞든 장인께서는 그것을 저에게 물리셨습니다. 낮에는 더위가, 밤에는 추위가 저를 괴롭혀, 눈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습니다”(창세 31:39-40)
우리가 노력하다가 냉담해질 때에는 영적 지식의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가서 그 지식의 기술로 줄을 뜯으면서 수금을 연주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내 산 밑에서 양들에게 풀을 먹이면,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떨기나무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탈출 3 참조) 표적과 기사의 내적 본질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16. As sheep to a good shepherd, the Lord has given to man intellections of this present world; for it is written: 'He has given intellection to the heart of every man' (cf. Heb. 10:16). To help man He has given him incensive power and desire, so that with the first he may drive away wolflike intellections, while with the second he may lovingly tend the sheep, even though he is often exposed to rains and winds. In addition, God has given man the law, so that he may shepherd the sheep; He has given him green pastures and refreshing water (cf. Ps. 23:2), a psaltery and harp, a rod and staff. In this way he gathers hay from the mountains, and is fed and clothed from his Hock; for it is written, 'Does anyone feed a Hock and not drink its milk?' (1 Cor. 9:7). Therefore the solitary ought to guard this Hock night and day, making sure that none of the lambs is caught by wild beasts or falls into the hands of thieves. Should this happen in some valley, he must at once snatch the creature from the mouth of the lion or the bear (cf. 1 Sam. 17:35).
What does it mean for the lambs to be caught by wild beasts? It means that when we think about our brother we feed on hatred; when we think about a woman we are moved with shameful lust; when we think about gold and silver we are filled with greed; and likewise when we think about gifts received from God, our mind is gorged with self-esteem. The same happens in the case of other intellections if they are seized by the passions.
We must not only guard this flock by day, but also keep watch at night; for by having fantasies of shameful and evil things we may lose some of the sheep entrusted to us. And this is the meaning of Jacob's words: 'I did not bring you a sheep which was caught by wild beasts; I made good of myself the thefts of the day and the thefts of the night. I was parched with heat by day, and chilled with frost by night, and sleep departed from my eyes' (Gen. 31:39-40. LXX).
If a certain listlessness overtakes us as a result of our efforts, we should climb a little up the rock of spiritual knowledge and play on the harp, plucking the strings with the skills of such knowledge. Let us pasture our sheep below Mount Sinai, so that the God of our fathers may speak to us, too, out of the bush (cf. Exod. 3) and show us the inner essence of signs and wonders.
17. 사악함 때문에 죽어버린 우리의 영적 본성은 창조의 모든 시대에 대한 관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에 대해 주신 영적 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죽은 영혼을 살리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2티모 2:11)라고 한 사도 바오로의 말의 의미입니다.
17. Our spiritual nature, which had become dead through wickedness, is raised once more by Christ through the contemplation of all the ages of creation. And through the spiritual knowledge that He gives of Himself, the Father raises the soul which has died the death of Christ. And this is the meaning of Paul's statement: 'If we have died with Christ, we believe that we shall also live with Him' (cf. 2 Tim. 2:11).
18. 타락한 상태를 떨쳐 버리고 은혜의 상태를 획득한 지성은 기도하는 동안에 청옥 같고 하늘 같이 청명한 자신의 본성을 보게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로들이 시나이 산에서 본 하느님의 세계였습니다(탈출 24:10).
18. When the intellect has shed its fallen state and acquired the state of grace, then during prayer it will see its own nature like a sapphire or the color of heaven. In Scripture this is called the realm of God that was seen by the elders on Mount Sinai (cf. Exod. 24:10).
19. 부정한 마귀들 중에서 일부는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을 유혹하지만, 나머지 마귀들은 비이성적인 동물의 수준에서 유혹합니다. 전자는 자만심, 교만, 질투 등 비이성적인 동물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하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반면에 후자는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욕망과 노염을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이 정념들은 인간이나 동물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이성적이고 영적인 본성 밑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경에서는 이성적인 인간에게 다가오는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으리라. 어느 대관들처럼 쓰러지리다”(시편 82:6-7).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서 비이성적으로 선동하는 생각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지각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제갈과 고삐라야 그 극성을 꺾느니, 그러지 않으면 네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시편 32:9). 만일 “죄지은 자만 죽는다”(에제 18:4), 우리가 인간으로서 죽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매장해 주겠지만, 우리가 비이성적인 동물의 상태에서 살해되거나 쓰러진다면 독수리와 까마귀들에게 먹힐 것입니다. 그것들의 새끼들은 울며(시편 147:9), 피를 빱니다(욥기 39:30),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5).
19. Of the unclean demons, some tempt man in so far as he is man, while others disturb him in so far as he is a nonrational animal. The first, when they approach us, suggest to us notions of self-esteem, pride, envy or censoriousness, notions by which non-rational animals are not affected; whereas the second, when they approach, arouse incensive power and desire in a manner contrary to nature. For these passions are common to us and to animals, and lie concealed beneath our rational and spiritual nature. Hence the Holy Spirit says of the thoughts that come to men in so far as they are men: 'I have said, you are gods, and all of you are children of the most High. But you shall die as men, and fall as one of the princes' (Ps. 82:6-7). But what does He say of the thoughts which stir in men non-rationally? 'Do not be as the horse and mule, which have no understanding: whose mouth must be controlled with bit and bridle in case they attack you' (Ps. 32:9). Now if 'the soul that sins shall die' (Ezek. 18:4), it is clear that in so far as we die as men we are buried by men, but in so far as we are slain or fall as non-rational animals, we are devoured by vultures and ravens whose young 'cry' to the Lord (Ps. 147:9) and 'roll themselves in blood' (Job 39:30. LXX). 'He that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Matt. 11:15).
20. 원수가 당신에게 다가와서 상처를 입혔을 때에 원수로 하여금 칼로 제 마음을 찌르게 하기를 원하다면(시편 37:15 참조), 다음과 같이 행하십시오: 당신의 내면에서 상처를 입힌 죄악된 생각을 분석해 보십시오. 즉,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무엇이 지성을 괴롭히는지 분석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탐욕으로 가득한 생각이 당신에게 제안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생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구분하십시오: 그 생각을 받아들인 지성, 황금에 대한 개념, 황금 자체, 그리고 탐욕이라는 정념 등. 그 다음에는 이것들 중 어디에 죄가 존재하고 있는지 질문해 보십시오. 지성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지성이 하느님의 형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 황금에 대한 개념입니까? 그러나 지각 있는 사람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황금 자체가 죄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왜 피조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죄의 원인은 네 번째 요소입니다.
그것은 객관적 실체도 아니고 실재하는 것에 대한 개념도 아니라, 자유로이 선택될 때에 지성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지으신 것들을 오용하게 만드는 쾌락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쾌락을 베어 내 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조사하고 그 구성 요소들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파괴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령한 지식에 의해서 정신이 보다 높은 수준으로 들려 올려지면, 마귀는 즉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칼로 제 마음을 찌르기 전에, 당신은 먼저 새총으로 마귀를 공격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가방에서 들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질문함으로써 그것을 던지십시오: 우리가 천사들의 세상과 마귀들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는 데 반해, 천사들과 마귀들이 우리 세상을 침범하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이는 우리는 천사들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할 수 없고 마귀들을 더욱 부정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빛나는 별인 루시퍼가 땅에 떨어져(이사 14:12) ”해심을 가마솥처럼 끓게 하고”(욥기 41:23)그 사악함으로 모든 것을 어지럽게 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려 함은 어찌 된 일입니까? 이러한 일들에 대한 통찰은 마귀에게 깊은 상처를 주며 그의 군대를 도망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 정화되고 피조물의 내적 본질에 대한 이상을 획득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정한 사람들은 이러한 본질들을 통찰할 수 없으며, 혹시 원수를 속이는 방법을 배웠어도 전쟁 때에 그들의 정념이 일으킨 먼지와 소동의 큰 구름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원수의 군대를 잠잠하게 만들어야만 다윗이 골리앗만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한 생각들과 싸울 때에, 두 가지 방법-우리를 공격하는 생각을 분석하는 것, 그리고 내적 본질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20. When one of the enemy approaches you and wounds you, and you wish to turn his sword back into his own heart (cf. Ps. 37:37:15), then do as follows: analyze in yourself the sinful thought that has wounded you, what it is, what it consists of, and what in it especially afflicts the intellect. Suppose, for instance, that a thought full of avarice is suggested to you. Distinguish between the component elements: the intellect which has accepted the thought, the intellection of gold, gold itself, and the passion of avarice. Then ask: in which of these does the sin consist? Is it the intellect? But how then can the intellect be the image of God? Is it the intellection of gold? But what sensible person would ever say that? Then is gold itself the sin? In that case, why was it created? It follows, then, that the cause of the sin is the fourth element, which is neither an objective reality, nor the intellection of something real, but is a certain noxious pleasure which, once it is freely chosen, compels the intellect to misuse what God has created. It is this pleasure that the law of God commands us to cut off. Now as you investigate the thought in this way and analyze it into its components, it will be destroyed; and the demon will take to flight once your mind is raised to a higher level by this spiritual knowledge.
But before using his own sword against him, you may choose first to use your sling against him. Then take a stone from your shepherd's bag and sling it (cf. 1 Sam. 17) by asking these questions: how is it that angels and demons affect our world whereas we do not affect their worlds, for we cannot bring the angels closer to God, and we cannot make the demons more impure? And how was Lucifer, the morning star, cast down to the earth (cf. Isa. 14:12), 'making the deep boil like a brazen cauldron’ (Job 41:31. LXX), disturbing all by his wickedness and seeking to rule over all? Insight into these things grievously wounds the demon and puts all his troops to flight. But this is possible only for those who have been in some measure purified and gained a certain vision of the inner essences of created things; whereas the impure have no insight into these essences, and even if they have been taught by others how to outwit the enemy they will fail because of the great clouds of dust and the turmoil aroused by their passions at the time of battle. For the enemy's troops must be made quiet, so that Goliath alone can face our David. In combat with all unclean thoughts, then, let us use these two methods: analysis of the thought attacking us, and the asking of questions about inner essences.
21. 부정한 생각을 재빨리 쫓아낸 후에는 그 일이 발생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원수가 우리를 제압하지 못한 것은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어느 정도의 무정념을 획득했기 때문입니까? 예를 들면 만일 어느 독수도승이 자신이 한 도시의 영적 통치를 맡았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실현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이 생각에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 도시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는데도 젠체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정념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른 생각들을 판단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건과 힘을 평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요르단 강을 건너 야자 숲 가까이에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광야에서 원수의 괴롭힘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탐욕의 마귀의 속임수는 특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종종 탐욕의 마귀는 우리의 엄격한 극기와 자제 때문에 좌절할 때면, 즉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자인 체합니다. 그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나그네들을 환영할 준비를 하라거나 이곳에 있지 않은 형제들에게 양식을 보내라고 촉구합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으로 도시에 있는 감옥을 방문하게 하고 노예로 팔리는 사람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해주게 만듭니다. 그는 우리가 부유한 여인들에게 매달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돈 많은 사람들에게 아부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리하여 영혼을 속인 후에는, 점차 영혼을 탐욕스러운 생각들 속에 빠지게 하여, 자만심의 마귀에게 넘겨줍니다.
자만심의 마귀는 상상 속에서 우리가 행한 자비한 행위들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는 칭송자들의 무리를 상기시킵니다. 그는 우리가 성직에 임명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고, 현재의 사제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불쌍한 우리의 지성은 이러한 생각들로 뒤얽혀 자신의 성직 임명을 반대하는 사람을 공격하며,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을 주고 아첨을 합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 중 일부를 재판하여 도시에서 추방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정신 속에서 맴도는 동안에 교만의 마귀가 모습을 나타내며, 번개와 두려운 환상으로 독방을 채우며 우리를 미치게 만들려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생각들의 멸망을 기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티모 6:7-8),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1티모 6:10)라고 한 사도 바오로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21. Whenever unclean thoughts have been driven off quickly, we should try to find out why this has happened. Did the enemy fail to overpower us because there was no possibility of the thought idea of bread persists in a hungry man because of his hunger, and the idea of water in a thirsty man because of his thirst, so ideas of material things and of the shameful thoughts that follow a surfeit of food and drink persist in us because of the passions. The same is true about thoughts of self-esteem and other ideas. It is not possible for an intellect choked by such ideas to appear before God and receive the crown of righteousness. It is through being dragged down by such thoughts that the wretched intellect, like the man in the Gospels, declines the invitation to the supper of the knowledge of God (cf. Luke 14:18); and the man who was bound hand and foot and cast into outer darkness (cf. Matt. 22:13) was clothed in a garment woven of these thoughts, and so was judged by the Lord, who had invited him, not to be worthy of the wedding feast. For the true wedding garment is the dispassion of the deiform soul which has renounced worldly desires. [In the texts On Prayer it is explained why dwelling on ideas of sensory objects destroys true knowledge of God.]
22. 우리의 정념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 계속 존속하는 모든 음란한 생각들은 지성을 멸망하게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서는 빵 생각이 떠나지 않고, 목마른 사람에게서는 물 생각이 떠나지 않듯이, 실컷 먹고 마신 후에 이어지는 물질에 대한 생각과 수치스러운 생각들은 정념들 때문에 계속 우리 안에 존속합니다. 자만심이나 다른 개념들에 대한 생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생각들 때문에 질식한 지성은 하느님 앞에 서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에 끌려간 지성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사람처럼 하느님을 아는 잔치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거절합니다(루카 14:18), 손과 발을 결박당한 채 바깥 어두움에 내어쫓긴 사람(마태 22:13)은 이러한 생각들로 짠 옷을 입고 있었으며, 혼인 잔치에 초대했던 주님으로부터 참석할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세상적인 욕망르 부인한 영혼의 무정념은 참된 혼인 예복입니다.
『기도에 관하여』(On Prayer)에서는 감각적인 사물들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참된 하느님의 지식을 파괴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22 Whenever unclean thoughts have been driven off quickly, we should try to find out why this has happened. Did the enemy fail to overpower us because there was no possibility of the thought ... missing text ...
... idea of bread persists in a hungry man because of his hunger, and the idea of water in a thirsty man because of his thirst, so ideas of material things and of the shameful thoughts that follow a surfeit of food and drink persist in us because of the passions. The same is true about thoughts of self-esteem and other ideas. It is not possible for an intellect choked by such ideas to appear before God and receive the crown of righteousness. It is through being dragged down by such thoughts that the wretched intellect, like the man in the Gospels, declines the invitation to the supper of the knowledge of God (cf. Luke 14:18); and the man who was bound hand and foot and cast into outer darkness (cf. Matt. 22:13) was clothed in a garment woven of these thoughts, and so was judged by the Lord, who had invited him, not to be worthy of the wedding feast. For the true wedding garment is the dispassion of the deiform soul which has renounced worldly desires.
In the texts On Prayer it is explained why dwellinng on ideas of sensory objects destroys true knowledge of God.
23. 앞에서 말했듯이, 수덕 생활을 실천할 때에 마귀들의 세 가지 집단이 우리를 전방에서 공격하며, 그들의 뒤를 원수의 군대가 따릅니다. 이 세 집단은 최전방에서 싸우며, 불순한 생각으로 영혼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합니다. 세 집단이란 탐식의 욕구를 감독하는 마귀들, 탐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마귀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존경을 받으라고 부추기는 마귀들입니다. 만일 당신이 순수한 기도를 간절히 원한다면, 쉽게 분노함을 제어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극기를 원하다면, 당신의 배를 제어하며 음식을 배불리 먹지 마십시오. 깨어 기도하고, 증오심을 버리십시오. 성령의 가르침을 항상 당신 곁에 두며, 덕을 사용하여 성경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 때에 당신의 내면에서 무정념이 생겨날 것이며, 당신은 기도하는 동안에 당신의 지성이 별처럼 빛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3. As we stated at the beginning, there are three chief groups of demons opposing us in the practice of the ascetic life, and after them follows the whole army of the enemy. These three groups fight in the front line, and with impure thoughts seduce our souls into wrongdoing. They are the demons set over the appetites of gluttony, those who suggest to us avaricious thoughts, and those who incite US to seek esteem in the eyes of men. If you long for pure prayer, keep guard over your incensive power; and if you desire self-restraint, control your belly, and do not take your fill even of bread and water. Be vigilant in prayer and avoid all rancor. Let the teachings of the Holy Spirit be always with you; and use the virtues as your hands to knock at the doors of Scripture. Then dispassion of heart will arise within you, and during prayer you will see your intellect shine like a star.
자. 최전방 마귀 필로칼리아 책 1권 한국 번역본은성출판사 46참조
정념 그리고 생각을 분별하는 것에 관하여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우리를 최전방에서 공격하는 마귀의 세 집단이 있습니다: 탐식의 욕구를 부추기는 마귀, 탐욕적인 생각을 선동하는 마귀, 그리고 사람들로부터의 존경을 추구하도록 선동하는 마귀들입니다.
그 외의 다른 마귀들은 이들을 따라오면서 이미 이 세 집단의 마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1. 우리는 먼저 탐식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한, 음란의 마귀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2. 또, 먹을 것이나, 재산 또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으려고 싸우지 않는 한,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박탈 당했을 때에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좌절의 마귀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3. 또, 모든 악의 근원인 탐욕을 추방하지 않는 한, 우리는 마귀의 첫 자손인 교만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의 말에 의하면, 가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잠10:4).
간단히 말해서 최전방에 나선 마귀들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마귀의 힘에도 함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주님에게 이 세 가지 생각을 제시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주님에게 돌을 빵으로 변화시키라고 권했고, 다음에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 온 세상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마지막으로 주님이 그의 말을 듣는다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에게 물러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 가지 생각들을 멸시하고 거부하지 않는 한,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마4:1-10).
차. 파푸누치오스 아빠스 watchfulness
A part of watchfulness is also noetic prayer. The vision of God is another part of watchfulness. Spiritual warfare is also another part. All these parts, when they are united in an effort of man, in time bring about holiness.
Abba Paphnoutios, a great desert father, was going along one day on his way and there he saw two men committing some sin. The thought of his passion said: “Look what great evil they are doing!” The eye saw them and immediately the thought flared up, trying thereby to attack the purity of the Saint’s soul by judging the brother or also by his being tempted. Having watchfulness, however, he was being vigilant, immediately his mind was enlightened and he said to his thought, “They are sinning today, I will sin tomorrow. They will repent, but I know myself to be a hard man, unrepentant, egotistical, and thus, I won’t repent. I will be punished since I am worse than these two. And what do I have to do about these careless sinners, since I am a much greater sinner and more passionate?” And speaking in this manner and putting a lock on the provocation of sin, he was saved and didn’t judge the brothers who were sinning.
He didn’t go very far and an Angel of God appeared before him having a double-edged cutless dripping blood; in other words, a knife which had cut from both sides and he says to him:
“Paphnoutios, you see this knife? Do you see that it is dripping blood?”
“I see it Angel of God.”
“With this knife I kill by taking the heads of the ones who judge their neighbors. And since you didn’t judge, you didn’t condemn those who were in fact sinning—not imagining or guessing that they were sinners, but seeing them sin with your own eyes—but you condemned yourself more, for this reason your name has been written in the book of eternal life.”
Success. His name is written in eternal life, because he didn’t judge the sinners, he didn’t condemn the sin of his brother. He would have judged if he hadn’t had watchfulness, if he hadn’t been vigilant noetically in guarding his soul. Do you see what good attention he produced? And do you see what harm he would have suffered, if he had been inattentive to the thought and allowed it to work within him! But his thought said that they were in fact sinning, he saw them. In spite of these things, however, even though the thought was spoken to him, the correct thought triumphed and thereby he escaped the shipwreck of his soul.